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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第四章 북해빙궁(北海氷宮)(4)


독고천이 차를 홀짝이며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동전 몇 냥을 탁자에 올려놓고는 몸을 일으켰다.
천마신교의 인물들은 아무래도 검소한 삶이 몸에 배인 편이었다.
서열이 높아질수록 호화로운 삶을 즐기는 고수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무공에 미친 자들이 많다 보니 검소한 생활을 즐기는 자들이 훨씬 많았다.
자연 그들의 수중에는 돈이 많질 않았다.
파견을 내보내면서 책임자인 독고천에게 돈을 주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수중에는 땡전 한 푼도 없던 것이다.
독고천이 탁자에 기대어 놓았던 검집을 허리춤에 차며 말을 꺼냈다.
“출발하도록 하지.”
“존명.”

* * *

엄동설한이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쏟아져 내리는 눈이 시야를 가렸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설산(雪山)들이 저 멀리 보였다.
온통 새하얀 세상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새하얀 설산의 중심에 한 채의 웅장한 전각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궁전과도 같이 거대한 규모에 절로 위압감이 흘러넘쳤다.
바로 북해빙궁(北海氷宮)이었다.
“다 왔습니다, 형님.”
자운룡이 씨익 웃어 보였다.
말하는 그의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흘러나왔고, 그의 눈썹에서 얼음들이 떨어져 내렸다.
뒤에서 걸어오던 독고천이 손으로 의복을 툭, 쳤다.
그러자 의복에 쌓여 있던 눈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검집에 쌓인 눈마저 털어 낸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자.”

“운룡이 왔느냐?”
단상 위에서 거대한 풍채의 노인이 씨익 웃었다. 그의 하얀 수염은 배꼽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풍채는 곰처럼 매우 거대하고 당당했으며,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노인은 바로 북해빙궁의 궁주, 북해빙왕 자육천이었다.
자육천의 말에 자운룡의 표정이 굳었다.
“아버님, 도착했습니다.”
“허허, 네놈이 가출해 준 덕분에 천마신교와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었구나. 아주 잘 가출했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 네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너도 알다시피 강호의 은원은 끝을 맺어야지?”
자육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에 자운룡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독고천에게 인사를 한 후 모습을 감췄다.
그 모습을 보던 자육천이 독고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허허, 천마신교의 고수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네.”
“천마신교의 독고천입니다. 북해빙궁의 궁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독고천의 정중한 태도에 자육천이 만족한 듯 씨익 웃으며 단상에서 일어섰다.
“왼쪽은 비마대의 부대주, 천선우입니다. 오른쪽은 천마추살대의 부대주, 장소연입니다.”
독고천이 양쪽을 가리키며 소개하자 자육천이 고개를 까닥였다.
두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 모습으로 보아 소문이 사실이었다.
자육천은 무공을 익힌 무림인 중에서 자신의 눈에 차지 않는 이는 철저히 무시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무림인들에게는 꼭 비무를 청하곤 했다.
그것이 현재의 자육천을 만든 하나의 방법이었다.
끊임없이 무공에 대해 고민하고 얻으려는 그의 열정은 수많은 소궁주들을 제치고 북해빙궁의 궁주라는 자리로 올려 주었다.
한데 장소연은 무력 부대의 부대주라는 직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육천의 눈에 차지도 않은 것이었다.
자육천이 활짝 웃었다.
“독고 대협을 만나게 되어 반갑네. 우리, 무공에 대한 얘기 좀 하겠나?”
“저야 영광입니다.”
자육천과 독고천이 희희낙락하며 모습을 감추자 덩그러니 남겨진 장소연과 천선우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겸연쩍어진 장소연이 표독스런 표정을 지었다.
“뭘 보나?”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해빙궁의 사람들이 찾아와 그들을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 들어간 장소연은 조용히 거대한 도를 손질했고, 천선우는 침대에 누워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꼬이는구나, 꼬여.’



第五章 강호은원(江湖恩怨)(1)


