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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11화)
제4장 돌고래 제임스(3)
***
세 달만 있으면 새해다.
해가 바뀌면 31살이 되는 제임스 바즈데일은 연무장 가운데에 서서 어두워지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썽꾸러기이자 문제아인 오마르를 기다린 지 4시간이 넘어가자 점잖던 그도 점점 화가 나고 있었다.
‘젠장. 구스타프 각하만 아니었더라면 벌써 이 연무장을 떠났을 것이다.’
수 개의 횃불이 사위를 밝히고 있는 넓디넓은 연무장엔 제임스 혼자만 서 있었다.
하긴, 사람 구경조차 힘든 오지의 고블린 산장에 누군들 오고 싶어하겠는가. 여기 고블린 산장에는 오마르를 비롯해서 빅토리아, 쿠퍼, 제임스 본인, 쿠퍼와 제임스의 종자 두 사람, 충직한 병사 여남은 명,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산지기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제임스는 구스타프 공작이 꼭 필요로 하는 인재였다.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활약을 했으며, 검술 또한 시스크의 기사들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오늘의 그를 있게 만든 구스타프 공작은 그에게선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또한 그를 가르친 엄격한 스승이었다.
제임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온통 구스타프 공작에 대한 봉사와 충성심뿐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불평을 터뜨린 바 없는 제임스였다.
그런 그가 연무장에서 투덜거리고 있는 것이다.
‘흥! 웃기는 녀석. 보름을 놀더니 이제는 아예 오기 싫은 모양이지? 하긴 게으름 병은 쉽게 고치기 힘들지. 마음대로 하든가. 나는 상관이 없으니까.’
시스크의 소영주인 오마르는 한때 천재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오마르는 그저 고약하기만 한 꼴통에다 말썽만 일으키는 반항아였다.
오마르는 얼마 전에도 불쌍한 늙은 노인을 무참하게 두드려 패서 소동을 일으켰다. 물론 그 일 때문에 여기 고블린의 숲에서 벌을 받고 있지만 그런다고 원래 가지고 있던 개버릇이 고쳐질까?
오마르를 나쁘게 보는 사람은 제임스뿐만이 아니었다.
제임스는 여기 고블린의 숲으로 오면서 친구인 칼로스와 버나드가 들려주었던 얘기를 떠올리며 냉소를 지었다.
‘칼로스의 말로는 오마르 공자가 노인의 돈을 뺏으려 했다고 했다. 그러나 오마르 공자는 노인이 도적이라고 우겼단다.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지.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해 지팡이를 든 늙은 노인이 무슨 힘이 있어서 강도 짓을 할 수 있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제임스는 칼로스의 말을 믿었다.
칼로스는 제임스의 친구였고, 그는 제임스의 친구답게 공평무사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함부로 남을 모함을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소리다.
제임스가 기억하기로 오마르의 못된 짓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조그맣고 나이도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온갖 호색질은 다 하고 다녔다. 도박판에서 며칠 밤을 새웠는지 퉁퉁 부은 얼굴의 오마르를 모셔 온 것도 제임스였다.
일어서지 않겠다고 바락바락 우기는 오마르를 두드려 패고 싶었지만 구스타프 공작의 하나뿐인 아들이라 참고 또 참았다.
창녀의 치맛자락에서 하시시(Hashish)라는 마약에 절어 있는 오마르를 업고 올 때는 땅바닥에 내리꽂아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도 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오마르 공자는 천재로 불렸다. 나도 놀랄 정도였지. 고작 10세 때는 무려 천여 페이지나 되는 [브룬 대륙의 역사]를 거의 틀리지 않고 외웠고, 14세 때는 두툼한 책 4권에 달하는 칸트 수련법과 무려 그것의 두 배에 달하는 붉은 달 마법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웠다.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했을 정도로 그는 기재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시스크의 미래는 야영장의 횃불처럼 밝게만 보였다.’
2년 전, 그 당시 제임스는 하마터면 오마르 공자를 향해 무릎을 꿇을 뻔했다.
감격해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차후 시스크는 저 영민한 영주에 의해 수도 말보를 앞지르는 대도시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 천재가 파락호의 개망나니가 되어 있는 것이다.
‘공자는 왜 이렇게 변해 버렸을까? 무엇이 그를 변하게 한 것일까?’
