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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17화)
제6장 홉 고블린을 죽이다(2)


그러나 고블린 마을이 가까워지자 상황은 만만찮게 전개되었다.
수십 마리에 달하는 고블린들의 포위 공격을 하기도 했고, 신기하게도 어떤 고블린은 멀리 숨어서 활을 쏘기도 했다.
사정거리가 고작 20∼3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위력도 별로였지만 난투를 벌이다 눈먼 화살에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좀 황당한 마음이 들었기에 제임스에게 물었다.
“제임스, 저기 나무 위에서 활을 쏘는 녀석 고블린 맞아? 고블린이 활도 쏘는 거야?”
“맞습니다. 고블린 전사들 중에서 몇 놈은 특별히 활에 재능을 보이기도 한답니다. 그런 놈들은 저렇게 나무 위로 올라가 활을 쏘곤 하지요. 제가 공자님께 미늘 조끼와 레더 아머(Leather Armor)를 입으시라고 한 이유는 그것 때문입니다.”
제임스와 나는 무두질이 잘된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이 갑옷은 제법 가벼웠고, 또한 상당히 질겨서 웬만한 무기는 막을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갑옷 속에 입은 미늘 조끼는 화살 같은 종류의 관통 무기를 방어하기에 제격이었다.
두 방어구 모두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값도 제법 비싸다고 했다.
마나 수련이 의외의 성과를 보이자 구스타프가 고블린 산장을 세 번째 방문했을 때 주고 간 것이다.
이는 구스타프가 나를 조금씩 인정해 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고블린 사냥이 시작되자 제임스는 아머와 미늘 조끼 착용을 권했다.
그때 나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조끼와 갑옷이 가볍기도 했거니와 고블린 사냥에서 의외의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아오는 화살을 보자 포션만 믿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전에 보다 도움이 되는 아티팩트를 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부터였다.
“활을 쏘는 놈은 많지 않으니 일단 저 숲을 통과하자. 적어도 고블린 마을을 보고 가야지 않겠어? 눈에 띄는 놈들은 보는 족족 잡아 죽이자. 뭐 도망치는 놈은 어쩔 수 없겠지만.”
걱정이 되었는지 제임스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은근슬쩍 만류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공자님은 무엇이든지 너무 성급하게 얻으려 하십니다. 지금까지 이루신 것만으로 보더라도 공자님은 보통 사람의 몇 배에 가까운 실력 향상을 보이시고 계십니다. 무리하시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지도 모릅니다. 십여 마리를 잡기도 했으니 오늘은 이쯤 하고 그냥 돌아가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제임스의 말은 일면 맞다.
그러나 나는 보통의 사람들과 견주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 잘 때 나도 자고, 남들이 쉴 때 나도 쉰다면 뒤늦게 시작하는 내가 어찌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나를 모르는구나. 나는 욕심이 많다. 지금의 진경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제임스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럼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다시 오시죠. 공자님의 칼도 바꾸고 포션도 더 많이 준비해서 오는 것입니다. 방패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드워프의 방패(Dwarven Shield)라고 작아서 팔뚝이 찰 수 있는 방패가 있습니다. 방어력도 높아 웬만한 무기 정도는 바로 튕겨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다. 이왕 왔으니 끝까지 한번 해 보겠다.”
내 고집에 결국 제임스가 고개를 꺾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홉 고블린을 잡겠다.”
칼로 덤불숲 건너편을 가리켰다.
“우리는 덤불숲 안으로 제법 들어왔다. 그런고로 저쪽 숲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고블린 마을이 있을 것이다. 나는 거기서 홉 고블린을 잡아야겠다. 한 마을에는 반드시 한 마리의 홉 고블린이 있다고 했지?”
“두 마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더 좋지. 그놈들을 몽땅 잡고 고블린 마을을 없애 버리면 나중에 내 병사들이 수월할 것이다.”
“네……엣? 마을을 없앤다고요? 고작 우리 두 명으로 말입니까?”
“놀라기는. 나의 신풍술에는 네가 모르는 게 있다. 그래서 병신이 되거나, 잡혀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위험에 처하면 그때 물러서겠다. 겁이 나면 내 뒤만 따라오도록 해.”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홉 고블린들은 보통 고약한 수법을 하나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당히 까다롭다고요. 그놈을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만.”
제임스의 적극적인 만류를 뿌리치고 덤불숲 안쪽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무시한 채 먼저 걸어가자 제임스는 굳은 표정으로 나의 뒤를 따라왔다.
이곳이 고블린 산, 고블린 숲이라 불리게 된 것은 고블린이 많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고블린 마을은 찾기 쉬웠다.
덤불숲을 지나며 십여 마리의 고블린을 베었고 몇 개의 계곡과 언덕을 지나 계속 전진하자 저 멀리 수십 개의 원시 움막이 지어져 있는 마을이 보였다.
“저기구나.”
마을로 들어서자 나의 등장을 알아챈 고블린들이 무리 지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60여 마리쯤 되었다.
