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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2. 여행(4)
다행히 위기의 순간 기지를 발휘하여 검을 빗겨들어 검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옆으로 도망쳤기에 팔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그쳤다. 양손도끼의 재공격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이용하여 옆으로 치고 빠지는 식으로 계속해 공격을 가하자 노예는 금세 항복을 외쳤고 지금처럼 모두 ‘머리 박앗!’ 자세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코볼트 주제에 눈물 콧물을 흘리는 게 불쌍하기도 하고 예상보다 좋아진 실력을 보고 지금 죽이는 게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서 응분의 대가는 당분간 미루기로 하였다. 채찍과 당근이라고 했던가?
“그, 갑옷은 어디서 났지?”
“크륵, 주웠다.”
“인간을 죽였나?”
“크륵, 아니다. 인간 혼자 죽었다.”
“흥!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인간의 시체는 어디 있나?”
“크륵, 무덤 만들었다.”
“무덤? 먹지 않고?”
“크륵, 안 먹었다. 인간 몸에서 초록 물 나온다.”
“독에 당한 인간이었나? 무덤으로 안내해라.”
코볼트를 따라간 곳은 무덤이라기보다는 흙구덩이에 가까웠다. 그냥 구덩이에 흙을 조금 덮어 둔 셈이었다.
“파라.”
“크륵, 나 부하 많다.”
“한 번만 더 내 명령에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네놈의 머리통을 뽑아 나뭇가지 위에 걸어 놓을 테다.”
“크륵, 내가 판다. 내가 파!”
나의 살기 어린 목소리에 노예 코볼트는 두려운 눈으로 열심히 무덤을 파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무덤의 실체가 드러났다. 무덤에는 생각보다 쓸 만한 것들이 많이 나왔다.
조금 찢어지고 구멍이 났지만 입을 만한 가죽조끼와 물에 젖어 축축하고 곰팡이가 피었지만, 가죽을 덧대어 만든 여우 가죽신, 조금 낡기는 했지만 아직 움직이는 회중시계, 무엇보다 최대의 수확은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주머니일 것이다.
처음에는 낡고 오래된 천으로 만든 주머니라 쳐다보지도 않았다가 ‘혹시 가문을 상징하는 증표나 신분을 나타내는 물건이 들어 있지 않을까?’ 하고 손을 넣었는데 어깨까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마법 주머니임을 알 수 있었다.
마법 주머니 안에는 양초 몇 개와 수통 그리고 구릿빛 동화인 브론즈 4개가 다였지만 공간 확장 주머니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또 한 번 나에게 반기를 든다면 너의 일족 모두를 잡아 쳐 죽이겠다. 알다시피 나는 불사자(不死者)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무한에 가까운 나의 삶 속에서 너희 일족을 죽이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크륵, 잘못했다.”
“좋다. 주인의 관대한 아량을 베풀어 이번 단 한 번만 너의 죄를 용서해 주겠다. 아울러 너에게 이름을 내리겠다. 앞으로 너의 이름은 카산이다.”
“크륵, 카산? 좋다.”
“카산.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그동안 모아 놓은 몬스터의 잔해들을 모두 모아 가져오도록.”
나는 코볼트들이 모아 놓은 가죽과 뼈 등을 마법 주머니 속에 담았다. 대충 마차 한 대 분량은 족히 들어가는 모양이다. 나는 모든 물건을 집어넣은 후 카산을 불러서 그동안의 일들을 물었다.
카산은 처음 혼자 남아 두려움에 떨다가 자신이 강해진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전보다 2배는 강해진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낀 그는 근처에 있는 동료에게 자랑을 하며 우두머리로 등극하였고 무기까지 얻은 그를 당해낼 수 있는 코볼트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카산, 크라델 산맥에 코볼트 부락은 얼마나 있지?”
“크륵, 주인 내가 잘못했다.”
“너희 일족을 죽일 생각이 아니다. 얼마나 있지?”
카산은 양 손가락을 모두 펼쳤다. 아마도 계산하기 힘들 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다.
