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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3. 상단(2)
“상인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상단을 만들려고 하오.”
“어느 정도 규모의 상단을 만드실 계획이신가요?”
“소규모.”
“상단이 취급하는 물품은 어떤 것인지요?”
“일단은 포션류와 개인 발명품.”
“발명품이요?”
“그렇소.”
“대략, 어떤 물건인지?”
“아직, 적당한 장인을 구하지 못해서 생각 중이요.”
“아하, 그럼 아직 장인과 관리인, 판매원 등에 대한 부분을 생각하지 못하였겠군요. 보통 소규모 상단에서 운영하는 가게는 3~5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하죠. 상단의 경우는 호위와 상단에 필요한 물품 등을 관리해 주는 관리사, 마부, 지도를 잘 보는 길잡이 등을 생각하시면 대략 100여 명 정도는 필요하실 텐데.”
“일단은 가게 하나만 차리고 장사를 시작하고 상단의 운영은 나중에 시작할 계획이오.”
“그럼, 포션류 가게로 지정하고 가게나 지점은 몇 곳이나?”
“하나.”
“네?”
“하나면 충분하오.”
“설마, 이 마을에 설립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렇소? 왜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 문제는 없지만 아마도 금방 망하실 거예요. 이곳에는 포션류 가게만 하여도 총 10여 군대가 넘고 그 발명품이 어떤 것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장인 길드 소속으로 등록된 장인은 거의 대부분 다른 상단이 데리고 있어서 장인을 찾는 일도 힘드실 거예요.”
“상관없으니, 등록해 주시오.”
“그럼, 상단의 이름은?”
“녹티스(Noctis)”
“여기 서류에 모든 등록을 마쳤습니다. 여기에 서명이나 가문의 인장을 새겨 주시고요. 본격적인 가게의 운영을 하시기 전에 다시 한 번 들르셔서 간단한 설명과 세금을 내고 장사를 시작하시면 됩니다.”
“세금?”
“상인 길드의 3대 수칙과 장인 길드의 6대 수칙, 외에 들어가는 통행료나 보호세 등등.”
“온통, 돈 내라는 소리뿐이로군.”
“하하, 그럼 필요하신 거나 궁금하신 사항 있으세요?”
“괜찮은 가게와 사람을 소개받고 싶은데?”
“아, 그럼 마을의 변두리에 있는 ‘아이작 잡화점’ 이곳을 찾아가 보세요. 아이작 님은 뛰어난 관리인이며 저희 길드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유일한 장인이세요. 덕분에 불이익을 많이 당하셨죠.”
“고마웠소.”
나는 동화 두 닢을 열심히 설명해 준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사내는 두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괜찮다고 했지만, 열심히 설명하고 괜찮은 장인까지 추천해 준 사내에게 이 정도는 당연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변두리에 문을 닫은 가게들이 상당히 많았다. 길드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동내 양아치들의 출입으로 보호세, 흔히 말하는 돈을 뜯기는 경우가 허다하며 ‘가게 유지비는 나올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처에 사람이 없었다.
“계시오?”
“무슨 일인가?”
“장인 아이작을 뵈러 왔소.”
“뭐얏! 네놈은 또 누가 보내서 왔느냐? 보호비를 뜯어낼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마라!”
“이 가게 팔려고 내놓지 않았나?”
“팔아? 누구 맘대로 팔아.”
“상인 길드에서는 이곳을 팔기 위해 내놓은 가게라고 하던데?”
“끄응, 설마 가게를 보러 온 손님인가? 미안하네. 이곳은 파는 곳이 아닐세. 아마, 피터 그 녀석이 말한 모양이구만. 비록 몇 달 세금이 밀렸지만 이렇게 가게를 팔아 버릴 수는 없네. 내가 상인 길드에 가서 말을 할 테니. 자네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헛걸음한 셈 치게나.”
“이곳, 한 달 세금은 얼마나 하지?”
“10브론즈라네.”
“비싸군.”
“몇 달 전부터 상인 길드에서 변두리에 있는 가게들의 세금을 올렸네.”
“이유는?”
“흥! 돈을 벌려는 속셈이지. 돈을 못 내는 가게들은 문을 닫을 테고 그것을 비싼 가격에 팔아먹어 이문(利文)을 챙기려는 돼지만도 못한 그놈들의 속셈이지.”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라 들었다. 내가 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겠나?”
“나는 대장장이도 목수도 아니네. 그리 큰 기대는 말게나.”
