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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第三章 강호재출(江湖再出)(4)
이야기를 하던 자운룡이 순간 부르르 몸을 떨었다.
“본 궁 뒤쪽에 있는 산인데, 저도 어릴 때는 너무나 무서워서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었습니다. 뭐, 지금은 상관없기는 한데…… 아는 사람입니까?”
이야기를 하던 자운룡이 문득 한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곳에는 흑의를 말끔히 차려입은 사내가 숲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드디어 찾았군. 몇 년 만이지?”
독고천이 조용히 흑의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흑의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역시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어. 본 교로 복귀 중인가, 아니면…….”
흑의사내가 씨익 웃었다.
“……도망 중인가?”
“복귀 중이다.”
독고천의 말에 흑의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서류를 꺼내더니 작은 붓으로 휘저었다.
“다행이야. 본 교의 인재를 잃지 않게 되어서……. 그나저나 그 물건은 어디로 갔나?”
물끄러미 독고천을 바라보던 흑의사내가 알겠다는 듯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그 물건을 취했지?”
“어쩔 수 없었다.”
“다쳤나?”
“그렇다.”
흑의사내가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암습에 당해 정신을 헤매다 그 물건을 섭취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상처를 치료하고, 여태까지 사경을 헤매다 본 교로 귀환하는 중이었나?”
순간, 독고천과 흑의사내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흑의사내의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한참 동안 흑의사내의 눈을 바라보던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흑의사내가 붓으로 서류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더니, 독고천을 올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받아들이지. 본 교 입장에서도 자네와 같은 고수를 잃고 싶진 않을 테니 말이야. 예전에 받았던 은혜는 이걸로 갚은 셈 치도록 하지.”
은혜라는 말에 독고천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흑의사내가 손사래를 쳤다.
“아무것도 아니야.”
시선을 피한 흑의사내가 자운룡을 바라보았다.
“본인은 천선우라고 하오.”
천선우가 정중히 인사를 건네자 자운룡도 마주 포권을 취했다.
“자운룡이라 합니다.”
“소협께서는 북해빙궁에서 오시지 않았소?”
“맞습니다. 어찌 아셨습니까?”
천선우의 눈이 빛났다.
“허리춤에 매여 있는 빙룡검을 보고 알았소. 소궁주시오?”
“맞습니다.”
자신의 정체가 까발려지자 자운룡은 당황했다. 자신은 이름밖에 모르는데 상대방은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걸 눈치챘는지 천선우가 미소를 지었다.
“본인은 정보 조직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오. 그냥 조금 정보에 밝다고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소.”
“알겠습니다.”
그러나 천선우의 미소에 자운룡은 무언가 기괴함을 느꼈다. 입과 달리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운룡은 저도 모르게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사이, 천선우가 서류를 정리하고는 품속에 갈무리했다.
자신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려 보인 천선우가 씨익 웃었다.
“같이 가겠나?”
* * *
천마신교(天魔神敎).
웅장한 현판이 보는 이들을 짓누르려는 듯 무거운 기운을 물씬 풍겨 왔다.
“여기가 천마신교입니까?”
자운룡이 침을 꿀꺽 삼켰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말로만 듣던 것보다 훨씬 장대하고 웅장하며,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성을 이루고 있는 듯한 천마신교였다.
거대한 대문에는 두 명의 무사가 느슨히 서 있었는데, 그들의 몸에서는 자색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와 함께 그들의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넘쳤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왼쪽 무사가 정중히 물어 왔다.
그에 천선우가 품속에서 명패를 꺼내더니 무사에게 보여 주었다.
명패는 짙은 흑색을 띤 박쥐 모양의 조각. 어찌나 생동감이 있는지 당장에라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왼쪽 무사가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비마 부대주님.”
그사이, 오른쪽 무사가 대문을 밀어젖혔다.
끼익.
거대한 대문은 보기와는 달리 쉽사리 열렸다.
그것으로 보아 무사의 내공이 얼마나 심후한지 알 수 있었다.
비마 부대주라는 말에 독고천의 눈썹이 흔들렸다.
비마대는 분명 정보 조직인 탓에 뛰어난 무공 실력을 지닌 자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천마신교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런데 천선우는 어린 나이에도 그런 곳의 부대주가 되어 있던 것이다.
비마대가 무공 실력이 다른 무력 부대보다는 떨어지기는 하지만, 부대주라는 위치는 결코 쉽사리 얻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세월 동안 천선우가 피땀 흘려 구축한 것일 테고, 총타에서 떨어져 있던 세월만큼 천선우와 독고천의 거리도 그만큼 벌어진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천선우가 슬쩍 뒤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물론 예전엔 동기였지만, 지금은 상관이니 알아서 조심하게나.”
그러고는 고개를 휙 돌리고는 당당히 걸어갔다.
주위를 지날 때마다 숨 막힐 듯한 마기를 뿜어 내는 자들이 천선우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비마 부대주님, 안녕하십니까!”
천선우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야 사내들은 조심히 옆으로 비켜서서 가던 길을 갔다.
