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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7화)
제3장 이계 적응기(2)


***

눈을 뜨고, 오 일이 지났을 때였다.
“공자님, 걱정이 되어 찾아왔습니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짐짓 점잔을 빼며 말하는 중년인은 주홍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으며, 별이 그려져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제 몸을 배배 꼬듯이 감은 뱀처럼 꾸불텅해 보이는 낡은 지팡이(Staff)가 쥐어져 있었다.
중년인이 신고 있는 코끝이 뾰족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신발을 보며 ‘참 우스운 옷차림이야. 마치 광대 같잖아’라고 생각했다.
내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자신이 마법사임을 알리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상한 몰골을 보며 비웃을 수 없었다.
‘여기의 마법사들은 대개 이런 차림을 한다고 했던가? 신비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한마디로 말해서 잘난 척 비슷한 것이다.
―나는 마법사다. 일종의 천재지. 흐흐. 이놈들아, 마법사 처음 봐?
―놀란 소 새끼처럼 눈깔을 대록대록 굴리지 마라, 아가야. 그러다 다친다.
뭐, 이런 식 말이다.
나도 한때 중원제일인이라는 것과 무림맹의 후계자라는 것을 은연중에 으스댄 적이 있기에 요란한 옷차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마법사 쿠퍼 경이겠지?’
이미 빅토리아로부터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쿠퍼 경.”
동물원의 원숭이를 관찰하듯 이리저리 나를 살피던 쿠퍼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몸이 편찮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뵈니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군요.”
“빅토리아 덕분이지요. 저 아이가 나 때문에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언짢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눈썹이 활처럼 휘어졌다. 퉁명스럽게 그가 말했다.
“공부는 10일 후부터 시작하신다고요?”
보름에서 오 일이 지났으니 10일이 맞다.
“이해를 바랍니다. 나름대로 준비해야 할 것도 있어서요. 10일 후부터는 쿠퍼 경이 놀랄 정도로 열심히 할 테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입니다. 하하.”
나의 태도와 말투에서 뭐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쿠퍼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가 말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공자님께서 좀 변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나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래 주시면 저야 더 이상 바랄 게 없지요. 6개월 후, 공작 각하께 좋은 소식을 전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는 듯했다.
“저도 그렇지만 그간 공작 각하께서 심려가 컸습니다. 모쪼록 이전의 공자님 모습을 하루빨리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음서에 고린내에, 이 몸뚱이 녀석은 여러 사람에게 꽤 애를 먹였나 보군. 그랬으니 쿠퍼가 이런 말을 하겠지? 빅토리아 같은 시비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말이야.’
고블린 산장에서의 금족령 기간은 6개월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서 6개월이면 내 한 몸 보존할 정도의 능력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가는 파락호에게 얻어맞아 개창피를 당하지는 않을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쿠퍼가 말끝을 흐리며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을 지키던 쿠퍼가 빅토리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서는 잠시 자리를 피해 주시겠습니까?”
‘아가씨?’
나는 놀라고 말았다.
‘저 계집아이가 종이 아니었나?’
“왜요?”
빅토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쿠퍼에게 되물었다.
“공자님과 은밀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럽니다.”
빅토리아가 눈썹을 초승달처럼 만들며 말했다.
“저번에 그 얘기라면…….”
“아닙니다. 그 얘기가 아니라…… 하여튼 제가 알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둘이 뭐 하는 거지?’
호기심이 발동했기에 나는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만 봤다.
“심려 마시고 나가 계세요. 아가씨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주저하는 표정을 짓던 빅토리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요.”
빅토리아가 나가자 쿠퍼가 나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공자님.”
“말씀하세요.”
뭔가 말하기 어려운 듯, 쿠퍼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니 너무 기분 나빠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시라니까요.”
내가 손으로 권하는 시늉을 했다.
“공자님, 언제부터 아가씨께 말을 놓았습니까?”
“무슨……?”
“빅토리아 아가씨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공자님은 빅토리아 아가씨께 함부로 대하시면 안 됩니다. 언제부터 하대를 하셨습니까?”
‘이거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은 잘못되었군.’
내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눈을 뜨면서부터였는데.”
“눈을 떠요?”
‘이크.’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도. 하여튼 며칠 전부터 그렇게 되었습니다. 왜요? 빅토리아에게 반말을 하면 안 됩니까?”
