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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14화)
제5장 구스타프와 대면하다(3)
***
아버지 구스타프가 왔다 가고 나서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아졌다.
가장 나아진 점은 풍부해진 물자였다.
책도 마음껏 구할 수 있었고, 무기나 갑주, 그리고 그 비싼 포션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었다.
이제부터 부상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비록 몇 개에 불과했지만 귀한 아티팩트도 얻을 수 있었다.
먹는 것, 입는 것도 넉넉해졌다.
이러니 내 입이 째질 수밖에.
“또 온다고 했으니 한 달만 더 기다리자. 흐흐. 그때는 돈을 좀 달라고 해야겠다.”
선물 중에서 제일 좋은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다.
‘소주 만병만 주소’나 ‘야 이 달은 밝은 달이야’와 같이 갖고만 있어도 신기해서 잠 못 이루고, 끊임없이 킬킬 웃음이 나오는 것이 돈이다.
돈 생각을 하자 입 안에 절로 침이 고였다.
웬만한 개 대여섯 마리 정도는 빠져 죽을 양이었다.
후르륵, 꿀꺽!
목구멍으로 침을 넘기며 작전을 세웠다.
“다음 달에는 던전 탐색이나 몬스터 사냥을 빌미로 삼아 몰래 고블린 산을 벗어나 보아야겠다. 가까운 마을에 가서, 흐흐…….”
뭘 하지? 설마 그냥 사람 구경을 하겠다는 말?
따위는 절대 아니다.
오랜만에, 그러니까 실로 오랜만에 계집 속살을 좀 보고 싶은 것이다.
더불어 술도 곁들여지면 더 흥취가 날 것이다.
“으흐흐흣.”
그 생각을 하자 절로 엉큼한 웃음이 나왔다.
여성을 가치 있게 대하지 않으면 여성으로부터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 있다.
과거의 내가 딱 그랬다.
그렇다고 내가 여성을 욕보인다든가, 두드려 팼다거나 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절대 그런 적이 없다.
나는 오히려 그런 자식들을 혐오한다.
그런 개잡종들은 나에게 걸리면 바로 죽음이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여자 앞에만 서면 좀 그렇다.
아무리 혓바닥에 기름칠을 해도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것이다.
마음이 없으면 편한데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기껏해야 ‘야’ 혹은 ‘너’ 이런 식으로 말한다.
한마디로 연애에 빵점인 것이다.
이러니 연애질이 잘될 리가 없다.
이후, 악마가 되고 나서부터는 여자는 생각도 못해 봤다.
여자가 여자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산을 내려가면 무려 8년 만에 계집 속살을 보게 된다, 이 말씀이야. 흐흐.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냐.”
빅토리아가 곁에 있지만 그녀는 애다.
열여섯 살에 불과한 아이.
세 달 있으면 열일곱이 되겠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솜털이 뽀송뽀송한 어린아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애를 어떻게 여자로 보겠는가.
사실, 빅토리아가 가까이 다가오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진다. 그것은 맞다. 그러나 음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손잡을 생각도 못해 봤다. 안 해 봤다.
“어서 어서 한 달이 지나가라. 흐흐. 이렇게 다음 달이 기다려지기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나는 나의 이 즐거움을 감추기 위해서 무진 애를 써야 했다.
***
내가 군도를 들고 오자 제임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검이 아니라 칼입니까?”
들고 있는 군도(軍刀)를 손목으로 빙빙 돌렸다.
제법 무거워 팔이 찌르르 울렸다.
“왜? 칼을 쓰면 안 되냐? 진노의 붉은 검을 꼭 검으로 펼쳐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손에 쥐고 있는 칼의 길이는 1미터 30센티미터 정도 되었다. 날의 폭은 13센티미터 정도? 제법 크고 상당히 두껍다.
손에 쥔 장병기(長兵器)는 강철의 날에 나무 자루가 붙어 있었다. 군데군데 녹 찌꺼기도 보였다.
제임스와 본격적인 실전 수업을 위해서 연무장 옆에 위치한 무기고에서 꺼내 온 것이다.
무기고에 있는 것은 대부분 검이었다.
칼을 찾다가 아무렇게나 눈에 띈 것을 들고 나온 것이다.
허름한 칼이었지만 뛰어난 장인이 연장 탓하는 것을 봤나?
“그래도…….”
“걱정하지 마. 조만간 진노의 붉은 검이 진노의 붉은 칼로 바뀔 테니까.”
내 고집을 익히 아는 제임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내가 먼저 덤비지.”
말을 마치자마자 검을 휘둘렀다. 강력한 기세로 날아간 칼이 제임스를 덮쳤다. 움칠 놀란 제임스가 황급히 검을 들어 칼을 막았다.
쾅!
검과 칼이 부딪치며 큰 소리가 났다. 순간 손아귀가 얼얼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법인데?’
내 칼에서 큼지막한 이빨이 하나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제임스의 검은 멀쩡했다.
“그런 식으로 기습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제임스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따졌다.
“전장에서 비겁이 어디 있어! 먼저 베면 그만이지.”
“그, 그런 억지가……. 공자님과 저는 지금 비무 중입니다. 실전과 비슷하게 훈련 중이란 말입니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요.”