“별다른 건 없어. 그냥 네모난 철 상자에 조그마한 조작이 가능하면 되지. 혼자서 만드는 것은 아마도 무리일 테니 내가 아는 마법사를 소개해 주지.”
“마법사까지 필요하다니. 도대체, 무엇을 만들려는 속셈이지?”
“이 가게와 당신을 내가 사겠어.”
“뭐? 내가 노예냐? 사고 말고 하게.”
나는 품에서 전 재산인 한 움큼의 금화를 꺼내어 노인의 앞에 올려놓았다. 어림잡아 30~50개는 될 법한 양이었다.
“이, 이건?”
“계약금이야.”
“계약금이라고?”
“한 달에 30골드면 가게를 운영하고 남겠지?”
“그 돈이면 몇 달 동안 물건을 판 가격보다 많을 걸세.”
“좋아. 계약비로 달에 30골드. 원한다면 추가 수당도 주지.”
“저, 정말인가?”
“어차피 빚으로 망할 바에 한 번쯤 무모한 도박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안 그런가? 이 돈으로 가게에 밀린 외상값부터 갚고 쓸 만한 인재들을 모아라. 믿을 만한 사람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좋다. 일당은 하루에 1브론즈다.”
“미친, 1브론즈? 자네 돈이 썩어 나는 것인가?”
“아니,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얼마 후면 세상의 모든 금화는 내 손아귀에 들어올 거야. 어떤가? 나의 첫 번째 가게의 주인이 되는 것은?”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며 너무도 달콤한 매력을 지닌 제안이었다. 아이작의 승낙은 이미 예견된 사실이었다. 나는 양피지를 한 장 사서 대충 구상하는 물건의 밑그림을 그려 주었다.
아이작은 빚을 모두 청산하였고 나를 따라 마법사 하인츠가 머무는 ‘노아의 숨결’이라는 여관으로 들어섰다. 여관은 온통 하급 마법사들 천지였다.
“어서 오게.”
“실험은 잘되 가나?”
“물론이네. 예전처럼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인지 성과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올 것 같네.”
“실험은 충분히 해 봤겠지?”
“일단은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빵을 주고 데려다가 실험을 해 봤네. 위험한 실험이 아니어서 아이들도 만족스러워 했고 빵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지원하는 실정이지.”
“실험을 하는 곳이 꼭 이곳일 필요는 없겠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장소를 옮긴다. 마을에 변두리에 있는 아이작 잡화점으로 와라. 그리고 필요한 물품들은 이 주머니 안에 담아라.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어서 마차 한 대분량은 거뜬히 나올 것이다. 혹시라도 빼먹거나 연구의 흔적을 남기지 말도록.”
“알겠네. 그런데 저분은?”
“아, 인사해, 잡화점 주인 아이작이다. 오늘부터 녹티스 상단의 세르핀 마을의 지부장이지.”
“응? 녹티스 상단?”
“내가 만든 상단이다. 오늘부터 이 대륙의 돈이란 돈을 갈퀴로 바닥까지 긁어모을 상단의 이름이지.”
남은 포션과 마법 스크롤을 팔았다. 뿐만 아니라 돈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팔았다. 인근에 사냥을 나가 몬스터를 잡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팔았으며 짐승들의 가죽을 벗겨 상인들에게 높은 가격으로 팔았다.
그렇게 모인 거금은 모두 아이작 잡화점의 각종 공사비에 들어갔다. 일단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여 우중충한 실내를 전부 교체하였고 인근에 건물들을 헐값에 사들여 내부 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그 덕분에 예전에 스무 배는 족히 넘는 규모의 대형 잡화점이 탄생하였고 사람들은 도대체 저곳에서 무엇을 팔기에 저렇게 요란하게 공사를 하는지 관심을 끄는 홍보 효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공사에 한창 바쁜 그 무렵, 나는 두 장의 도면을 하인츠에게 내밀며 말하였다.
“만들 수 있겠는가?”
“물론이네. 하지만 이것을 만들어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법을 유지 시켜 줄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적어도 중하급이나 중급 이상의 마정석이나 마나석이 필요하네.”
“하나, 구매할 예정이야.”
“하지만 가격이…….”
“싼 가격에 사거나 공짜로 얻어 올 계획이니 걱정 말아라.”
“뭐?”
“돈에 관한 것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걱정 말고 연구와 저 물건을 완성시킬 생각이나 해라. 한 달 후쯤 돌아오겠다.”
