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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第六章 복수혈전(復讐血戰)(2)
그와 함께 목검이 한층 더 날카롭게 허공을 꿰뚫기 시작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대한 기운이 물씬 퍼져 나갔다.
파파팟!
찰나, 독고천의 신형이 뛰쳐나갔다.
붉은 마기가 잔영을 남기며 허공에 흩뿌려졌다.
독고천의 신형이 솟구치며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허공이 찢어발겨지며 공간을 만들었고, 독고천의 목검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마기가 번쩍거렸다.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마기가 퍼져 나가며 폭사되었고, 순간 독고천의 목검이 부풀어 올랐다.
팍!
순간, 들고 있던 목검이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서서히 움직임을 멈춘 독고천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붉은 마기가 노을을 뒤덮고 있었다.
독고천이 목검을 내려다보았다.
목검은 아예 박살이 나 있었다.
독고천은 쥐고 있던 목검을 놓고 자신의 손아귀를 내려다보았다.
굵고 거친 투박한 손아귀가 시야에 들어왔다.
독고천이 손아귀를 굳게 쥐었다.
힘찬 기운이 펄떡거리며 독고천의 몸을 두들겼다.
“부교주님, 축하드립니다.”
독고천이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왔는지 모를 탁경도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되찾으신 경지에 대해서 축하드립니다, 부교주님.”
탁경도가 밝게 웃었다.
독고천이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긁었다.
“어찌 아셨습니까?”
“그러한 패도적인 경지를 이룩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받아들이시는 모습을 보고 알았지요, 부교주님.”
“고맙습니다.”
독고천이 씨익 웃어 보이자 탁경도가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지난 일 년간 보여 주지 않던 정중한 태도에 독고천이 놀라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사실 전 이제 얼마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교주님을 만나게 되어 여한이 없습니다. 지난 일 년이란 세월.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즐거웠습니다. 본래 무공이란 것이 내공(內功)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것입니다. 부교주님, 제 진기를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탁경도의 말에 독고천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승님은 저와 함께 본 교로 돌아가서 저를 다 가르쳐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받을 수 없습니다.”
순간, 탁경도가 갑자기 내공을 끌어 올려 주먹으로 자신의 복부를 내리찍으려 했다.
그러자 독고천이 급히 오른손으로 탁경도의 주먹을 낚아챘다.
그러자 탁경도가 씨익 웃었다.
“받아 주지 않으시면 자결하겠습니다, 부교주님.”
“하아.”
독고천이 고민이 되는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탁경도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공은 드리게 해 주십시오, 부교주님.”
본래 진기(眞氣)라는 것을 잃게 되면 무공을 익힌 무림인은 삶을 잃는다고 봐야 했다. 그럴 정도로 진기를 얻는다면 웬만한 내공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엄청난 성취를 맛볼 수 있었다.
그만큼 진기라는 것은 사람을 지탱하는 하나의 기운이었으며, 없어서는 아니 될 중요한 기운이었다.
독고천이 탁경도와 눈을 마주쳤다.
탁경도의 눈에는 단호한 결심이 담겨져 있었다.
지난 일 년간 탁경도와 함께 지내면서 그의 단호함을 잘 알 수 있었다.
지난 몇 십 년간 혈마를 찾아 헤맨 굳건한 의지로 보아 이번에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공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예. 본래 혈마 님의 심법에도 그러한 구결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심법을 읊으시면 제가 내공을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자 탁경도가 오른손으로 독고천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탁경도가 구결을 읊자 독고천이 눈을 감은 채 구결을 따라 읊었다.
어느 순간 독고천의 단전 부근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더니, 평온한 기운이 전신을 감쌌다.
‘과연 정순한 내공이군.’
작지만 힘있는 내공이 탁경도로부터 독고천의 몸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독고천은 서서히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웅후한 내력이 독고천의 단전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흡사 구름에 떠다니는 기분이랄까.
매우 평온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더니, 독고천의 내력을 북돋워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들어오는 내력의 양이 많아지더니, 어느 순간 장강의 물살처럼 거세지기 시작했다.
방대한 내력이 밀려들자 독고천은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곧바로 진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강과도 같았던 물결이 순식간에 독고천의 단전에 녹아 들어갔다.
독고천은 한숨을 내쉬고는 내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내력을 다뤘다.
그리고 마침내 흡수한 내력들이 단전에 자리 잡을 무렵, 독고천이 천천히 눈을 뜨며 입을 열려 했다.
순간, 단전에 숨어 있던 기운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전신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헉!”
기운이 폭주하며 당장에라도 독고천의 몸을 찢어발길 것만 같았다.
그러자 탁경도가 급히 외쳤다.
“부교주님, 기를 놓으십시오!”
순간, 탁경도의 말을 듣고 급히 기를 놓았다.
엄청난 기의 물결이 독고천의 단전을 꿰뚫고 온몸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터질 것만 같던 몸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그것은 탁경도조차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의복이 굉음을 터뜨리며 터져 나가며 뼈가 우두둑거리며 기묘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탁경도가 경악하여 중얼거렸다.