노력하지 않는 천재의 말로는 평범한 사람보다 못해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오마르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제임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시스크의 불행으로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점이 제임스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바보가 되기 전에 요절이라도 했으면 지금쯤 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랬다면 공작 각하께서는 재혼을 하셨을 것이다.’
암적인 존재가 영광스런 시스크의 소영주라니 참으로 애석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슬슬 치밀어 오르는 불쾌감을 다스리기 위해서 시작한 회상이었다.
결과는 아쉬움만 남았다.
오마르에 대한 생각 때문인지 제임스는 머리가 아팠다.
두통을 제거하기 위해 제임스가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있을 때였다.
“어이, 제임스. 많이 기다렸지?”
제임스의 사색을 깬 것은 낭랑한 목소리였다.
제임스는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을 쳐다보았다.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삐친 모양이군 그래. 돌고래란 별명이 붙은 사람답지 않게 쫀쫀한 행동인데?”
가까이 다가와 어깨를 치는 소년은 분명 오마르 알 칸트였다. 오마르로부터 느끼는 이질적인 분위기에 제임스는 약간 당황했다.
“아프셨다 들었습니다. 좀 괜찮으신지요.”
오마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괜찮아졌어. 내가 좀 바쁜 일이 있었는데. 이해해 주겠지?”
오마르의 말은 애매했지만 제임스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늦게 온 것에 대한 변명인 것이다.
“오셨으니 된 것입니다. 저는 공자님이 오늘도 나오시지 않는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못 보던 사이에 건강해지셨군요. 얼굴도 붉어지고 어깨도 넓어진 것 같습니다. 살도 많이 빠지셨군요.”
빈말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보는 오마르는 분명 이전과 달라 보였다.
오마르가 작게 웃었다.
“그래? 하하. 칭찬인지 놀리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듣기 좋군.”
구스타프 공작은 제임스를 부를 때 ‘분에 넘치게도’ 반드시 ‘제임스 경’이란 경칭을 사용했다.
눈앞의 건방진 소공자 오마르는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경(卿)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건 또 뭐지? 사람이 달라졌잖아.’
그런데 이상하다. 불쾌해야 정상인데 느낌이 다른 것이다.
뭐랄까…….
어색하거나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 제임스였다.
시스크의 인근 소도시이자 칸트 가문의 발원지였던 슈니안에서 군사 훈련 중이던 제임스는 구스타프 공작의 명령을 받고 훈련을 포기한 채 시스크로 귀환했다.
이후, 골치 아픈 임무를 부여 받고 즉시 고블린 산장으로 왔다. 그러니까 지금의 제임스는 오마르를 4개월 만에 보게 된 것이다.
시스크를 떠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마르는 날카롭고 불안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사람을 대하면 마치 도둑놈처럼 요리조리 눈알을 굴렸고, 기가 찰 정도로 거만했으며 건방졌다.
제임스의 눈에 보인 오마르는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함부로 행동하는 전형적인 하룻강아지였다.
어딘가 모르게 위태위태해서 건드리면 폭발이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을 풍기던 오마르가 지금은 편안해 보여서 도리어 당황스럽다.
언뜻언뜻 사내다움과 강한 이미지도 느껴졌다.
고급스럽고 요란스러운 펜던트도 걸치지 않았고, 가짜와 진짜 보석이 뒤섞인 화려하고 우스꽝스런 의복도 입지 않았다.
마치 수련에 임한다는 것을 강조라도 하듯이 물소 가죽으로 만들어진 활동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팔에 두른 표범 가죽 토시와 악어가죽을 이중으로 덧씌운 무릎 보호대는 오마르가 뒹굴 결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제임스는 놀랍게 변한 오마르를 쳐다보았다.
숱 많은 갈색 머리와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녹색의 눈동자가 있었다.
뭔가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 그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제임스.”
순간 움칠한 제임스가 얼른 대답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오마르가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으로 제임스를 응시했다.
“오늘 오전에 쿠퍼 경이 그러더군. 내가 변했다고. 강인하고 용맹스런 기운을 느꼈다나? 나는 모르겠는데 말이지. 그렇다면 이전의 나는 나약하고 볼품없는 인간이었을까? 빅토리아도 그렇게 말하던데 당사자가 못 느끼니 이상하단 말이야.”
