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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16화)
제6장 홉 고블린을 죽이다(1)


수련한 지 거의 네 달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너와의 대련은 이제 시시해졌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무슨 말씀이신지…….”
제임스가 눈을 껌벅거렸다.
“좀 더 격렬한 훈련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까딱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정도의 위기감. 그런 것을 느껴 보고 싶어.”
제임스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고블린을 잡아 보시렵니까?”
“고블린?”
“좀 무리는 있겠지만 제가 옆에 있으면 됩니다.”
“고블린은 가장 약한 몬스터잖아. 더 센 녀석은 없어?”
“약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고블린은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두 손으로 네 손을 상대하는 것만큼 쉽지가 않지요. 그런데 꼭 그렇게 하셔야 하겠습니까?”
‘이, 둔한 녀석은 아직 나에 대해서 모르는군. 눈치가 없어.’
그간의 수련은 아주 혹독했다. 그러나 나는 마땅찮았다.
매일 제임스와 대련을 하는 것도 지겨웠다. 빤히 실력을 아는 터라 어제의 대련과 오늘의 박투가 고만고만한 것이다.
또한 엄청나게 불어난 식욕과 늘어난 건곤무상공은 내 몸을 못살게 굴었다. 벌레가 기어 다니듯 근질근질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대련 상대가 필요했다.
“선혈이 낭자할 정도의 실전만큼 좋은 훈련은 없다지 아마? 나는 그동안 내가 수련한 것을 환경과 여건에 적용시키고 싶어.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훈련도 하고 싶고.”
“그러시다면 고블린이 제격이기는 합니다만.”
“됐어. 결정했어. 지금 당장 고블린을 상대로 삼아 새롭게 훈련을 하도록 하자. 어서 안내해.”
내가 그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줄 몰랐는지 제임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저와의 대련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면 지금부터라도 사정을 봐주지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필요 없어. 못 믿기도 하지만 네 실력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에게는 더 강한 상대가 필요하단 말이야.”
제임스의 얼굴이 사과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저를 얕잡아 보시는군요.”
팔뚝에 나 있는 멍을 쓰다듬으며 내가 말했다.
“모욕이라고 생각하지 마. 네 분수를 지적해 주는 것이니까. 물론 너의 검신발양, 빛의 검은 훌륭해. 하지만 최근에는 나를 꺾은 적이 한 번도 없잖아?”
제임스가 무안해 했다.
“너도 나와의 대련 덕분에 이전과 비할 수 없이 노련해졌잖아? 더 강해졌어. 그러나 그것 가지곤 부족해. 이것은 네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 훈련이기도 하단 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니 따르겠습니다.”
제임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나를 고블린의 숲으로 안내했다.
“여기서부터 고블린의 숲입니다. 보통 덤불숲의 외곽인 이곳에는 고블린들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근 병사들이 4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고블린 사냥을 하기 때문이죠.”
제법 높은 언덕을 두 개 넘었을까?
우리는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고블린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운이 좋습니다. 마침 한 마리가 저기 숲에 숨어 있군요.”
제임스가 눈앞의 덤불숲을 가리켰다.
“아마도 무리에서 쫓겨난 떠돌이 녀석일 것입니다. 아니면 철없는 어린 녀석이거나. 보통 숲에서 먹이를 찾지 못한 고블린은 죽음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오곤 합니다.”
우리들이 기척을 내자 숲이 흔들렸다.
녀석도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 쫓긴 녀석이라면 불쌍하잖아.”
외톨이. 버림받은 존재.
얼핏 무림맹을 떠날 때의 과거 기억이 떠올라 그렇게 말했다. 제임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불쌍하다니요. 저놈들은 몬스터입니다. 보는 족족 죽여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인근 영지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영지민은 무슨……. 얼마 살지도 않던데 뭘.’
두 번째 구스타프가 찾아 왔을 때 나는 돈 얘기를 꺼냈다.
구스타프는 선심 쓰듯이 허락하며 백 골드를 주고 갔다.
화폐의 단위에 대해 잘 몰랐지만 누런 금덩어리였다.
1골드는 거의 1냥(37.5g)을 넘어서는 무게다. 여기나 무림이나 금이 귀하기는 마찬가지, 엄청난 돈이 아닐 수 없었다. 웬만한 기사의 봉급이 9∼10골드 정도 된다고 하니 거의 1년 연봉을 얻은 셈이다.
희희낙락한 나는 기회를 틈타 고블린 산장을 벗어났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없는 산과 평원, 초원뿐이었다. 강이 흐르고 제법 비옥해 보이는 토지를 보았지만 그곳에는 불과 몇의 가구만 살고 있었다. 실망을 하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좀 큰 촌락이라고 해 봐야 20여 가구가 다였다.
이상한 나머지 한 촌락에서 만난 농민에게 물어보았다.
“이보시오. 여긴 제법 토질도 좋고, 물도 풍부한데 왜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오?”
농민이 수상쩍다는 듯이 아래위로 나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다 몬스터 때문입지요.”
“몬스터?”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자연히 음식 냄새, 특히 사람 냄새가 풍기지 않겠습니까. 일 년에 한 차례씩 몬스터의 대이동이 벌어집니다. 몬스터들은 지나가다가 마을이 나타나면 쓸어버립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잡아먹어 버립니다. 밀이든, 보리든, 사람이든, 가축이든 가리지 않지요.”
이상했다.
“나는 이곳까지 오면서 몬스터의 냄새 나는 궁둥이도 못 봤는데?”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몬스터 이동 철이 아니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남부 출신이 아니신 모양입니다. 이곳 실정도 잘 모르시고, 말투도 이상하군요.”
