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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第五章 강호은원(江湖恩怨)(3)


그들은 잘려진 총관의 머리를 보고는 이를 갈았다.
“이 잔인한 놈! 놈을 발견하면 꼭 생포해야 한다!”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인형설삼을 되찾기 위해 총관이 직접 움직인 것을 말이다.
방 안의 무사들의 신형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잠시 후, 독고천이 천장에서 사뿐히 내려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조심스레 방을 나왔다. 무사들은 모두 밖으로 뛰쳐나갔는지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독고천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천마신교의 무고에는 정파의 무공이 쌓여 있었다. 그것은 천마신교의 자랑이었으며, 정파에 있어서는 씻을 수 없는 수치였다.
독고천은 마도를 걷는 자였다.
당연히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마도란 그저 그런 나쁜 놈이 아니라, 진정 마(魔)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북해빙궁 측에서 먼저 배신을 했으니, 그것의 곱절은 갚아 줘야 하는 것이다.
‘북해빙궁의 무고가 여기 근처에 있다고 들었는데…….’
독고천의 몸이 표홀히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전각 하나를 뛰어넘은 독고천이 몸을 납작 엎드린 채 주위를 훑었다.
그러던 중 무언가 거대한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으니 궁주의 거처는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앞의 전각에는 창문이 없었다.
본래 무고는 도난 방지와 습도 조절을 위해서 창문을 트지 않았다. 서적의 오랜 보관을 위해서였다.
또한 북해빙궁 자체가 북해 내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보안에 허술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 누가 엄동설한의 북해를 쉽사리 찾을 수 있으며, 그 누가 북해까지 찾아와서 도둑질을 하려 하겠는가.
그전에 얼어 죽기 십상인 곳인데 말이다.
판단을 내린 독고천의 몸이 쏘아져 나갔다.
푸슛.
그리고 무고를 지키고 있던 무사 두 명에게 암기를 쏘았다.
무사 두 명이 동시에 정신을 잃고 옆으로 널브러졌다.
무고에는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독고천의 검이 자물쇠를 내려쳤다.
쓱.
자물쇠는 손쉽게 두 동강이 나서 땅에 떨어졌다.
독고천은 정신을 잃은 두 무사와 자물쇠를 들고는 무고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무고 안에 들어서자 야광주가 천장에 박힌 채 내부를 비쳐 주고 있었다.
야광주(夜光珠)는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고가의 보석인데, 매우 많은 수의 야광주가 무고의 천장에 박혀 있었다.
독고천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많은 수의 서적들이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안으로 점점 걸어갈수록 적은 수의 서적들이 포장된 채 조심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북해빙궁에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서적 같았다.
독고천은 서적에 쌓여 있던 천을 천천히 풀어냈다.

빙룡신장(氷龍神掌).

북해빙궁의 신공 중 하나였다.
궁주의 절세신공인 동시에 강한 한기를 뿜어내는 절정의 장풍을 뿜어내는 장공 중 하나였다. 소궁주 이상만이 익힐 수 있는 절기였으며, 익히게 되면 검기와 준하는 한기를 절로 뿜어낼 수 있었다.
조용히 서적을 훑어보던 독고천이 구결들을 찢어서 품 안에 갈무리했다.
그런 뒤 다음 서적을 주워 들었다.

소수빙공(素手氷功).

천마신교에서도 소수빙공을 따라 한 마공이 있었다.
소수마공(素手魔功)이라 부르는 그것은 적수공권에 뛰어난 위력을 보여 주는 무공이었다.
그러나 음기가 너무 강해 여인만이 익힐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베낀 무공의 한계였다.
하지만 소수빙공은 아니었다.
단지 극성에 이르지 못할 뿐, 사내들도 충분히 십성까지 익힐 수 있었다.
소수빙공은 거대한 바위마저 얼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음공(陰功)이었다.
소수빙공의 구결을 알지 못하여 어느 정도 흉내만 낼 수 있던 소수마공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질 것이었다.
독고천은 소수빙공의 중요한 구결들을 찢어서 쉽게 찾을 수 없도록 품 안에 단단히 갈무리했다.
그런 후 수많은 북해빙궁의 고유 무공 서적을 훑어보았다. 아무래도 시간이 없다 보니 중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모두 확인 후 모두 찢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을 휘저어 작은 조각으로 만들었다.
천마신교의 가르침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있었다.

―복수를 하려면 제대로 해라. 당한 상대가 너를 더욱 증오할 수 있도록.

역시나 마인답게 독고천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무고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운들이 무고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하자 검을 내려쳤다.
까앙!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며 불꽃이 서적에 옮겨 붙었다.
화르르.
작은 불꽃은 점점 모습을 키워 갔다.
일을 마무리한 독고천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고로 한 떼의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하지만 매캐한 연기와 불꽃을 보고는 경악하여 외쳤다.
“불이야!”
“빨리 물을 가져와라!”
무사들이 분주하게 불을 끄고 있을 무렵, 독고천은 전각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 상태로 우물에서 물을 퍼오거나, 눈을 불꽃에 던지는 행동을 고스란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독고천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들이 정복하지 못했던 북해빙궁을 제가 괴롭히고 있습니다, 선배들.’
순간, 독고천은 무언가를 느끼고 벌떡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곧바로 가눌 수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방심했군.’
그렇게 독고천은 정신을 잃었다.