독고천은 조용히 뒤쫓으며 천선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천선우의 몸에는 무언가 흑막이라도 씌어 놓은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현문(玄門)의 심법인가…….’
현문의 심법은 정진할수록 현묘한 경지에 오르기 때문에, 반박귀진(返朴歸眞)과 가까운 상태가 된다.
즉, 본 실력이 쉽사리 드러나지 않아 무공 수위를 저절로 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공이 아주 차이 나지 않는 이상 현문의 심법을 익힌 고수의 내력을 알기는 매우 어려웠다.
마공을 익히게 되면 무공 수위에 따라서 흘러나오는 마기의 양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마공을 익힌 자들의 무공 수위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간단했다.
짙은 마기를 풍기는 마인이라면 고수일 것이고, 옅은 마기를 풍기는 마인이라면 하수인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존재했다.
진정한 고수들은 마기를 감출 수 있거나 내뿜는 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침내 익숙한 전각 앞에 다다르자 천선우가 턱짓으로 가리켰다.
“외총관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다. 매우 반가워하시겠지. 그럼 난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천선우는 모습을 감췄다.
자운룡이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
독고천이 슬쩍 바라보자 자운룡이 침을 찍, 뱉었다.
“……저 사람, 정말 재수없네요.”
“본 교에서는 힘만 있으면 얼마든지 재수없어도 되지.”
독고천의 말에 자운룡이 혀를 내둘렀다.
“저 사람보다 재수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독고천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운룡과 함께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자운룡은 손님이기도 했지만, 외부인이기에 혼자 두는 것보단 나을 거라 생각하여 같이 들어선 것이었다.
전각 안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몇 명의 무사를 거치자 작은 방 하나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호출이 있을 때까지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第四章 북해빙궁(北海氷宮)(1)
“그게 사실인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묻자 부복해 있던 청의 중년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두 사람의 몸에서는 자색빛의 기괴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 사실입니다. 명령만 내려 주시면 그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청년이 차를 홀짝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킬킬거렸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별로 걱정할 거리도 아니군. 인형설삼은 본래 본 교의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야. 물론 내가 취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본 교에 힘을 쏟을 인재가 하나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냥 이번 사건은 조용히 넘어가게. 독고천이라 했나?”
“예, 교주님.”
그랬다.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 바로 천마신교의 교주, 흑제 노전득이었던 것이다.
기생오라비처럼 매끄럽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노전득은 잔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가 강호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많은 정파인들이 그의 잔혹한 장공에 고혼(孤魂)이 되었었다.
“내버려 두게. 뭐, 강한 놈 한 명 생기면 본 교야 좋지. 이만 나가 보게, 외총관.”
외총관 주용천이 고개를 조아렸다.
“존명.”
* * *
방에는 작은 탁자와 의자 세 개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중심에 앉은 청의 중년인이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외총관 주용천이 반가운 듯 미소를 짓자 독고천이 고개를 조아렸다.
“오랜만입니다, 외총관님.”
“그래그래. 그런데 이쪽은?”
주용천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자운룡이 정중히 포권했다.
“북해빙궁의 자운룡입니다.”
“자운룡이라면…… 북해빙궁의 소궁주가 아니신가?”
주용천이 의아한 듯 묻자 자운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그러자 주용천이 활짝 웃었다.
“하하. 이거, 북해빙궁의 고수분을 여기서 볼 줄이야. 그나저나 궁주님은 안녕하신가?”
“예, 안녕하십니다.”
자운룡의 허리춤을 흘겨보던 주용천이 곧 독고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왜 이리 늦었나?”
“조금 착오가 생겼습니다.”
“그래, 그 착오는 방금 비마대주로부터 들었네. 몸은 어떤가?”
주용천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자 독고천이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괜찮아졌습니다.”
“그래, 본 교에서 뛰어난 고수를 잃을 뻔했군.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네. 그나저나 그 물건은 맛있었나?”
주용천이 장난스럽게 묻자 독고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어쩔 수 없이 섭취한 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하하, 괜찮네. 만약 자네가 그 물건을 취하고도 지금과도 같은 마기를 내뿜지 못했다면 내가 친히 목을 쳤을 걸세.”
시원스럽게 웃고 있는 주용천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따가운 살기가 연신 몸을 찔러 왔다.
그러나 독고천은 담담히 살기를 받아 내었다.
순간, 주용천의 눈이 빛났다.
“그나저나 지금 소속이 없지, 아마?”
“예, 없습니다.”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던 주용천이 차를 홀짝인 후 손을 내저었다.
“나중에 수하를 보내 자네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겠네. 지금은 돌아가서 여행의 노고를 풀게나. 이만 가 보게.”
“존명.”
“자네도 나중에 보세나.”
주용천이 미소 띤 얼굴로 말을 건네자 자운룡은 포권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중에 뵙겠습니다.”
독고천과 자운룡이 방에서 나가 혼자 남게 된 주용천은 차향(茶香)을 음미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것참, 서열을 또 바꿔야겠구먼. 서열표가 어디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