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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3. 상단(3)


루팡 남작은 품에서 황금빛이 맴도는 열쇠를 재정관에게 건네주었고 재정관은 두 손으로 공손히 황금 열쇠를 받았다. 보물 창고라고? 나는 은연중에 기대를 하며 남작이 초대하는 식사 대접을 받게 되었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많이 들게나.”
후덕한 인상의 남작답게 식사에 오르는 음식 수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일단 입맛을 돋우기 위한 전체 요리의 수만 네 가지가 나왔으며, 수프와 함께 빵과 비스킷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메인 메뉴인 생선 요리와 육류 스테이크는 한국에서도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고기들로 가득 찼다. 후식으로 나온 달콤한 벌꿀파이와 쿠키도 내 입맛에 딱 맞았다.
“그래, 듣자 하니 여행을 다닌다고 하던데? 여행은 무사히 잘 끝마친 것인가?”
“그렇습니다. 일행들이 큰 사고를 당해 저라도 임무를 끝마쳐야 했기 때문에 이곳에 오는 것이 많이 늦어져서 송구스럽습니다.”
“아닐세.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다면 그것으로 다행인 것이지. 그래, 앞으로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
“그냥, 조그마한 가게를 열어서 장사를 해 볼 생각입니다.”
“장사를? 허, 다른 제국 사람이라 텃세가 심할 텐데?”
“물론, 얼마간의 텃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판매하고자 하는 물품들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과 다른 구하기 어려운 귀한 것들이기에 귀족들이나 거부들로 구성된 회원제로 운영할 생각이니 아마 직접 부딪히는 일은 적을 것입니다.”
“오호, 기발한 발상일세. 회원제라… 그래 물품들은 선정했는가? 장사는 어디서 시작할 계획이지?”
“일단, 세르핀 마을의 ‘아이작 잡화점’을 인수하여 그곳에서 장사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물품은 포션류로 정했으며 아까 말씀드린 회원제를 통해 판매를 시작할 생각입니다.”
“세르핀이라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구만. 그런데 하필 많은 품목 중에 포션류인가? 포션류는 이미 많은 상단들이 손을 대고 있다네. 게다가 그 주재료인 몬스터의 피나 수많은 약초 등은 이미 10대 상단에서 거의 모든 양을 사들이고 통제하는 추세라네. 어설프게 손을 댄다면 아마도 쉽게 망하기 딱 그지없는 품목이 포션이라는 말일세.”
“그래서 회원제로 운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이 이야기는 남작님과 이곳에 계신 분들이 친분이 있어서 특별히 해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저희가 판매하는 포션은 시중에 구할 수 없는 포션이며 그 효과는 기존의 포션의 2배 이상입니다.”
“뭐라? 2배 이상, 그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기존에 포션은 단 한 가지의 부가 효과가 부여되며 그 시간도 극히 짧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포션은 적어도 세 개의 효과가 동시에 발휘되며 시간도 기존의 포션보다 무려 십여 분이나 오래 유지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흠, 정말 믿기 힘든 소리로군. 혹시 미리 제작해 놓은 제품이라도 있는가?”
