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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13화)
제5장 구스타프와 대면하다(2)
“아기에게 들었다. 요즘 칸트 마나 수련법을 연마한다고?”
순간, 구스타프로부터 무형의 포스가 밀려왔다.
엄청난 기운이 가슴을 때렸고 하마터면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
머리에서 북소리가 들리고 가슴이 답답해 숨 쉬기가 어려웠다. 고통으로 인해 어깨는 학질에 걸린 환자처럼 떨렸다.
앉은 자세에서 비틀거렸지만 끝까지 버텨 냈다.
의자의 양 손잡이를 부러질 듯이 쥔 채 내가 말했다.
“기초적인 체력 훈련으로 삼고 있습니다. 필라테스와 코어 덕분에 몸이 많이 튼튼해졌습니다.”
구스타프의 무거운 표정에 만족이 스쳤다.
“아기가 바른말을 했군. 술 취한 놈처럼 언제나 느물느물하던 녀석이었는데 팔 힘도 제법이고 가슴도 탄탄해졌구나.”
옆에 있던 빅토리아가 웃는 얼굴로 구스타프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공자님은 늦게나마 정신을 차렸습니다. 시스크를 위해서 정말 다행한 일이에요.”
찻잔을 들며 구스타프가 말했다.
“그동안 아기의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내 너의 노고를 잊지 않으마.”
빅토리아가 예쁘게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는 공자님 옆에 그냥 있었을 뿐이에요. 한 일이 없는걸요.”
‘그냥 있었다고? 저런 거짓말쟁이를 봤나. 바퀴 달린 징처럼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해 댔으면서.’
기가 찼지만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구스타프가 나를 보았다.
“칸트 수련법은 네 것이 아니다. 알고는 있되 배울 수 없다는 말이다. 너는 그것을 알고 있겠지?”
빅토리아를 볼 때면 온화했지만 나를 향한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구스타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들었다? 그렇다면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냐?”
“칸트 수련법은 이미 배우고 있습니다. 한 달이 넘었습니다.”
“기초적인 수련은 허락했다. 제임스 경에게도 그렇게 지시했었다. 체력 훈련까지는 용납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뼈와 근육에 마나를 담는 것은 불가하다.”
제임스가 한 말과 같았다.
내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따졌다.
“왜 그렇죠? 저는 마나 수련이 좋습니다.”
“건방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무형의 기세가 다시 한 번 나를 덮쳤다.
‘으음…….’
뭔가가 내 몸을 빠르게 통과한다고 느꼈다. 그것이 다였다.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구스타프가 만들어 낸 마나 포스의 충격은 강했다.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가슴이 빠개질 듯이 아팠다.
뇌진탕이라도 걸렸는지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했다. 천 근 바위가 머리 위를 누르는 듯 척추가 삐걱거렸다.
의자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이 부러질 듯 휘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고 말았다.
살기를 느꼈다면 벌떡 일어서 뒤쪽으로 몸을 날렸을 것이다. 이를 악물며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구스타프가 호통쳤다.
“바보 같은 녀석! 마나 수련과 영성을 동시에 키우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 줄 모른단 말이야? 심장의 마나와 근육과 뼈의 마나는 질적으로 다르단 말이닷!”
빅토리아가 사색이 되어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가 애원의 눈빛으로 나를 보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진다면 나는 칸트 성을 버려야 했다.
고블린 산을 몰래 도망쳐 숨어서 무공을 수련해야 한다.
구스타프는 내공이나 마나 수련을 숨길 수 없는 능력자였다.
언젠가는 들킬 것이고 구스타프의 성격으로 보아 그때는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냐.”
“마나 수련과 마법을 같이 공부하겠습니다. 아직은 기초적인 것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5개월이 지난 후, 아버지께서 저의 두 공부를 비교해 주십시오. 그런 다음 하나를 포기하겠습니다.”
구스타프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마법을 배워야 한다. 너의 마법 친화력은 남다르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마나 수련에 집착하느냐. 이전만 하더라도 마법에 흥미를 느끼고 네 열정을 온통 마법에 바치지 않았느냐. 마법에 대한 연구로 밤을 지새우지 않았느냐. 나는 네가 영성의 수련을 위해 마나 명상에 잠겨 있을 때가 가장 뿌듯했다.”
오랜만에 아버지임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마나 수련은 저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지?”
구스타프가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저는 칸트 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내 것을 소중히 여길 따름입니다. 일단 알아야 할 것이라면 확실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제 아들에게 위대한 칸트 수련법을 직접 전수하고 싶습니다.”
필요한 거짓말에는 거리낄 것이 하등 없다.
