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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무적 오마르 1권(23화)
제8장 카미르의 왕(2)


꽈광!
미노타우로스는 역시 왕이라 불릴 만했다. 즉각적인 반응으로 도끼를 들어 내 칼을 막아 낸 것이다.
배틀 엑스와 플레임 콘토스가 격돌하자 칼과 도끼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후에 보여 준 미노타우로스의 반응도 놀라울 정도였다.
칼을 막아 낸 미노타우로스가 몸을 공처럼 굴려 거리를 벌렸다.
어마어마한 덩치가 땅바닥을 구르자 나무가 부러지고 흙 부스러기가 튀었다. 두어 바퀴를 구른 미노타우로스가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섰다.
주둥이로 피를 토해 내고 있는 녀석의 눈깔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놈이 쩍 벌어져 철철 피를 흘리는 자신의 어깨를 봤다.
노릿한 눈동자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시커먼 털이 빳빳하게 곤두서 철망처럼 얽혔다. 새끼처럼 배배 꼬인 털들이 단단한 껍질처럼 몸을 감싸는 것이다. 몸 주위로 한 겹 테를 두른 듯 보였다.
실로 희한한 방어막이었다.
방어 태세를 갖춘 미노타우로스가 어깨를 움츠리며 대가리를 치켜들더니 어마어마한 포효성을 내질렀다.
크와아아아앙!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포효성이었다. 마치 폭풍이 부는 것 같았다. 지축이 뒤흔들리고 숲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피어가 덮쳐 왔다.
건곤무상공으로 상단전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포효만 듣고도 오금이 저려 그만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땅을 박찼다. 몸을 날리며 연이어 일도경혼을 펼쳤다.
꽈르릉! 꽈꽝!
두 번의 일도경혼이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날아갔다.
건곤무상공 다음으로 내가 심혈을 기울여 연공한 것이 바로 일도경혼이다. 일도경혼은 일격필살, 일보일살의 살인적 도법이다.
내공의 소모가 컸지만 그만큼 위력은 뛰어나 과거 나의 일도경혼에 맞고 살아난 이가 없었다.
만약 이전의 나였다면 일도에 미노타우로스를 두 조각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공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연이어 일도경혼을 펼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플레임 콘토스로부터 터져 나온 무지막지한 전하가 허공에서 방전하며 작디작은 번개를 만들어 냈다. 퍽퍽 튀는 스파크는 어두워져 가는 숲을 일순 밝게 만들었다.
미노타우로스가 빠르게 도끼를 들었다. 젖같이 하얀 띠와 도끼가 허공중에서 충돌했다.
꽝! 꽝!
두 차례의 우렛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오며 미노타우로스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어찌나 강한 전하였던지 미노타우로스의 배틀 엑스에서도 스파크가 튀며 불똥을 만들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가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소처럼 부릅뜬 눈깔에는 경계와 두려움이 스쳤다.
만만히 보았다가 상당한 내상을 입었을 터이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승기를 얻었으니 계속해서 밀어붙여야 했다.
꽝! 꽈꽝! 꽈꽈광!
플레임 콘토스에서 무서운 회오리가 일어나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연속으로 날아갔다.
칼과 도끼에서 폭발이 터질 때마다 미노타우로스의 어깨가 움칠거렸다. 이젠 미노타우로스의 상체에서도 작은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일도경혼이 만든 강력한 전하가 놈의 몸을 감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노타우로스의 털이 오그라들며 노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했다.
‘제길.’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일곱 번. 무려 일곱 번의 일도경혼을 펼쳤다. 그런데도 유리한 상황만 만들 뿐 놈을 쓰러뜨리지 못한 것이다.
팔이 떨리고 옆구리가 결렸다. 단전이 송곳으로 후벼 파는 듯 아팠다. 급격한 내공의 손실이 육체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눈을 들어 미노타우로스를 봤다.
놈의 검은 얼굴은 자신의 눈깔마냥 샛노랗게 변해 있었다. 철사처럼 빳빳하던 털도 오그라들어 있었고 들고 있는 배틀 엑스는 강풍에 흔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하지만 놈은 미노타우로스다. 내가 한 호흡을 들이켜면 놈의 내상은 한 시간이 경과한 만큼의 재생 효과를 볼 것이다.
이를 악물고 땅을 박찼다. 내 몸은 즉시 매미 날개처럼 진동했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바람같이 돌연하다는 표홀신보가 놈의 눈깔을 현혹시킨 것이다.
우르릉! 꽈꽝!
다시금 십여 차례의 격돌이 있은 후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미노타우로스의 상체는 녹색의 물감을 부어 놓은 듯 철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일도경혼이 녀석의 방어막을 뚫고 피 구멍을 수십 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놈은 비틀거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았다.
‘지독한 놈이군. 과연 괴물의 왕이다. 나는…… 미노타우로스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건곤무상공을 끌어 모았다.
온몸을 쥐어짜듯 진기를 모아 칼에 불어넣었다.
선천진기마저 녹아든 칼이 칠흑 속의 횃불처럼 빛났다.