쿠퍼가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두 분이서 합방을 하셨단 말입니까?”
“하, 합방?”
“네. 감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두 분이서 내외가 있었는가 묻는 것입니다.”
‘내, 내가? 빅토리아 그 아이와 그렇고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는 거지 지금?’
너무나 황당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생활을 그렇게 물어도 되는지 모르겠군요.”
쿠퍼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생활이라기보다. 아까도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도대체 쿠퍼 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쿠퍼가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자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하루에 한 번씩 빅토리아 아가씨를 뵙습니다. 잘 계시는지, 불편함은 없는지 살피는 것이죠. 대부로서의 당연한 역할이기도 하지만 공작 각하의 지엄한 명을 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작 각하는 빅토리아 아가씨를 친딸처럼 사랑하고 계시잖습니까?”
쿠퍼는 ‘공각 각하의 지엄한 명’과 ‘사랑’이라는 부분을 특히 강조했다.
‘도대체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내가 구스타프 공작이 빅토리아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알아? 그런데 쿠퍼 경이 빅토리아의 대부였어?’
“그래서요.”
“며칠 전, 그러니까 딱 4일 전이군요. 아가씨가 상심한 표정으로 울고 계셨습니다. 제가 말을 걸어 보았지만 참담하게도 고운 얼굴이 흐트러질 정도로 슬퍼하실 뿐,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4일 전이면 바들바들 떨면서 다시는 나를 찾지 않겠다고 한 그날을 말하는 것인가?’
“그런데 오늘 공자님을 뵈오니, 공자님께서 빅토리아 아가씨를 너무 쉽게 대하시는 것 같기에 질문을 드리는 것입니다.”
‘쉽게? 참나. 뭣도 모르면서 나대지 말라고, 이 중늙은이야. 쉽게 대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빅토리아 그 계집아이란 말이야.’
기분이 찌그러졌는데 내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다.
“그럼 내가 어떻게 대해야 되는 것이오? 그 애를 상전처럼 모시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오?”
말투가 바뀌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쿠퍼가 화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공자님은 그것을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짜증나게 만드는군. 이보시오, 쿠퍼 경.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하시오. 나는 빙빙 돌리는 것을 제일 싫어한단 말이오. 알겠소?”
“아.”
쿠퍼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이, 이제는 저에게도 함부로 말씀을……. 공자님, 아시다시피 저는 칸트 가문의 조신(朝臣)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이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지 쿠퍼의 머리카락이 거꾸로 선 빗자루처럼 쭈뼛쭈뼛하게 섰다.
“저는 이제껏 공작 각하를 신용하였기에 시스크에 머물렀습니다. 그분의 대의대망이 좋고, 그분의 호기로움과 그분의 진실성과 약속을 남자로서 믿었기에 여기 ‘고블린 산장’까지 온 것입니다. 바로 공자님을 따라서요. 공자님께 마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말입니다.”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든지 쿠퍼가 몇 차례 숨을 들이켰다.
“공자님이 좋아서 따라온 것이 아닙니다. 오직 공작 각하의 명을 좇아서 공자님의 학문 스승, 마법 스승이 된 것입니다. 제가 싫고, 빅토리아 아가씨가 부담이 된다면 언제든 말씀을 하십시오. 공자님이 저희를 내치신다면 저희들은 미련 없이 시스크를 떠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자님은 마음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뭔가가 심상찮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이해를 못하겠소. 떠난다는 말은 또 무엇이고, 거기서 빅토리아 얘기는 왜 나오는 것이오?”
쿠퍼가 단호한 어조로 물었다.
“제가 묻겠습니다. 확실하게 대답을 해 주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좀 윽박지르는 느낌을 받았다.
“물어보시오. 숨김없이 대답해 줄 테니.”
“빅토리아 아가씨와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까?”
“없었소.”
내 대답에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짓던 쿠퍼가 이내 얼굴을 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날 아가씨가 왜 우셨습니까?”
‘이 자식, 내가 강간이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나를 뭘로 보고 그딴 소리를 해?’
그러나 몸뚱이의 주인이 새끼 색마였다는 것을 보면 이런 오해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것을 난들 알겠소? 내가 기분이 안 좋았을 때, 서로 간에 무슨 일이 있었겠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기에 기억이 없소.”
