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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12화)
제4장 돌고래 제임스(4)


***

칸트 비전의 마나 수련법은 독특했다.
코가(Koga), 타이치(Taichi), 필라테스(Pilates), 코어(Core).
이렇게 4가지로 되어 있는 독특한 수련 과정과 진노(震怒)의 붉은 검, 일명 진노의 검이라 불리는 검술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칸트 수련법이다.
코가 수행은 명상을 통해서 자연계의 기본을 이루는 질료와 그 질료로 이루어진 마나를 흡수하여 근육이나 뼈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이때 특유의 마나 로드를 이용해서 근육, 뼈, 심지어 내장까지 마나를 흡수하여 소화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바로 필라테스다.
또한 필라테스는 신체의 유연성을 길러 주며, 시각과 감각을 강화하고 몸의 내부를 단련시킨다.
필라테스는 격렬한 근육 수련이 아니라 일종의 스트레칭이다.
근육과 뼈를 강화하고 단련하는 수련은 코어다.
코가를 통해 몸속에 모인 마나를 온몸에 소통시키고, 혈맥을 두드리며 근육과 뼈를 마사지하는 것이다.
코어는 부드럽고 느린 움직임을 통해 몸과 마음의 내면적 수련을 강화시킨다.
하체를 키울 수 있는 수련이기도 해서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도 무리가 없다.
코가와 필라테스, 코어가 정지 상태에서 시작하는 ‘정중동(靜中動)’의 수련이라면 타이치는 몸을 움직이므로 해서 안정된 정신과 근육을 단련하는 ‘동중정(動中靜)’의 수련이다.
타이치는 모두 80개의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순간에 몸속의 마나를 사출하는 마나 사출법이기도 했다.
마나를 모을 때는 코가, 동체 훈련과 감각 훈련, 내장 강화는 필라테스, 근육과 뼈를 강화하는 코어, 발경(發勁)과 비슷한, 일명 마나 사출법으로 불리며 마나를 일순 뱉어 내는 타이치.
이것이 칸트 수련법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진노의 붉은 검.
지극하게 검을 수련하면 검과 자신이 혼연일체가 된다.
여기서 자신의 내가진기를 검에 불어넣어 검술을 시전할 수 있는데, 이때 비로소 검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무림에서는 검신발양(劍身發陽), 혹은 도신발양(刀身發陽)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일류라 부르며 일명 고수(高手)라고 한다.
여기 이계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면 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고 한다.
진노의 붉은 검은 이러한 검신발양의 경지를 넘어 마나 블레이드, 즉 검기까지 만들 수 있다고 들었다.
저 멀리 칸트의 옛 선조는 진노의 붉은 검을 극성으로 터득해 ‘마스터의 증거’라는 오러 블레이드까지 만들었으며 위대한 스승으로 칭송 받았다나 뭐라나.
오러 블레이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림으로 치자면 ‘어떤 경지다’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들은 바로는 일종의 무지개 형태의 검기? 아니면 회오리치는 검강? 뭐 그쯤은 될 성싶다.
하여튼 여기의 마스터라는 존재는 무림으로 치자면 절대고수의 반열 정도 된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나는 제임스가 읊조리는 칸트 마나 수련법을 들으며 감탄하고 말았다. 은연중에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계의 무공은 생각 밖으로 뛰어나다. 그렇다면 무림에서 볼 때 굉장한 수준의 고수들이 여기에도 존재한다는 말인데, 도대체 어느 정도의 고수들이 있을까. 혹시 천마나 혈마에 비견되는 고수들도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절로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거 이러다 내가 당하지나 않을까……?’
곧 머리를 털었다.
‘일단은 강해지고 볼 일이다. 그렇다면 만사 OK. 천마든 혈마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농밀한 기의 분포도 그렇고 만족스러운 몸뚱이도 그렇다.
이런 식의 진경(進境)이라면 조만간 과거의 천마나 혈마를 능가할 자신이 있었다.
옛 기억으로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자. 나중 일은 닥치면 그때 생각하자. 그게 내 적성에 맞다.’
자신감이 나를 위안했고, 비로소 나는 칸트 수련법에 다시 몰입할 수 있었다.
“…….”
효학반(斅學半, 가르치며, 스스로 배우고 깨우침)이라는 말처럼 나의 반복 요청이 10번을 넘어가자 제임스는 자신의 설명에 자신이 취해 버린 것 같았다.
이젠 내가 듣거나 말거나 열심히 자신만의 설명에 빠져 버린 것이다.
