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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18화)
제6장 홉 고블린을 죽이다(3)


[용맹의 발자국]으로 즉시 몸을 틀며 팔을 들었다. 겨드랑이 사이로 몽둥이가 빠져나갔고 치켜든 팔꿈치로 녀석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꽈직!
뒤에서 덤비던 고블린의 대가리가 수박처럼 깨어졌다.
케에에엑!
나는 칸트 마나 수련법을 배우며,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일단 보법이 문제였다.
보법은 모든 무공의 시작이다.
운보(運步)는 무학제일보(武學第一步)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준 있는 보법을 익혀야 한다.
그런데 이계의 무공에는 영활한 몸놀림을 보장해 주는 보법이 드물었다. 칸트 수련법뿐만 아니라 다른 마나 수련법도 책을 통해 연구해 보았지만 무림의 보법과 같은 수련법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기껏 발견한 것은 이름만 있고 내용은 없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른 무가의 비전에 해당되었다.
그렇다고 구스타프나 쿠퍼, 제임스 앞에서 이계의 무술과는 너무나도 체계가 다른 암향표나 표홀신법 등을 선보이며 ‘이거 어느 책에서 구한 것인데 말이지. 제법 쓸 만하지 않아?’ 이렇게 공갈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답답한 놈이 우물 판다고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다.
청송창궁구식과 심의삼재권, 벽조신도, 추혼마도 등 절정에 해당되는 무공에서 보법만 뽑아 보았다. 이것을 암향표의 기초 구결과 섞어 특유의 보법을 만들었다.
만들고 보니 꽤 쓸 만했다.
일단 내가 수련하기에 편했던 것이다.
그래서 만드는 김에 여러 가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용맹의 발자국]을 비롯해서 심의삼재권과 무적철권에서 비롯된 [기절의 주먹], 유연도인법을 기초로 해서 만든 [활력의 수결], 추혼마도와 벽조신도에서 비롯된 [공포와 생명의 칼], [슬레이어 공격], [파괴의 바바리안]…… 등 체술과 권술, 유연체조, 도술, 연환 합격술이다.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무공에 비해서 수련하기도 쉽고 빨리 배울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위력은 좀 떨어진다.
그러나 여러 가지 마나 수련서를 참고했고, 또한 그런 책들에서 비롯된 비슷한 이름을 달았기에 아버지 구스타프와 쿠퍼, 제임스 등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속일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무공을 마나 수련법으로 바꾼, 일종의 눈속임용 마나 수련법을 만든 것에는 이것 말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칸트의 비전 수법은 막강한 위력이 장점이지만 한순간 내뱉는 마나로 인해 허탈감이 컸다.
즉, 위력은 좋은데 지구력이 약하다는 말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마나 수련법을 만들 필요는 있었던 것이다.
퍽!
케에엑!
제임스도 신들린 투사처럼 고블린들을 베고 있었다.
나와의 실전과 치열한 고블린 사냥으로 인해 녀석의 실력도 일취월장하고 있는 것이다.
쉬잉…….
앞으로 달려드는 놈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플레임 콘토스(화염의 붉은 창)이라 이름 붙여진 나의 칼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고블린의 목을 꿰뚫었다.
내가 만든 [공포와 생명의 칼]이 발휘된 것이다.
팔을 비틀어 칼을 뽑자 피를 머금은 칼이 타원을 그렸다. 피의 궤적은 즉시 방향을 틀었고 옆으로 덤벼드는 놈의 주둥이를 강타했다.
크웨엑…….
턱이 잘려진 고블린은 마치 절구에 찍힌 것처럼 머리 아래쪽이 통째로 뜯겨져 나갔다.
십여 마리가 순식간에 피를 뿌리자 고블린 무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주춤거릴 때 [용맹의 발자국]으로 다리에 힘을 주며 땅바닥을 박찼다.
“이놈들.”
두 마리의 고블린이 휘두르는 칼에 부딪혀 폭발하듯이 머리가 터져 버렸다.
꾸어어어억…… 꾸에엑…… 꾸엑.
숨어 있던 홉 고블린이 괴성을 질렀다.
그러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던 고블린들이 나를 향해 덮쳤다.
“좋다. 그래야 내가 신나지.”
아무렇게나 이름 붙였지만 나는 플레임 콘토스가 좋았다.
쥐고 있는 칼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름이 마음에 드는 것이다.
이 칼이 부서지면 또 다른 칼이 내 손에 쥐어질 것이고 그 칼은 부서질 때까지 플레임 콘토스라는 이름을 달게 될 것이다.
플레임 콘토스를 풍차처럼 돌리며 고블린들의 뱃가죽을 갈랐다.
