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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22화)
제8장 카미르의 왕(1)
카미르의 왕은 보통의 미노타우로스보다 반 배 이상 컸다.
양 이마에 솟아 있는 아치 형 뿔은 왕관처럼 위엄이 있었고, 기둥처럼 굵은 다리와 주둥이를 덮고 있는 철사처럼 빳빳한 수염은 온몸의 무수한 흉터와 더불어 놈이 이 지역의 왕임을 증명하듯 권위가 흘러넘쳤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손톱은 마치 팔치온(Falchion, 대형 곡도) 같아서 한 주먹에 바위도 으스러뜨릴 것만 같았다.
파괴력이나 흉포함이 얼마나 지독했던지 트롤도 도망가고 오우거도 피해 간다는 몬스터가 바로 미노타우로스다.
지금, 내가 그런 몬스터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20미터의 거리.
노을이 만드는 어둠과 나무의 그림자에 의지한 채 나는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암향표에 근거하고 이계의 은신술이 가미된 나의 피신법은 독특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효과도 있었다. 내가 몸을 숨기고자 한다면 어떤 몬스터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미노타우로스는 역시 몬스터의 왕이라 불릴 만했다.
뭔가를 느낀 듯, 미노타우로스가 샛노란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사방을 노려봤다. 흔적을 좇으려는 듯 코를 킁킁거렸다.
나의 등장을, 나의 살기를 놈이 감지한 것이다.
크와아아아앙……!
돌연 카미르의 왕이 대가리를 치켜들며 무서운 포효를 내질렀다.
왕의 존재감이 전율처럼 번졌다.
주위의 몬스터와 맹수들이 왕의 피어에 대가리를 처박고 낑낑거렸다. 먹이를 찾아 날갯짓하던 박쥐들이 포효에 담긴 강력한 포스에 놀라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카미르의 왕이 화를 내자 그 어떤 몬스터도 움직이지 못했다. 모두 그 자리에서 얼어 버린 채 왕의 진노가 달래지기만 기다렸다.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숨조차 죽였다.
일순 사위가 적막에 잠기듯 고요해졌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크르르르…….
적막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노타우로스가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렸다.
기분이 풀렸다는 뜻이다.
개선장군처럼 사방을 둘러보던 녀석이 대가리를 처박으며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뿌드드득! 뿌드득!
카미르의 검은 표범은 미노타우로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의 왕이었다. 과거의 왕이 현재의 왕으로 인해 등이 아작 났다.
칼 같은 손톱으로 인해 무쇠 같은 척추가 수수깡처럼 으스러지고 탄탄하고 질긴 근육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표범의 시체를 쭉쭉 찢은 미노타우로스는 내장부터 먼저 먹었다. 내장이 몽땅 사라지자 입맛을 쩍쩍 다시던 미노타우로스가 찢겨진 살덩어리를 입 안에 넣고 마구 씹었다. 빠드득거리며 깨물었다.
뼈까지 씹어 먹는 것이다.
적막 속에 뼈 부서지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소름을 오싹 끼치게 만드는 섬뜩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빠갸갸갹! 빠갹! 빠갸갹!
주둥이를 움직일 때마다 시뻘건 피가 미노타우로스의 턱으로 흘러내리며 땅바닥을 더럽혔다.
흙이 붉게 물들었다.
목이 막히자 표범의 피를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다.
살을 뜯고 뼈를 씹자 넓적다리 뼈와 엉덩이 뼈같이 큰 뼈만 남았다. 붙어 있는 살이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던 미노타우로스가 아쉬운 표정으로 뼈를 던져 버렸다.
황소만 한 표범을 몽땅 먹어 치우는 데는 불과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검은 표범을 해치운 미노타우로스는 그래도 양에 차지 않았는지 배틀 엑스(Battle Axe, 전투 도끼)를 들어 장작처럼 내리찍었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표범의 머리통이 갈라졌다.