고블린들은 살기 어린 눈깔을 번들거리며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덩치 큰 고블린도 있었는데 그놈들은 선두에 서서 치켜든 몽둥이를 회회 돌리며 시위(示威)했다. 그러나 이미 나라는 존재를 겪어 봐서인지 쉽게 덤벼들지는 않았다.
좌우의 우거진 덤불숲에는 몇 마리인지 모를 고블린이 꽥꽥 괴성을 질러 댔다. 목소리만 들어도 겁에 질린 것이 암컷 고블린과 새끼들인 듯싶었다.
내가 나타나자 아예 그쪽으로 피한 모양이었다.
만만했지만 우글거리는 녀석들을 보자 왠지 위축이 되었다.
조금 더 다가가서 마을 입구에 섰다.
선두에 서 있던 붉은 눈깔의 주홍색 고블린이 나무로 만든 창으로 나를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후이후라! 후이라. 칼만 키하라!”
무슨 말을 씨부렁거리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다만 돌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 연방 코를 씰룩거리는 것이 더 이상 접근을 하면 죽이겠다는 뜻일 성싶다.
“칼만 키히라크. 칼만.”
대장으로 보이는 홉 고블린이 계속해서 창으로 위협을 했다.
“이놈들!”
놈들을 향해 칼을 겨누며 고함을 버럭 지르자 화들짝 놀란 고블린들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번쩍 치켜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꽤에엑 꽥 하는 괴상한 소리도 질렀다.
고블린들이 함성을 질러 대자 내 뒤에 있던 제임스는 검을 곧추세운 채 내 곁으로 바싹 다가왔다.
“저놈이 홉 고블린이지?”
손에든 칼을 빙빙 돌리다 선두에 있는 주홍색 털의 고블린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한 놈이군. 좋았어. 저놈은 내가 맡는다. 너는 딴 놈들을 상대해. 알겠지?”
제임스가 주의를 주었다.
“조심하십시오. 눈알이 붉은 보석처럼 빤짝이는 것으로 보아 주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술? 그건 또 뭐야?”
“일종의 마법 같은 것입니다. 저놈의 배를 보십시오. 잔뜩 부풀어 있지 않습니까? 주술을 펼치기 직전에는 홉 고블린의 배가 저렇게 부풀어 오르더군요. 우리가 덤비면 기회를 봐서 주술을 사용할 것입니다.”
제임스는 홉 고블린과 싸워 본 경험을 말하고 있었다.
“어떤 주술이지?”
“홉 고블린마다 다릅니다. 어떤 고블린은 파이어 볼같이 불덩어리를 뱉어 내더군요.”
“주둥이로?”
“아니, 아니. 주둥이가 아니고 들고 있는 지팡이로 말입니다.”
그러면 뱉어 낸 것이 아니라 뿌려 댄 것이잖아.
말하는 본새 하고는. 겁을 집어 먹었나?
“흠. 저놈은 창을 들고 있으니 파이어 볼은 아니겠군. 그런데 홉 고블린은 전부 저렇게 빨간 눈깔을 가지고 있는 거야?”
“홉 고블린이라고 해도 아무 놈이나 주술을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은 홉 고블린이나 재능이 있는 놈만 저렇죠. 그런 놈들의 눈알이 저렇듯 빨갛습니다.”
말하는 제임스의 얼굴은 어두웠다.
“제가 보기에 저놈은 주술의 능력이 제법 높아 보입니다. 선혈처럼 붉은 눈알은 이제껏 처음 봅니다.”
“네 말은 우리가 잘못 왔다는 말이냐?”
“최소한 안전하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이 그래? 지금이라도 돌아가자 이 말인가?”
제임스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조심하시라는 말입니다.”
제임스가 선두의 홉 고블린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만약 저 홉 고블린이 페러라이즈(Paralyze, 마비)나 슬립(Sleep, 잠) 주술을 펼칠 경우에는 바로 후퇴하셔야 합니다. 육체적인 데미지는 크지 않지만 일순 방어력을 떨어뜨리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적어도 도망가자는 소리는 아니군.”
제임스가 씩 웃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여기까지 왔으니 싸워 보기는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다만 저런 몬스터에게 죽으면 개죽음보다 못하니까 그게 싫은 것입니다. 저는 웃음거리가 되는 죽음은 피하고 싶습니다.”
“흐흐. 죽더라도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말이냐?”
“그렇기도 하지만 공자님 곁에서 끝까지 지내려면 허무하게 죽어서는 안 되니까요. 최소한 칼로스나 버나드 녀석들보다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제가 죽고 난 뒤, 그 녀석들이 공자님 곁에서 시시덕거리는 것을 상상하니 배가 아픕니다.”
말을 마친 제임스가 껄껄 웃었다.
‘이 녀석, 나와 같이 지내더니 성격이 좀 변했어. 욕심도 많아졌고 성깔도 생긴 것 같아. 하긴, 능력 있는 남자가 무르면 사람 좋다는, 순하다는 평가는 받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리더가 될 수 없지. 리더는 구스타프처럼 아끼는 측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벨 수 있어야 하거든. 욕심이 있어야 발전도 가능하지. 그렇게 본다면 내가 사람 하나를 버려 놓은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만든 것인가.’
