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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第五章 강호은원(江湖恩怨)(2)


“수비가 매우 강하군. 어디, 이것도 막을 수 있나 보자!”
갑자기 자육천의 의복이 펄럭이더니, 엄청난 기운이 폭사되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푸른빛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북해빙궁의 신공, 빙룡신장(氷龍神掌)이었다.
본래 북해빙궁에는 검을 쓰는 고수들이 많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장법이 많았다.
또한 한기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심법이 있다 보니, 쏘아 내는 장풍들마다 한기를 품고 있었다.
가뜩이나 막기가 까다로운 장풍인데, 거기다 한기까지 머금고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독고천이 검을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그 순간, 자육천의 수염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팔성의 빙룡신장일세. 위험하진 않으나 맞으면 골로 갈 걸세. 알아서 피하게나.”
자육천이 손을 쭈욱 내뻗자 지독한 한기와 함께 푸른 장풍이 독고천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휘융.
순간, 장풍이 터져 나갔다.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장풍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는데, 검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린 것이었다.
그 모습에 자육천이 경악했다.
“자, 자네…….”
자육천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영약을 복용한 적이 있나?”
대답을 고심하던 독고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복용한 적이 있습니다.”
“설마 그것이 한기를 품고 있는 영약이었나?”
“예, 맞습니다.”
“……설마 인형설삼은 아니겠지?”
자육천의 목소리가 떨렸다. 질문이었지만 거의 확신이 가득 찬 질문이었다.
“인형설삼이 맞습니다.”
순간, 자육천의 인상이 굳어졌다.
미소 짓던 입가에는 차가운 냉기만이 돌았다. 자육천의 얼굴이 붉어지며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오늘의 비무는 즐거웠네. 그럼.”
자육천이 모습을 감추자 홀로 남겨진 독고천이 설산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형설삼이 본래는 북해빙궁의 것이었나 보군.’
고개를 주억거리던 독고천의 신형이 한순간 쏘아져 나갔다.

숙소에 도착한 독고천은 장소연과 천선우를 찾았다.
갑작스런 독고천의 호출에 둘 다 당황한 듯 보였다.
“대인, 무슨 일이십니까?”
“오해가 생길 우려가 있으니 이렇게…….”
똑똑.
그때, 두드리는 소리와 동시에 숙소의 문이 벌컥 열렸다.
그와 함께 북해빙궁의 무사들이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무례한 모습에 장소연이 울컥하며 나서려 했지만 독고천이 제지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무례하게 들어온 것이오?”
물음에도 불구하고 북해빙궁의 무사들이 말없이 독고천 일행을 둘러쌌다.
“죄송합니다, 독고 대협.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사들의 우두머리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해 오자 독고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우선 대화로 풀어 보는 것이 낫겠소.”
“우선 함께 가시지요.”
북해빙궁 무사들의 눈이 번뜩였다. 그 모습에 독고천은 장소연과 천선우를 슬쩍 바라보았다.
도주는 가능했다.
하지만 이대로 도주해 버린다면 북해빙궁과 천마신교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고, 북해 같은 곳에서 길이라도 잃어버린다면 동사할 확률이 높았다.
더군다나 북해빙궁 무사들의 무공이 예상외로 강하여 무사히 도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이 두 사람은 아무 관계가 없으니, 본 교의 총타로 돌려보내겠소.”
독고천의 말에 우두머리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안 됩니다. 따라오시죠.”
결국 독고천 일행은 북해빙궁 무사들에 둘러싸여 전각으로 향했다.
전각 안에는 자육천과 백의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몸집은 왜소했지만 풍겨 나오는 기세는 고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백의 노인이 다짜고짜 물어왔다.
“자네가 독고천인가?”
“맞소.”
“네가 인형설삼을 취했다고 들었다.”
“그것도 맞소.”
“인형설삼이 북해빙궁의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더냐?”
독고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설사 알았다 할지라도 취할 수밖에 없던,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이었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네 단전에서 인형설삼의 기운을 통째로 빼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네 혈맥에서 인형설삼의 기운을 천천히 빼내는 것이다.”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첫째는 오늘 하루 안에 가능하지만, 네가 무공을 잃는다. 두 번째는 무공을 잃지 않지만 일 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넌 일 년 동안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소리지.”
단전을 잃는다는 것은 무림인으로써의 생명을 잃는다는 말과 동일했다.
무의 궁극을 보고자 하는 독고천에게 단전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이유를 잃는다는 말과 같았다.
“두 번째를 택하겠소. 단, 내 수하들은 보내 주시오.”
“당연히 그래야지.”
백의 노인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독고천이 만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이만 자러 가 보겠소.”
“알았네. 내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지.”
백의 노인이 씨익 웃어 보였다.
왠지 모르게 섬뜩한 미소에 독고천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기연인 줄 알았는데, 악연의 끈이었구나.’

