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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第二章 해남검법(海南劍法)(4)


상자 안에는 사람 모양의 삼(蔘)이 들어 있었는데, 눈처럼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순간, 독고천의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인형설삼(人形雪蔘)!’
인형설삼이 무엇이던가.
천 년 동안 쌓아 온 인형설삼의 음기와 엄청난 내공을 얻게 된다는 전설상의 영약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상자 안에서 차가운 한기가 물씬 풍겨져 왔다. 틀림없는 인형설삼이었다.
독고천은 인형설삼과 혈마심득을 번갈아 보았다.
기연 중의 기연이 자신을 찾아온 셈이었다.
혈마심득을 취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아무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인형설삼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수하들은 모두 죽었다. 의뢰인도 죽었다. 유일한 생존자는 나뿐이군. 그렇다면 내가 이 인형설삼을 취하더라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본 교에서도 내가 죽었을 거라 생각하겠지.’
천마신교에 대한 독고천의 충성심은 대단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연을 접하자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이건 충성심하고는 상관없지. 오히려 내가 강해질수록 본 교에 도움이 되는 것이니 말이지.’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자와 비급을 갈무리한 채 동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동굴 안으로 걸어갈수록 점점 넓이가 커지더니, 하나의 초옥이 눈에 들어왔다.
“동굴에 초옥이?”
초옥은 매우 낡았으며 남루했다.
독고천은 조심스럽게 초옥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방 안에는 놀랍게도 의복이 입혀져 있는 해골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해골의 무릎 위에는 검집 하나와 낡아빠진 서신이 한 장이 올려져 있었다.
독고천은 조심스럽게 서신을 집어 들었다.

나는 떠돌이 무사다.
기연을 얻기 위해 은거고인들을 찾아다녔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고, 이곳 절강 구석에서 생을 마감하고자 한다.
나의 이름은 차웅(嵯雄).
훗날 나를 발견할 후배여, 나의 검을 잘 써주시게.

서신을 옆에 내려놓고는 검집을 집어 들었다. 꽤나 묵직한 느낌에 독고천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청명한 소리와 함께 검이 빠져나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보이는 것치곤 매우 날카로운 예기가 번뜩였다.
검병 위에는 글씨가 음각(陰刻)되어 있었다.

진천검(振天劍).

‘명검(名劍)이군.’
독고천이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탓에 정은 들었지만 미련은 없었다. 칼날도 무뎌져 있었고, 단순한 철로 만들었기에 몇 군데는 녹까지 슬어 있었으니.
독고천은 허리춤에서 원래의 검집을 풀어내고는, 진천검을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 차웅이라는 사내의 뼈만 남은 시신을 검과 함께 조심스럽게 묻었다.
그런 뒤 작은 바위를 하나 꽂아서 그 앞에 세웠다.
정과 사를 떠나 무림 선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차웅 선배, 편히 쉬십시오.’
독고천은 초옥 안으로 들어가서 검집을 풀어 자신의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는 품속에 있던 상자를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어 조심스럽게 인형설삼을 쥐자 차디찬 기운이 손을 타고 온몸에 퍼졌다.
독고천은 인형설삼을 조심스럽게 입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입속에서 녹으며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독고천은 천천히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무림인들은 자신의 내공을 다시 보충하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취한다.
운기조식 중에는 주변의 충격으로부터 매우 취약해지기 때문에 보통 안전한 장소에서 운공을 취했으며, 믿을 사람을 호법으로 세워 놓고는 했다.
운기조식을 취하는 중 잘못 건드리면 심마(心魔)에 빠져 무공을 모두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곧 강대하고도 차가운 기운이 독고천의 목구멍으로부터 서서히 퍼져 나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엄청난 열기가 몸을 두드리자 독고천은 조용히 인형설삼의 기운을 체내에 돌리기 시작했다.
순간, 인형설삼의 기운이 날뛰기 시작했다.
독고천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며, 몸이 쉴 새 없이 떨렸다.
당장에라도 터질 듯 몸이 부풀어 오르고, 의복이 찢겨져 나가며 품속에 있던 비급이 땅바닥에 펼쳐졌다.
독고천은 힘겹게 기운을 다스리려 했으나 그럴수록 인형설삼의 기운은 더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독고천의 몸이 점점 부풀었다.
참다 못한 독고천이 신음성을 터뜨리며 끙끙거렸다.
바로 그때, 우연이었을까.
눈이 살짝 떠지며 펼쳐져 있던 비급의 내용이 독고천의 시야에 들어왔다.

내공은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의지를 갖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 억지로 다스리려다 보면 심마에 빠져 오히려 무공을 잃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경지는 천지인(天地人)의 경지를 이해하고…….

순간, 독고천은 제어하던 인형설삼의 기운을 놓아 버렸다. 그러자 인형설삼의 기운이 기다렸다는 듯 독고천의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크흑.”
독고천의 몸이 심히 떨렸다.
인형설삼의 기운이 엄청난 속도로 독고천의 혈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혈도가 터질 듯 팽창하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고통이 뇌리를 강타했다.
결국 정신을 잃고 마는 독고천이었다.