“혹시 몰라서 준비했습니다.”
남작의 의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하인츠에게 미리 건네받은 소량의 포션을 남작에게 건네주었다. 남작은 제일기사로 불리는 허드센에게 성능을 테스트하게 해 보고서는 만족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 그 포션 내가 전량 모두 구매하겠네!”
“죄송합니다. 남작님의 재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 포션은 기존에 포션보다 가격이 비쌀 것이며 그 숫자 역시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부가 효과가 세 배 이상이니 값이 비싼 것은 당연한 것이며 저희만의 특별한 비법으로 제조가 가능하며 재료를 구하는 것은 아까 말씀하신 대로 10대 상단이 모두 손에 쥐고 있어 제조량도 많지 않을 것이니 아마 부르는 게 값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저희가 판매하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다, 다른 것들도 있는가?”
“포션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남작의 눈매가 떨려 왔다. 아마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나온 포션만으로도 포션계에 큰 파란을 예고하는데 이런 물품들이 더욱 나올 뉘앙스를 풍기자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자네, 혹시 섬기는 귀족이 있나?”
“아직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려제국에서 넘어온 신민으로서 이곳의 정세도 아직 잘 모르며 귀족들을 사귈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네의 말투나 행동에는 기품이 느껴지는데.”
“그냥, 이것저것 배운 것입니다. 귀족들의 행실 역시 미리 배워 두었습니다.”
남작은 마지막 말에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표정은 더욱 진지해졌다. 남작이 아무리 아둔한 사람이라도 미리 귀족의 행실을 익힌 이유가 정계에 진출할 의미라는 말뜻을 못 알아듣지는 않았을 것이며, 나를 자신의 수하 또는 영업상 파트너로 삼고 싶다면 나의 호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이번 보상에 더욱 신경을 쓸 것이다.
“하하하! 그렇군. 자네는 참으로 재주가 많은 사람이네. 그래, 장사는 언제쯤 시작할 계획인가?”
“일단, 일호 고객을 확보했으니 포션의 수량이 얼마 정도 확보되는 대로 물품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시원시원해서 좋네, 좋아. 그래 일호 고객이라… 처음이라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안 그런가?”
“물론입니다.”
그 말이 정답이었을까? 남작은 크게 만족하였고 떠나는 길은 정말 가볍지 않았다. 예상대로 보상의 규모가 달라졌다.
처음 돈주머니를 하나 대충 쥐여 주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앞으로 꾸준히 거래를 해야 하며 나의 잠재력을 생각할 때 그냥 한두 푼으로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보물 창고에서 황금궤를 짝으로 가져다 수레에 실어 주었다.
호위병으로 붙여 준 기사들도 가관이다. 아직 부상이 다 낳지 않은 자신의 아들 로세에 루팡가의 제일 기사인 허드센. 게다가 추가로 따라오는 앙리까지.

