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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6. 상단 건설(2)


“어서 오십시오. 레이디.”
“허허허, 자네 나는 안 보이는가?”
“반갑습니다. 앙리 님. 그런데 어떻게 두 분이 같은 마차에서 내리시는지요?”
“하하하, 그건… 내 마차가 망가져 엠마 양이 도움을 주었다네.”
“그렇군요.”
앙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 자네 요즘 새로운 지부를 확장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어디인가? 새로운 지부의 위치는?”
“크라델 산맥입니다.”
“뭐야? 크, 크라델 산맥? 자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런데 그곳에 지부를 설립한다고?”
“그렇습니다. 몬스터의 위협이 있지만 이미 괜찮은 터도 알아 놨으며 공사에 필요한 대략적인 것들을 모두 구매한 상태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게나. 아니, 가즈온가에 좋은 상점 하나를 그냥 내어 주겠네.”
“죄송합니다. 이미 결심했습니다.”
“그곳에서 어떻게 물건들을 팔려고?”
“처음부터 제가 계획한 것은 잡화점의 규모가 아닌 대형 상단이었습니다. 크라델 산맥이 험하기는 하나 안전한 길들을 개척한다면 사막 왕국이나 이종족의 제국 등 많은 곳을 더욱 가깝고 자유롭게 거래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처럼만 장사한다면 10년 안이면 충분히 왕국에서 제일의 거상이 될 수 있을 텐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왕국과의 거래를 줄일 생각이며 크라델 산맥에서 장사를 하여도 충분한 금액을 벌 수 있는 계획을 이미 짜 두었습니다.”
“끙, 자네가 그렇게 장담한다면야 내가 뭐라고 더 해 줄 말은 없겠네.”
앙리는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계속 머리를 긁적이며 인상을 썼고 엠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로스트 님, 그곳은 너무 위험한 곳이에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크라델 산맥에서 조난을 당한 이후로 그곳은 제 안마당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도…… 아, 언제쯤 떠나실 생각이신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공사를 시작하고 건물을 지으려면 지금 당장 출발해도 늦습니다.”
“이보게, 너무 서두르지 말게나.”
“서두르는 것이 아닙니다. 계획대로라면 벌써 크라델 산맥으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그, 그런가?”
“아마 내일쯤이면 준비가 마무리될 것이고 그럼 한동안 볼 수 없으니, 어떠신가요? 오늘 같이 식사라도 하시는 것이?”
“아닐세. 나는 가 봐야 할 데가 생겨서 말이야.”
“그럼, 엠마 양은?”
“죄송해요. 저도 일이 있어서요. 로스트 님 그럼 부디 몸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도착하는 대로 통신 마법으로 연락을 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엠마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내 마음이 움직인다. 결국에는 꽃을 건네주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떠난다는 통보를 한 것일까? 꽃을 주며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설마 이건?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인가? 크크큭, 비틀려진 입술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느껴 보는 낯선 감정에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나쁜 감정은 아니었다.
며칠 후 크라델 산맥으로 떠나기 전 마법이 걸린 주머니와 배낭을 추가로 구매했다. 마법 주머니가 마차 한 대의 분량이라면 마법 배낭은 마차 수십 대의 분량을 집어넣을 수 있다.
새로 산 주머니에는 중요한 서류와 돈을 집어넣고 기존의 주머니는 하인츠에게 전해줬다. 배낭에는 각종 건설 재료와 음식 재료를 따로 집어넣었다. 마차도 수십 대나 구매해 각종 무구들과 장비들을 챙겼다. 대규모 인원들이 움직여서인지 아직 특별한 몬스터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 * *

“크륵, 저들은 뭐냐, 주인?”
“일꾼들이다. 부락들은 알아 놨겠지?”
“크륵, 다 안다. 카산 왕 된다.”