섬광과 함께 피가 튀었다. 칼이 지나간 자리를 비집고 고블린들의 창자와 장기들이 콸콸 흘러내리며 땅바닥을 더럽혔다.
한 놈씩 꺼꾸러뜨릴 때마다 불타는 투지가 솟아올랐다. 비록 몬스터이긴 했지만 이들도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러나 붉은 피가 아닌 녹색의 피는 뭔가를 죽인다는 죄책감을 덜하게 만들어 주었다.
꾸어어어억…….
어느새 접근했는지 가까이 다가온 홉 고블린이 나를 향해 괴성을 질렀다.
놈의 뱃가죽은 아까의 2배 정도는 될 정도로 부풀어 있었는데 마치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았다.
꾸어어어억……! 꾸어어억!
홉 고블린이 뭔가를 토하는 듯 괴성을 지르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불룩한 배가 일순간 바람 빠진 풍선처럼 꺼지기 시작했다.
“어어……?”
갑자기 밟은 땅이 끈적끈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내 다리를 붙잡는 것 같았다.
들고 있는 칼도 기름을 바른 것처럼 미끈거렸다.
“고, 공자님! 홉 고블린이 주술을 펼쳤습니다. 녀, 녀석을 죽여야 합니다. 안 그러면 주술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제임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공자님, 그 자리서 움직이지 마시고 덤비는 고블린만 처리하십시오.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나 제임스는 이미 십여 마리의 고블린 전사들에 포위당한 상태였다. 내 쪽으로 다가오려면 제법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제길. 이 따위 주술로 나를 어쩔 수 있다고 생각했어? 고작 대가리를 맞대고 짠 작전이 이거였나? 네 부하들을 몽땅 죽여 놓고 짠 작전이 이거냐?”
칼을 절삭기처럼 휘두르며 접근하는 고블린을 잘랐다.
서걱! 하며 한 놈의 몸뚱이가 두 쪽이 났다.
그때였다.
“푸리키. 우칸타. 타무르티다.”
홉 고블린이 소리치자 덤벼들던 고블린이 움칠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타무르티다! 타무르티다!”
홉 고블린이 다시 괴성을 지르자 고블린들이 썰물처럼 후퇴하기 시작했다.
쫓아가기 위해서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넝쿨이 내 발을 칭칭 감고 있는 듯 힘겹기 그지없었다.
상체도 약간씩 저릿저릿해져 왔다.
“요것들이.”
쾅쾅 소리가 날 정도로 발을 움직여 다가갔지만 내 움직임은 물속에서 걷는 것처럼 느렸다. 다가가면 재빨리 피하는 터라 고블린들을 쫓을 수는 없었다.
“아르하칸 히프리. 누마차라키 파탄더로. 쿠마.”
주술을 건 고블린이 상당히 놀라는 표정으로 뭐라 씨부렁거렸다.
내 발을 보고 내 전신을 창으로 가리키며 소처럼 눈깔을 굴렸다.
“뭐야. 제 놈 주술에 내가 움직여서 그러나? 몬스터 새끼, 내가 꽁꽁 묶여 있어야 좋겠어? 도대체 뭐하자는 수작이야.”
화가 나서 홉 고블린을 노려보는데 엄청난 살기가 감지되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살기였다. 원한에 불타는 저주 같기도 했고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을 한순간 폭발하려는 분노 같기도 했다.
그쪽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나는 내가 과녁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음…….”
반들거리는 주홍색 털로 뒤덮인 고블린이 나를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호흡조차 흩트리지 않은 채 나를 겨누고 있는 것이 내가 허점을 보이면 즉시 화살을 쏘아낼 기세다.
놈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이글거렸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화살촉을 보자 등골을 타고 오돌토돌한 소름이 번졌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화살촉에는 하얀 기운이 뭉쳐져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몇 가닥의 빛은 마치 불똥처럼 톡톡 튀기도 했다.
문득 그 빛을 보다가 어떤 것이 떠올랐다.
“비, 빛이 아니었군. 저건 오러야.”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화살촉에는 무시 못할 마나 포스가 집중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잘 만들어진 화살촉이고, 그냥 빛에 반사되어 저렇게 빛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빛무리가 튀는 것을 보자 아버지 구스타프가 보여 준 진노의 붉은 검이 떠오르는 것이다.
구스타프가 진노의 검을 시전하기 직전, 아마 나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을 성싶은 그 검에서는 저런 식의 빛이 튀었다.
구스타프 쪽이 좀 더 크고, 좀 더 진한 빛 덩어리였다는 것만 다를 뿐.