* * *

공사를 무사히 마치고 간판도 새로 달았다.
‘아이작 잡화점’은 정말 새롭게 변신을 시도하였다. 내부 인테리어나 전반적인 것은 내가 계획해서 현대적인 시설로 탈바꿈하였고, 고용한 직원들에게도 일정의 교육을 시켜 귀족들을 상대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게다가 비장의 무기가 완성되어 가니 아마도 귀족들은 줄을 서서 아이작 잡화점 안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할 것이다.
“왔나? 헉! 그, 그게 다 뭔가?”
“손님이 오셨다. 추태는 그만 부리고 응접실로 여자아이들을 시켜 간단한 차와 다과를 준비하도록. 그리고 장정 두 명을 시켜서 이것들을 다 내 방으로 옮겨 놔라.”
나는 마법사 하인츠에게 대충 지시를 내리고 로세와 앙리, 허드센을 응접실로 안내하였다. 그들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행동과 실수투성이인 여자 직원이 힘들게 따르는 차와 다과들을 보며 절로 인상을 찌푸렸지만, 감히 내 앞에서 신경질을 부릴 수 있을쏘냐. 그냥 웃고 넘기는 수밖에…….
“그럼, 잠시만 다과를 즐기고 계십시오.”
나는 하인츠와 아이작을 내 방으로 불러왔다.
방에 도착한 그들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궤짝에서 금화를 새고 있는 나를 보고 기절할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턱이 빠지겠군.”
“그, 그게 다? 돈인가?”
“대충, 이만 골드 정도는 되겠군.”
“이, 이만 골드?”
“그래, 남작이 무리를 했군.”
이만 골드는 적은 돈이 아니다. 최하위의 덴으로 계산하면 2억 덴. 브론즈로도 2백만 브론즈이다. 5~10브론즈면 4인의 가족이 한 달을 먹고 살 수 있으므로 적어도 4십만 가구를 먹여 살리는 돈이다.
“물품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지?”
“포션은 지금 당장에라도 판매가 가능하네. 그리고 말했던 물건 역시 판매는 가능하지만… 그것을 어디에다 팔 수가 있을까?”
“물론, 그냥은 힘들지. 하지만 마법을 부린다면 돌멩이도 황금이 되는 법이야. 아이작 영감.”
“영감이라니! 아직 백 년은 더 살 수 있다!”
“흥, 영감이 소드 마스터야, 백 년은 더 살게? 내일 아침부터 과일들을 사재기하도록 해.”
“과일을?”
“왜? 그것도 상법에 어긋나는 행위인가?”
“북부는 숲이 많고 울창해 과일이 풍부하니 어지간히 사서는 상법에 어긋날 일은 없다지만 과일은 어디에다가 쓰려고?”
“마법을 부리려면 마법의 가루가 필요할 거 아니야?”
“끙,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일이 되면 다 알게 될 거야. 그럼 아이작 영감은 애들 데리고 과일을 사고 하인츠는 내일부터 나에게 시약을 만드는 방법과 마법을 전수해 줘야겠어.”
“알겠네.”
“우선은 완성된 30개 정도의 포션을 루팡 남작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야. 돈을 받아도 좋겠지만 이미 이만 골드라는 거금을 선불로 내놨으니 이 정도 성의는 보여 줘야 남작도 납득을 할 것이야. 시중에 파는 회복 포션의 가격이 50골드, 마탑에서 개수를 제한하여 판매하고 일반인은 5개까지 판매가 가능한 물품이지. 속도의 포션이나 근력의 포션도 30골드, 활력의 포션은 10골드이니 우리는 개당 100골드쯤에 팔아도 무방 할 거야. 수량은 한 사람당 3개, 상단의 경우 50개로 제한될 것이야. 아참, 포션 제조 시간은 얼마 정도가 걸리지?”
“일주일이 걸린다네. 일주일에 대략 일만 개 정도가 만들어지며 재료비는 10골드 정도가 소요되네. 그런데 하나에 100골드나 받으면 너무 폭리가 아닌가?”
“하인츠, 우리의 포션이 마탑보다 확실히 우수한가?”
“물론이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좋은 물건은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법이야.”



4. 마법(1)


“아니, 고작 이것밖에 안 주는가?”
“죄송합니다, 로세 님. 보셨다시피 저희도 만든 포션이 아직 얼마 없습니다. 추후에 추가로 포션이 완성된다면 더 넣어 드리겠습니다.”
“흠, 좋아. 자네를 믿겠네.”
“감사합니다.”
로세와 허드센은 30개의 포션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표정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기색이 연연하였지만 상관없다. 그들에게 저 정도가 딱 적당량이니까.
앙리에게도 3개의 포션을 몰래 건네주었다. 사교계에서 제법 영향력이 있으며 광산을 여섯 개나 보유한 가즈온가의 재력이라면 우수한 고객이 되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특별히 서비스를 준 것이다.
두 가문이 소문을 잘 내어 준다면 추후 완성되는 포션들을 우선적으로 거래한다고 했으니 아마도 큰 힘을 써 줄 것이다.
당분간 크게 할 일이 없다. 이미 만여 개의 포션을 제조하였고, 구매처를 선정하는 것은 꼬장꼬장한 아이작 영감이 도맡아서 할 예정이며, 거금을 주고 초빙한 몰락 귀족이 직원들의 교육 지도에 들어갔으니 아마 조만간 귀족들을 상대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힘을 키울 시간이다.
하인츠는 3서클의 마법을 마스터한 연금술사로서 그동안 쌓은 지식들이 제법 되는 편이었다.
“처음 마법사는 매지션(Magician:견습 마법사), 메이지(Mage:초보 마법사), 위저드(Wizard:마법사)로 구분이 되며 마법사는 여기서 또 10가지 종류로 구분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