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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第六章 복수혈전(復讐血戰)(4)


너무나도 처참한 모습에 오랜 시간 동안 강호를 떠돌던 자육천조차도 헛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피로 칠해진 흑의를 입은 사내가 검을 뽑아 든 채 서 있었다.
흑의사내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보통 살귀라면 냉혹하다든지 차가운 미소라는 것이 으레 있어야 했고, 복수를 하는 것이라면 증오라든지 분노라는 감정이 표출되어야 함이 옳았다.
그러나 흑의사내의 표정에서는 당연하다는 듯한 감정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흑의사내와 자육천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독고천?”
자육천이 허탈한 듯 중얼거리자 흑의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군, 북해빙궁 궁주.”
자연스러운 하대에 자육천이 흠칫거렸다.
지난 일 년 전, 죽었다고 보고된 독고천이었다.
자신들도 한 짓이 있었기에 서류를 모두 파기해 버리고 쉬쉬했는데, 그랬던 자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이제 막 인형설삼을 통해 소궁주 중 한 명이 대성을 이루어 강호에 발을 내딛으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몰래 덮어 버린 줄 알았던 치부(恥部)가 다시 살아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어떻게 살아남은 것이냐?”
자육천의 물음에 독고천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일 년 전 보았던 활기차고 당당한 미소가 아니었다. 차갑고 냉혹한 미소였다.
살귀만이 지닐 수 있는 미소를 접하자 자육천의 몸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살귀가 되었구나.’
자육천이 빙룡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독고천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자육천의 몸을 짓눌러 왔다.
‘결코 내 아래가 아니다!’
자육천이 빙룡검을 움켜쥐며 침음을 삼켰다.
그 모습에 독고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인은 천마신교의 대표로서 동맹을 위하여 귀 궁을 방문하였소. 하지만 귀궁 측에서는 본인의 무공을 폐하고 강제로 억압하였다. 고로…….”
독고천이 검을 천천히 들었다.
“……본인이 직접 북해빙궁 궁주 자육천의 목을 베어 그 죄를 묻겠다. 이의 있는가?”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독고천의 몸에서 숨 막힐 듯한 붉은 마기가 폭사되었다. 자육천은 이를 악물며 버티려 했지만, 그의 검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 목만 가져간다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건가?”
자육천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독고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본 교에는 이런 말이 하나 있지.”
잠시 자육천을 바라보던 독고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복수를 하려면 제대로 해라. 당한 상대가 너를 더욱 증오할 수 있도록.”
순간, 자육천의 심기가 뒤틀렸다.
“네 이놈! 네놈이 얼마나 강하기에 그렇게 오만한 것이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난 오만한 것이 아니라, 마도인으로서 판단할 뿐이다. 북해빙궁은 나를 억압하였고, 나는 그것에 대해 몇 배로 복수를 한다. 간단하지 않나?”
자육천이 신음을 터뜨렸다.
일 년 전만 해도 정중하고 당당한 무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독고천이다.
한데 도대체 지난 일 년간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사람이 이렇게도 변한 것일까.
물론 죄책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고, 북해빙궁의 중흥을 위해 이내 잊어버렸다.
그때의 작은 실수가 지금 커다란 재앙이 되어 자육천의 목을 죄어 오고 있었다.
“더 이상 말로는 안 되겠구나.”
자육천의 검을 쥔 손에서 흔들림이 서서히 멎어갔다.
그러자 독고천이 검을 들어 자육천을 가리켰다.
묵직한 기운이 자육천을 짓눌렀다.
주변을 둘러싼 북해빙궁의 제자들은 자육천의 제지로 인해 대기하고 있었다.
자육천이 주위의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저마다 병장기를 손에 쥔 채 독고천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흉수에게 분노를 토했고, 궁주가 흉수를 단칼에 박살 낼 것임을 전혀 의심치 않고 있었다.
순간, 자육천의 신형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빙룡검이 독고천의 목을 꿰뚫었다. 하지만 북해빙궁 제자들의 환성이 터지기도 전에 독고천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모습을 감췄다.
자육천이 급히 뒤로 물러서며 검을 휘둘렀다.
까강!
두 자루의 검이 맞부딪치며 쇳소리를 토해 냈다.
순간, 묵직한 기운이 몸을 찌르르 울리자 자육천은 참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크흑.”
곧바로 독고천의 검이 자육천의 허리를 베어 갔다.
검을 피해 자육천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자 독고천의 검이 뱀처럼 치솟았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자육천이 다리를 움켜잡으며 옆으로 뒹굴었다.
그런 뒤, 벌떡 몸을 일으킨 자육천이 숨을 헐떡이며 검을 세웠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이미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다리에서는 연신 피가 흘러내렸고, 벌어진 허리춤에서는 내장이 삐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무명검객(無名劍客)의 단 삼 검에 북해빙궁의 지존이자 북해빙왕이라 불리는 자육천이 처절하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자들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항상 패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던 궁주의 모습이 오늘따라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나서고 싶었지만, 궁주의 단호한 눈빛에 발을 동동 굴렀다.
