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8화
第三章 강호재출(江湖再出)(3)
“중원은 잘 모르고 있겠지만, 사실 저를 포함해 두 명의 소궁주가 더 있습니다. 그리고 궁주인 아버지께서는 현재 위독하시지요. 흔한 이야기입니다. 그냥 서로 궁주 해먹으려고 싸우다가 지쳐서 그냥 도망쳐 나왔습니다. 수하들을 데려올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 누가 소궁주가 도망치려는데 쉽사리 네네, 하고 쫓아오겠습니까? ‘소궁주가 도망간다!’ 하고 소리나 안 지르면 다행이지.”
흥미롭게 이야기하던 자운룡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지쳤지요. 만날 동생 놈들이 잡아먹으려고 하고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었지요. 그래서 그냥 이 검 하나 들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하!”
자운룡이 시원스레 웃으며 다시 동주 한 잔을 들이켰다.
“크으, 원래 궁주가 되려면 이 검이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이 검을 주셨지요. 그래서 나머지 동생 놈들이 이 검을 빼앗으려는 것을 알기에 그냥 냅다 도망쳤습니다. 제가 궁주가 못 되는 이유는 무공이 약하거든요. 매우매우 약합니다. 동생 놈들에게 양보할 수도 있었지만, 괜히 배가 아프더군요. 아시잖습니까, 내가 갖긴 싫지만 남 주긴 아까운 거. 하여튼 그래서 북해빙궁의 신물을 들고 중원으로 이렇게 날아온 겁니다.”
조용히 자운룡의 한탄을 듣고 있던 독고천이 아무 말 없이 잔을 스윽 들었다.
그러자 자운룡이 씨익 웃으며 잔을 부딪쳐 왔다.
챙.
술자리가 깊어지는 가운데 사나이들의 밤이 무르익어 갔다.
* * *
“부르셨습니까?”
부복해 있던 흑의사내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찾았나?”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지만 흑의사내는 고개를 조아리더니 입을 열었다.
“인형설삼이 없어진 지 벌써 이 년이 흘렀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찾고는 있지만, 누군가 이미 취하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그것이 흑천교(黑天敎)의 짓이라면 확실할 것입니다.”
흑천교!
흑천교는 혈교라는 거대한 문파에서 분리되어 나온 문파 중 하나였다.
혈교는 사술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파인데, 요상한 사술로 많은 무림인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천마신교와 함께 사파를 양분화할 정도로 혈교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흑천교는 혈교의 분타와도 같은 곳이었는데, 혈교의 부교주였던 곽치돈(藿峙敦)이 교주 다툼에서 쫓겨난 후 세를 키워서 독립한 문파였다.
전대 혈교 교주가 심마를 얻어 급작스럽게 사망한 후 부교주과 소교주 간에 벌어진 세력 다툼.
결국 소교주였던 진보난(眞普蘭)이 압도적인 무력을 이용하여 교주로 등극함으로써 혈교의 내전은 마무리되었다.
“그래, 흑천교 놈들이 표물 운행을 습격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사마련(死魔聯) 측에 벌써 이 년째 사과문과 함께 공물을 바치고 있단 말이지. 이거, 본 교 체면이 말이 아니야. 아, 인형설삼!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본좌도 알아. 중원에 단 두 개밖에 없다며!”
중년인이 씩씩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본 교가 표물운행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이 짓거리를 해야 한다니. 마음 같아서는 그냥 확 엎어 버리고 싶다니까. 사파 최강인 본 교가 사마련 따위에게 고개나 숙이고 있다니!”
중년인이 이를 갈며 단상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흑의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비마대주(飛魔隊主)님.”
“교주님도 말이야, 왜 평화를 유지하고 계시는 건지 모르겠어. 그냥 사마련 따위는 역천악귀대만 보내 버려도 하루 안에 멸문시킬 수 있는데 말이야. 그 악귀 놈들이 만날 구석에 처박혀서 칼만 갈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본좌의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단 말이야.”
