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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4. 마법(4)
아라하스크는 총 5계의 단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1단계는 육안(六眼)이라 불리며 사람의 감각 중 여섯 번째 감각을 깨우는 단계이다. 눈으로 보지 않고 멀리 있는 것을 보며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구별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
2단계는 감각안(感覺眼)라 불리며 여섯 감각 중 한 부분을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3단계는 중량안(重量眼)라 불리며 깃털처럼 가벼운 물건의 무게도 손쉽게 잴 수 있게 된다.
4단계는 혜안(慧眼)이라 불리며 사물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5단계는 천안(天眼)이라 불리며 모든 진리(眞理)에 통달한 연금술사만이 얻을 수 있는 단계라 불리며 역대 아르하스크 학파 내에서도 고작 두 명만이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진리라… 불사에 진리안까지 얻으면 정말 자네 말대로 괴물이 될 수 있겠어.”
“정말 믿기 힘든 일이야. 불사라니…….”
“왜? 자네도 불사자가 되고 싶은가?”
“영원한 삶은 모든 마법사들의 꿈이라네. 하지만 그렇다고 리치(Lich)가 되는 어리석은 마법사는 드물다네.”
“바른 생각이야. 나는 항상 꿈을 꾼다네. 이 저주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나는 항상 희망한다네, 이 치열한 세상 속에서 한 편의 평화를 누리며 평온을 되찾기를. 나는 바란다네, 내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순리대로 풀려 나가기를. 어떤가? 자네는 나를 도와줄 수 있겠나? 부서져 가는 나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어 줄 수 있겠나?”
5. 귀족(1)
아이작 잡화점은 귀족들에게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단 회원제로 관리되는 점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차별화된다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어 귀족들과 잘 맞아떨어졌다.
초반에는 왕가의 압박이 제법 거셌지만 1,000개의 포션을 꾸준히 납품하고 게다가 아이스크림까지 덤으로 납품하니 요즘은 그런대로 살만했다.
드디어 세르핀에서 아이스크림의 판매를 시작하였다. 가격은 1골드. 고작 성인 남자의 주먹 반 정도 크기를 1골드라는 거금에 사서 먹는 정신 나간 귀족들 덕분에 아이스크림 역시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다.
우스운 일이지만 귀족들은 아이스크림을 너무 퍼먹어서 배탈이 나 신전을 찾았고 그 덕분에 신전의 수입도 덩달아 치솟았다. 그전과 비교하면 약 10%는 올랐을 것이다.
이러다가 신전에서 악마의 음식이라고 금지령을 내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추가로 수익을 올려 주는 우리를 겨냥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수련은 잘돼 가십니까?”
그날 이후 하인츠와 관계가 조금 달라졌다. 그전에는 반존대를 하던 말이 존댓말로 변했으며 종종 ‘나의 몸을 실험해 보고 싶다.’라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수련의 경과를 묻곤 하였다.
“글쎄, 아직은 속도가 너무 느려. 마법은 이제 2서클이고 아르하스크는 여전히 1단계에 머물고 있어.”
“그 정도면 엄청난 발전이십니다. 고작 3개월 만에 2서클이라니요. 이것은 천재라 부르기는 뭐하지만 적어도 수재라 불리기에 충분하신 뛰어난 성과이십니다.”
“괜한 소리는 하지 마. 아직 부족한 면이 많아. 3서클은 되어야 위저드 마크(Wizard Mark:룬이나 마크를 새겨 마법 무구를 제작하는 마법)를 쓸 수 있잖아.”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법이란 학문을 익히실 때는 조급함을 버리셔야 합니다. 조금의 부족함 없이 균형을 이루어야 마스터의 길로 들 수 있습니다.”
“알아. 서클과 클래스, 레벨의 균형은 벌써 수백 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야. 이제 그만해.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왔어?”
“앙리 님이 마나석을 가져오셨습니다.”
“앙리가?”
나는 앙리가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전에 그에게 마나석이 필요하다는 말을 은연중에 남겼고 그는 여섯 개의 광산 주인의 아들답게 상급의 마나석을 쉽게 구해 왔다.
