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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第五章 강호은원(江湖恩怨)(5)


독고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해남검법이라 적혀 있던 서적을 구하게 되었는데, 남해삼십육검에 대해서 상세히 적혀 있었소. 그리고 우연히 오랜 시간 동안 물에 빠뜨린 적이 있었는데, 그러자 혈마심득이라는 제목의 서적으로 바뀌게 되었소.”
조용히 독고천을 바라보던 노인이 갑자기 감동 어린 표정을 지으며 절을 하더니 고개를 조아렸다.
“지옥신마(地獄神魔) 탁경도(卓競導)가 부교주님을 뵈옵니다.”
“이, 이게 무슨…….”
독고천이 당황해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엄습해 오는 고통에 다시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자신을 탁경도라 밝힌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부교주님이 배신당하신 후 해남에서 생애를 마감하겠다고 하셨을 때, 속하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놈의 교주보다도 위대하시고 강하신 부교주님께서 음모에 의해 쫓겨났을 때, 속하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런데 부교주님께서 이렇게 후인을 남기셨으니 속하는 기쁠 따름입니다.”
탁경도가 독고천을 바라보며 감격한 듯 입을 열었다.
“사실 부교주님께서 제가 만들어 놓은 함정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저세상으로 가셨을 겁니다. 다행히 제가 날짐승을 잡기 위해 만들어 놓은 함정에 걸려서 팔다리가 부러진 정도로 살아남으신 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왜 내가 노인의 부교주란 말이오?”
독고천의 질문에 탁경도가 활짝 웃었다.
“전(前) 부교주님이 해남으로 은거하실 당시에 전 결심했습니다. 부교주님에 이어 그분의 후인까지도 평생 모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 실종이 되셨고 북해까지 부교주님을 찾으려다가 실족하는 바람에 이렇게 절벽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교주님의 후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인연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독고천은 의심스런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미 북해빙궁에서도 배신을 당한 터였다.
그런데 알지도 못하는 노인이 다가와서 하는 소리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지 노인이 독고천을 구해 주었고, 치료도 해 주었다는 사실은 감사할 만한 일이었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우선 구해 준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소.”
“당연한 겁니다, 부교주님.”
부교주라는 단어를 듣자 독고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뭐가 부교주란 말이오!”
“부교주님의 후인이시니 그 자리를 이어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부교주님.”
노인의 말에 독고천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천마신교의 부교주가 되기 위해선 말 그대로 강한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한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 부교주를 나타내는 명패, 즉 혈룡패를 지닌 자는 언제든지 부교주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었다.
물론 교주의 자리는 예외였다. 교주의 자리를 노리고 자주 싸움을 걸어오면 교내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것이 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교주의 자리는 교주를 보좌해야 하는 절정고수들의 자리였음으로 항상 부지런히 무공을 수련해야 했다.
결국 언제든지 부교주의 자리를 뺏길 수도 있으니, 천마신교를 위해서 무공 수련을 늦추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었다. 강자지존인 천마신교에서 부교주씩이나 되는 자리에 있다면 무공 수위는 당연히 절정에 다다른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그 누가 부교주임을 증명하는 혈룡패를 쉽사리 구하겠는가.
도전하는 자는 천마신교의 유구한 역사에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고, 모두들 실패했다.
그리고 실패한 자들의 가족은 모두 당시의 부교주들에 의해서 몰살당했고 말이다.
독고천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탁경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탁경도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붉은 용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조각상.
그것은 천마신교 부교주임을 나타내는 혈룡패였다.
탁경도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조심스럽게 혈룡패를 독고천에게 건네주었다.
“혈룡패입니다, 부교주님.”
독고천이 혈룡패를 받아 들었다.
작은 조각상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묵직했다.
순간, 독고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이것이 있다고 해서 내가 부교주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오. 치우시오.”
독고천이 혈룡패를 다시 건네주었다.
그러자 탁경도가 고개를 내저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교주님.”
“그놈의 부교주가 되려면 힘이 필요하단 말이오! 하지만 난 빌어먹을 북해빙궁 놈들의 계략에 걸려서 단전을 잃었고, 지난 이십 년 가까이 모았던 내공을 잃었소! 혈마심법을 얻기는 했지만 원래대로 무공을 회복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오!”
독고천이 성을 내며 씩씩거렸다. 그러자 탁경도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교주님.”
순간, 탁경도의 몸에서 붉은 마기가 넘실거리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탁경도가 활짝 웃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부교주님.”



