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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第六章 복수혈전(復讐血戰)(3)
부교주님, 이제 제 삶의 목적은 끝난 듯합니다.
비록 혈마 님을 직접 뵙진 못했지만, 그래도 혈마 님의 후계자를 뵐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북해빙궁의 어리석음이 저와 부교주님을 만나게 해 주었으니, 그들의 행사가 괘씸한 한편, 고맙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교주님도 아실 겁니다. 마도의 길은 은원에 확실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말 즐거웠습니다.
속하, 이만 줄이겠습니다.
마도천하 만세.
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독고천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심스레 서신을 갈무리한 독고천이 탁경도의 시신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그런 뒤, 잠시 바위 위에 탁경도의 시신을 올려놓고는 땅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깊은 구덩이가 생기자 독고천은 탁경도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묻어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 묘비 하나를 만들어 세웠다.
천마부묘(天魔父墓).
‘스승님, 스승님은 좌천된 상태에서도 충성을 잃지 않은 본 교의 자랑입니다. 부디 하늘에서만큼은 헤매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고천이 묘비에 대고 몇 번 절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사위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독고천은 슬쩍 절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지독히도 맑은 밤하늘이었다.
* * *
“부총관님, 기침하셨습니까?”
방 안에서 아무런 대답도 없자 하인이 재차 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혼날 것임은 당연했지만 새벽 회의에 늦을 수도 있기에 무례를 무릅쓰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부총관님, 새벽 회의에 늦으시면…… 헉!”
하인의 경악하며 뒷걸음질쳤다.
침대에는 부총관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는데, 머리는 잘려진 채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부총관의 눈동자는 동그랗게 떠져 있었으며,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때문에 침대와 바닥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참혹한 광경에 하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 으아아악!”
“이게 도대체 무슨 흉사란 말이오?”
중년인이 한숨을 내쉬며 탁자를 내리쳤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던 다른 중년인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도 당황스러웠다.
새벽 회의에 나와야 할 부총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하인을 보내서 불렀더니, 목이 잘린 채 죽어 있었다.
북해빙궁에 그 누가 쉽사리 침입하여, 그것도 무공 실력이 뛰어난 부총관을 조용히 단칼에 벨 수 있다는 말인가.
“부총관의 시신을 검사해 본 결과, 단칼에 잘린 것이었소. 그것은 명백한 고수의 솜씨였소이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가 있어 본 궁에 침입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설사 눈보라를 뚫고 온다 해도 쉽사리 본 궁에 침입할 수는 없습니다. 진법과 함정뿐 아니라 부총관의 무공 또한 결코 낮지 않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본 궁에 원한을 품을 만한 문파들조차 없습니다.”
관충덕 장로가 언성을 높였다. 그는 북해빙궁의 사장로 중 한 명이었는데, 차디찬 한공이 담긴 검술을 구사하는 뛰어난 검객이었다.
하지만 강호에 나간 적이 없어서 명호조차 없는 북해빙궁 고유의 고수 중 하나였다.
본래 북해빙궁은 강호 진출을 하지 않았기에 알려진 고수들이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뛰어난 무공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강호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많았다.
관충덕 장로의 말에 옆에서 조용히 서류를 뒤적이던 이준양 장로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아니오. 본 궁이 강호 진출만 하지 않았다뿐이지, 적은 많소.”
이준양 장로는 무공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총명한 지혜를 갖춘 이였다. 북해빙궁이 근래 들어 세력을 키울 수 있던 것도 모두 이준양 장로의 총명함 덕분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자신의 말이 바로 반박당하자 관충덕 장로의 얼굴이 붉어졌다.
“압니다, 저도 알아요.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적대 행위를 해 올 만한 적을 둔 적이 없다는 겁니다!”
관충덕 장로의 말에 이준양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없진 않았다.
강호 진출을 위하여 최대한 다른 문파들과의 다툼은 피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총관은 어디 갔소? 이렇게 중요한 상황이 생겼는데 어디에 또 처박혀 있는 건지. 허참.”
이준양 장로가 혀를 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해빙궁의 제자 중 한 명이 급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숨을 헐떡거린 그는 한겨울이 계속되는 북해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관충덕 장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숨을 헐떡이던 제자가 다급히 말했다.
“초, 총관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뭐라?”
관충덕 장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묻자 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총관님이 돌아가셨답니다. 부총관처럼 목이 잘려진 채 돌아가셨답니다.”
“이런 빌어먹을!”
쾅!
화를 참지 못한 관충덕 장로가 탁자를 내려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가루로 변하는 탁자.
그로 보아 관충덕 장로의 웅후한 내력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부총관에 이어 총관마저 목숨을 잃다니! 흉수는 찾았느냐?”
관충덕 장로의 말에 제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궁주님의 명령하에 본 궁을 폐쇄하였고, 지금 모든 제자들이 흉수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러자 관충덕 장로와 이준양 장로가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 궁을 폐쇄한다면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심지어 비밀 통로에도 고수들이 파견되기 때문에 몰래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약 적이 강행 돌파를 한다 해도 그 많은 진법과 고수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이런 젠장, 지금 궁주님은 어디 계시느냐?”