“좋아. 일단은 이것을 먹고 힘을 키워라. 내일부터 부락을 흡수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마법의 가루와 마정석 10개를 이용한 마법진을 그려 주었다. 마나 집약진과 비슷하지만 그 효능은 달랐다. 먹는 것으로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코볼트이기에 소화와 흡수를 돕는 마법진으로 탈바꿈하였다.
마정석을 흡수한 카산의 눈동자에 노란빛의 광채가 맴돈다. 몸의 크기도 기존보다 1.5배는 커졌으며 힘도 2배 이상 증가했다. 무기도 기존에 쓰던 다 녹슨 양손도끼를 버리고 중형 몬스터인 미노타우르스(Minotaur)가 다루는 대형 양날도끼로 바꿔 주었다.
물론 그냥 카산의 힘을 무작정 키워 주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가 되어 마나에 대한 구속과 제약을 걸 수 있게 된 나는 카산에게 왕으로 만들어 주는 대가로 나의 명령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마법 문서로 만들었고 서로의 피로 제약을 걸었다. 아마 먼저 계약을 어기는 자는 마나의 저주를 받으리라.
“이제 준비는 끝났다. 서서히 날아올라 볼까?”

드디어 녹티스 상단 지부 건설이 시작되었다. 마법사들은 흙을 파고 건축 장인들은 나무와 자재들로 틀을 만들고 인부들은 필요한 자재를 바삐 나른다. 겨울이 오기 전에 건물을 완성해야 했기에 사람들은 조금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바쁘게 몸을 움직이고 있다.
코볼트 부락의 합병은 예정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자신들보다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카산이 족장들을 단숨에 갈라 버리자 부락원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을 선택하였고 그렇게 점령한 부락이 벌써 열 군데가 넘는다.
그동안 카산이 먹은 마정석도 30개가 넘어간다. 부락을 합병하던 도중 강력한 마법을 쓰는 족장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부하로 쓰기 위해 예정보다 더 많은 마정석을 먹이게 되었다.

모든 일이 슬슬 잘 풀려 간다. 마법도 2서클을 마스터했고 아르하스크 연공법도 2단계에 올랐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서인지 요즘은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
나는 남는 시간 대다수를 통신 마법으로 엠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그녀는 수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나 귀족들에 은밀한 사생활, 상인들이 자주 구매하고 거래하는 물품들의 품목 등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어머? 로스트 님? 혹시 제 이야기가 지루하셨나요?”
“아닙니다. 엠마 양.”
“그런데 왜 아무런 말이 없으세요?”
“…….”
“풋, 과묵한 사람도 좋지만 때로는 여자의 기분을 헤아려 주는 남자에게 끌리는 게 여자랍니다. 로스트 님은 다 좋은데 여자의 마음을 너무도 모르세요.”
“…….”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우리 둘은 더욱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저기, 로스트. 이번 주쯤 그곳으로 놀러 가도 되나요?”
“엠마 양, 이곳은 위험한 곳입니다. 레이디가 오기에는 너무 험난하며 몬스터들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공사가 끝나는 대로 초대할 테니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하지만 걱정이 된단 말이에요. 로스트 님의 얼굴을 못 본 지도 벌써… 흑흑.”
“미, 미안합니다. 정말 지금은 위험해서 그렇습니다.”
“알았어요. 대신 공사가 끝나면 저를 꼭 불러 주셔야 해요.”
“꼭 그리하겠습니다.”
엠마의 기운 없는 목소리와 울음 섞인 목소리에 지금 당장에라도 그녀를 부르고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만 했다. 언제부터 그녀가 나의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그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 * *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추운 겨울을 알리는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온 세상은 하얀색 투성이가 되었다.
그동안의 시간은 직원들을 모두 정예의 요원으로 탈바꿈시켜 주었다. 각종 무술을 주로 수련한 직원 중 마법적 재능을 지닌 인원들을 따로 선발하여 마법사의 길을 열어 주었고, 학문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관리로 등용하였다. 또한, 각종 장인들을 포섭하여 그 재주를 익힌 새로운 장인을 만들었다. 적지 않은 돈과 희생이 필요했다.