“알았네.”
“아이작. 일꾼들은 뽑았나?”
“아니, 일꾼이라니. 그들은 자랑스러운 아이작 잡화점의 직원들이네. 하찮은 일꾼들과 동급 취급하지 말게나.”
“흥, 주책은… 그래, 얼마나 뽑았지?”
“이렇게 많이 뽑아도 괜찮겠는가? 일단은 스무 명을 뽑았는데 그들 중 남자가 열넷, 여자가 여섯이라네.”
“믿을 만한 사람인가?”
“물론이지. 이 아이작 평생을 살면서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좋아. 믿을 만한 사람이라 생각된다면 더 뽑아도 좋다. 얼마든지 뽑아라. 그리고 상인 길드에 그 피터라는 청년에게도 은근슬쩍 제의를 해 봐라.”
“아니, 가만히 있는 피터는 왜?”
“재정 담당하는 재정관 하나쯤 필요하지 않겠나? 그리고 그는 친절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
아이작과 하인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다시 말하지만 한 달 후에 모든 준비를 끝 맞춰야 한다. 남는 자금은 하인츠에게 맡겨 뒀으니 아껴 쓰도록.”
돈을 물 쓰듯 쓰다 못해 아예 퍼붓듯이 흘러 나갔다. 돈을 쉽게 벌어서 쉽게 쓰는 것인지 아니면 불사자가 되기 이전에 삶에 돈을 미친 듯이 쓰던 버릇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것인지 돈이 모이질 않는다. 하지만 뭐 상관없다. 상단에 실패하면 다시 벌면 그만인 것을… 어차피 돈이란 것도 마법을 배우기 위한 수단이며 무한한 시간 동안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단 한 가지도 없겠는가?
돈이란 돌고 도는 법. 그 흐름을 잡는다면 언젠가는 내 손에 돈이 잡힐 테지. 물론 당장 나에게 딸린 식구들이 늘어날수록 부담이 늘어 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저들은 한 번쯤 망해 본 사람들이며 이 희망을 놓치기 싫어서라도 열심히 할 사람들이니까 걱정은 없다.
나는 세르핀 마을을 벗어나 루팡 남작의 영지를 향해 힘차게 달렸다. 남작이 주는 보상금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지 않을 터, 게다가 그와 교분을 쌓는다면 추후 도움이 될 것이다.
* * *
루팡 남작의 성 앞. 해자에 걸쳐 놓은 웅장한 철다리. 백색 빛이 맴도는 성은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남작이라는 작위가 이만큼 아름다운 성을 가지고 있을 만큼 돈을 잘 버는 직업인가? 이거 남작 한 번 해 봐? 요즘 돈에 항상 시달려서인지 나도 모르게 이런 아름다운 성을 보고도 돈과 연관 짓게 되는 모양이다.
철다리를 거쳐 남작의 성문 앞에 도착하자 키가 큰 병사들이 길을 막으며 신분증과 용무를 물었다. 나는 ‘로세 드 루팡’의 이름을 말하자 병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지며 잠시 후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나와 재차 용건을 물었다.
“로세 공자님과 친분이 있으시다고요?”
“그렇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확인을 위해 병사들이 들어갔으니 조만간 연락이 올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이미 익숙하다. 거의 몇 백 년의 시간을 살아왔는데 이 정도도 참지 못해 소란을 떨 이유는 없다. 잠시 후 성안으로 소식을 보낸 병사가 낯익은 인물과 함께 왔다.
“정말, 자네였군. 하하하! 우리들 중 아무도 자네의 이름을 몰라서 말일세. 혹시 몰라 내가 직접 나왔다네.”
“앙리 님. 오랜만이십니다.”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나누세.”
앙리의 신분 보증으로 나는 바로 남작을 만날 수 있었다. 로세는 제법 부상을 회복한 모양인지 자리에 앉아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남작 또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로세는 이미 죽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이들이 어찌나 자네의 자랑을 하던지. 자네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네.”
“과찬이십니다. 소인이 한 것은 그냥 몸에 지니고 다니던 약초를 나눠 드린 것밖에 없으니 너무 부담스러운 말씀은 물려 주십시오.”
“아닐세. 그 간단한 약초로 사람을 살리는 그 의술이 있었기에 로세가 이렇게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네. 이것은 자네의 공이 크니 내가 어찌 상을 아니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여봐라. 재정관은 내 보물 창고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내 오도록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