농민의 말을 무시하며 다시 물었다.
“흠. 그 몹쓸 놈의 몬스터란 어떤 놈들이오?”
내 행동과 말투가 위압적이었는지 농민이 쩔쩔매듯이 대답했다.
“오크 말입지요.”
“아…… 오크? 그런데 그놈들이 대이동을 한다고?”
“네. 오크들은 봄이 되면 동과 서의 드래곤 산맥을 가로질러 이동을 합니다. 그놈들은 지독합니다. 브룬의 10대 재앙 중 하나인 메뚜기 때의 습격 못지않습니다. 마르틴 남부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남부 지역에 이주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사람들이 많이 없지요. 1년 중 사 분지 삼밖에 못 사는데 어떻게 살겠습니까.”
“당신들은 오크들이 두렵지 않소?”
농부가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땅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여기는 이주만 하면 공짜로 땅을 줍니다. 다 돈 때문이지요.”
“그러면 오크 무리들이 대이동을 할 때면 어떻게 하오?”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지요. 봄철이 되면 진흙으로 온몸을 발라 어서 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답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지요.”
농부의 얼굴에는 무기력함과 자포자기의 심정이 나타나 있었다.
“남부 도시 욘이 있잖소. 잠시 그곳으로 피신하지 그러오.”
농부가 정색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봄만 되면 욘으로 남부의 농민들이 물밀 듯 밀려갑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같이 배경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욘에 발도 디딜 수 없습니다. 무작정 가다간 병사들에게 맞아 죽기 십상입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참나, 이곳에도 무림처럼 배경이 중요하군. 하긴 사람 사는 곳에 혈연, 지연, 학연 등의 편 가르기가 없을 수야 있을까?’
농부들의 처량한 삶을 보고 나자 거시기 맛을 보려는 생각은 싹 달아나고 말았다.
나는 그 농부에게 밥 한 끼를 얻어먹고 1골드를 주었다.
놀라는 그 농부를 뒤로하고 얼른 자리를 떴다.
그 다음부턴 고블린 산장의 인근 마을로 가는 것이 다였다.
몰래 술을 마시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기에 나름대로의 작전은 다음으로 미루었던 것이다.
“생명이 있는 뭔가를 죽인다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제임스가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 보이며 덤불숲을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몬스터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 인간들이 죽습니다. 저런 놈들은 씨도 남김없이 다 죽여야 합니다.”
크르르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소리를 내자 고블린이 참지 못했는가 보다.
나지막하게 울리는 울음소리와 동시에 수풀을 헤치고 걸어 나오는 놈은 온통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연민도 가치 있는 존재만 받을 수 있지. 인간 입장에서 보면 저 몬스터는 하등 필요 없는 생명체나 마찬가지다. 개보다 못하지.”
“맞습니다. 개는 사람을 따르기나 하지요. 주인을 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블린과 같은 몬스터는 음식을 줘도 주인을 몰라봅니다. 움직이는 것을 그저 먹이로만 보는 것이죠.”
생존 경쟁에 밀린 것은 차차 쇠퇴, 멸망해 가는 것이 자연 선택의 현상이다. 적자생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르르륵.
고블린은 못 보던 인간이 갑자기 덤벼들자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해 했다. 그러나 이내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향해 덤볐다.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녀석의 대가리 속에는, 주변은 자신들의 땅이고 그들 종이 지배자라는 생각이 들어 있는 탓이다.
“호? 요놈 봐라? 겁도 없이 사냥하러 온 나에게 오히려 덤벼들어?”
차잇.
고블린 앞으로 달려가며 공을 차듯 한쪽 발을 내질렀다. 인간을 상대한 경험이 없던 고블린은 의외의 공격에 대처하지 못하고 허벅지를 찍혀 버렸다.
크헤에에에엑.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고블린이 자빠졌다.
데굴데굴 구르는 그놈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빡.
옆구리를 한 대 걷어차인 그놈은 괴성을 지르며 허리를 꺾었다.
“이거 재미없는데? 생각보다 시시하군.”
거품을 물고 있는 놈의 머리통에 칼로 구멍을 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고블린은 보통의 성인보다 못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무기는 팔뚝만 한 몽둥이가 다였다.
그때부터 나는 제대로 된 실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쉬우면서도 스릴 있는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몇 놈씩 유인해 싸웠다.
주먹으로만 잡아 보기도 했고 다리만 쓰며 고블린을 쓰러뜨리기도 했다.
10대 1의 싸움도 있었다.
생각보다 버거웠지만 몇 번 경험을 쌓고 나자 그것도 별 어렵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10일 동안 실전 훈련을 했다.
홉 고블린을 제외하고는 다 상대해 본 것이다.
내가 고블린 사냥을 시작하자 이놈들도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때부터 녀석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기 시작했다.
나를 발견하면 처음처럼 무작정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 괴성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떼 공격을 하는 것이다.
포위를 당해 위기를 겪을 순간이면 제임스가 도와주기도 했다.
실전이 거듭될수록 칸트의 비전 수련법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팔을 부러뜨릴 수 있는지, 어떤 정도의 마나 포스를 집중해야 다리를 걸어 넘어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테스트했다.
일순간에 칼을 뻗어 고블린의 목에 구멍을 낸다던가, 칼을 망치처럼 휘둘러 고블린의 허리나 머리통을 부수는 요령도 터득했다.
야수적 감각, 맹수 같은 움직임, 매의 시력도 키웠다.
머리는 알고 있지만 몸이 몰랐던 것을 이런 실전으로 해결해나갔다.
자신이 생기자 더 깊숙이 들어갔다.
말로만 듣고 그림으로만 보았던 홉 고블린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