무림에 읍참마속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구스타프 칸트는 냉담했으며, 측근을 벨 때도 일말의 후회도 않는 잔혹했고 무서운 야심가라 했다.
독선적이고 일방적이며 영원한 공포의 대상, 마르틴 왕국의 2인자, 철혈공작, 피의 재상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정치가라고 들었다.
이러한 소문은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술집(술집 같지도 않은 술집이었지만)이나, 농부들로부터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근 영지민들은 하나같이 구스타프를 능력 있는 영주, 위대한 정치가라 치켜세웠다.
그를 존경했고 따랐으며 좋아했다.
구스타프 덕분에 이렇게라도 산다고 말했다.
사실 윗대가리가 독재를 하던, 냉정해서 사람을 함부로 베건, 철혈정치를 펼치건 하층민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그저 배부르고 편안하게 살게만 만들어 주면 된다. 영지민 중에서도 하루하루가 살기 힘든 천민들은 배부르고 등짝 따시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훌륭한 영주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구스타프는 영지민들의 인심을 얻고 있으며 동시에 시스크와 인근 영지를 철권으로 다스리는 힘 있고 능력 있는 영주였다.
내가 제임스와 얘기하는 동안 홉 고블린은 자신들의 언어로 고블린 전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있었다.
“우르카! 푸르카! 우르키리 우르카!”
홉 고블린이 연방 뭐라고 씨부렁거리자 고블린 전사들이 몽둥이를 흔들며 호응했다. 큰 소리로 괴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크르르르…….
크허엉. 크아아앙!
위축되었던 고블린의 기세가 대번에 살아났고 분위기는 일촉즉발의 험악한 상태가 되었다.
“저놈들, 뭐 하는 것이지?”
흉포하게 으르렁거리는 녀석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마도 우리가 물러가지 않을 것임을 눈치 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들끼리 뭔가를 준비하는 것이겠죠.”
“지능이 있다는 말이군.”
“저들이 비록 몬스터긴 하지만 무리를 지어 살고, 또한 협동해서 사냥을 합니다. 들고 있는 무기와 방어구를 보십시오. 천박하지만 지능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것들이지요.”
홉 고블린의 앞가슴에 달린 나무 방패를 보며 피식 웃었다.
“도구를 사용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거의 원시 수준이야.”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기 전에 공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럴까?”
먼저 공격할 필요도 없었다.
고블린들이 내 쪽으로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몽둥이를 세운 채 고양이 걸음을 하고 있었다.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 중에는 나에게 쫓겨 도망친 고블린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조심스러운 것일 테지.
이미 기세에서 내가 이기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무조건 선방이 최선이다.
“이놈들!”
내가 고함을 치며 돌진하자 고블린들도 괴성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제일 앞에 덤비는 녀석을 향해 사정없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몸뚱이가 두 쪽이 났다.
쓰러지는 고블린의 몸을 밟고, 지렛대 삼아 위쪽으로 몸을 날렸다.
두 녀석을 뛰어넘고 적진의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아까 있던 자리의 홉 고블린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노리는 것을 느끼고 피했나?’
나는 홉 고블린을 먼저 베려 했다. 그런데 녀석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나의 미약한 살기를 느끼고 몸을 숨길 정도라면 제법이다.
“칼만. 카히라. 칼만!”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고블린들이 무차별하게 덤벼들었다. 덤벼드는 고블린들의 눈깔은 미친놈처럼 번들거렸다. 자신들의 목숨을 도외시하며 무조건 덤비는 것이다.
일단 주변의 고블린부터 처리해야 했다.
나에 의해 바뀐 진노의 붉은 칼로 고블린들을 베기 시작했다.
빠갸갸갸갹!
크에에에엑!
칼 빛이 섬광처럼 빛나고 주위의 고블린들이 썩은 나무둥치처럼 쓰러졌다.
순식간에 십여 마리가 쓰러지자 내 주위에 둥그런 원이 만들어졌다.
주위를 둘러보며 홉 고블린을 찾았다.
덤불숲 가까이에 솟아 있는 커다란 나무에 주홍색이 어른거렸다. 그쪽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놈을 죽이기 위해 다가가려 했지만 고블린들의 반항도 만만찮았다.
어느새 다가온 고블린이 커다란 몽둥이를 휘둘렀다.
소름 끼치는 파공성과 함께 진한 살기가 느껴졌다.
이제까지 상대하지 못했던 수준의 고블린 전사다.
“제법인데?”
날아오는 몽둥이를 향해 망치처럼 칼을 휘둘렀다. 번뜩이는 도광과 함께 몽둥이가 잘려 나갔다. 경악한 표정의 고블린이 잘려 나간 몽둥이를 들고 꽥 하는 소리를 질렀다.
녀석을 향해 다시 칼을 뻗었다.
고블린의 목이 잘려 나가고 피가 뿌려졌다.
그 순간, 무서운 기세의 몽둥이가 다시 날아왔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 앞에서 날아오는 몽둥이를 베었다. 빡 하는 소리가 나며 몽둥이가 잘려 나갔다.
손아귀와 팔이 얼얼했다. 놈들의 몽둥이 수법이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다.
뒤쪽에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