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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第四章 북해빙궁(北海氷宮)(3)


끼익.
그 순간, 객잔 문이 열렸다.
동시에 청의사내가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얄팍한 검을 허리춤에 찬 것으로 보아 무림인인 것이 분명했는데, 벌레라도 씹은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뒤로 홍의여인이 들어왔다.
홍의여인은 탄탄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도를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는 자색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 다시 비싸 보이는 장검을 허리춤에 맨 인상 좋은 백의사내가 들어섰다.
“오, 저 여인이 보이는가?”
청의 중년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흑의거한은 멍하니 홍의여인을 바라보았다.
“내 살다 살다 저런 미인은 처음 보는군.”
흑의거한이 침을 삼키며 벌떡 일어섰다.
짊어지고 있는 거대한 도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여인의 얼굴은 가히 아름다웠다.
그의 눈에는 여인의 아리따운 얼굴만 보일 뿐,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괴기스런 자색의 마기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흑의거한, 이제추(李劑推)는 감숙(甘肅)에서 나름 이름이 알려진 검법의 고수였다.
감숙은 구파일방 중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 공동파(쭧칹派)의 세력권이었다.
공동파는 명문정파 중 하나였으며, 검으로 유명한 문파였다.
특히나 복마검(伏魔劍)은 사도 무리를 처단하는 검인 동시에 공동파의 신물로 유명했다.
그들은 협객을 자처했으며, 사도 무리들의 악행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 명문정파였다.
이제추는 그러한 공동파의 속가제자였다.
보통 도가 혹은 불가 쪽 문파들은 도사나 승려들이 본산제자였다.
그러나 본산제자만으로는 도저히 거대한 문파의 재정이 감당되지 않았다.
그 누가 도를 닦아야 하는 도사나 머리를 밀고 절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승려가 되려 하겠는가.
그리하여 재정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문파 밖으로부터 뛰어난 인재들을 제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그 제자들을 일컬어 속가제자(俗家弟子)라 불렀다.
물론 속가제자들이 문파의 중요한 절기나 무공을 익힐 가능성은 거의 전무했다.
하지만 구파일방이라는 거대한 문파의 속가제자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절기를 익히지 않은들 어떠한가.
구파일방이라는 이름값 하나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존경 어린 시선을 보내오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감으로 이제추는 홍의여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느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색 마기를 말이다.
그리고 그 마기는 이제추의 몸을 휘감을 정도로 강대한 기운을 자랑했다.
이제추의 몸이 짓눌렸다.
‘크윽, 마, 마교 놈들이었다니.’
그는 천마신교의 마인들을 매우 증오했다.
평상시 천마신교의 마인들을 보기만 하면 잡아다 족쳤는데, 오늘은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감숙에도 천마신교의 분타가 위치해 있었는데, 그들의 무공 수위는 아무래도 질이 낮았다.
그러니 이제추가 마인들을 쉽사리 족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제추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홍의여인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를 보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수로 보였기 때문이다.
‘고, 고수!’
그러나 제자리로 돌아가기에는 늦고 말았다.
홍의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뭐죠?”
홍의여인의 날카로운 음성에 이제추는 흔들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마교 놈들이다. 의와 협을 지닌 협객으로서 쉽사리 보낼 수는 없지.’
이제 이제추의 눈동자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얼굴이 아닌, 마기를 흘리는 마인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결 낫군.’
“네 이놈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함부로 들어온 것이냐! 이곳이 공동파의 구역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이제추가 목청껏 외치자 객잔 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외침의 주인공이 이제추라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비검쾌웅(飛劍?熊) 이제추다!”
“그 명성 자자한 감숙의 협객이구나!”
세인들의 환호성에 이제추의 떨리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허, 난 공동파의 속가제자 이제추라 한다. 많은 마교 놈들이 내 검 아래 혼쭐이 났지. 네놈들도 혼쭐이 나 볼 테냐, 아니면 닥치고 나갈 테냐!”
그러나 홍의여인과 백의사내, 그리고 청의사내 그 누구도 이제추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홍의여인이 조용히 이제추를 쳐다보다가 슬쩍 뒤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대인, 어찌할까요?”
그러자 객잔 안으로 또 다른 사내가 들어섰다.
흑의를 말끔히 차려입은 그의 허리춤에는 고색창연한 검집이 매달려 있었다.
사내답게 짙은 눈썹을 지닌 그의 인상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의외로 흑의사내의 몸에서는 자색 빛이 아닌 푸른 마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던 점소이가 순식간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 이보게.”
옆에 있던 손님이 점소이를 부축하려 앞으로 나서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철푸덕.
그것을 시작으로 흑의사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객잔 내의 모든 사람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감숙은 아무래도 공동파의 구역이다 보니 마공을 제대로 익힌 마인을 보기 드물었다.
그 어떤 마인이 마기를 풀풀 풍기며 명문정파의 구역을 돌아다니고 싶어 하겠는가.
그런데 지금, 진정 고수라 할 수 있는 마인이 감숙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흑의사내가 조용히 이제추를 쳐다보았다.
이제추의 다리는 바람에 휘날리는 사시나무처럼 정신없이 떨리고 있었다.
흑의사내가 지그시 입을 열었다.
“지금 내게 시비를 거는 건가?”
“그, 그건 아니지만, 의와 협을 지닌 협객으로서…….”
“죽기 싫으면 꺼져라.”
순간, 흑의사내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쏟아져 나오자 이제추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미 이제추는 거품을 풀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감숙의 떠오르는 협객의 굴욕적인 모습에 객잔 내의 사람들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런 그들의 머릿속에 스쳐 가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최강 단일 세력. 사파들의 지존. 그리고 마인들의 정점.