숨을 헐떡이며 독고천을 노려보던 자육천이 자신의 몰골을 훑어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피를 흘리는 것이 얼마 만인지. 그동안 본 궁의 이름을 높여 보겠다고 그것에만 열중했지. 하루하루 무공에 미쳐 있던 젊은 날들보다 확실히 요 근래 무공 수련을 덜했어. 그리고 결국 그 죗값을 받게 되는군.”
“아니.”
독고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자육천이 의아한 듯 바라보자 독고천이 입을 열었다.
“스스로 정당화시키지 마라. 네가 나를 짓밟았고, 다시 일어선 내가 너를 짓밟으러 온 것뿐이다. 무공 수련을 덜한 죗값이라고? 우습군.”
독고천의 냉정한 대답에 자육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 독고천의 몸에서 붉은 마기가 넘실거리며 허공에 넘실거렸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제자들이 마기에 의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자육천은 독고천에게서 흘러나오는 붉은 마기로 인해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경악했다.
‘마도지천이구나. 말로만 들어오던 마도지천이야…….’
그 순간, 자육천의 투지는 꺾이고 말았다.
힘없이 꿇고 마는 두 무릎.
독고천의 검이 휘둘러지는 것과 동시에 자육천의 머리가 허무하게 땅에 떨어졌다.
촤아아.
머리를 잃은 자육천의 목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와 바닥을 적셨다.
제자들은 망연자실한 채 그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아 버렸다.
그들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 모두가 덤벼든다 해도 저 검객 한 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독고천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전 자신이 불태웠던 무고가 멀쩡히 세워져 있었다. 독고천은 무고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자들은 엄청난 독고천의 기세에 눌려 옆으로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투지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만약 자육천의 전성기 때였다면 모든 이들이 죽음을 각오하며 독고천에게 덤벼들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북해빙궁의 이름을 드높이는 데 열중한 나머지 가르침에 대해 소홀해지고 말았기에 그들의 충성심은 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독고천이 무고를 올려다보았다.
한 번 탔던 흔적을 제외하고는 멀쩡했다.
독고천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화염봉(火焰棒)을 뽑아 들었다.
화르르.
화염봉 끝에 맺힌 불꽃은 여전히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독고천이 화염봉을 무고에 가져다 댔다.
순간, 무고에 거침없이 불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자 독고천이 무고 옆에 서 있는 전각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화염봉을 전각에 들이댔다.
머지않아 전각도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무력함에 주저앉아 있던 제자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덤벼들었다.
“저놈을 죽이자! 궁주님의 원수를 죽이자!”
그러나 독고천의 검은 무자비하게 움직였다.
달려오던 세 명의 제자의 머리가 일검에 떨어졌고, 이검째에 그 뒤에서 달려오던 제자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삼검에 창을 들고 있던 제자의 몸통이 두 동강나 버렸고, 사검에 쌍검을 휘두르던 제자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마지막 오검째에는 바닥이 폭발하더니 파편이 튀어 나가며 수많은 제자들의 몸을 꿰뚫었다.
그리고 고요함이 북해빙궁을 뒤덮었다.
북해빙궁의 제자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무력함을 저주했다.
“네놈의 이름이 대체 무엇이냐!”
제자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외치듯 묻자 독고천이 그를 쳐다보았다.
좀 전의 악귀와도 같던 모습과 달리, 독고천의 눈빛은 매우 고요했으며 깊었다. 그에 제자는 다리에서 힘이 풀리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제자의 아랫도리가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독고천은 덤덤히 그 제자를 바라보았다. 제자는 창피함에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 모습에 독고천이 입을 열었다.
“……독고천. 그것이 내 이름이다.”
독고천의 말에 제자는 그의 이름을 되새기며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그런데 자운룡은 어디 있지?”
독고천의 말에 제자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를 갈며 외쳤다.
“그놈은 본 궁의 소궁주라는 본분을 잊고 첩자와 결탁하였다던데, 그 첩자가 바로 너였구나!”
“설마 죽었나?”
독고천의 물음에 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죽거렸다.
“본 궁은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순간, 독고천의 눈가가 살짝 흔들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시체는 어디에 묻었나?”
“시체 따위는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제자의 악에 받친 대답에 독고천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온통 피바다에 사방에 깔린 시체들.
멀리 보이는 산맥 위에 쌓여 있는 눈들이 오늘따라 새하얗게 느껴졌다.
독고천이 담담히 입을 열어 씁쓸함이 담긴 음성을 토해 냈다.
“무정강호(無情江湖)라…….”

* * *

강호의 많은 문파들이 이를 갈았다.
많은 문파들이 북해빙궁의 중원 진출에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
그만큼 북해빙궁의 잠재력은 매우 대단한 것이었으며 그에 걸맞게 고수들이 즐비했다.
그렇기에 북해빙궁과의 연줄을 이용하여 출세해 보려는 중소 문파들이 매우 많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북해빙궁이 말 그대로 봉문해 버린 것이었다.
많은 중소 문파들이 항의를 해 왔지만, 북해빙궁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몇몇의 문파는 빚 독촉에 시달려 무너지기도 했다.
많은 소문들이 나돌았지만 북해빙궁은 침묵을 유지했고, 결국 그 누구도 진실을 알아낼 수 없었다.
북해빙궁은 많은 소문들을 껴안은 채 자취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