“그래서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바로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옛 칸트의 선조처럼 저도 마스터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기회를 주십시오.”
적절한 아부도 빼먹지 않았다.
“호―.”
일순 나를 압박하던 포스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를 대면한 이후 구스타프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나타났다.
“네가 내 핏줄임에는 분명한가 보구나. 실망만 시켜 망나니가 된 줄 알았는데 예전의 강단은 남아 있구나.”
빅토리아의 얼굴에 놀람이 스쳤다.
그녀로서는 구스타프가 칭찬까지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좋다. 5개월 동안 너를 지켜보겠다. 그러나 명심하도록 해라. 칸트 수련법에 깊이 빠져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구스타프는 정치가답게 판단도 빨랐고, 명쾌했다.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하자 선심 쓰듯이 허락해 주는군. 피할 수 없다면 즐기듯 받아들여라, 이 말이렷다? 이것은 주로 내가 쓰던 방법이잖아. 흐흐.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수법에 내가 당하는구나.’
“명심하겠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차후 다른 변명 거리를 찾으면 된다.
아니면 진실된 내 무공의 일면을 보여 주면 될 것이다.
놀라운 성취 앞에 마법을 수련하라는 얘기는 쑥 들어가고 말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들은 진짜 아들이 아니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냉담한 표정으로 대한다.
그러니 주제가 없으면 이렇게 대화가 끊어지는 것이다.
빅토리아는 차를 따르고, 구스타프는 빅토리아가 따른 차를 마실 뿐이었다.
나는 무작정 탁자 위의 한 점만 응시하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그렇게 계속되다가 이윽고 구스타프가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필요한 것이 있느냐?
필요한 것?
안 그래도 생각해 두었던 터라 나는 즉시 입을 열었다.
“포션이 필요합니다.”
구스타프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그의 눈에는 화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고집이 센 놈! 명심하겠다는 말은 빈말이었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거절인가?’
실망하고 말았다.
이계에는 무림과 달리 신기한 것도 많았고 이해하지 못할 현상들도 많았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이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에 못지않게 나를 경악시켰던 것이 바로 포션이다. 비싸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포션만 있으면 자신보다 강한 적과 싸워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지치지 않는 체력, 치명상만 아니라면 어떤 부상도 낫게 만들어 주는 신묘한 효능. 포션의 힘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비록 내공을 높여 준다거나 피부와 뼈를 철골동피로 만들어 주는 공능까지는 없지만 신단, 영약보다 흔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지금까지가 기초적인 수련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고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부상은 피할 수 없다. 극심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포션이 필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과거의 경우에는 스승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신단이나 영약 등으로 나를 보살펴 주었지만 여기 이계에서는 순전히 맨몸으로 그것을 견뎌야 한다.
하다못해 금창약(金瘡藥)이나 찰과상에 바르는 고약이라도 좋았다.
그러나 이곳 고블린 산장에는 그러한 것이 없다시피 했다.
약간의 비상약이 다였다.
애초에 내가 마나 수련을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시켜 금창약 비슷한 것을 구해 보려고 해도 돈이 없어서 포기했다.
그러던 차에 구스타프가 물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말을 잘못 꺼낸 것이 아닐까? 아예 돈을 좀 달라고 할 걸 그랬어.’
후회를 하고 있는데 구스타프가 말했다.
“좋다.”
구스타프가 찻잔을 놓으며 나를 직시했다.
“네 고집은 나를 닮았다. 네가 이미 어떤 마음을 먹었다면 그것을 내가 막을 수는 없겠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마. 돌아가는 즉시 내무총관 알폰소 경에게 말해 두겠다.”
“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또?”
이번에는 구스타프가 호기심을 나타냈다.
“책이 좀 필요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성으로 돌아가면 지천으로 쌓여 있는 것이 책이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있고, 지금 당장 필요한 책은 백 킬로미터 떨어진 시스크의 공작성에 있습니다.”
구스타프가 슬쩍 웃었다.
“무슨 책을 읽으려고 하느냐.”
“마르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경제 등등. 읽을 책이 많습니다. 아, 지리 정보가 쓰인 책도 필요하군요.”
구스타프가 수긍을 표했다.
“그렇지. 네가 내 자리를 물려받아 시스크를 다스리려면 그러한 것은 당연히 공부를 해야지. 한데 쿠퍼 경이 가르쳐 주지 않더냐?”
“오전에 하는 공부만으로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럽니다. 보다 다양한 정보를 얻고 싶습니다.”
잠시 구스타프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허락하마.”
“감사합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구스타프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회회 내저었다.
