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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第四章 북해빙궁(北海氷宮)(2)


독고천과 자운룡이 전각에 머문 지 어언 나흘이 지나갔다. 그동안 아무도 찾는 이가 없었다.
덕분에 독고천은 조용히 명상을 하거나 뒤뜰에서 검술을 수련할 수 있었다.
자운룡은 독고천의 검술 수련을 멍하니 쳐다보거나,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전각 근처를 구경했다.
그러던 중 자운룡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독고천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천마신교가 자랑하는 마기가 물씬 풍겨 나왔고, 마공답게 매우 패도적이고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무언가 미묘한 부분이 있었다.
꼭 짚어 낼 순 없었지만 말이다.
“형님.”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던 자운룡이 부르자 독고천이 명상을 하다 말고 눈을 떴다.
그러자 자운룡이 의아한 듯 물었다.
“어제 형님이 검술 수련 하실 때 얼핏 보았는데, 무언가 좀 미묘합니다.”
“뭐가 미묘하지?”
“그…… 보통 마공이라는 게 패도적이고 강대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물론 형님의 검술도 패도적이고 강대하긴 한데 무언가 현묘(玄妙)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제가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강호에 나왔을 당시, 해남검파에서 나온 고수의 검술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형님의 검술이 그것과 매우 흡사한데요.”
말을 하면서도 자운룡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흡사하지?”
“어릴 때 보았던 것이라 느낌만 선명합니다. 당시 그 고수의 검은 매우 빠르고 날카로웠는데 상대가 당장에라도 벌집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그런데 그러한 느낌이 형님의 검술에서도 느껴집니다.”
독고천은 호기심을 풀어 주겠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다시 한 번 보여 주지.”
스릉.
“아!”
맑은 검명에 자운룡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 순간, 독고천의 검이 슬쩍 기울어지더니 허공을 갈랐다. 이어 날카롭고 강대한 기운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파파팟!
독고천이 허공으로 뛰어오르자 짙은 푸른색의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상태에서 손목을 비틀자 마기가 검날 위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리고 순간, 독고천의 검이 멈추는 듯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찔러 갔다.
“합!”
기합성과 함께 허공이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마기가 휘날렸다.
한참 가공할 검술을 펼치던 독고천이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검술을 지켜본 자운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해남검파의 검술과 닮았습니다, 형님.”
독고천은 조용히 가부좌를 틀더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자운룡은 입을 다물고는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강호 물정에 어두운 사람조차 나의 검법이 해남검파의 검술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그렇다면 더욱 뛰어난 안목을 지닌 자들에게는 이것이 남해삼십육검이라는 것을 곧장 간파당하겠지. 변형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면 쓰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독고천의 뇌리 속에서 수많은 검로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던 중 인기척을 느껴 슬쩍 눈을 떴다.
“대인.”
웬 흑의사내가 정중히 고개를 조아리며 독고천을 불렀다.
독고천이 쳐다보자 흑의사내가 입을 열었다.
“외총관님께서 대인을 찾습니다. 북해빙궁에서 오신 손님도 함께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았다.”
흑의사내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독고천은 조용히 흑의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전각 안으로 향했다.
자운룡을 데리러 가는 것이었다.

독고천과 자운룡은 다시 주용천을 찾았다.
마침 차를 홀짝이던 주용천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며 웃어 보였다.
“오, 나흘 만인가? 잘들 지냈나? 불편하진 않았고?”
“예,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다행이구먼. 다름이 아니라 본 교에서는 지금이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있네. 그쪽에 있는 소궁주가 본 교를 찾아온 것은 하나의 인연이라 생각한 것이지. 본 교와 북해빙궁의 인연이 더욱 돈독해질 거라 믿고 있다네.”
주용천이 씨익 웃으며 자운룡을 쳐다보았다.
“하여 우리는 독고천과 비마 부대주, 그리고 천마추살 부대주(天魔追殺副隊主)를 북해빙궁에 파견하고자 하네. 소궁주의 뜻은 어떤가?”
자운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뜻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꺼림칙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만, 북해빙궁의 최근 골칫거리가 무엇인지 조사해 보았네. 그리고 외부와의 결합을 통해 처리할 수 있는 문제라고 판단했네. 마침 북해빙궁에 가장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소궁주께서 방문을 하였고, 본 교 입장으로도 북해빙궁과 같은 대문파와 손을 잡기를 원한다네.”
“하지만 저는…….”
“알고 있네. 궁주가 되기 싫어한다 것 말일세.”
주용천의 말에 자운룡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그러자 주용천이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네. 그리고 지금 북해빙궁 내에서 궁주님이 두 눈 부릅뜨고 소궁주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더구먼.”
주용천의 말에 자운룡은 경악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지께서는 분명 병에…….”
“북해빙궁과 접촉해 본 결과, 그것이 소궁주들의 반응을 보고자 궁주께서 일부러 병에 걸린 척 연기하셨다고 서신이 날아왔네. 달랑 빙룡검 한 자루 차고 도망가 버린 소궁주가 멋있었다며 당장 돌아오라고 하시더군. 그리고 본 교와의 인연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계시다고 하셨네.”
주용천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자운룡은 무릎이 절로 떨리기 시작하더니, 안색도 시퍼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다 소궁주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아버지께서 직접 계획한 일이었다니.’
북해빙왕(北海氷王) 자육천(紫쵮仟).
그의 포악함은 북해 전역에 퍼져 있으며, 그 누구도 자육천의 심기를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곰을 연상시키는 장대한 체구와 배꼽까지 내려오는 허연 수염, 그리고 허리춤에 항상 매달린 채 번쩍거리는 빙룡검은 북해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은 건드리지 않지만, 무공을 익힌 자들에게는 꼭 시비를 걸고 마는 괴팍한 성격 탓이었다.

