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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第三章 강호재출(江湖再出)(2)
검병은 붉은 기가 돌고 있었는데, 매우 고풍스러운 것을 보아 고급스런 가죽을 덧댄 듯 보였다.
검신은 얼음처럼 투명했으며 날카로운 검날은 무엇이든 벨 수 있을 것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또 당장에라도 날아갈 듯한 용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차가운 한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걸 보자 흑의사내가 더욱 탐욕스런 눈빛을 띠었다.
“빙룡검(氷龍劍)을 이런 시골구석에서 발견할 줄이야.”
빙룡검이 무엇이던가.
무림오대명검(武林五代名劍) 중 당당히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검이 아니던가.
빙룡검은 북해빙궁(北海氷宮)의 궁보(宮寶)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렇게 등장한 것이었다.
북해빙궁은 북해에 위치한 문파로, 빙공(氷功)과 한공(寒功)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문파였다. 또한 정파와 사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중도를 걷는 문파였다.
그 존재가 비밀에 싸여 있지만 매우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새외 세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새외에 존재하고 있기에 중원에 비해 무시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가끔씩 중원에 나타나는 북해빙궁 고수들의 한공은 중원인들이 치를 떨 정도로 패도적이며 강함을 자랑했다.
“다가오면 베겠다!”
말과 달리 검을 쥔 청의사내의 손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흑의인들이 이죽거렸다.
“아이고,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하겠군.”
“하하, 그러게 말이야.”
순간, 흑의인들의 시선이 뒤에 있던 동굴에 꽂혔다. 동굴에서 웬 사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레와도 다름이 없는 흑의를 걸친 사내의 허리춤에는 검집이 매달려 있었는데, 더러운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 있었다.
사내는 동굴에서 이 년의 시간을 보낸 독고천이었다.
“뭐야, 저 거지같은 놈은?”
흑의인들의 중얼거림에 청의사내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고, 그제야 동굴에서 나오는 독고천을 발견하였다.
청의사내가 간절하게 외쳤다.
“대협, 도와주시오! 이자들이 본인을 핍박하여 강도짓을 하고 있소!”
동굴에서 나온 독고천이 조용히 청의사내와 흑의인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흑의인의 우두머리가 이죽거렸다.
“조용히 동굴 속에 있었으면 살 수 있었을 터인데, 저놈도 죽여 버려.”
“옛!”
흑의인들이 검날을 번뜩이며 악귀와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청의사내는 독고천을 간절히 쳐다보았지만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이를 악물었다.
“오냐, 나 사나이 자운룡(紫橒龍)! 내 이름을 걸고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겠다!”
자운룡의 희미하게 떨리던 손이 지금은 굳건히 검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흑의인들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자운룡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다가오던 흑의인들의 신형이 움직였다.
흑의인들의 검이 당장에라도 청의사내의 이마를 꿰뚫을 것만 같았다.
순간, 독고천의 손이 번쩍였다.
그러자 제일 앞서 나와 있던 흑의사내가 피를 토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독고천의 손이 다시 번쩍였다.
이번엔 두 명의 흑의사내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옆으로 뒹굴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우두머리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보이지 않았다.’
세 명의 흑의인이 널브려져 신음을 터뜨리고 있었지만, 독고천의 팔은 언제 그랬냐는 듯 늘어져 있었다.
상대를 경시하였기에 처음에는 보지 못했는데, 독고천의 몸에서는 푸른빛의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절대 하수가 아니었다.
우두머리가 검을 뽑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거, 고수가 납시었군.”
순간, 그에 맞서 독고천 역시 검을 뽑아 들었다. 묵직한 기운이 물씬 풍겨 나오자 우두머리의 표정이 더없이 굳어졌다.
스릉.
자연스레 뽑힌 독고천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앗.
그와 동시에 널브러져 있던 흑의인들의 숨이 끊어졌다.
그 모습에 우두머리가 이를 갈았다.
“네놈도 착한 놈은 아닌 것 같군. 우리와 같은 놈인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지. 혈무문(血武門)의 이번로(李磻蘆)다.”
혈무문은 귀주(貴州)에 자리 잡고 있는 사파 중 하나였다. 귀주는 산세가 험악하다 보니 사람들이 잘 다니지도 않았고, 시장바닥도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귀주에 자리 잡고 있는 혈무문은 운남으로 자주 오는 편이었다.
혈무문은 비록 큰 문파는 아니었지만, 장로 급 중 이름난 고수들을 많이 섭외해 왔고 점점 귀주의 패자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문파 중 하나였다.
혈무문의 문주는 신외지물(身外之物)을 좋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특히나 명검에 대해서는 지독할 정도로 집착했다.
문주가 하루가 멀다 하고 무림 신외지물들의 그림을 보여 주며 연설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번로도 빙룡검이고 뭐고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독고천이 이름을 밝히지 않자 이번로가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에 가만히 서 있던 독고천이 검을 살짝 흔들었다.
핏물이 흘러내리며 땅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번로가 침을 삼켰다.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이런 촌구석에서 빙룡검이란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기연을 만났나 했더니, 역시나 똥 밟았군.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건가.’
“본인은 이 일에서 손을 떼고 부하들과 자리를 떠나겠네. 헛생각도 없고, 암습을 하지도 않을 것이며, 나중에 복수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네.”
이번로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적의가 없다는 듯 양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수하들에게 눈치를 보냈다.
수하들도 급히 검을 집어넣고는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독고천은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번로는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치다가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수하들과 함께 부리나케 도망쳐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자운룡이 진이 빠진 듯 털썩 주저앉았다.