비마대주가 탄식을 내뱉었다.
“에휴, 어쨌든 또 부탁하겠네. 벌써 이 년이 흘렀지만, 그래도 조그만 단서라도 나오면 빨리빨리 부탁하네. 누가 처먹었는지라도 알아야 사마련 놈들한테 따질 수 있지 않겠나. 부탁하네, 천 부대주. 워낙 본 교의 일이 바쁘니 다른 놈들은 지금 다른 곳에서 피똥 싸고 있을 거야. 그래도 자네니까 이런 일도 맡길 수 있는 거고, 이 일을 통해서 지난 이 년 동안 푹 쉬지 않았나. 많은 정보들도 가져왔고 말이야. 부탁하겠네.”
천 부대주라 불린 흑의사내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옛.”
천 부대주가 밖으로 나가자 비마대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빌어먹을 사마련 놈들. 내가 꼭 이 굴욕을 갚아 주마. 에휴, 이게 뭐 하는 짓거리인지. 아니, 인형설삼을 처먹은 놈이 있으면 ‘나, 인형설삼 처먹은 놈이오!’ 하고 자랑하러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혼자 투덜거리던 비마대주가 화를 식히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답답한 속내와는 달리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쳇, 날씨는 좋구먼.”
* * *
천선우는 조용히 서류를 살펴보았다.
벌써 이 년째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비마대주의 개인적인 원한이 매우 강했기에 이 년이나 잡아먹은 것이지, 보통 이런 사건이라면 한 달 내로 접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천선우는 비마대주의 명을 받들어 꾸준히 정보를 캐고 있었다.
인형설삼은 이미 누군가 취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냐는 것이 문제였다.
표물 운행을 습격했던 흑천교 고수들은 문파로 돌아가 꽁꽁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기에 족칠 방법이 없었다.
‘독고천이라…….’
표물 운행을 맡은 총책임자였다.
처음 천선우가 악마대로 차출되었을 당시에 만난 독고천은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를 따라간 덕분에 비마대로 선출되어 이렇게 부대주의 자리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천선우는 서류를 자세히 살폈다.
표물 운행 인물 중 독고천 외에 뛰어난 인물은 없었다.
그러니 생존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독고천이었고, 아마 흑천교 측에서 인형설삼을 얻지 못했다면 그에게 넘어갔을 확률이 매우 컸다.
하지만 문제점은 생존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피해자들 중 생존자가 없으니 증언을 들을 수도 없었고, 가해자 중 족칠 수 있는 놈들이 없으니 인형설삼의 행방을 당최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냥 본 교의 이름을 팔아서 흑천교 놈들을 몰아붙이면 벌벌 떨면서 알아서 정보를 내줄 텐데 말이지.’
그것도 사실 어려웠다.
천마신교 측에서는 비밀리에 분타들을 건설 중이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중 표물 운행은 매우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하오문(下午門)을 통하여 표물 운행을 하고 있기에 세인들은 천마신교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파견 보내는 고수들도 마기를 덜 풍기는 마인들로만 구성하여 파악이 어려웠다.
물론 초반에는 하수들이 별로 없어서 비록 마기가 짙지만 소속이 없는 독고천을 파견하기는 했다. 하지만 강호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니 상관없었다.
다른 사파의 무공들 중에서도 사기(邪氣)나 마기를 풍기는 무공들이 없지 않았기에 독고천을 보더라도 바로 천마신교를 떠올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서류를 읽어 가던 천선우가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나가 볼까?’
* * *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대협은 어디로 가실 예정입니까?”
소면을 먹던 자운룡이 독고천에게 물었다.
차를 홀짝이던 독고천이 무언가 생각하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본 교로 복귀할 예정이오.”
“본 교라면…… 천마신교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독고천의 대답에 소면을 먹다 말고 자운룡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도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왜 그러시오?”