짜증이 나자 거짓말도 술술 나왔다.
“그랬군요.”
짤막하게 말을 뱉은 쿠퍼가 내 눈을 직시했다.
“공자님의 하대는 빅토리아 아가씨와 서로 상의가 있었던 것입니까?
‘말 놓는 것도 상의가 필요해? 제길. 알고 보니 그 계집이 그냥 종이 아니었어. 상당히 까다로운 계집이었구나.’
“그런 적은 없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으십시오. 그것이 상호 예법에 맞는 것입니다.”
“예법?”
“네. 실제로 지금의 공자님과 아가씨의 관계는 설명 드리기 곤란할 정도로 복잡합니다.”
‘복잡하다고? 젠장. 지금까지 내가 계집을 사귀어 봤어야지 알지.’
지금 쿠퍼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먹지 못하겠다. 그러나 나와 빅토리아 사이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울컥 화가 치밀지.
사실 남녀 간이라는 것이 별게 있나?
서로 끌리면 눈이 맞는 것이고, 눈이 맞으면 응응 하고, 그렇게 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살면 되는 것 아닌가?
또한 나에게 있어서 ‘복잡’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좋아하지도 않는다.
쿠퍼가 이어서 계속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아가씨께서 여기 고블린 산장에 계신다는 것을 안다면 공자님은 지금보다 더한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가씨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고요. 물론 공작 각하의 위엄에도 누가 되지요.”
“뭐가 그리 꼬인 게 많소. 빅토리아가 여기 있는 것이 비밀이라도 된다는 말이오?”
쿠퍼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비밀이죠. 빅토리아 아가씨가 여기 계시는 것을 아는 사람은 칸트 공작성 내에서 채 열 명도 되지 않습니다. 다 공자님 때문입니다.”
“이상하군. 그런 것이 왜 비밀이라는 말이오? 그리고 나를 거기다 왜 끼워 넣소?”
갑자기 쿠퍼가 화를 냈다.
“아니, 자꾸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까? 세상에 맙소사. 성혼도 안 한 남녀가 외딴곳 산장에 함께 있는데 어느 누군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렇기는 하지만…….”
“비록 두 분이 약혼을 하신 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공자님이 보통과 다르게 행동하셔서 이상해지지만 않았더라면 저도 빅토리아 아가씨가 여기 오셔서 공자님의 시중을 드리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가, 가만. 금방 뭐라고 했소? 약혼?”
기억의 편린 어디에도 약혼의 약 자도 없었다.
‘알고 보면 몸뚱이 녀석이 두통을 통해 전해 준 정보는 거의 쓸데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전부 흩어져 있단 말이거든. 기억의 편린들을 모으려면 직접 부닥치고 경험해야 하는데 그것은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붉은 달] 마법에 관한 것하고, [칸트 마나 수련법] 말고는 알아도 아는 게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오?”
화들짝 놀란 상태로 물었지만 쿠퍼는 오히려 황망해 했다.
“공자님은 약혼을 인정하기 싫으신 거군요.”
중늙은이의 억지와 오해에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버럭 소리쳤다.
“이보시오, 쿠퍼 경.”
“네?”
고함 소리에 놀란 쿠퍼가 찔끔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네. 말씀하세요, 공자님.”
‘침착하자. 침착해야 돼. 그래야 이런 엿 같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
푸우……. 푸…….
수차례 심호흡을 한 다음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 차근차근 얘기를 해 봅시다. 전후 사정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니까요. 아아. 그렇게 또 얼굴을 붉히지 마시오. 사실 변명을 하자면 얼마 전, 그러니까 5일 전부터 말이오. 내가 좀 이상해졌소. 뭐, 쉽게 말해서 일시적인 기억 상실 비슷한 건데.”
“기억 상실……요?”
쿠퍼가 경악해 했다.
“이런, 이런. 그렇게 놀라지 말라니깐. 우선은 여기 좀 앉으시오. 차라도 한잔 하겠소?”
내가 자리를 권했다.
쿠퍼가 앉자 차를 따른 다음 맞은편에 나도 앉았다.
“사실, 이것은 비밀인데 말이오. 우연히, 그러니까 아주 우연히 어떤 고서를 발견하게 되었소.”
“그런 일이 있었군요.”