눈까지 감은 채 칸트의 비전을 읊조리는 그는 마치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제임스의 독송에 박자를 맞추며 상체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군. 이런 해석을 제임스가 하다니 말이야. 이것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몸뚱이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내용과 같으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다르단 말이지.”
눈앞의 제임스를 봤다.
‘같은 마나 수련법을 두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미묘한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문득 스승의 말이 떠올랐다.

‘천하제일인은 있을 수 있어도 천하제일의 무공은 있을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고 말았다.
‘흠.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제임스가 보여 주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같은 수련법일지라도 수련자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에 따라서 미묘한 차이가 난다. 그러한 차이는 실전에서 간혹 운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 차이가 커진다면 실력이 될 것이고 더 커진다면 깨달음의 길은 완전 다른 방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여간에 칸트 수련법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건곤무상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틈틈이 수련해 놓는다면 여기의 마나에 대해서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제5장 구스타프와 대면하다(1)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이 있다.
내게 있어서 최근의 한 달이 바로 그랬다.
날짜 지나가는 것이, 가속도가 붙어 날아가는 화살 같았다.
그동안 오전에는 쿠퍼 경에게 마법을 배웠고 오후에는 제임스에게 칸트 마나 수련법에 대해 배웠다.
두 사람의 강론은 각기 특색이 있었으며 일장일단이 있었다.
쿠퍼의 강론은 깊이가 있었다. 하지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내용도 배배 꼬아 설명했다.
이른바 마법사의 특징인 오만한 잘난 척이다.
그에 비해 철저한 이론과 학설로 무장하진 않았지만 제임스는 무엇이든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현실감도 있었다.
그동안 나와 지내며 호쾌한 성격의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마음을 열었다.
자연히 제임스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재미있는 루머, 신기한 전설, 젊은이들의 문화에 대해서 제임스에게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나의 과거 무림 영웅담을 애기해 줄 수 없는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잘난 체를 못해 애가 달았다.
제임스가 싹싹하게 굴자 나도 제임스에게 잘 대해 주었다.
까불면 나에게 얻어터지겠지만 현재까지는 사이가 좋았다.
두 사람의 강론은 마법과 검, 영성과 마나 수련, 심장의 마나와 뼈와 근육에 스며든 마나라는 일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야의 이론들이었기에 비교 분석이 가능했다.
나는 두 사람을 통해 마나에 대한 개념을 잡을 수 있었다.
내 무공에 대한 정리도 마칠 수 있었다.
빅토리아의 지나친 간섭과 잔소리는 여전했지만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나날이었다.
하루에 잠은 2∼3시간 정도만 잤다.
좀 모자란 감이 없지 않지만 하루 중 4∼5시간을 운기조식으로 보냈기 때문에 특별히 피곤하다든가, 눈 밑에 그늘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다만 한창 발육하는 시기라 성장이 신경 쓰였다.
지금의 오마르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고, 나는 난쟁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전의 곽비도 기골이 장대하여 위풍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래서 성장 문제는 먹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먹다가는 돼지가 될지도 몰라요.”
“포식자들이 왜 포식자겠어요. 육식을 많이 하면 성격이 포악해진답니다. 그러니 적당하게 채식도 하세요. 골고루 먹어야 몸이 받아 줍니다.”
“일일 삼식. 하루에 세끼를 드셔야 해요. 세상에 맙소사. 공자님은 아침에 저녁까지 드시잖아요. 저녁이면 남들 삼 일 치 식사를 하루에 하시는 것입니다. 너무하지 않아요?”
이 같은 빅토리아의 성화가 있었지만 그녀의 요리 솜씨는 일품이었기에 그 정도 잔소리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연무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나에게 쿠퍼 경이 다가와 말했다.
“공작 각하께서 오셨습니다.”
“아버지가요?”
간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예상치 못했던 방문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만나야 하지만 이렇듯 그 시기가 당겨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서 가 보세요. 제임스 경, 오늘 훈련은 여기서 중지하는 것이 어떻겠소?”
제임스가 두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합니다. 공자님, 오늘은 여기서 이만 마치도록 하지요.”
너무나 놀란 탓에 나의 가슴은 북처럼 두근거렸다.
“그렇게 하지. 그런데 제임스도 같이 갈 거지?”
막 대답하려는 제임스를 쿠퍼가 제지시켰다.
“안 됩니다. 공자님 혼자 가셔야 합니다.”