“진짜 속셈이 있었군.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어. 하나는 제 동료들을 죽게 하여 나를 방심하게 만들었고, 하나는 나에게 주술이 걸릴 때까지 숨어서 기다렸던 것이야.”
고블린 따위가 오러를 만들 줄이야…….
함정까지 만든 홉 고블린의 능력은 상상 밖이었다.
억지로 웃으며 칼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팔뚝으로 근육이 꿈틀거렸고 파란 핏줄이 지렁이처럼 튀어나왔다.
이를 악물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활을 겨누는 홉 고블린의 눈동자는 빨갛다 못해 핏덩이 같았다. 그 눈동자를 마주 대하자 처음으로 몸이 떨렸다.
죽음.
이계에서 처음으로 느낀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조금 떨어져 있던 홉 고블린은 다시 숨을 들이켜고 있었다. 녀석의 배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으로 보아 조만간 아까의 주술을 다시 펼칠 듯싶다.
‘내가 움직이는 즉시 저 화살은 날아올 것이다.’
홉 고블린의 빨간 눈동자에 어린 살기를 대하자 레더 아머와 가슴의 미늘 조끼를 믿다가는 꼬치가 될 것 같았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건곤무상공을 끌어올렸다.
‘어디를 향해 날아오는지만 알면 된다. 그러면 충분히 막을 수 있지.’
건곤무상공이 전신으로 퍼지자 몸이 좀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발바닥을 약간 움직여 보았다.
끈적거리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아까보다는 나았다.
‘주술이라는 것이 상당히 무섭구나.’
무공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다?
무림에도 배교나 기환문의 술법이나 환술이 있기는 하지만 고블린의 주술처럼 몸을 제압하여 움직이기 힘들게 하는 것은 들어 보지 못했다. 사실 그 당시야 상당한 고수였으니, 환술이나 술법자들은 내 앞에서 사술을 펼치기도 전에 시체가 되었다.
그랬기에 나에게 있어 술법은 같잖은 것이었다.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당하고 만 것이다.
‘발을 묶고 있는 넝쿨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대주천이 끝나자 내 몸은 가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응축된 건곤무상공이 단전에서 빠져나와 전신 세맥을 주행하기 때문이다.
“어?”
하단전은 육체를 담당하고 상단전은 조화로운 능력을 만들며 중단전은 하단전과 상단전을 잇는 통로로 두 능력을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이는 건곤무상공상의 구결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것이 딱 들어맞았다.
건곤무상공을 이용해 응축된 내가진기를 중단전을 거쳐 상단전으로 보내자, 비록 경지가 낮아 그 힘은 미약했으나 온몸을 옭아매던 주술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활을 든 홉 고블린의 마나 포스가 어디를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심장. 녀석은 내 심장을 노리고 있다.’
응축된 건곤무상공을 중단전으로 보내 심장을 보호하자 톡톡 빛이 튀는 화살촉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피어가 조금씩 사라졌다.
그 순간 뭔가를 느꼈는지 활을 든 홉 고블린의 팔이 새파랗게 변했다.
녀석의 팔이 물결치고 갈고리 같은 손가락이 시위를 튕겼다.
피유웅!
피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다.
오러로 만든 하얀 선이 홉 고블린과 나 사이에 이어졌다.
날아오는 오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플레임 콘토스에서 허연 빛이 번쩍였다.
따앙!
칼이 부서지며 각도를 빗겨난 화살이 내 어깨를 뚫었다.
“크윽!”
어깨가 부서질 듯이 아팠다. 그 통증은 오히려 나의 투지를 불같이 타오르게 했다.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화살촉이 뽑혀 나오며 뭉텅 어깨살이 떨어져 나갔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상체를 적셨다.
그러나 상처나 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용맹의 발자국]으로 땅을 박차 몸을 훌쩍 띄워 올렸다. 목표는 활을 든 홉 고블린. 녀석은 주술을 사용하는 홉 고블린보다 더 위험했다.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내가 죽게 될 것이다.
파악!
발바닥 밑에서 흙 부스러기가 튀어 오르며 땅을 박찬 내 몸이 빛살처럼 날았다. 급박하게 다가간 다음 활을 다시 장전하는 홉 고블린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경악한 녀석이 활을 들어 칼을 막았다.
퍽!
활이 부서지며 홉 고블린의 한쪽 어깨살이 뭉텅 떨어져 나갔다. 홉 고블린이 괴성 같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홉 고블린의 상체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나보다 더 깊은 상처였다.
‘아깝다. 칼만 부러지지 않았다면 일격에 죽일 수 있었는데.’
속으로 탄식을 토했다.
배를 들썩이던 홉 고블린이 창을 들어 나를 공격했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주술을 포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