“휴.”
자운룡은 한숨을 쉬다 말고 문뜩 무언가를 깨달은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독고천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이며 포권지례(抱拳之禮)를 올렸다.
포권지례란 하수가 고수를 보았을 때나 무언가 감사를 표현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혹은 정중히 인사를 해야 할 상대를 만났을 때 하는 행위였다.
또한 가슴 앞에서 왼손으로 오른 주먹을 감싸는 것이 바로 포권지례의 방법이었다.
“대협,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협의 존성대명(尊姓大名)을 알고 싶습니다. 저는 북해빙궁의 자운룡이라 합니다.”
북해빙궁의 인물이라는 말에 놀랄 만도 하건만 독고천은 그저 고개만 까닥거릴 뿐이었다.
“독고천이오.”
말과 함께 독고천의 몸에서는 푸른 마기가 흘러나와 자운룡의 몸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자운룡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그건 뭡니까?”
“마기요.”
마기라는 말에 자운룡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핏 듣기에 마공을 익히거나 천마신교에 소속된 고수들이 몸에서 마기를 흘린다고 들은 탓에 자운룡이 물었다.
“그럼 대협은 천마신교의 고수십니까?”
새외의 고수들은 중원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단지 구파일방과 세력이 큰 몇 개의 문파 이름만을 알고 있는 정도랄까.
알지를 못하니 선입견을 가질 이유나 필요도 없었다.
자운룡의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한 질문에 독고천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렇소.”
그러자 자운룡이 함박 미소를 지었다.
“이런 깊은 숲 속에서 대협 같은 분을 만나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중원으로 도…… 험험, 유람 중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은혜를 갚고자 의복을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겸사겸사 식사도 같이하고 술도 한잔하시죠.”
자운룡이 독고천의 옷을 살짝 훑어보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에 독고천이 슬쩍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고 고개를 들었다.
자운룡과 독고천의 시선이 마주쳤다.
자운룡이 넉살 좋게 입을 떼었다.
“객잔으로 모시겠습니다, 대협.”
* * *
뜨거운 물이 몸을 데웠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자 독고천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하아.”
지난 이 년 동안 묵은 때를 밀기 시작하자 땟국물이 바닥에 흘러내렸다.
때가 껴 있던 손톱도 정리하고 수염과 머리도 깔끔히 깎았다.
목욕을 마친 독고천은 자운룡이 새로 사 온 흑의로 갈아입었다.
그런 후 객잔으로 내려오자 자운룡이 벌떡 일어났다.
처음에는 괴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훤칠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인물이 훤하십니다, 대협.”
“고맙소.”
독고천은 수련하는 동안 사람과 단절된 탓에 말하는 것이 약간은 어색한 듯 입을 달싹였다.
자운룡과의 약간의 대화를 통해 독고천은 자신이 수련하고 나서 대략 이 년이 흐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본 교는 나를 찾았을까? 지금 돌아간다면 문책을 면할 수 있을까? 본 교라면 최소한 근신에 심하면 사형까지 가능할 텐데. 돌아가는 것이 맞을까?’
천마신교의 율법은 강력했다.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며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상관의 명령을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하기도 하는 것이 천마신교의 율법이었다.
‘하지만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 표물 운행 중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그동안 치료하느라 연락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 되겠지. 그동안 정신을 잃어 누군가 운 좋게 돌봐 주었다고 지어내면 되겠지.’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침묵하던 독고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독고천이 홀로 생각에 잠겨 있자 자운룡이 점소이를 불렀다.
“이보게, 여기 오리탕 두 그릇에 동주(董酒)를 부탁하겠네.”
“예, 곧 가져다드립죠.”
점소이가 활짝 웃고는 주방으로 걸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귀주와 운남은 붙어 있었기에 자주 교류를 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귀주에서 유명한 동주를 운남에서도 시음할 수 있었다.
동주는 맑고 투명하며 짙은 향기가 코를 찌르는 게 특징인 술인데, 매우 감미롭고 상쾌하여 많은 주객(酒客)들이 찾는 술 중 하나였다.
오리탕과 동주가 나오자 자운룡이 술을 잔에 따라 주며 독고천에게 권했다.
“독고 대협, 한잔하면 한결 기분이 좋아지실 겁니다.”
“고맙소.”
독고천이 한 잔을 시원스레 들이켰다.
그러자 자운룡이 만족한 듯 자신도 한 잔을 통쾌하게 마셨다.
“크으, 역시 귀주에 오면 동주를 마셔 봐야 한다는 것이 정말이었습니다. 확실히 다르긴 하군요.”
잔을 탁자에 탁, 올려놓은 자운룡이 오리탕에서 다리 한쪽을 뜯어 입에 가져갔다.
“오, 중원의 오리탕은 이렇게 만듭니까?”
자운룡은 쩝쩝거리는 소리까지 내면서 오리탕을 맛나게 먹어댔다.
그 모습에 독고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한데 자 소협은 어째서 중원으로 도망쳐 나온 것이오?”
독고천의 질문에 오리탕을 쩝쩝거리며 먹던 자운룡이 사레가 걸렸는지 컥컥거렸다.
“크흠. 무슨 소리십니까, 대협?”
애써 표정을 관리했지만, 이미 들킨 것 같았다. 자운룡은 동주 한 잔을 들이켜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사실…….”
자운룡이 주위를 살펴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전 북해빙궁의 소궁주(小宮主)입니다.”
놀라기를 기대했는지 자운룡이 뜸을 들였지만 독고천은 덤덤했다. 그 모습에 자운룡이 뭔가 아쉽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