쪼개진 머리를 든 미노타우로스가 야자열매를 들이켜듯 뇌수를 마셨다. 쩝쩝거리며 뱃속으로 쓸어 담았다. 검은 혓바닥을 넣어 마지막 뇌수까지 핥아 먹은 미노타우로스가 해골을 던지며 트림을 했다.
끄으으억!
이제야 만족한 듯 미노타우로스가 어슬렁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배가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오만함은 끝이 없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나무가 있으면 발길로 차서 부숴 버렸다.
솟아난 바위가 심통스럽게 여겨졌던지 배틀 엑스로 박살을 내 버렸다.
무엇이든 막히는 것은 거침없이 해치워 버리겠다는 포악한 태도였다.
크와아아아앙……!
엄청난 포효성으로 다시 한 번 숲을 얼어붙게 만든 미노타우로스가 사방을 굽어보더니 배틀 엑스를 어깨에 척 걸친 후 거만하게 숲을 헤쳤다.
괴물이 사라지자 무수히 많은 뼈 조각과 붉은 피로 더렵혀진 자국, 마치 파쇄기를 통과한 부산물처럼 조각난 찌꺼기들만 흩어져 있었다.
왕이 남긴, 왕다운 식사의 흔적이었다.
리저드 맨(Lizard Man) 5마리와 고블린 5마리, 기타 맹수 8마리의 몸통을 으깬 다음, 맛있는 부위만 골라 먹은 미노타우로스의 마지막 식사는 피 냄새를 맡고 다가온 굶주린 검은 표범이었다.
보름 동안 굶주린 탓에 미치지만 않았더라도 과거의 왕은 얼마간 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누가 저런 미노타우로스를 보고 위축되지 않을 수 있을까.
‘으…….’
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한이 일어나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심장이 북처럼 박동했다.
돋아난 소름까지 바르르 떨렸다.
나의 감각은 상대가 나보다 강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저놈의 뿔을 잘라 가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놈을 죽여야 한다.’
치밀어 오르는 공포를 건곤무상공으로 다스리며 사라지는 괴물의 등을 노려보았다. 거대한 배틀 엑스가 괴물의 대가리 옆에서 끄덕거리고 있었다.
위협적인 뿔, 무시무시해 보이는 도끼는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였다.
위풍당당한 놈의 무기는 어떤 적이라도 단칼에 베어 버릴 수 있는 절대고수의 강기 같았다.
문득 제임스가 한 말이 생각났다.
‘카미르 계곡의 미노타우로스는 상급 익스퍼트가 아니라면 맞서 싸울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수십의 병사와 기사들에게 포위되더라도 떨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분하죠. 사냥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라도, 투창에 맞아 제 살이 갈라져 뚝뚝 피를 흘리더라도, 카미르의 미노타우로스는 싸우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무조건 공격하죠. 살거나, 혹은 죽기 위해서……. 어떻습니까? 실로 대단한 몬스터가 아닙니까?’
제임스의 설레발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의 왕은 어찌나 흉포한지 각하께서도 반쯤 포기한 상태입니다. 카미르 계곡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놈을 놔두게 만든 이유겠지만 과거 놈을 사냥하러 떠났던 기사들과 병사들의 희생이 컸던 탓도 있습니다.’
‘몇 명이 갔는데?’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그렇게 물었었다.
‘기사 15명과 병사 60명이 그놈의 뿔을 얻기 위해 카미르 계곡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그 정도 병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애꿎은 병사들만 희생당하고 말았습니다.’
‘모두 죽었단 말이냐?’
‘그것은 아닙니다만, 몰살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기사들 열이 죽었습니다. 나머지는 중상, 병사들 중에서도 성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공자님이 그놈을 잡는다면 단번에 공자님의 이름이 마르틴 전역에 퍼질 것입니다.’
나에게 맞아 멍이 든 이마를 문지르며 말하는 제임스의 말은 카미르 계곡으로 들어가 보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아버지 구스타프가 오우거를 잡았다고 하던데, 미노타우로스를 보니 과연 상급 익스퍼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난다. 그 정도 되니까 왕국의 기사들이 그렇게 구스타프를 흠모하고 맹신적으로 따르겠지.’