자육천이 술잔을 들었다.
그러자 독고천이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쪼르르.
맑은 소리와 함께 맑은 색의 술이 금세 채워졌다.
자육천이 잔을 들이켰다.
“크으.”
한차례 탄성을 터뜨린 자육천이 술병을 들어 독고천의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독고천 역시 시원스럽게 술을 들이켰다.
“좋은 술입니다. 뭡니까?”
“허허, 술맛을 아는군. 사실 내가 직접 담근 술일세. 아무래도 북해는 춥다 보니까 술을 담그기에는 최적의 장소지. 차디찬 냉기가 술맛을 돋는다고 해야 하나?”
자육천이 신난 듯 떠들어대자 독고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자육천이 갑자기 손을 흔들었다.
“여기, 그거 좀 가져오너라.”
“예, 궁주님.”
잠시 후, 백의사내가 자그마한 술병을 하나 가져왔다.
그것을 보자 자육천의 얼굴이 더욱 상기되었다.
“이것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담가 온 술이라네. 원래 술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만들어 봤는데, 역시 고향의 술이 최고더군. 한 번 마셔 보게.”
자육천이 조심스럽게 술병을 따라 주자 독고천이 시원스럽게 술잔을 들이켰다.
청명하고도 맑은 맛에 독고천의 눈이 빛났다.
“정말 좋은 술입니다. 청명하면서도 쓰지 않고, 또 달지도 않으며 맑은 향기에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재료로 만든 겁니까?”
“역시 자네라면 이 술맛을 정확히 알 줄 알았네. 청웅주(靑熊酒)라네.”
“곰으로 만든 술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내가 젊었을 당시에 곰을 만난 적이 있었지. 뭐, 곰이야 북해에서 흔한 동물이지만, 무려 푸른빛을 띠고 있던 놈이었다네. 그래서 청웅이라 하지. 본래 청웅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 가히 전설이라 할 정도로 본 사람이 거의 전무할 정도였지. 하지만 우연찮게 인연이 닿았고 술을 담갔지.”
독고천이 술잔을 자세히 훑어보자 약간 푸른빛의 물결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영물 아닙니까?”
“그렇지, 거의 영물이 맞네. 내가 담근 청웅주를 마신 사람은 자네를 포함해서 세 명뿐이네. 내가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주는 술이거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나머지 두 명이 누군지 알 수 있겠습니까?”
“곽철당(藿哲棠) 선배와 마동진(큡棟進)이란 놈이지.”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호 경험이 부족하여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강호의 인물입니까?”
자육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명호로 말하면 어느 정도 알 걸세. 곽철당 선배의 명호는 혈마(血魔)였다네. 선배의 성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명호였지. 물론 선배가 싸움을 즐겨 하기는 했지만, 단순한 무공광이 아니었지. 선배는 무예(武藝)를 했다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자들이 선배의 마공에 죽어 나갔고, 결국 혈마라는 공포스러운 명호를 얻게 되었지.”
자육천이 술잔을 들이켜며 소채를 집어 먹었다.
잠시 우물거리던 자육천이 말을 이어 나갔다.
“하긴 선배가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 따져 보면 확실히 나쁜 놈들에 속해 있긴 했지. 하하하!”
자육천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선배가 천마신교를 이끌고 있을 당시부터 호감이 있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는 천마신교에 이를 갈게 되었다네. 하지만 자네를 보니 그런 마음조차 훌훌 날아가는구먼.”
혈마라는 단어를 들은 독고천의 눈이 빛났다.
“그 사건이란 건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선배가 천마신교의 부교주에서 축출당한 사건 말일세.”
“혈마라는 분이 천마신교의 부교주였습니까?”
“그랬지. 내가 아주 어렸을 때였는데, 그때 선배는 천마신교의 부교주를 맡고 있었네. 강자지존이 율법인 천마신교이기에 언제든지 교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그분은 그럴 마음이 없었지.”
자육천은 추억 어린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전 교주는 혈마 선배를 두려워했어. 마인들의 대다수가 혈마 선배를 존경했거든. 하여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싶었겠지. 그래서 전 교주는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이용하여 음모를 꾸며 혈마 선배를 축출했지.”
조용히 과거를 곱씹던 자육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독고천이 고기 몇 점을 집어 먹었다.
“그럼 또 다른 한 사람은 누굽니까?”
“아, 마동진 말인가? 그놈은 아마 자네 또래일 걸세. 두 번째 자식 놈의 친우랍시고 빙궁에 놀러 왔는데, 무공의 성취가 매우 뛰어났지. 지금은 강호에서 쾌잔낭왕(快殘浪王)이라 불리고 있다더군. 원래 소속 없이 낭인으로 떠도는 놈이었는데 무공 성취는 매우 뛰어나서 이 문파 저 문파 가릴 거 없이 데려가려 하더군.”
강호에는 낭인(浪人)이란 족속들이 있었다.
어떠한 문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떠돌아다니는 무림인들을 낭인이라 칭했다.
문파가 멸문당한 후 홀로 살아남아 돌아다니는 이들, 거취를 마련하지 못하여 자신의 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을 비롯해, 낭인들에게는 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근래 들어 가장 돋보이는 낭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바로 쾌잔낭왕 마동진이었다.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면 바위가 박살 나고, 그의 칼이 허공을 꿰뚫으면 호수를 가른다 했다.
그만큼 낭인들의 왕으로 추대받고 있는 신진 고수였으며, 그를 데려가기 위해 많은 문파들이 실랑이 중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무척 대단한가 봅니다. 낭인에게 왕(王)이란 명호를 붙여 줄 정도라면 말입니다.”
아무래도 세인들이 붙여 주는 명호에는 주관적 견해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정파의 고수들을 강호팔대고수라 칭하고, 사파의 고수들을 절대오마라 칭한 것을 보면, 사파를 깎아내리려는 세인들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낭인으로서 왕이라는 명호를 얻을 정도면 정말 대단한 고수라 볼 수 있었다.
“그렇지. 오 년 전에 보았을 때만 해도 자네랑 비슷했는데, 지금은 아마 강호팔대고수들하고 붙어도 이백 초 이내로는 패하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네.”
“오 년 만에 말씀이십니까?”
독고천이 강호의 견식이 부족하긴 하지만, 강호팔대고수가 주는 무게감은 총타에 틀어박혀 있던 그도 귀가 닳도록 들을 정도였다.
“나도 그것이 의문이긴 하네. 아마 기연을 얻었거나 뛰어난 스승을 만난 거겠지.”
자육천이 고기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데 음식을 삼킨 자육천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어디 가십니까?”
독고천의 물음에 자육천이 씨익 웃었다.
“술, 맛있지 않았나?”
“예, 맛있었습니다.”
독고천의 대답에 자육천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럼 술값을 내야지?”

* * *

독고천이 검을 찔러 갔다.
자육천이 가볍게 장풍을 날리며 대꾸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독고천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자육천이 곧바로 장풍을 날렸다.
시퍼런 장풍이 독고천의 옆구리를 노려 갔다.
그에 독고천은 가볍게 검으로 허공을 갈랐다.
날아오던 장풍이 허공에 흩날리자 자육천이 신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