제임스가 잠시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도 확실히 변하신 것 같습니다. 딱 꼬집어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의 공자님보다 좋아 보이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 좋다고 하니 불쾌하지는 않구나. 그렇지만 사람이 갑자기 바뀔 수 있다는 게 제임스는 이상하지 않아?”
“글쎄요. 저는 그런 것을 생각할 위치가 아닙니다. 자격도 없습니다. 오직 각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오마르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무뚝뚝하기는. 재미있자고 하는 말에 그렇게밖에 대답 못해?”
제임스의 대답은 간단했다.
“죄송합니다.”
“역시 돌고래는 돌고래군. 그냥 붙여진 별명이 아니었어.”
이때의 제임스는 뭔가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전과 다르게 위압적이다. 말투에 자신감이 넘치고, 눈동자에도 힘이 가득하다. 변해도 너무 변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제임스의 당혹스런 기분을 무시하며 오마르가 속삭였다.
“이봐, 제임스…….”
“아까부터 듣고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갑자기 오마르가 냉소를 터뜨렸다.
“흐흐. 역시 재미없군. 완전 재미없어.”
제임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는 공자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오마르가 두 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그러더니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응수를 하지 않으니 시시하다, 이 말이야. 그만 하지. 사실 나는 자네가 화를 낸다거나 나에게 따질 줄 알았거든. 그런데 실망이야. 아무리 수하라 하더라도 깡다구는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돌고래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영 아니군.”
‘자, 자네? 수하? 이전에도 건방졌지만 이렇게까지 함부로 부르지는 않았는데.’
제임스는 둔기에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장난은 여기서 포기하지.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으면 언젠가는 알아서 빛을 내겠지만 오늘은 아닌 거 같아. 아쉽겠지만 어쩔 수 없지.”
‘이, 이 자식이 미쳤나? 꼬마 색마 주제에 못하는 말이 없구나. 변하기는 뭐가 변해. 역시 이전 그대로야. 정신 나간 놈이었어.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제 맘대로 성격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내가 착각을 한 것이다.’
제임스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갑자기 오마르가 제임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제임스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의 손을 잡은 오마르는 마치 시체를 발견한 까마귀처럼 잔뜩 쉬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부탁을 하나 하지. 하려던 진짜 중요한 말은 두 가지였지만 하나는 포기하겠어.”
“부탁이라뇨. 그저 명령을 내리시면 됩니다.”
“흐흐흐. 돌고래가 충성스럽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헛소문은 아니었던 것이야.”
오마르가 계속해서 킬킬거렸다.
“훈련이 시작되면 자네는…….”
오마르가 잡은 제임스의 손을 흔들었다.
“이 돌 같은 주먹으로 나를 마음껏 두드려도 좋아. 단 내가 잘못했을 때나 수련을 게을리 할 때. 알겠지?”
“아, 알겠습니다.”
제임스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그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자네가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어.”
“그, 그럴 리가요.”
제임스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뭐, 어쨌든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든 변할 수 있거든. 오늘의 나처럼 말이야.”
제임스는 오마르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마르가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사사로운 유감을 훈련을 빌미로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야. 몰론 나도 각오를 하고 있다. 내 옷차림을 봐. 나는 혹독한 훈련을 원하고 있어.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빈말이 아니다. 지옥 훈련까지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자네가 생각했던 훈련의 강도가 있다면 그것의 강도를 더 높이라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야. 아버지도 원하는 것일 테고. 또한 나를 도와주는 것이기도 하지. 물론 그렇게 한다면 자네도 즐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지?”
약간 멍했지만 제임스는 슬그머니 손을 뺀 다음 머리를 숙였다.
“당연합니다. 수련에 임하게 되면 저는 냉혹한 교관이 될 것입니다. 공작 각하께서 지시하신 내용도 그러했습니다. 오늘부터 공자님은 각오하셔야 할 것입니다.”
“자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니 좋군. 그것은 마음에 들어. 흐흐. 당연히 그래야지. 이거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려는데?”
제임스가 똑바로 허리를 세웠다.
“그럼 지금부터 훈련에 돌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지. 좋도록 해.”