되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구스타프 앞에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던지며 껄껄 웃어 주어야 했다.
‘그날! 나는 알았다. 구스타프는 자신의 본모습을 나에게 보여 준 것이다.’
아들마저 죽여 버리겠다는 야박한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냉혹한 인간이 구스타프였다.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가져오라는 말은, 능력이 없으면서 아비에게 반항한다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약점이 있었다.
바로 가문의 장래다. 가문의 이득이 그의 약점이다.
가문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저지를 사람이 그였다. 칸트 가문에 이득이 되는 것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는 인간이 구스타프다.
그런 구스타프는 앞으로 나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설령 내가 건방진 행동을 하더라도, 고집을 피운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에게 반(反)한다 하더라도 그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고?
흐흐. 내가 그에게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가져다줄 것이니까.
‘그동안 너무 소심했다. 이제 그를 알았으니 그의 입맛에 맞게 행동하자. 그에게는 내 실력을 드러내도 된다. 보다 당당하게 행동하자. 그것이 그가 원하는 행동이다. 내가 카미르 계곡으로 온 것도 그 때문이다. 앞으로 그는 나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내가 아니라 나의 능력을 좋아할 것이지만 그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나의 이익과 합치되는 점도 있었다.
구스타프에 대해서 알게 되자 그를 대하기가 편해질 것 같았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점도 있기에 정도 생길 것 같았다.
‘미노타우로스는 강하다. 나보다 훨씬 더. 그러나……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지.’
전신에 건곤무상공을 끌어올렸다.
응축된 건곤무상공이 사지백해로 퍼져 나갔다.
야수적 감각이 반응하며 솜털이 창처럼 솟아올랐다.
‘나는 이런 식의 지독하고 위험한 수련을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위기는 지독한 공포와 육체적 고통이라는 결과를 부를 것이지만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차후 수련하게 될 무영마공의 토대가 될 것이다. 해서, 저놈과는 정면으로 붙는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결심을 하자 거리낄 게 없었다.
폭발적인 속도로 전진했다. 숲을 가로지르며 달려들었다.
나의 돌진과 기세에 왕이 만든 적막이 깨어졌다.
[용맹의 발자국]으로 인해 땅이 진동했다.
놀란 미노타우로스가 몸을 돌렸다.
처음에는 의아스럽다는 듯 가만히 서서 나를 지켜봤다. 그러다가 점점 놈의 눈깔이 커졌다.
침입자.
자신의 영역을 침범해서 기분 더럽게 만든 존재가 나라는 것을 곧 알아챈 것이다.
크르르르…….
대가리를 좌우로 흔들며 포효하는 미노타우로스의 눈깔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왕에게 달려들다니, 설마 미친 인간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얕잡아 보고 있다? 오히려 정면 돌파가 나에게 기회를 주는군.’
꾸르르르릉……!
내 손에 쥐어진 플레임 콘토스에서 무시무시한 전하가 방전했다. 급격한 전하차로 인해 불꽃이 퍽퍽 튀었다. 그것은 건곤무상공이 만들어 낸 검기, 마나 블레이드였다.
전하를 방전하는 마나 블레이드는 바로 일도경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비록 4성의 경지에 머물러 번개까지는 아니다 할지라도 칼에서 만들어진 전하는 미친 말처럼 날뛰고 있었으며 낙타 젖같이 뽀얀 빛을 띠고 있었다.
‘베이면, 반드시 잘려 나간다. 무쇠보다 단단한 미노타우로스라 할지라도 벨 수만 있다면 놈의 몸은 내 검기에 절단되고 뼈는 잘려 나갈 것이다. 칼에 걸려들면…… 내가 이긴다.’
스파크를 만들며 환한 빛을 내던 플레임 콘토스가 낙뢰처럼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떨어졌다.
번쩍!
꽈르릉!
멀뚱멀뚱하게 서서 나를 보던 미노타우로스가 순식간에 몸을 움츠렸다. 1미터 길이의 하얀 띠가 날아오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