‘몸속이 불에 타는 듯하다. 전력을 다해 연속으로 일도경혼을 펼친 탓에 내상을 입고 말았다.’
약간의 모험은 감수하고 공격을 했다. 그러나 미노타우로스가 연이어 필친 일도경혼을 이렇듯 쉽게 막아 낼 줄은 몰랐다.
‘마지막 한 번. 이번이 실패하면 곤란해지는 쪽은 나다.’
식은땀이 등허리로 흘렀다.
미노타우로스는 상당히 겁먹은 표정으로 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아마 도망칠 수만 있다면 도망을 치려는 것 같았다.
‘허점!’
미노타우로스가 고개를 돌릴 때였다. 놈을 향해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꽈르릉!
플레임 콘토스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엄청난 전하가 칼에서 터져 나오며 칼이 비명을 질렀다.
꽈드드득!
급격한 전하를 견디지 못한 칼이 결국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나갔다. 부서진 칼에서 폭죽 같은 불꽃이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비산했다.
깜짝 놀란 미노타우로스가 풍차처럼 도끼를 휘두르며 불꽃과 젖빛의 전하를 막았다.
퍼펑! 퍼퍼펑!
“케에에에…….”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미노타우로스가 훌쩍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십여 개의 발자국을 찍고 난 다음 미노타우로스가 괴로운 표정으로 가슴과 어깨, 팔을 문질렀다.
작은 번개가 자신의 몸을 통과했으니, 아무리 쇠처럼 단단한 미노타우로스라 해도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크르르르……. 크르르!
미노타우로스가 연방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질렀다. 일도경혼이 발한 전하로 인해 놈의 가슴 부위는 시커멓게 타 있었다.
부서진 칼 조각 5개는 미노타우로스의 전신에 골고루 박혀 있었으며 상처에서 녹색의 피가 분수처럼 치솟고 있었다.
“음…….”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나의 공격은 이미 멈춰진 상태.
더 이상 공격할 수가 없었다.
내부는 가마솥처럼 끓고 있었고 끌어올린 건곤무상공은 부서진 유리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조각난 플레임 콘토스는 삼 분의 일만 남았다.
산장에 있는 무기 중 가장 강하고 제련이 잘된 놈으로 가져왔는데도 이렇게 된 것이다. 몇 차례 전력을 다한 일도경혼의 실험을 믿었던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미노타우로스가 그렇듯 강한 도끼를 들고 있을 줄 미처 몰랐던 것도 나의 과실이었다.
빳빳한 털을 세워 철망 같은 방어막을 만들 줄도 몰랐다.
이 모두, 이계의 경험 부족이 불러온 결과였다.
어이없게도 일도경혼과 여덟 차례 격돌한 놈의 도끼는 멀쩡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서진 칼을 들고 있는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미노타우로스는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흡을 조절하며 대주천했다.
위험했지만 소실된 내공을 재빨리 되찾으려면 이 방법이 가장 빨랐다. 또한 건곤무상공은 운기 중에도 즉시 멈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크르르르…….
내가 노려보며 가만히 있자 여유를 찾은 미노타우로스가 으르렁거리며 위협했다.
죽거나 죽이거나.
들은 대로라면 이놈은 자신의 영토를 침범한 적을 쓰러뜨리기 전에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고 했다.
돌연 미노타우로스가 상아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자신의 위엄을 표출했다.
크와아아아앙…….
몬스터의 왕이 내지르는 포효성에 카미르의 짐승들이 전율했다. 눈깔을 내리깔며 몸을 움츠렸다.
사방을 압도하는 엄청난 피어에 새파랗게 질려 대가리를 처박았다.
공포가 전염되었다.
놈의 살기가 사자의 혓바닥처럼 내 몸을 훑고 지나가자 열병에 걸린 듯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미노타우로스가 차가운 땅바닥을 발로 내리쳤다. 파팍 하는 소리와 함께 돌처럼 단단한 흙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파팍! 파팍!
연이어 발을 구르자 놈의 기둥 같은 다리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용기를 되찾고 흉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위협하며 적의 사기를 꺾으려는 것이다.
크르르르…….
미노타우로스가 조금씩 앞으로 다가왔다.
“좋아! 좋아! 이러면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겠군.”
대주천이 끝나자 잃었던 내공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껄껄 웃으며 활처럼 몸을 굽혔다.
내 몸은 낮아졌지만 정면으로 볼 때는 더 넓어지고 커져 보일 것이다. 수풀에 조금이라도 더 몸을 가리려는 행동과 무적철권, 벽조신도의 기수식이 동시에 펼쳐진 것이다.
왼손은 무적철권.
오른팔의 부러진 검은 벽조신도.
‘내공은 삼 분지 이 정도만 남아 있다. 일도경혼으로 다 소실된 것이다. 가볍지 않은 내상도 당했다. 이제 일도경혼은 무리다. 칼도 온전치 못하다. 그렇다면 박투로 상대해야 한다.’
뿔을 잘라 내기 위해서는 무시무시한 저 도끼부터 물리쳐야 했다. 두어 근의 살점을 주더라도, 아니 팔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도끼만 무위로 만들면 손해는 아닐 것이다. 부상은 포션으로 치료하면 된다.