“다름이 아니라, 본 궁으로 돌아가기는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혼자 강호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제와도 같은 일이 또 발생할지도 몰라서 말이죠. 그리고 제가 듣기로는 천마신교가 무림에서 최강의 단일 세력이라 들었습니다. 또한 비밀에 싸인 곳이라 들었지요. 그래서 마침 이것도 인연인데 겸사겸사 천마신교라는 곳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살짝 흥분하였는지 말을 하는 자운룡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뭐, 같이 가는 것은 상관없는데,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수도 있소.”
담담한 독고천의 말에 자운룡이 움찔했다.
“못할 수도 있다는 말씀은?”
“본 교의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당신을 입교시키거나, 혹은…….”
“혹은……?”
“알아서 처리할 수도 있단 말이오.”
자운룡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 이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따라가겠습니다. 어차피 대협이 아니었다면 어제 죽었을 목숨. 앞으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찾아오겠습니까. 제가 본 궁에서 뒤적거린 바로는 천마신교의 고수분들은 무림에 잘 나오지 않아 만나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천마신교로 방문하라는 하늘의 계시지요.”
“마음대로 하시오.”
독고천의 말에 자운룡이 신났는지 소면을 마구 들이마셨다. 바닥에 남은 국물까지 핥아먹은 자운룡이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대협, 대협 하려니 제가 좀 불편해서 그런데, 그냥 형님이라 부르면 안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시오.”
독고천의 시원스런 대답에 자운룡이 탄성을 내뱉었다.
역시였다. 천마신교의 고수들은 허례허식에 얽매이지 않고 시원하고 호탕한 자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던 것이다.
힘을 숭상하는 철혈(鐵血)의 세계를 살아가는 절대의 고수들이 바로 천마신교의 사람들이라 들었던 것이다.
물론 새외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정파에서 본다면 잔인하고 악독하며 무례한 자들이 바로 천마신교의 고수들이었다.
새외 세력은 천마신교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접촉할 기회도 적었고 다툴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정파는 하루하루가 사파와의 다툼의 연속이니, 선입견이 생겨 서로 비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마신교의 고수들이 확실히 나쁜 놈 쪽에 속해 있는 편이긴 했다.
“그럼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형님?”
형님이라 불러 놓고는 자운룡이 저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누군가를 형님으로 모신다는 것, 괜찮은 기분이었다.
“곧바로 출발할 예정이오.”
독고천의 말에 자운룡이 섭섭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말을 편히 하셔도 됩니다, 형님.”
“그러도록 하지.”
독고천이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자 그제야 만족한 듯 자운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천은 천마신교에서 자란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서열에 아주 민감했으며, 상대가 자신보다 낮다고 인식되면 하대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반대로 상급자에 대해서 복종하는 것도.
객잔을 나선 독고천과 자운룡은 숲 속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천마신교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자운룡은 독고천의 거침없는 행보에, 독고천은 자운룡의 재미난 입담에 서로 호감을 표했다.
자운룡은 어릴 때부터 무림에 관한 기사(奇事)들을 많이 알아 가는 내내 심심치 않게 재미나고 기이한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옛날에 어떤 꼬마와 할애비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사실 그 할애비가 전설상에 나오는 용이라는 영물이었다는 겁니다. 그 할애비 용은 꼬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여의주를 반으로 쪼개 주었는데, 꼬마는 그게 전병인 줄 알고 깨물었답니다. 결국 꼬마 턱이 아작 나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죽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그 할애비 용이 너무 슬퍼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땅에 스며들자 산이 하나 생겨났답니다. 그리고 그 산에 꼬마 아이들이 들어가면 항상 실종당한답니다. 그 할애비 용이 잡아간다는 소문이 퍼졌지요. 그래서 그 산 이름이 노한산(老恨山)이라 지어졌습니다. 아직도 꼬마 놈들이 들어가면 실종된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