* * *

촤아아.
물이 뿌려지는 소리와 함께 독고천이 눈을 떴다.
독고천은 의자에 묶여 있었으며, 양쪽으로는 무사들이 서 있었다.
독고천 앞에는 허리가 구부정한 한 노인이 서 있었는데,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오?”
“어디긴 북해빙궁이지, 이 마교 놈아.”
노인이 이를 갈며 말하자 독고천은 슬쩍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혈도가 제압되었는지 내공이 모이질 않았다.
그러나 독고천은 마룡지체를 타고났다.
고로 역혈로 기운을 돌리면 제압당한 혈도 따위는 금방이라도 풀 수 있었다.
조용히 독고천이 역혈기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노인의 손이 단전을 꿰뚫었다.
파악!
독고천은 신음을 내뱉었다.
“크흑.”
이어 벌어진 입을 통해 붉은 피를 토해 냈다.
“인형설삼은 잘 받으마.”
노인의 손에는 진득한 붉은 피와 함께 작은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단전(丹田)이었다.
본래 단전을 뽑는다고 해서 내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북해빙궁의 무공 중에는 한기를 흡수하는 것이 있어 강한 한기를 지닌 인형설삼의 기운만을 추출하면 되는 것이기에 그리 어려운 방법도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 해도 단전 안의 내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단지 독고천의 단전 내에 담긴 인형설삼의 기운이 아직 완전히 융화되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인의 손에 들린 자신의 단전을 멍하니 바라보던 독고천은 곧 입에서 피를 흘리며 혼절했다.
그러자 독고천을 내려다보던 노인이 고갯짓을 했다.
“이 마교 놈을 가둬라.”
“옛!”

* * *

독고천이 눈을 떴다.
그러자 온몸을 엄습해 온 엄청난 고통에 신음을 터뜨렸다. 손과 발에는 족쇄가 달려 있었으며, 내공은 한 줌도 모이질 않았다.
단전을 잃은 것이다.
독고천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철창에 갇힌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짙은 암흑뿐이었다.
거기다 얼마나 추운지 절로 이가 부딪칠 지경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흘러나왔고, 당장에라도 동상에 걸릴 것만 같았다.
독고천은 족쇄를 흔들어 보았다.
예전이라면 그냥 뽑혔을 족쇄가 독고천의 팔다리를 튼튼하게 조여 매고 있었다.
끙끙거리며 힘을 주었다.
하나 족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독고천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잠시 뒤,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크흐흑.”
단전을 잃고, 무공을 잃고, 무림인으로서 생(生)을 잃었다.
힘이 넘치던 팔다리는 너풀거렸고, 온몸에서 흘러나오던 푸른빛 마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독고천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평생 검을 만져 상처로 도배되고 굳은살이 박혀 뭉뚱그려진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독고천이 주먹을 쥐었다.
주먹이 절로 떨려 왔다.
모든 것을 잃었다.
하루 종일 멍하니 땅바닥만을 내려다보던 독고천은 그렇게 잠에 빠졌다.

* * *

한 달이 지났다.
그래도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독고천에게 꾸준히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독고천은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무공의 극의(極意)를 봐야 하건만, 이런 데서 죽을 순 없었다.
억지로 밥을 우겨 넣었다. 밥을 씹는 독고천의 눈빛에서는 비장함이 흘러넘쳤다.
그리고 한 달이 또 지났다.
몸은 더욱 피폐해졌고, 얼굴은 망가져만 갔다.
수염은 듬성듬성 지저분하게 자라 있었고, 몸에서는 썩은 내가 풍겨 왔다.
그러나 초라한 몰골과는 달리 눈빛은 한층 더 깊어져 있었다.
살아만 있다면 언제든지 비상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삶을 유지시켜 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끼이익.
그 순간, 비틀린 쇳소리와 함께 철창이 열렸다.
독고천은 조용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식사를 할 시간이 아닌데 벌써 찾아온 것이 이상했긴 했지만, 그리 개의치 않았다.
먹어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독고천의 눈에 보이는 두 개의 발은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얼핏 보면 다리가 떨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독고천이 천천히, 그러나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자운룡이 눈물범벅이 된 채 서 있었다.
“……형님.”
자운룡이 새어 나오는 흐느낌을 억지로 입 안에 구겨 넣었다. 그러나 눈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독고천이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잘 지냈나.”
“정말 죄송합니다, 형님. 이제야 이 사실을 알고 형님을 찾은 것이 정말 죄송합니다.”
자운룡이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는 독고천을 껴안았다.
독고천은 힘없이 미소 지었다.
“다 나의 업보였다. 괜찮다.”
자운룡은 독고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