미리부터 생각해 두었던 터라 내 거짓말은 일사천리처럼 막힘이 없었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책이었소.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했지. 경은 내가 한때 천재였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겠지요?”
“그……렇기는 하지요.”
왠지 쿠퍼의 대답이 떫은 감을 입에 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근에 발견한 그 고서에는 특유의 수련법이 적혀 있었소. 일종의 정신 수련을 위한 것인데, 아, 그렇다고 마나 수련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소.”
“정신 수련이라면 영성을 키우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쿠퍼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소. 마법사는 마나 명상을 통해 자신의 영성을 마나의 파장과 일치시키는 수련을 한다지요?”
“그렇습니다. 마법 수련자의 영성과 마나의 파장이 긴밀하게 일치할수록 좀 더 정제된 마나의 질료가 심장에 모이지요.”
“흠.”
“마법사들은 마법을 수련할 때 자신에게 맞는 마나의 원소를 택하게 됩니다. 물, 불, 바람, 땅. 이들 4원소 중 하나를 택해 원소의 질료를 모으고, 원소의 질료로 구성된 마나와 그 마나의 파장을 자신의 영성과 일치시키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원소 친화력에 따라 선택할 원소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물었을 뿐인데 졸지에 대화가 이상하게 흐르고 있었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말하는 쿠퍼의 정성이 기특해 그냥 들어 주었다.
“바로 공자님같이 말입니다. 공자님은 화염계 원소와 친화력이 높습니다. 상당한 수준이죠. 그래서 공작 각하를 비롯한 칸트 가문의 마법사들이 공자님께 마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비록 최근에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셨지만 실제로 공자님은 붉은 달 마법을 상당 기간 동안 수련하셨습니다.”
어머니 샤인 칸트 여사는 내 몸뚱이의 주인공인 오마르 알 칸트를 낳다가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또한 어머니는 붉은 달 마법 일파의 맥을 이은 펀치 가문의 하나뿐인 딸이자, 5서클의 워 메이지였으며 마르틴 왕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사상 최초의 여성 마법사였다.
그러해서 졸지에 나는 어머니가 남긴 마법을 이을 사명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눈을 뜨고 지금까지, 무거운 돌을 얹어 놓은 듯 가슴이 묵직했던 이유는 알고 보니 이 꼬마 색마 녀석이 제법 높은 수준의 화염계 마법을 수련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붉은 달’ 마법이라는 것.
‘마법사는 아무나 될 수 없다더니, 그래서 그런 말이 나왔구나. 역시 내 추측이 맞았어.’
음서를 태우면서 타오르는 화염에 내 심장의 비트가 요동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고 하더니, 이 몸뚱이의 주인이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화염계 마법을 상당 기간 동안 수련한 적이 있었기에 음서의 불길이 내 손을 따라 움직였던 것이다.
슬슬 호기심이 동했다.
쿠퍼가 말을 이었다.
“심장의 마나를 공간을 격하여 원하는 좌표에 모으고, 그들만의 마법 공식을 사용해서 원소의 질료를 재배열하는 마법사들의 마나 로드는 일종의 에너지 변환 장치입니다. 한마디로, 마법이란 마법사 자신들의 고유의 마나 로드를 통해 원소 에너지를 공간 에너지로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복잡한 것은 모른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쿠퍼경이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워 메이지 이상의 고위 마법사가 되면 더블 캐스팅이 가능합니다.”
“더블 캐스팅?”
“쉽게 말해서 동시에 펼치는 마법 영창이라는 것이죠.”
“그렇군요.”
마법에 관해서 몰랐기에 아무렇게나 대답해 주었다.
신이 났는지 쿠퍼가 계속해서 열을 냈다.
“마나 명상을 통해 친화력이 높은 원소의 파장을 자신의 영성과 일치시키면 보다 순수한 질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마법사들은 자신들 특유의 마나 로드를 이용해서 마나를 정제하죠. 정제한 마나는 차곡차곡 심장에 쌓이게 됩니다.”
‘일종의 운기조식법 같은 것이군. 축기를 통해 내공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이거지?’
“마법을 발현할 때는 원하는 좌표와 마법 공식이 필요합니다. 심장에 축적되어 있던 마나가 마나 로드를 통해 일시에 몸 밖으로 배출되는데…… 이렇게.”
쿠퍼가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