“소궁주님들과 함께 태궁(太宮)에 머물러 계십니다.”
제자의 대답에 관충덕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곳이 가장 안전하지. 궁주님의 계획은 뭐라고 하시더냐?”
“아마 직접 흉수를 찾으시려는 것 같습니다.”
“오, 궁주님께서 직접 나서신다면 조만간 흉수를 찾아낼 수 있겠군. 알았다. 나가 보아라.”
“옛.”
제자가 방을 나가자 관충덕 장로와 이준양 장로를 비롯한 다른 중년인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져 있었다.
그만큼 궁주의 힘은 절대적이었고, 궁주가 나선다는 의미는 모든 것이 무난히 풀릴 예정이라는 뜻과 동일했다.
“우린 회의나 합시다. 궁주님께서 직접 처리하신다고 하셨으니 조만간 일이 잘 풀릴 것입니다.”
“당연하오. 괜히 우리 궁주님이겠소?”
“맞습니다.”
그렇게 한결 차분해진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 시진이 지난 후,
그들은 모두 목이 잘린 채 회의장을 방문한 제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 * *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북해빙궁은 사장로 중 두 명을 비롯해 총관과 부총관을 잃었다.
그들은 북해빙궁을 지배하는 수뇌부였고, 북해빙궁을 지탱하는 기둥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이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는 곳에서 흉수의 정체도 알지 못한 채 죽어 버린 것이었다. 아무런 증거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남은 거라곤 그들의 시체뿐이었다.
이러한 일은 북해빙궁 사상 유래없는 최악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북해빙궁의 존망이 걸린 일이기도 했다.
이대로 흉수가 발견되지 않은 채 사망자들이 늘어간다면, 북해빙궁은 멸문의 위기에 처할지도 몰랐다.
자육천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연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총관과 부총관이 목숨을 잃었을 당시에는 흉수를 찾는다고 눈에 불을 켠 채로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흉수는 신출귀몰했고, 그 누구도 머리카락조차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궁주인 자신마저 당해 버린다면 북해빙궁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 당연했다.
장로 두 명과 회의장에 있던 고수들을 단칼로 벤 실력으로 보아 최소 자신과 동급이었다.
만약의 경우에는 자신보다 고수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육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강호팔대고수와 절대오마를 제외하고는 있을 수 없지.’
그러나 문뜩 강호의 유명한 구언(舊言) 중 하나가 자육천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강호에는 기인이사들이 모래알처럼 많다.
그랬다. 강호에는 은거기인들이 많았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고수들도 흘러넘쳤다.
그리고 만약 은거기인 중 한 명의 심기를 건드려서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순간, 자육천의 뇌리에 설마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강호절대삼인(江湖絶代三人)?’
하나 자육천은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 중 두 명은 문파 내에서 나오지 않은 지 어언 오십여 년이 지났고, 한 명은 실종된 지 오십여 년이 넘은 상태였다.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될 정도로 그들은 강호의 영역을 한참 벗어난 자들이었다.
고개를 내젓던 자육천이 현재 북해빙궁이 처한 상황을 다시 상기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흉수를 잡아서 족치거나 죽인다고 하여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본때를 보여 주어야 했다.
심란해진 제자들의 마음을 올바르게 잡아 두기 위해서라도, 북해빙궁을 건드리면 어찌 되는지 눈앞에서 보여 주어야 했다.
“여봐라, 빙룡검을 내오거라!”
자육천이 외치자 한 제자가 조심스럽게 빙룡검을 건네주었다.
자육천이 빙룡검을 내려다보았다.
화려한 검집 위로 은은한 한기가 연신 넘실거리고 있었다. 자육천이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빙룡검을 허리춤에 찼다.
그런데 그때, 제자 한 명이 태궁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궁주님, 흉수가 발견되어 빙룡대(氷龍隊)와 접전 중이랍니다!”
빙룡대는 북해빙궁이 자랑하는 최강의 무력 부대였다.
절정고수 오십여 명이 펼치는 빙룡검진은 그 어떤 고수라 해도 뼈를 묻어야 할 만큼 무적이었다.
빙룡대의 고수들은 하나같이 한기를 내뿜고 있는 검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들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한기는 절진 안에서 한층 짙어졌다.
결국 빙룡검진에 의해 상대는 한기가 골수에까지 침입하여 뼈를 얼어붙게 만드는 무서운 절진이어다.
“오냐! 드디어 잡혔구나! 거기가 어디냐!”
“소태궁(小太宮) 앞이랍니다!”
제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육천의 신형이 밖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 이게 도대체…….”
소태궁 앞에 도착한 자육천은 망연자실한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표정은 경악에 가득 차 신음마저 흘러나오지 못했다.
시산혈해.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피는 바다처럼 넘쳐흘렀다.
모든 이들의 목이 잘려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며 정명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던 제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잘린 목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몇 명은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