“화, 환골탈태…….”
환골탈태는 모든 무림인들이 꿈꾸는 지고한 경지였다.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의 몸으로 바뀌고, 내공을 쓰고 또 써도 마르지 않는다는 대해단전(大海丹田)을 가지게 되는 경지가 바로 환골탈태였다.
독고천의 몸은 근육으로 다져졌지만, 그것은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의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작지만 단단하고 강한 뼈가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이었던 것이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독고천이 이윽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검은빛의 탁한 기운들이 빠져나가며 허공에 흩뿌려졌다.
순간, 독고천의 눈이 떠졌다.
심해와도 같이 너무나도 깊고 맑은 눈동자와 탁경도의 경악한 눈이 마주쳤다.
“부교주님께서 환골탈태를 하실 줄이야…….”
탁경도는 사실 내공만 준다고 말해 놓고는 선천진기마저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환골탈태로 이어진 것이었다.
독고천의 몸에서 붉은 마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하더니 허공을 뒤덮기 시작했다.
진정한 마인(魔人)의 경지를 이룩해야만 가능하다는 마도지천(魔道至賤)이 펼쳐지고 있었다.
공간을 마기로 가득 채워 버려 상대방의 기운을 옭아매고 짓누르는 마인의 경지였다.
웬만한 사람은 정신을 잃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평생 동안 마기에 짓눌려 병에 걸린 듯 앓아야 했고, 심지어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조차 투지를 잃고 심하면 목숨마저 잃을 정도였다.
그것이 바로 마도지천이란 경지였다.
“마, 마도지천…….”
탁경도의 아랫도리가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내공을 독고천에게 모두 건넨 그는 이제 그저 늙은 촌부에 불과했다.
순간, 독고천이 급히 마기를 거두었다.
그러자 탁경도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괜찮으십니까, 스승님?”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으십니까?”
탁경도의 걱정스런 물음에 독고천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승님.”
어느새 탁경도의 몸은 왜소해져 있었고, 머리털은 듬성듬성 빠진 백발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경도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원래 사람은 늙으면 죽어야 하는 법이지요.”
탁경도의 미소에는 세월의 허무함이 드러나 있어서 독고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독고천은 터져 나가 있는 의복 파편을 보고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복부의 상흔은 물론, 몸에 새겨져 있던 수많은 상처들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또한 체격이 예전보다 훨씬 작아지고 단전 자체가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독고천은 문뜩 환골탈태라는 말이 떠올랐다. 소문으로 왕왕 전해져 오던 그 현상이 자신이 겪은 일과 모두 일치했다.
“스승님, 설마……?”
독고천의 물음에 탁경도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부교주님께서는 환골탈태를 겪으셨습니다. 속하는 구경도 못할 엄청난 경험을 한 것 같아서 한평생 잘살았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탁경도가 씨익 웃어 보이자 독고천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잠시 운공을 하던 독고천은 엄청난 변화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탁경도의 표정은 흐뭇함이 가득했다.
이후 며칠 동안 독고천은 자신의 몸에 익숙해지기 위해 미친 듯 목검을 휘둘렀다.
그 무엇도 독고천의 일검을 버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제 절벽 따위는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독고천은 정확히 일 주야 후 절벽을 올라가기로 정했다. 탁경도에게 얘기하자 마치 자신의 일마냥 좋아해 주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스승님. 당연히 같이 가셔야죠.”
독고천이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탁경도의 주름진 얼굴이 밝게 퍼졌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늙은이가 부교주님의 발목을 잡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그렇게 일 주야가 흘러갔다.
* * *
“스승님, 일어나셔야 합니다. 오늘 드디어 절벽에서 벗어나는 날입니다, 스승님.”
독고천이 동굴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그러나 묵묵부답이었다. 순간, 싸한 기운이 독고천의 등을 스쳐 지나갔다.
눈앞에는 탁경도가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입가에는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매우 평온해 보였다.
“스승님?”
독고천이 재차 물으며 탁경도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탁경도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차가운 탁경도의 시신이 독고천을 맞이할 뿐이었다.
독고천이 급히 자신의 진기를 탁경도에게 주입했다.
일 할이 안 되면 이 할을 넣었고, 이 할이 안 되면 삼 할을 넣었다.
하지만 탁경도의 눈은 당최 떠질 줄을 몰랐다.
독고천은 무릎에 힘이 풀렸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독고천이 탁경도의 몸을 쓰다듬었다.
“스승님.”
그러나 탁경도는 입은 여전히 움직일 줄 몰랐다.
“스승님.”
오직 미소만이 답변해 왔다.
“스승님…… 스승님!”
독고천의 절규가 울려 퍼지자 동굴이 들썩거리며 먼지가 떨어졌다.
어느새 독고천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려 땅을 적셨다.
소매로 눈가를 닦아 낸 독고천은 탁경도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순간, 탁경도의 시신 아래 놓여진 서신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매우 낡은 서신은 탁경도가 생전에 항상 간직하고 있던 것 같았다.
그것은 피로 쓰여진 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