나름대로 대응과 반격의 준비를 마쳤다.
그것은 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움푹 들어간 노란 눈깔이 나를 놓치지 않고 좇았다. 나는 놈이 조만간 공격을 할 것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아웃 파이터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기만 해도 꼼짝 못하고 몸이 굳어 버린다.
미노타우로스를 본 병사들은 그렇게 말한다 했다.
직접 겪어 보자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잠시의 순간, 미노타우로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놈이 몸을 띄우며 득달같이 나를 향해 덮쳤다.
빠갸갸갸걍!
배틀 엑스가 만들어 내는 소음은 마치 사형 선고를 알리는 신호 같았다.
놀라운 속도로 날아오는 배틀 엑스의 궤적을 눈으로 좇았다.
어깨!
야수적 감각이 도끼가 노리는 부위는 어깨라고 속삭였다.
앞으로 뛰어들며 몸을 낮추었다. 왼쪽 어깨를 낮추며 급격하게 몸을 틀었다. 표홀신보의 멋들어진 묘수로 인해 배틀 엑스가 나의 몸을 스쳤다.
그 순간, 왼 주먹이 회오리치듯 움직이며 미노타우로스의 옆구리에 탄환처럼 박혔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갈비뼈가 옥수수 알갱이처럼 부서졌다.
크와아아앙!
고통을 참지 못한 미노타우로스가 무지막지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몸을 뒤쪽으로 날리며 거목으로 피했다. 고수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한다. 그래야 유리한 상황과 여건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나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무공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도끼가 허공중에서 궤적을 바꾸며 나를 향했다.
몸을 날려 건너편 나무로 뛰어올랐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서 있던 나무가 뜯겨져 나갔다. 재빨리 포션을 한 병 삼키고는 나뭇가지를 박찼다. 그러곤 허공중에 몸을 돌려 무적철권을 날렸다.
꽝!
공간이 찌그러지며 무적철권이 만든 발경(發勁)이 대포처럼 미노타우로스의 몸통에 틀어박혔다. 맞은 부위가 움푹 꺼졌다.
놈은 진짜 괴물이었다. 가슴뼈가 부서지고 단단한 껍질이 말굽에 밟힌 양철처럼 구겨졌는데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다.
크와아아아앙……!
비칠거리며 물러선 놈이 나를 향해 포효성을 내질렀다.
가슴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고통과 분노의 함성이었다.
살기를 뚝뚝 흘리던 괴물이 땅을 차며 점프했다.
쾅 하는 소리가 나며 땅바닥에 구덩이가 파였고 그 반탄력으로 놈의 몸이 빨랫줄처럼 날아왔다.
얼른 암향표로 몸을 띄웠다.
또다시 배틀 엑스가 나의 다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미노타우로스는 정점에 위치한 야생의 몬스터다웠다. 과연 카미르의 왕다웠다.
무림의 일절로 손꼽히던 암향표를 따라잡으며 계속해서 도끼를 휘둘렀다.
내 몸을 지탱해 주던 나뭇가지가 박살나고 거목이 허리 채 부러지기도 했다.
나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뛰면서 몸을 날렸다. 기회를 보며 무적철권으로 공격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노타우로스의 몸은 점점 피로 물들여 갔다.
파파팡!
털끝과도 같은 차이로 내가 착지한 땅이 폭발했다.
놈이 만들어 낸 도끼 광풍에 정강이 살이 생으로 벗겨지듯 따가웠다. 충격을 받은 다리뼈가 부러질 듯이 휘청거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시 땅을 박차고 나무 위로 날아갔다.
그런 다음 나무와 나무 사이를 달리며 미노타우로스를 공격했다.
화가 난 미노타우로스는 이제 점프하며 나를 쫓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나를 향해 덤비기 시작했다.
어깨에 부딪친 나뭇가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뚝뚝 부러져 나갔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손톱으로 짓이기고 도끼로 부수면서 질풍처럼 나를 향해 전진했다.
‘저놈의 체력은 도대체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군.’
미노타우로스는 지칠 줄 모르고 연방 도끼를 휘둘렀다. 나무든 바위든, 배틀 엑스에 맞으면 반드시 부서지고 틀림없이 으깨졌다.
그 도끼에 맞으면 중상은 고사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 것이다.
쉬이익!
배틀 엑스가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상체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며 파쇄기에 뇌가 갈리기라도 한 듯 상체의 감각이 사라졌다.
삐끗, 중심을 잃은 내가 나무를 타지 못하고 지면으로 떨어졌다.
쿵.
흙먼지를 피워 올리며 떨어지자 배틀 엑스가 작두처럼 나를 공격했다. 칼을 들어 도끼를 막았다.
까깡!
막강한 충격을 이기지 못한 몸이 뒤쪽으로 구르듯이 날아갔다.
울컥 배 속에서 피가 솟구쳤다.
“우웨엑!”
결국 피를 토하고 말았다. 인간의 피 냄새를 맡은 미노타우로스가 광분한 표정을 지으며 덤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