“이만 되었으니 나가 봐라.”
“네?”
부자 상봉이 이렇게 짧게 끝날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너를 보았으니 된 것이고, 또한 너의 요청을 들어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볼일이 끝났다는 말이다. 너는 나에게 더 할 말이 있느냐?”
실로 매정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은 돈이 필요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그러나 이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문밖으로 나서는 나를 향해 구스타프가 말했다.
“나는 아기와 잠시 얘기를 나누다 갈 것이다. 너는 나를 찾을 필요가 없다. 돌아와서 내가 없다면 갔다고 생각해라.”
“네.”
나는 간단하게 대답을 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젠장맞을 아버지군. 어쩜 아들에게 저리 무정하게 대할 수 있지?’
어쩌면 다행이기도 하다.
사실, 구스타프 칸트가 보이는 이러한 차가운 태도는 과거 한때나마 악마로 살았던 나의 관념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과거의 나였던 곽비도 말보다 주먹을 좋아했으며, 퉁명스러웠고 무뚝뚝했다. 결코 상냥한 사람은 아니었다.
구스타프의 무관심으로 포장된 사랑과 작은 제스처로 나타내는 관심은 지금도 악몽을 꾸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긴, 부모의 사랑을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내가 아닌가. 어쩌다 이계에 떨어졌지만 길러 준 정이나 낳아 준 정 따위를 어찌 바랄까. 그것은 나에게 있어 사치나 마찬가지다.’
새롭게 얻은 삶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아버지는 진짜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은 진짜 아들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만 바꾸면 모든 것이 진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짜로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일까?’
메인 룸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걸으면서 지금의 내 처지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결론을 지었다.
‘나는 나다.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다. 나는 오마르 알 칸트의 이름을 가진 곽비인 것이다. 스승과 아버지는 여러 점에서 비슷한 것 같다. 스승처럼 대하고, 곽비처럼 행동하자.’
일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미지를 풍기는 아버지와 스승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나는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마음이 쓰렸지만 오마르 알 칸트임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현실을 거부한다면 그때부터 세상 살기가 참으로 어려워진다.
능력을 얻기도 전에 강도에게 칼을 맞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구스타프로부터 쫓김을 당하거나 죽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오마르 알 칸트의 이름을 버리지 않는 것이 현실에 타협하는 길이다. 그렇게 해야 구스타프와 나, 두 사람 모두가 편해지는 길이다. 또한 그것이 내 장래를 위해서도 좋다. 미래의 내가 어떻게 할지는 그때 결정하자.’
이제 고작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칸트 성을 버릴까 말까 생각하는 것도 우습다.
나는 제임스와 그 친구들이 있다는 별실로 발길을 옮겼다.
쿠퍼가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면 은근슬쩍 그도 나타날 것이다.
그는 오래된 생강처럼 맵고, 머리 좋은 여우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이니 분위기를 만들며 나를 띄워 줄 것이다.
그것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쿠퍼가 나를 밀어주는 것은 빅토리아의 대부인 그로서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구스타프는 마르틴 왕국에서 인정받는 고수라고 했다. 오늘 보니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암경만으로 내 허리를 부술 뻔했다. 머리카락을 창처럼 곤두서게 만들었다. 지독한 피어를 가진 포스였다. 이, 나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오우거 슬레이어라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어.’
구스타프를 생각하자 자존심이 왕창 찌그러졌다.
천하제일마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
문득, 만약 내가 그를 이긴다면 내 수준과 진경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일차 목표는 구스타프다.’
단단한 마음으로 각오를 했다.
흐흐. 그의 콧대를 꺾어 오늘의 창피를 되돌려 주자.
곽비의 영혼을 가진 오마르는 위기와 두려움을 동지로 여기는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 주자.
억지로 킬킬 웃었지만 뭔가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즉시 천지신명과 나 자신에 대한 맹세가 필요하다고 생각 들었다.
“카악, 퉤.”
가래침을 모아 땅바닥에 탁 뱉었다.
쾅쾅, 세 번 밟고 손을 들어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을 가리켰다.
‘5개월 후, 금족령이 끝나는 시점에 나는 그에게 도전할 것이다. 그는 나의 손에 패하게 될 것이며, 나의 능력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를 꺾어 내가 어떤 인간인지 보여 주자. 감히 나를 시험하려 들다니. 다시는 그따위 생각을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
맹언을 뱉으며 다짐했다.
‘이 맹세를 어기면 나는 난쟁이 똥자루보다 못한 놈이 될 것이다. 자손 대대로 꼽추에 잔망스런 째보만 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