“흠, 그들을 통합할 수 있겠나?”
“크륵, 족장 마법 쓴다. 못 이긴다.”
“마정석을 먹는다면?”
“크륵, 그래도 무리다.”
“두 개를 먹으면?”
“크륵, 아마도…….”
“열 개를 먹는다면?”
“크륵!”
고개를 번쩍 쳐드는 것이 열 개면 해 볼 만한 모양이다.
마정석은 마법사들의 재료들 중 하나여서 가격이 제법 나가는 편이지만 최하급 마정석이라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좋다, 카산. 부하들을 데리고 크라델 산맥의 코볼트 부락의 위치와 규모를 파악해라. 그리고 다른 몬스터들의 영역도 파악해. 앞으로 그들을 상대할 방법을 찾아라. 내가 다시 돌아오면 마정석을 주고 너를 코볼트의 왕으로 만들어 주리라.”
“크륵, 왕?”
“그렇다.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나는 너를 크라델 산맥의 코볼트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
“크륵, 나 카산 충성이다.”
“좋다. 지금 당장 부하들을 이끌고 떠나도록.”
카산은 왕이 된다는 기쁨 때문일까? 다 찌그러진 가슴만 감싸 주는 브레스 플레이트 아머(Breast Plate Armor)를 두드리며 부하들을 재촉했다.
3. 상단(1)
<마도학>
마법(Magic)은 인류의 역사에서 커다란 획이 될 만한 학문이다.
먼 옛날 고대의 거인(Giant)들은 신들에게 반기를 들고 거대한 전쟁을 일으켰다. 라그나뢰크(Ragnarok)라 불리는 이 전쟁은 무척이나 잔인하고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수많은 종족 연합들은 거인의 무서운 힘에 죽어 나갔고 전 인류의 대다수는 이때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보다 못한 주신 가이아(Gaia)는 수많은 종족들의 대표들에게 영웅(Hero)의 능력을 부여하였고 그렇게 전쟁은 약 오천 년가량을 이어 나갔으며 긴 전쟁에 아스가르드[ArsGard]는 피폐해지고 황량해졌다.
결국, 주신은 신의 사도인 천사(Angel)들과 드래곤(Dragon)을 전투에 참전시켰고 그렇게 기나긴 전쟁은 그 막을 내린다.
주신은 전쟁이 끝난 후 마지막으로 창조한 천사에게 고대의 인장(Ancient‘s a seal)을 맡기셨고 드래곤(Dragon)에게 세상의 균형을 10명의 천사(Angel)들에게 세계를 운영하라 명하였다.
…중략…….
신은 지쳐갔다. 계속되는 분란을 막기 위해 신은 세상의 절반을 밤으로 물들이고 잠이라 불리는 권능으로 모든 생명을 약하게 만들었다.
…중략…….
너무 많은 권능을 사용한 주신은 깊은 잠에 빠지고 아스가르드[ArsGard]는 균형을 잃고 쪼개져 분리되었다. 그것이 미드가르드[Midgard]의 시초이다. 대륙에는 수많은 시체들로 넘쳐 났고 수많은 재난과 불운이 끊이질 않았다. 드래곤은 신의 사명으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미드가르드로 내려왔고 죽어 가는 수많은 종족들에게 작은 지식을 건네주니 그것이 마법의 시초이다.
…중략…….
드래곤은 수많은 종족들에게 마법을 나눠 주었다. 엘프(Elf)에게는 ‘숲의 조화’와 ‘정령술’을 드워프(Dwarf)들에게는 ‘장인의 불꽃’과 ‘연금술’을 주었으며 오크(Orc)들에게 ‘빠른 번식’과 ‘끊임없는 투쟁’을 나눠 주었다. 그러나 드래곤은 유독 인간을 미워하며 마법을 전수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신의 사도를 닮은 종족이기 때문이었다.