천마신교!

새삼 천마신교의 저력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흑의사내가 자리에 앉자 나머지 세 명도 따라 앉았다.
그것으로 보아 흑의사내가 우두머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소이들은 주문을 받아야 했지만, 흑의사내의 근처만 가도 정신을 잃는 통에 아무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저러한 고수들의 주문을 받지 않으면 어떤 경을 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중이었다.
그때, 인상 좋은 백의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소면 네 개와 간단한 소채, 그리고 만두 두 접시를 가져다주게나.”
“예? 예, 손님!”
점소이들이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객잔 안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모두들 숨죽인 채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고, 객잔 밖으로 도망쳐 버린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자 백의사내가 손수 음식을 날랐다.
그 모습에 흑의사내가 무심히 입을 열었다.
“소궁주께서는 본 교와 북해빙궁의 동맹에 도움을 주시려는 분인데 직접 움직이시는 것이 말이 되나.”
순간, 백의사내, 자운룡이 당황해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제가 해도…….”
“죄송합니다, 소궁주님.”
청의사내가 자운룡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벌떡 일어서더니 음식을 직접 날랐다.
그 모습에 홍의여인, 장소연이 피식 웃었다.
“사내놈이 눈치껏 알아서 해야지.”
순간, 청의사내, 천선우의 이마에 퍼렇게 서 있던 핏줄이 움찔거렸다.
비마대(飛魔隊)는 내총관 직속의 단체로, 무시하지 못할 정보 조직이었다.
그리고 비마대의 부대주라면 총타 어디에 내놓아도 대접을 받을 만한 위치였다.
그러나 사대무력부대 중 하나인 천마추살대의 부대주인 장소연과, 그보다 서열이 높은 독고천과 일행을 이루니 그저 알아서 길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천선우는 심호흡을 하며 접시를 날랐다.
자운룡은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천마신교는 힘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된다더니, 사실이었군.’
그사이 흑의사내, 독고천이 조용히 소채를 집어먹었다.
“괜찮군.”
“만두도 맛있습니다, 형님.”
자운룡의 말에 독고천이 만두를 집어 입에 넣었다.
만두를 우물거리던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숙의 만두가 맛있다고 하더니, 사실이었군.”
감숙의 거의 모든 땅은 사막지대를 이루고 있지만, 무역 통로에 맞닿은 도시가 많았기에 시장통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상인들은 시간이 생명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식사에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고 포만감도 충분히 채워 주는 만두 종류의 요리들이 발달하게 되었고, 맛있는 만두는 감숙의 자랑거리였다.
천선우는 인상을 찌푸린 채 만두를 퍽퍽, 헤집어놓고 있었다.
소면도 아그작거리며 얼음을 깨먹듯 씹어 먹었다.
그 모습에 소채를 우물거리던 장소연이 혀를 찼다.
“허참, 도가의 심법을 익혔다는 사내놈이 이렇게 쪼잔해서야.”
순간, 천선우가 울컥하며 장소연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장소연이 지그시 바라보자 결국 천선우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만두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장소연이 피식거렸다.
“비마 부대주.”
천선우가 고개를 조아렸다.
“예.”
“아직도 착각하고 있나 본데, 악마대에 차출되었을 때 우리가 동기였던 것은 맞아. 대인도 그렇고. 하지만 언제까지 거기에 얽매일 생각이지? 비마 부대주와 나는 소궁주님과 대인을 보좌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야. 잊지 말도록.”
장소연의 포악스런 표정에 자운룡이 속으로 혀를 찼다.
‘천마신교의 인물들은 여인이고 사내고 다를 거 없이 다들 한성깔 하는구나.’
그때, 독고천이 식사를 끝냈는지 차를 음미했다.
잠시 차를 홀짝이던 독고천이 입을 열었다.
“천마추살 부대주.”
“예, 대인.”
“백 장 밖에 있는 녀석들은 자네 수하인가?”
독고천의 말에 장소연이 살짝 놀랐다는 듯 눈을 흘겼다.
“예, 맞습니다. 외총관님께서 천마추살대원 몇 명을 뽑아 보내 주셨습니다.”
“굳이 저렇게 많이 필요한가? 다들 돌려보내게.”
“예, 알겠습니다.”
장소연은 젓가락을 탁자에 올려놓고는 잠시 객잔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다.
그 모습에 자운룡이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사실 북해빙궁이나 다른 문파들의 경우, 아무리 서열이 높거나 사제지간이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시키면 이유라도 물어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천마추살대의 부대주라는 사람이 아무 질문도 없이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 점이 바로 천마신교의 무서운 점 중 하나였다.
강자지존(强者至尊)이라는 율법이 천마신교를 지탱하는 큰 기둥 중 하나인 것이다.
“사라지는 것도 빠르군. 역시 천마추살대야.”
독고천이 만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자 장소연이 가볍게 웃었다.
“만날 구석에 처박혀 칼만 갈고 있다가 오랜만에 세상에 나오니 즐거웠나 봅니다.”
천마신교 사대무력무대니 뭐니 해도 결국 무언가 일이 있어야만이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현 강호무림은 평화의 시대이니, 그들이 모습을 드러낼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니 오랜만에 나온 세상이기에 매우 즐거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의 즐거움을 빼앗은 셈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