상단의 후원에 마련된 테이블에 도착하자 앙리는 아리송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겼다. 그는 상급의 마나석을 선물로 건네며 여인 한 명을 소개해 주었다. 금발의 머리카락과 에메랄드 눈동자를 지닌 여인은 눈웃음을 치며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소문으로만 듣다가 실제로 만나니까 무척 떨리네요. 제 이름은 엠마 로 도리안(Emma Ro Dorian)이에요.”
“반갑습니다. 로스트라고 합니다.”
마법사 가문인 도리안가의 영애는 평소에도 연금술에 제법 조예가 깊었고 광폭 포션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서 이렇게 앙리를 졸라서 나를 찾아왔다고 한다. 앙리는 은근슬쩍 그녀를 부추기며 나와의 관계를 진전시켰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어허,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더 만나 보게나.”
“저는 관심 없습니다.”
“어허, 이 친구야. 자네가 그렇게 나오면 내 체면이 뭐가 되나?”
“앙리 님!”
“딱 한 번이네.”
앙리는 그 이후에도 그녀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선(周旋)하며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녀는 마법사의 자재답게 폭넓은 지식과 마법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고 덕분에 서먹서먹하던 분위기가 많이 풀리게 되었다.
“로스트 님은 재주가 많으시네요.”
“…….”
재주라니, 이것은 그냥 현대에서 일상처럼 쓰는 것일 뿐이다. 그녀는 대단한 관심을 보이며 광폭 포션이나 아이스크림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나는 아는 한도 내에서 대답해 주지만 솔직히 물건을 만드는 것은 하인츠나 아이작 영감이지 내가 아니기에 많은 부분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었다.
* * *
“흥, 그 망할 왕이라는 작자. 돈만 밝히는 능구렁이더군.”
“영감, 왕을 직접 만나 본 것도 아닐 텐데, 왕에 대한 욕은 그만하고 얼마나 달라고 하던가?”
“8등급 훈작사가 8만, 7등급이 15만, 6등급이 24만, 5등급이 35만, 4등급이 48만, 3등급이 52만, 2등급이 64만, 1등급이 80만 골드일세.”
“흠, 너무 비싸군.”
“그냥 비싼 정도가 아니야 터무니없는 바가지일세. 다른 왕국의 경우 준남작의 경우가 12만이고 기사직이 15만일세. 80만이라니 말만 잘한다면 남작 위를 사고도 남을 돈일세. 게다가 훈작사에 단계를 나누어서 팔다니.”
“우리를 노리고 한 짓이야. 우리가 작위를 살 것을 미리 예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기사직이 특별히 더 비싼 이유라도 있나?”
“그거야 같은 작위를 산다면 당연히 기사가 더 모양세가 나고 무게감이 있어 멋지지 않겠나? 젊은 사람일수록 기사를 더 선호하지.”
“그렇군. 이종족과의 거래는?”
“이종족들이 아이스크림을 환장하며 좋아하더군. 포션도 그 효과를 인정받아 수량을 늘려 달라고 애원해서 진땀을 뺐네.”
“좋아. 이종족들에게 판매하는 포션의 수량을 늘리고 조만간 그쪽 대표와 만남을 주선해 봐. 왕가에서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법, 살려고 발버둥치는 수밖에. 일단은 왕가에게 8등급 훈작사의 직위를 사.”
“지렁이도 뭐라고?”
“고국의 속담이야.”
“흠, 비유가 참 그렇군. 그런데 8등급 훈작사를 사는 것은 엄연한 돈 낭비일세. 8등급 훈작사는 고작 시민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단계일 뿐 주어지는 권한 같은 것은 전혀 없다네.”
“하지만 땅을 살 수 있잖아.”
“허, 8등급 훈작사가 살 수 있는 땅이야 고작 500피코 정도밖에 안 될 텐데.”
“그것이면 충분해. 아참, 항상 여분의 포션을 마련해 놔. 어떤 상황이 들이닥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그것들은 우리들의 비자금이니까.”