“체력 훈련을 하기 전, 우선 칸트 비전의 마나 수련법부터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법을 수련하시기 때문에 깊이 파고들 수는 없지만 칸트 수련법이 어떤 것인지는 아셔야 하니까요.”
오마르가 손가락으로 옆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음. 최근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오랫동안 손을 놓아선지 칸트 마나 수련법이 가물가물거렸는데 말이야. 좋아. 기초부터 자세하게 해 줄 거지?”
“당연합니다. 기초부터 고급 편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고급?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오마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 아니라 웃고 있었다.
제임스의 의견이 마음에 든다는 뜻일 테다.
“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공자님의 아드님께서 소영주가 되실 터이고, 그분께 공자님이 직접 칸트 마나 수련법을 전수해야 하니까요.”
“자네가 있잖아. 자네가 나보다 더 잘 가르치지 않겠어?”
제임스가 정색을 했다.
“저는 안 됩니다. 사실, 칸트 비전의 마나 수련법은 절대 외인이 수련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칸트 성을 가지신 거룩한 핏줄만 수련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외적으로 배웠고, 또한 저의 지식은 결단코 외인에게 전해질 수 없습니다. 저는 칸트 수련법에 대해 단 한 분, 공자님께만 전수할 수 있을 뿐입니다. 처음 각하께 칸트 수련법을 배울 때 그렇게 맹세를 했습니다.”
‘그것은 공자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공자님이 모자랐기 때문에 제가 행운을 얻게 된 것이죠.’
오마르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게 있었군. 하여튼 자네 말로는 내가 칸트 마나 수련법을 완벽하게 이해를 해야 한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마나 수련은 불가합니다.”
오마르가 손을 회회 내저었다.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자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제임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마법을 위해 영성을 키우면서 동시에 칸트 마나 수련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
‘변했다면 내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고, 변하지 않았다면 말해 줘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서는 기초를 수련하든 본격적인 마나 수련을 하든 상관없다는 거지. 모두 제 복이다.’
제임스가 자리를 권했다.
“저기 돌 의자에 정좌한 채 앉으십시오.”
오마르가 앉자 잠시 호흡을 고르던 제임스가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설명하는 부분을 잘 들으십시오. 다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칸트의 마나 수련법’은 수백 년을 거쳐 내려오면서 완성된 것이라 글자 한 자, 문구 하나의 해석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공자님이 외우고 계신 내용과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임스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구스타프 공작의 진전을 확실하게 이은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글 속에 글 있고, 말속에 뜻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칸트 비전은 단지 외운다고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설명도 그저 외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검으로 붉은빛을 밝히기 위해서는.”
제임스가 오른손 검지를 구부리더니 자신의 귀 윗머리를 가리켰다.
“여기 이곳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느낌을 잡으십시오. 그러지 못하면 제 강론은 쓸데없는 말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마르가 가늘게 웃었다.
“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능력이다. 그러니 걱정일랑 말고 나에게 맡겨 둬.”
‘그런지 안 그런지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
제임스는 속으로 비웃었다.
“자신만만하시군요. 그러나 저의 강론은 제가 십 년을 넘게 수련하며 얻은 것입니다. 구스타프 각하의 깨달음이기도 하지요. 더하여 저의 깨달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함부로 저의 조언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돌고래답지 않게 잔말이 너무 많아. 나는 말 많은 사람을 싫어하거든? 그만 하고 얼른 시작하기나 해.”
기분이 나빴는지 제임스의 안색이 차갑게 변했다.
“중간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멈추도록 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꼭 멈추어야 합니다. 오해는 참극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불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엄연한 협박이었다.
그러나 오마르는 눈빛조차 변하지 않았다.
“자, 이제부터 정통이 왜 정통인지 느껴 보십시오.”
제임스는 천천히,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 칸트 마나 수련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전의 원뜻과 자신의 깨달음, 그리고 구스타프의 해석을 읊조리며 설명했다.
의외였다.
장시간이 흘러 강론이 끝났지만 오마르는 한 번도 제임스의 말을 끊지 않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질문이 없는 것이다.
의아해 하고 있는데 오마르가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해 줄래?”
제임스는 그럼 그렇지 하고 비웃었다.
‘비전은 외운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무조건 외우려고 시도를 하고 있군.’
제임스는 두말하지 않았다.
그는 칸트 수련법의 오의를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