第六章 복수혈전(復讐血戰)(1)


지옥신마 탁경도는 독특한 마인이었다.
힘에 굴복하고 존경과 공포를 표하는 보통의 마인들과는 달리 무인을 존중했다.
그가 보기에 혈마는 자신의 이상형과도 같았고, 그를 따르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배신을 당해 혈마가 낙천(落薦)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쫓아 천마신교를 나와 버렸던 것이고, 실종된 혈마를 평생 찾아 헤맨 것이었다.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혈마 님의 무공은 패도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탁경도가 냉정히 고개를 내저었다.
독고천은 멋쩍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습니까?”
독고천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지 어언 일 년이 흘렀다.
그동안 독고천은 탁경도의 가르침 아래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 냈으며, 그를 스승과도 같이 모시고 있었다.
독고천은 자라 오며 스승의 존재를 겪지 못했다.
항상 윽박지르고 수련만을 강요하던 존재들만 겪어 왔던 독고천이다.
옆에서 조언해 주고 아껴 주며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은 독고천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철저한 상명하복의 법칙이 지배하는 천마신교에서 자란 탓도 있겠지만, 이러한 새로운 관계는 독고천의 마음을 녹여 주고 있었다.
‘스승이라…….’
독고천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탁경도가 경을 쳤다.
“부교주님, 수련하다 말고 잡생각을 하시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난 이십 년 동안 수련해 오셨으면서 기본을 무시하시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 스승님.”
“허허, 스승님이라 부르면 속하가 부끄러워진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탁경도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었다. 주름 진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그럼 스승님이라 부르지, 뭐라 부릅니까?”
독고천의 말에 탁경도가 부끄러운 듯 연신 헛기침을 했다.
“흠흠, 하여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직 절기를 익히기에는 내공이 많이 부족합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운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속하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탁경도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동굴로 모습을 감췄다.
그 모습에 독고천이 바위에 철푸덕 주저앉은 채 벽곡단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그리고 받아 놓았던 물 한 바가지를 들이켰다.
“크으.”
시원함이 절로 느껴지는 탄성과 함께 독고천이 소매로 입가를 닦아 내렸다.
슬슬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갔다.

탁경도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와 동시에 독고천이 탁경도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탁경도의 손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독고천의 몸이 순식간에 내던져졌다.
“크흑.”
독고천이 신음을 터뜨리며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탁경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독고천이 이를 갈며 목검을 쥐었다.
목검을 쥔 독고천의 움직임은 한결 가볍고 표홀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탁경도의 손아귀에 뒷덜미가 잡힌 채 내동댕이쳐졌다.
의복은 먼지투성이였고, 얼굴도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독고천은 포기하지 않았다.
순간, 독고천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탁경도는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순간, 독고천이 모습을 드러내며 탁경도의 뒷목을 나무로 내려쳤다.
까앙!
둔탁한 소음과 함께 독고천이 쥐고 있던 나무가 박살 났다.
그리고 탁경도의 주먹이 독고천의 복부를 꿰뚫었다.
독고천은 피를 토하며 뒤로 널브러졌다.
그러나 이내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치지도 않는지 탁경도에게 덤벼들었다.
그렇게 수차례 반복하자 독고천의 몸은 성한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공을 쓰지 않으시고도 초식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높아지셨습니다. 웬만한 일류 고수 부럽지 않으실 겁니다.”
탁경도가 미소를 짓자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을 주물렀다.
“스승님도 적당히 하셔야지, 안 그럼 저 죽습니다.”
능청스런 독고천의 말투에 탁경도가 피식 웃었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라져 가는 탁경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독고천이 한숨을 내쉬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런 뒤 바위에 정(正) 자를 새겨 넣었다.
‘벌써 일 년이 흘렀군.’
생각보다 많은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탁경도는 예상외로 혈마심득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았다.
하여 구결 등을 설명해 주었기에 독고천은 홀로 익혔을 때와는 질이 다른 혈마심득을 익히고 있었다.
예전에는 겉핥기식으로 배운 것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혈마심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독고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마기 또한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노을을 바라보던 독고천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목검을 주워 들었다.
목검은 독고천이 직접 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이었다. 진짜 검과도 같이 검병도 있었고, 칼날도 있었다.
독고천이 천천히 목검을 쥐었다.
꽈악.
뭉툭한 검병이 독고천의 손에 감겨들었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와 나무 위에 걸려 있던 눈이 휘날렸다.
독고천의 목검이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한층 짙어지기 시작했다.
진기가 유통되기 시작하더니, 부드럽게 전신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편안하고도 따스한 기분이 독고천의 전신을 부드럽게 만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