아이스크림은 한 달에 일만에서 일만오천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 포션이 한 달 28일을 기준으로 사십만의 수익을 거둔다. 여기에 인건비, 재료비, 각종 세금을 빼면 순수한 이익은 삼십만 골드 이상이다. 물론 비자금인 포션 5,000개를 제외한 금액이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평민용 아이스크림도 벌이에 한몫을 단단히 할 것으로 예상한다. 귀족들이 먹는 비싼 과일이 아닌 싸고 인기 없는 과일들을 이용해서 만든 평민용은 단돈 10실링, 수량도 상당한 편이어서 세르핀에 머무는 아이들이나 여행객들은 하루에 꼭 한 번씩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게다가 이웃 왕국이나 제국에서도 소문이 널리 퍼져 그곳 귀족들이나 상인들도 친히 찾아와 맛을 보고 갈 정도란다.
8만이라는 거금을 들여 8등급 훈작사의 작위를 샀다. 왕가에서 조그마한 땅이라도 하사할 줄 알았지만 기대가 너무 큰 모양이다. 왕가는 아무런 반응이 없으며 도리어 주변에 귀족인 루팡 남작이 와서 자신의 수하로 들어오면 ‘땅을 주느니, 여자를 주느니’ 난리들이다.
‘뭐? 귀족들이 신의 사명을 받아? 흥이다.’
아이작 잡화점에서 채용된 직원의 수만 하여도 벌써 삼천 명이 넘어선다. 하루 1브론즈에 해당하는 일당이 나오며 추가 수당까지 지원하는 입장이어서 지원자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포션을 판매하는 직원을 포함한 100명과 물품을 옮기고 짐을 나르는 일꾼 400명, 과일을 채집하고 구매하는 인원 200명, 새롭게 상단을 꾸리며 호위를 할 용병들과 전사들, 짐꾼과 마부, 길잡이, 물품 관리원 등의 인원 1,300명을 제외한 1,000명의 인원을 더 뽑았다.
“남는 인원들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병사로 키워야지.”
“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들은 일반 평민들입니다. 기사나 전사들이 아닙니다.”
“알아, 그래서 체격 조건이 좋고 마나에 대한 이해도나 소통이 뛰어난 인원들을 뽑은 거야. 그들은 나와 함께 크라델 산맥으로 올라갈 거야.”
* * *
이종족들의 제국 리프(Reap)는 가장 많은 왕국이 연합한 제국으로 비옥한 토지는 없지만 풍부한 자원과 우수한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다.
엘프(Elf)들의 왕국이라는 숲의 왕국 엘도란(ELl―Doran).
드워프(Dwarf)들의 왕국인 불의 왕국 플루토(Pluto).
호비트(Hobbit)들의 왕국인 대지의 왕국 토가(Toga).
설인(雪人.Yeti)들의 왕국인 얼음의 왕국 아이네(Eine).
오크(Orc)들의 왕국인 투쟁의 왕국 도오스(Dose).
강철의 왕국 아르카이젠(Areu―Kaizen).
검의 왕국 아반크로스(Avan―Cross).
총 7개의 왕국이 크고 작은 혈연들로 묶인 제국 리프의 대지의 왕국 대표이자 제국에서 나온 사신 호비트 샘은 작은 몸을 열심히 이끌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건들의 가격을 깎고 있었다.
다른 사신들과 다르게 호비트들은 호기심이 많고 인간과 제법 친한 편이어서 항상 인간들의 거래를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이종족 사냥꾼들 역시 호비트를 잡아가 봐야 쓸모가 별로 없으며 난쟁이들의 저주가 제법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섣불리 건드리지 않았다.
“샘 나리. 이쪽에 있는 세공품도 제법 잘 나가는 물품이지요.”
“흥, 인간의 세공품들이 잘나가 봐야 드워프 영감들이 만드는 것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
“맞습니다. 역시 호비트는 현명한 것 같습니다.”
“푸히히히. 맞아. 호비트는 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