내가 그렇게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제임스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이 씨부렁거리지 말고 덤벼라, 아가야. 내가 처음부터 전쟁처럼 싸우겠다고 했잖아. 인정사정이 없어야 마땅한 것이다. 방심한 너만 실수한 것이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놀리자 제임스가 씩씩거렸다.
“정말 그러기죠? 그러면 저도 안 봐줍니다!”
“누가 봐 달라고 했어? 나는 지옥 훈련을 원한단 말이닷!”
“알겠습니다. 각오하십쇼!”
제임스가 날카롭게 검을 찔러 왔다.
쐐애액.
몸을 비틀자 공기를 찢는 파공성과 함께 재킷의 앞섶이 잘려 나갔다.
“제법이지만 이 정도로 나를 어쩌려고? 어림도 없지.”
비틀어 회전하는 몸에 가속도를 붙였다. 한 바퀴가 채 돌기도 전에 제임스의 등이 보였다. 전력을 다해 칼을 휘둘러 등을 공격했다.
하지만 제임스의 실력은 나의 공격 정도는 충분히 막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그가 검을 등 뒤로 돌려 내 칼을 막았다.
쾅!
또 하나의 이빨이 떨어져 나갔고, 먼저 공격한 내가 오히려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제임스는 나를 쫓지 않았다. 바로 뒤쫓아 나를 공격했더라면 나는 부상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호흡을 조절하며 제임스를 향해 정면으로 섰다.
“봐준다? 그러면 네가 손해일 텐데?”
‘바보 자식, 나는 아직 내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있거든. 너는 내가 칸트 수련법밖에 모른다고 여기지? 그것이 너의 큰 약점이다. 방심하고 있는 순간, 허를 찔리는 것이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임스가 껄껄 웃었다.
“염려하지 말고 마음껏 공격해 보세요. 이제는 공자님의 암수에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자만심이 너를 무릎 꿇게 할 것이다.”
내가 조소를 날렸다.
“무릎을 꿇어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임스는 걱정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그 칼이 얼마까지 갈지 궁금하군요. 쯔쯧! 2번의 격돌이 끝났을 뿐인데 벌써 톱처럼 변했지 않았습니까. 지금이라도 다른 칼로 바꾸심이 어떨지요.”
녹슨 내 칼을 보는 제임스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쳤다.
녹슬고 이빨이 나간 칼이지만 내가 선택한 칼이다.
칼이든 사람이든 먼저 나를 버리지 않으면 내가 먼저 그쪽을 버리는 일은 없다. 결단코.
칼을 빙빙 돌렸다.
“염려하지 마. 이 칼이 부러지기 전에 너는 내 앞에서 울상을 지을 테니까.”
“좋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공격을 할 테니 어디 한번 막아 보십시오.”
명검까지는 아니어도 제임스의 검은 놀랄 정도의 예기를 가지고 있었다. 두꺼운 나무도 잘라 버릴 정도였고 얇은 철판 정도는 손쉽게 구멍을 뚫는다.
스팟!
제임스의 검이 날카로운 창처럼 내 얼굴로 뻗어 왔다.
우드득!
내 몸에서 콩 볶는 소리가 나며 어깨의 근육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바로 칸트 수련법의 타이치다.
팔과 손목, 손아귀는 근육과 뼈에서 일순간에 튀어나온 마나로 인해 장작처럼 단단해졌다. 동시에 팔에서 손을 타고 전해진 내공으로 인해 묻어 있던 칼의 녹이 떨어져 나가며 방금 만든 칼처럼 변했다.
약간 옆으로 몸을 피하며 칼로 제임스의 검을 쳐 냈다.
뺘걍!
칼에서 떨어져 나간 녹 부스러기가 둘 사이에서 눈처럼 흩날렸다. 주춤거리던 우리 두 사람이 맹수처럼 다시 붙었다.
뺘갸걍!
두 번째의 충돌로 인해 팔이 활처럼 휘어졌고 온몸은 물결처럼 출렁였다.
나는 즉시 뒤쪽으로 몸을 튕겼다.
칼을 통해 몸으로 파고든 제임스의 마나를 흐트러뜨리기 위해서다.
상대방으로부터 전해진 힘을 뒤쪽으로 몸을 날리는데 이용해서, 그 힘을 소모시켜 버리는 일명 이화접목의 묘기.
이것은 연이은 적의 연속 공격을 피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넉 냥의 힘으로 천근의 힘을 제어한다는 사량발천근의 묘용을 뛰어넘는 수법이 이화접목이다.
내 몸이 완전했다면 뒤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선 채 마나 포스를 땅속으로 흘려 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곧이어 역공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무리다. 몸이 쇠처럼 단단하고 근육이 천잠사처럼 질겨야만 가능한 절정 수법이 이화접목이기 때문이다.
“음.”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다 다시 칼을 세웠다.
내공을 일으켜 팔과 칼에 주입한 탓인지 이번에는 칼의 이빨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의 마나 포스는 막강하여 하마터면 칼을 놓칠 뻔했다.
“아.”
제임스의 얼굴에 놀람이 스쳤다.
탄성을 내지르며 그가 나를 칭찬했다.
“고작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타이치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대단합니다, 공자님.”
제임스가 말을 하는 사이 우리들의 격돌은 다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