* * *

자육천이 천마신교와의 동맹서에 서약을 한 후, 장소연과 천선우는 총타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홀로 남은 독고천은 숙소에 남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독고천이 조용히 눈을 떴다.
“들어오시오.”
“독고 대협, 총관님이 찾으십니다.”
전날 만난 백의 노인은 북해빙궁의 총관이었다. 그만큼 영향력이 지대한 인물이었다.
총관이란 자리는 문파의 대부분을 총괄 정리한 후 문파의 존주(尊主)에게 건네주는 자리였다.
그러니 문파의 모든 대소사를 알아야 하는 자리였고, 그러한 능력을 지녀야 했으며, 또 그만큼의 권력을 지닌 자리가 바로 총관이었다.
무사는 독고천을 하나의 작은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곳에는 총관과 두 명의 무사가 미리 와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나무 의자가 있었는데, 투박하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앉게나.”
총관이 씨익 웃으며 손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의자에 앉자 갑자기 총관의 손이 독고천의 복부를 노려왔다.
워낙 갑작스런 기습임에도 불구하고, 독고천의 신형은 침착하게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살수 교육을 통해 익혔던 것이 독고천의 몸에 하나하나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긴장감을 유지하고, 쉽사리 믿음을 주지 않는 것이 바로 살수의 기본이었다.
심지어 자신조차 믿지 않는 것이 살수들이었다.
살행을 앞두고 자신의 무공이나 기술을 믿다가 죽어간 살수들이 많았기에 그러한 말이 생겨난 것이었다.
기습이 실패하자 총관이 목청껏 외쳤다.
“저놈을 잡아!”
순식간에 무사 두 명이 독고천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은 이미 다른 무사가 챙긴 후였기에 독고천의 주먹이 허공을 휘감았다.
붉은 기운과 함께 푸른 마기가 넘실거렸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사 한 명의 얼굴이 짓눌려지며 뒤로 널브러졌다.
그리고 곧바로 독고천의 왼 주먹이 다른 무사의 복부를 후려쳤다.
순간, 무사의 복부가 일그러졌다.
무사는 입으로 내장 조각을 토해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독고천의 주먹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기운을 보자 총관이 경악했다.
“저, 저것은 혈마의……!”
“왜 나를 속였소?”
독고천이 조용히 묻자 총관은 절로 몸을 떨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마기와 주먹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기운이 더없이 괴기스러워 보였다.
총관은 이를 악물었다.
주먹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기운은 분명 혈마의 무공이 확실했다.
혈마는 천마신교의 고수였으니, 아무리 무공이 절전되었다 할지라도 후인에게 이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독고천이 혈마의 무공을 익혔다면 총관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총관은 천천히 마음을 다잡았다.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린다면 무사 백여 명 정도는 바로 달려올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혈마의 무공을 익혔다 할지라도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사자후는 목소리로 내공을 뿜어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절정의 무공이었다.
무공 수위가 높아질수록 목소리에 실리는 내공이 더욱 짙어지며, 심지어 상대방의 정신을 잃게 할 수 있는 절정의 무공이었다.
조용히 독고천의 눈치를 보던 총관이 일순 사자후를 터뜨렸다.
“갈(喝)!”
쿠웅!
사위를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웅후한 내공이 빙궁 전역에 퍼져 나갔다.
순간, 독고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수하들을 부르는 것이오?”
“네가 아무리 혈마의 무공을 익혔다 해도 북해빙궁의 정예 무사 백여 명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총관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독고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왜 기습을 가한 것이오?”
“사실 두 번째 방법 따윈 없다. 내 성급함 때문에 기습이 실패했지만, 넌 결국 인형설삼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총관의 눈에서는 탐욕이 불타올랐다.
인형설삼을 얻으면 북해빙궁의 중원 진출도 꿈이 아닐 것이었다.
독고천 정도의 고수야 천마신교에는 넘칠 것이니, 북해빙궁 측에서 입만 닫으면 무난하게 실종 처리될 것이었다.
말 그대로 만사형통이었다.
노쇠하긴 했지만 절정고수인 궁주를 중심으로, 소궁주에게 인형설삼을 취하게 한다면 또 다른 절정고수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본래 무가에서 한 명의 절정고수가 지니는 힘은 매우 막강했다. 그것이 무가의 숙명이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독고천이 땅에 떨어져 있던 무사의 검을 주워 들었다.
“내가 비록 혈마 선배의 무공을 익히긴 했지만…….”
독고천이 검을 뽑았다.
“……난 검객이오.”
순간, 독고천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강렬한 기세에 총관의 의복이 펄럭이기 시작하더니, 얼굴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느껴져 오는 위압감이 조금 전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검객의 손에 검이 들리는 순간,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다.
검객에게 있어 검이란 그만큼 하나의 절정무공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이놈! 풍기는 마기를 조절했구나!’
총관도 들은 적이 있었다.
마공의 고수들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독고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괴한 푸른 마기가 사방을 넘실거리며 방 안을 뒤덮고 있었다.
순간, 총관은 목이 답답해져 왔다.
숨쉬기도 어려웠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호의를 가지고 방문했는데 이렇게 적의를 보이다니, 안타깝소.”
독고천의 검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총관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머리를 잃은 총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철푸덕.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바닥을 적셨다.
그사이, 수많은 기운들이 방 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수여서 정면 대결을 한다면 필패였다. 순간, 독고천의 신형이 튕겨져 오르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 후, 방 안으로 흉흉한 기세를 뽐내는 무사들이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