* * *

힘겹게 눈을 떴다.
엄청난 고통에 정신을 잃었는데, 오히려 상쾌하고도 맑은 기운이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운기 도중 정신을 놓으면 보통 심마에 이르게 되어서 죽는 경우가 많은데, 운이 좋게도 인형설삼의 기운이 제어받지 않고 더욱 잘 퍼지게 되는 효과를 얻은 것이었다.
독고천은 잠시 자신의 단전을 만지작거렸다.
전과는 달리 매우 강대한 기운이 연신 넘실거렸고, 손에서 괴이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상시 흘러나오던 자색 마기가 아니었다.
푸른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괴기한 느낌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마기는 분명 맞았다.
그러나 색깔이 달랐다.
푸른 마기는 독고천, 그 자신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인형설삼의 한기 탓인가?’
그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인형설삼의 지독한 한기가 마기의 색깔마저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몸의 기운을 일 주천하던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검집을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 초옥에서 나와 동굴 밖으로 향했다.
어느새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독고천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수풀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겨울?’
분명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 채 되지 않은 터였다.
그런데 어느새 겨울이 되어 있던 것이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것이지?’
순간, 독고천은 자신의 의복을 살펴보았다. 군데군데가 찢어져 있어서 걸레나 다름없었다.
맨살이 차가운 공기에 닿았지만, 차갑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독고천의 신형이 수풀을 뚫고 지나갔다.
경신술을 사용하는 와중에도 독고천의 기혈은 연신 강대한 기운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엄청나군.’
독고천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생겨났다.
강대한 기운이 그의 기분을 흡족하게 해 주었다.
그때, 독고천의 뇌리에 혈마심득이 스쳐 지나갔다.
독고천의 움직임이 일순 멎었다.
겨우 이 정도에 만족할 순 없었다.
‘겨우 내공이 증진되었다고 좋아하는 꼴이라니.’
얼굴이 붉게 변했다.
무공에 대한 독고천의 집착은 그 누구보다도 대단했다.
막대한 내공을 얻게 되어 기분이 좋았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더욱 멀게 느껴졌다. 한데 겨우 내공 증진 따위에 궁극적인 목표를 잊어버린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 것이었다.
독고천이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머릿속엔 천마신교로의 귀환 따윈 잊혀진 지 오래였다.
그는 초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낡은 먼지들을 털어 내고 부서진 문짝을 대충이나마 수리하였다.
그리고 살수로 활동할 당시 배웠던 기술로 벽곡단(퇳穀團)을 제조하여 초옥 안쪽에 쌓아 놓았다.
벽곡단은 솔잎을 따서 말린 후 기타 잡곡들과 찧은 후, 꿀을 묻혀 환(丸)으로 만들어 건조시키면 완성되는 것이었다.
물론 숲 속에서 구할 수 있는 잡곡은 매우 한정적이었기에 완벽한 벽곡단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것을 만들 수 있었다.
벽곡단은 나름 완벽한 영양소를 갖추고 있으며,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라면 벽곡단 서너 개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초옥 왼편에는 동굴 천장으로부터 물이 떨어지는 곳에 바가지를 만들어 받쳐 놓았다.
식량과 물 걱정이 끝나자 독고천은 초옥에 들어가 혈마심득을 품속에서 꺼내 펼쳤다.
그리고 이 년이 흘렀다.



第三章 강호재출(江湖再出)(1)


“도망가 봤자 헛수고라니까.”
흑의사내가 이죽거리며 흐느적거렸다.
흑의사내의 뒤에는 열 명가량의 사내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꽤나 무공을 익혔는지 눈에 보일 만큼 태양혈(太陽穴)이 튀어나와 있었다.
청의사내의 옷은 모두 찢겨져 있었고, 검상이 즐비했으며, 입가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복부 쪽에서 심한 검상을 입었는지 의복이 피로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청의사내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이놈들아, 이곳이 점창파의 구역인지 모르고 이딴 짓을 해대는 것이냐!”
점창파(點蒼派)!
구파일방 중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 당당한 명문정파였다.
운남(雲南)의 패자이자 지주인 점창파는 독특한 규칙을 지닌 문파였다. 달리 점창검파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검에 대한 규율이 매우 엄격했다.
검을 잃어버리면 파문을 당한다든지, 검의 관리가 소홀하면 참회동(慙悔洞)에서 면벽수련을 한다든지 하는 특이하면서도 엄격한 규율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규율들이 있었기에 점창파는 검의 명가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보통 문파의 제자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면벽수련을 하거나 참회동에 갇혀 있음으로써 깨우치게 해 준다.
그러나 참회동은 종종 문파에 침입하는 침입자들을 가두는 데에 사용하기도 했다.
“점창파의 구역이라는 거 잘 알지. 그런데 뭐 어쩌라고? 그래서 네가 점창파의 제자라도 되냐?”
“그, 그건 아니지만…….”
흑의사내의 이죽거림에 청의사내가 당황했다. 그러자 흑의사내가 킬킬거리며 턱짓으로 청의사내를 가리켰다.
“죽이고 칼을 가져와라.”
“옛!”
명령이 떨어지자 흑의인들이 어슬렁거리며 청의사내에게 다가갔다.
청의사내가 힘겹게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맑은 소리와 함께 검신이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