신의 사도는 ‘지식 전이’와 ‘탐욕’의 권능을 지니고 있어 다른 종족의 능력을 손에 넣을 경우 너무 위험해진다는 생각에 드래곤들은 인간에게 많은 시련을 내렸다. 결국 인간은 계속되는 재난에 죽어 갔고 보다 못한 숲의 종족이 인간을 위해 마법을 내려 주니 그것이 인간 마법의 시초이다.
…중략…….
그리하여 인간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학문으로 기록되며 이것을 연구하는 학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한 각기 고유의 마법들을 정리하고 기록하였으며 후세에 널리 전해 주며 고유의 학파로 거듭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업적을 가리기리 알리기 위해 마법의 탑을 건립하였다.
…중략…….
마탑은 각기 다른 색으로 칠해졌고 각 학파마다 추구하는 이념과 사상을 담아 각기 색을 구분하였다. 흑, 백, 적, 청, 황, 회로 구분되며 인간에게 마법을 건네준 엘프에게 경외를 담아 그들의 색인 녹색을 칠한 녹탑까지 7개의 마탑이 설립되었다. 그들은 각기 ‘사람, 천사, 불, 동물, 광물, 별, 식물’을 연구하며 발전하였으며 엘프들은 ‘인간의 지혜는 숭고함과 영원함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때 더 높고 높은 지식층에 도달하리라’는 예언을 남기며 더 이상 인간사에 관여를 멈추었고 그렇게 인간은 신의 지식을 이어받게 된다.
청탑에서 구매한 마도학의 모든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500골드라는 거금에 팔다니 정말 바가지를 넘어서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하인츠의 말대로 학문적인 의의가 강한 마도학의 내용은 고작해야 10페이지를 넘지 않으며 대다수가 룬(Lune)문자로 적혀 있어 문자를 익히는 시간까지 족히 석 달은 걸렸다.
뭐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에 느긋하게 문자를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덕분에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돈마저 모두 소진하였다.
코볼트들이 모아 온 가죽 80여 장과 몬스터 뼈를 모두 팔았다. 수중에 제법 되는 돈이 모였지만 하인츠에게 연구비와 재료비 등을 전해 주고 나자 남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상단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아직 상단을 꾸려 나갈 인물은 없지만 일단 내가 직접 만든 상단이라는 점과 앞으로 만들 발명품과 시약 등을 팔면 성공은 시간문제라 생각해 미리 만들어 놓은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상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인 길드와 장인 길드에 가입이 필수적이었는데 그 기준이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웠다. 상인 길드의 경우, 세 가지의 필수 조항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하나. 왕이 내린 금지 품목에 대한 구매과 판매를 불허한다.
하나. 상인 길드에게 책정한 물품은 그 값을 따라야 한다.
하나. 매년, 상인 길드에게 보호세를 납부할 것.
즉, 쉽게 말해 왕족이나 고위 귀족만 사용하는 물품들이 있으니 이것은 다른 사람은 쓰지 마라. 상인 길드가 물건에 가격을 정하여 폭리를 취할 테니 너희들은 따르고 매년 세금을 내놔라. 장인 길드의 조건은 더욱 까다로웠다.
① 원료는 공동으로 구매하고, 선매(先買:남보다 먼저 물건을 삼)를 금지한다.
② 주인이 고용할 수 있는 직인(職人)과 도제(徒弟)도 일정한 수를 넘어서는 안 된다.
③ 사용하는 도구의 종류·수를 규제한다.
④ 노동 시간을 정하고 조조(早朝) 및 야간의 노동을 금지한다.
⑤ 제품이 시장에 반출되기 전에 품질 검사를 받고 스탬프를 찍지 않은 물건은 판매를 금지한다.
⑥ 공정 가격을 정해서 판매한다.
“휴, 상단을 만드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가?”
세르핀 마을에는 상인 길드와 장인 길드가 사이좋게 한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두 번 움직일 필요가 없어서 좋지만 괜한 돈이 나갈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아파 왔다.
‘뭐, 이것도 일종에 투자다. 훗날을 생각하자.’
나는 마음에 다짐을 하고 길드 안으로 들어섰다. 곱슬머리 사내가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