몬스터의 천국이라는 크라델 산맥답게 하루에도 수십 번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었다. 용병 길드와 장기적으로 계약을 맺었지만 가끔은 용병들도 버거워하는 중급, 상급의 몬스터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엠마가 지원해 준 마법사들과 용병들이 힘을 합쳐 막아 내었고 주변에 코볼트들이 어지간한 몬스터들의 위협에서 그들을 지켜 줬기에 피해가 이 정도로 끝났지 아니었으면 이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서 정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방어를 위한 요새들도 만들어졌다. 세르핀 마을에서 일만 피코마다 설치된 망루와 기지들은 몬스터의 침공을 막는 교두대가 될 것이다.
완성된 건물의 규모는 상당하였다. 수천 명이 기거하며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와 기사 수련장을 방불케 하는 대형 수련장, 5층 규모의 본관과 3층 규모의 별관, 물건들을 만드는 공방과 그곳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기지. 건설비만 수백만 골드 이상이 들었으며 그 외에 들어간 금액을 합치면 어지간한 영지를 새로 만드는 금액이나 다름없었다.
“전투 요원 500명, 1서클 마법사 26명, 관리 150명 외 사망자 133명, 부상자 241명입니다.”
“사망자들의 유족들에게 충분한 보상금을 주고 부상자들에게는 회복을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도록 하게.”
“귀족들이 장인들을 다시 되돌려 보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알겠네. 장인들에게 충분한 여비와 용병들을 붙여 가는 길에 위험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쓰게나.”
“마지막 안건으로 도리안가에서 이동 마법진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도리안가에서? 이동 마법진을 설치하려면 상당한 돈이 들 텐데? 우리의 자금 보유 상황은?”
“그게, 좋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공사가 늦어져 추가로 발생한 경비도 그렇고 부상자나 사망자의 유가족들에게 돌아갈 피해 보상비로도 상당수 빠져나가 지금으로서는 이동 마법진을 운영할 예산이 없습니다.”
“이런, 큰일이군. 알았네, 도리안가에는 내가 직접 말하도록 하지. 아마 봄이 되고 날씨가 풀리면 상단을 본격적으로 운영하여 다른 왕국들과 교역을 시작할 테니 그때까지만 조금 참도록 하세나. 아마 그때는 제법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거야.”
나는 서기관과 총관 등의 직책들을 만들고 그에 걸맞은 실력자들을 그 자리에 올렸다. 일단 잡화점과 상단의 전반적인 일을 담당하는 총관에는 아이작 영감을, 마법 물품의 개발 및 개선을 위한 연구팀장이자 부상단주의 자리에는 하인츠를, 서기관으로는 청탑의 안내를 맡았던 피터를, 재정관에는 관리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던 휴(Hugh)를 뽑았으며 10명의 신입 관리들과 무술팀장, 관리팀장 등을 추가로 뽑았다. 재미있는 것은 상단 비밀 호위에 카산의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두툼한 살집을 자랑하는 노년의 사내가 불만에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아이작 영감, 요즘 살이 너무 찐 거 같은데?”
“흥, 나잇살이다.”
“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마. 자, 받아라.”
아이작은 보따리를 풀어 그 안에 담긴 수백 통의 편지들을 나에게 전해 주며 말했다.
“골라라.”
“이게, 다 무엇이지?”
“딱 보면 모르겠나? 청첩장이다. 여기 따로 빼놓은 것은 백작이나 제법 유망한 가문들이다. 올해 안에 이들 중 한 곳을 선정하지 못하면 아마 더 이상 상단을 운영하기는 어려울 거야.”
“운영을 하기 어려울 거라고?”
“그래, 왕가에서 새로운 법령을 제정했다. 일정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상단을 겨냥한 이번 법령은 하급 귀족들이나 상인들을 잡아먹는 빌어먹을 법이지. 새로운 법령에 관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