“무공을 익혔다면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언제든지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육천의 지론이었다.
물론 궁주답게 북해빙궁에 속해 있는 고수들에게는 뭐라 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많은 북해무림인들은 북해빙궁에 입궁하길 원했다.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북해빙궁은 많은 고수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북해빙궁의 위명도 높이고, 고수들도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자운룡이 공황에 빠져 있거나 말거나 주용천은 한 장의 서신을 내밀었다.
“이것은 본 교와 북해빙궁을 이어 주는 서약서와도 같은 것이네. 궁에 도착하게 되면 이 서신을 궁주께 전해 드리도록 하게나. 자네의 손에 나의 미래가 걸려 있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마신교가 북해빙궁과 손을 잡게 된다면 새외까지 영향력이 펼쳐지는 것이니 외총관의 영향력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강대해질 것이 빤했다.
그러니 외총관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었다.
“예. 그런데 비마 부대주는 누군지 아는데 천마추살 부대주는 누굽니까? 그리고 책임자는 누굽니까?”
“천마추살 부대주는 뭐, 만나면 누군지 알게 될 것이고, 이번 일의 책임자는 당연히 자네일세.”
“네?”
주용천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자 독고천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주용천이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자네의 서열이 가장 높으니 책임자가 되어야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외총관님?”
“자네의 서열이 가장 높으니까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일세.”
주용천이 답답한지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자 독고천이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서류를 훑어보았다.
본래 외총관의 탁자에는 천마신교 서열 삼백 위까지의 서열이 나열되어 있었다.
추가 혹은 수정은 모두 외총관이 하는 업무였으며, 삼백 위 밖의 자들은 다른 이들이 맡아서 하곤 했다.
기본적으로 한 조직의 부대주를 맡을 정도라면 기본 서열 삼백 위 안에 들어간다고 봐야 했다.
거기다가 천마추살대라면 손꼽히는 무력 부대가 아니던가.
무력 부대에서 부대주를 할 정도라면 뛰어난 무공을 자랑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서류에서는 천마추살 부대주의 서열이 이백십이 위였고, 독고천이 백오십칠 위였다.
독고천이 서열을 읽어 내려가다가 천마추살 부대주의 이름을 읽고는 눈을 빛냈다.

장소연.

악마대에 속했을 당시 동기의 이름이었다.
커다란 도를 끙끙거리며 매달고 다니던 소녀가 바로 장소연이었다.
서류를 살피던 독고천의 모습에 주용천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원 모양의 명패였는데, 검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빛에 비치자 연신 번쩍거리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명패가 아니었다.
주용천이 명패를 독고천에게 건네주었다.
“명패일세.”
천마신교에서는 명패로 신분을 확인했다. 교주의 명패는 흑룡 모양의 명패였으며, 부교주는 혈룡 모양의 명패였다.
그리고 각자 서열마다 명패의 모습이 달랐으며, 독고천이 받은 검은색 명패는 백위권의 고수들에게 주어지는 명패였다.
예전 총타에 있을 때 명패조차 받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승진이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독고천이 명패를 품 안에 갈무리했다.
품 안이 묵직해지자 독고천이 자신의 가슴팍을 슬쩍 쓸어내렸다.
검은 명패, 즉 흑패(黑牌)가 가슴을 짓눌러 왔다.
“그럼 한시가 급하니 나가 보게. 내일 떠나든 오늘 떠나든 자네 마음이지만…….”
주용천이 차를 홀짝이며 독고천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에 독고천이 고개를 조아렸다.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주용천이 활짝 웃었다.
“오, 역시 훌륭하구먼. 그럼 서둘러 갔다 오게.”
“존명.”

* * *

“아니,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
“어떻게 되긴. 곧바로 내가 무릎을 들어 가지고 비룡각(飛龍脚)을 날려서 턱주가리를 날려 버렸지. 하하하!”
흑의거한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그러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청의 중년인이 잔을 건넸다.
흑의거한이 잔을 받자 청의 중년인이 술을 한가득 따라 주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계속 얘기해 보게.”
“아니, 그래서 그 마교(痲敎) 놈이 벌벌 떨더니 잘못했다고, 제발 용서해 달라고 그러더만. 하하하! 마교 놈들도 별거 아니란 말이지.”
마교(痲敎)란 천마신교를 낮잡아 칭하는 말이었다.
정파의 무리들은 천마신교를 경시하기 위해 마교라는 말로 그들을 표현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색 마기를 홍역과도 같은 전염병이라 칭하고, 마(痲)에 걸린 이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비웃으며 천마신교를 경시하는 말이었다.
마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는 매우 괴기스러웠기에 그렇게라도 경시하여 두려움을 없애려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호탕하게 외친 흑의거한이 잔을 들이마셨다.
“크으, 난 마교 놈들이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니까. 의와 협을 지닌 자라면 당연히 마교 놈들의 주둥아리를 뽑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