쿠퍼든 제임스든 만만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쿠퍼보다는 제임스가 쉽다. 그래서 같이 가자고 했는데 젠장맞을.
“대신 제임스 경은 칼로스 경과 버나드 경이 기다리는 별실로 가 보시오. 그들은 오자마자 제임스 경부터 찾더구려.”
제임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요? 그 친구들이 각하를 수행(隨行)했군요.”
“향기 좋은 술을 가져왔다고 하던데 내 것도 좀 남겨 두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임스가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으며 뛸 듯이 연무장을 벗어났다.
“저 친구,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처음 봤어.”
내가 입맛을 다시며 말하자 쿠퍼가 껄껄 웃었다.
“셋은 죽마고우입니다. 충성심도 높아 차후 공자님의 큰 힘이 될 인재죠. 각하를 뵙고 나서 그들과 어울리도록 하십시오. 제가 종자를 시켜 자리를 마련해 두겠습니다. 변하신 공자님을 보면 아주 좋아할 것입니다.”
쿠퍼는 충고도 빼먹지 않았다.
“알겠소.”
“각하께서는 메인 홀(Main Hall)에서 빅토리아 아가씨와 담소를 나누고 계십니다. 그리로 가시면 됩니다.”
빅토리아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더니 맞는 모양이다. 오자마자 아들이 아니라 며느릿감을 먼저 만나다니 말이다.
쿠퍼와 헤어진 다음 천천히 걸어서 다이닝 룸 옆에 위치한 메인 홀로 갔다.
문밖에서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지 몰라도 아주 재미있는 모양이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빅토리아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좀 당황스럽군.’
크게 호흡을 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랬다.
“아버지.”
기척을 내며 말하자 문 안이 즉시 조용해졌다.
제법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 오마르입니다.”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왔음을 알렸다.
“들어오지 뭘 꾸물거리고 있느냐. 어서 들어와.”
질책성 목소리였다.
‘젠장! 가짜 아들 노릇하기 정말 힘드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테이블 옆에 놓인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네모난 턱과 찢어져 날카롭게 보이는 눈, 그리고 두툼한 입술,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는 녹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좀 마르고 나이 들기는 했지만 한눈에 봐도 나하고 판박이다.
나는 즉시 구스타프 칸트를 알아보았다.
빅토리아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구스타프의 옆에 앉아 있었다.
“…….”
구스타프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내 얼굴이 굳어졌다.
보이지 않는 줄이, 끈끈한 동아줄이 내 몸을 꽁꽁 묶는 것 같았다. 그것은 생각보다 부담스러웠다.
왠지 모르게 땀이 흘렀다.
나는 호흡을 조절하며 온몸의 마나(내공)를 흩트리고 있었다. 무림에서 터득한, 나를 숨기는 나만의 방법이다.
과거 악명을 떨치던 대마두들도 이러한 독특한 피신법 앞에서 나의 건곤무상공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도 구스타프는 무언가를 느낀 듯, 묘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알고 보니 상당한 고수구나. 가히 절정의 경지다.’
단신으로 오우거를 때려잡아 오우거 슬레이어로 불렸던 사람답게 그에게서 무시 못할 피어(fear)가 뿌려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약간 숙이고 말았다.
관찰하듯 한참 동안 이리저리 살피던 구스타프가 두 눈으로 발하던 이채를 거두며 손짓했다.
“이리 와서 앉아라.”
구스타프는 자신의 바로 옆 자리를 가리켰다.
“네.”
가까이 다가가자 아까보다 더한 위엄이 느껴졌다.
“보니 살이 좀 빠졌구나. 제법 노력한다고 듣기는 했다. 그러나 너의 입으로 듣고 싶구나.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구스타프는 나를 향한 냉담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철혈공작, 피의 재상이라 불리는 정치가답게 쏟아 내는 말에도 압박감이 밀려왔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됐다.”
구스타프가 손을 흔들며 나의 말을 막았다.
“네 눈동자를 보니 과거의 행실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빅토리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쉽게 용서를 해 주시니 더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흐음. 그런 말도 다 하고…… 한 달의 시간을 그냥 보내지는 않았구나.”
“그러나 고블린 산장에서 받는 교육과 훈련은 계속하고 싶습니다.”
의외였는지 구스타프가 눈을 껌벅거렸다.
“약속된 벌을 끝내야 용서 받았다고 여기겠다는 뜻이냐?”
“그렇습니다. 금족령 기간이 끝나야 저도 홀가분해질 것입니다.”
“흠…….”
구스타프가 침음을 내뱉으며 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