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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10. 후작의 선물(2)
“이번 일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허허허, 자네와 나 사이에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네.”
후작은 인심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절대 그 모습이 진실 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들에 비춰 잘 알고 있다.
“자네는 나의 초대가 달갑지 않은 모양이군?”
“아닙니다. 그저 갑작스러운 초대에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자네를 초대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이제 귀족의 반열에 올랐으니 사교 모임에도 나가 얼굴을 비추고 이렇게 귀족들과 어울리며 게임도 즐기고 하자는 의도이지.”
“혹시, 계약이 맘에 안 드시는 것인지요?”
“아닐세. 자네가 약속한 포션 일천 개가 적은 양은 아니지.”
“그럼, 혹시 포션을 만드는 방법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분명히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만드는 방법을 알려 드린다고 하여도 만들 수 없습니다.”
“알고 있다네. 왕궁 수석 마법사도 만들지 못하는 것을 내가 어찌 만들려고 하겠는가. 자네가 데리고 있는 그 마법사가 조금 탐이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하를 빼앗아 올 수는 없겠지. 하지만 최전방은 언제나 포션이 부족하다네. 자네도 크라델 산맥에 터를 잡았으니 잘 알고 있겠지만, 그곳에는 중상급의 몬스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습격을 해 오는 통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지.”
“꼭 살 수 없다고는 장담하실 수 없습니다.”
“하긴, 자네의 상단은 그곳에 터를 잡았으니. 자네들을 보면 과연 그곳이 크라델 산맥이 맞나 의문이 들기도 하더군.”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더 이상의 포션 지원을 무리입니다.”
“허허허, 그렇게 냉정하게 딱 잘라 말하지 말게나. 아참, 정계에 진출한 권력을 지닌 귀족들 대다수가 자네를 노리고 있다네. 알고 있나?”
“대충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자네 왕족파로 들어올 생각은 없나?”
“…….”
“꽤나 놀란 표정이구만.”
“왕족파라니 너무 갑작스럽군요.”
“세상일이란 것이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큰 그림을 그리게나. 지금의 자네는 너무도 위험한 존재라네. 자네가 귀족파로 가게 된다면 세력의 균형이 귀족파로 넘어갈 만큼…….”
“저는 앞으로 어떤 파벌에도 낄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중립을 지킬 뿐입니다.”
“욕심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만큼 야망이 큰 것인가?”
“제가 원하는 것은 그저 저에게 속한 사람들과 배불리 잘 먹고 잘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바람을 가지고 살기에는 자네의 능력은 너무도 비범해. 그 능력을 왕국을 위해 쓸 생각은 정말로 없나?”
후작은 은연중에 기세를 내뿜으며 주변을 짓눌렀고 나는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것도 협박이십니까?”
“하하하! 협박은 아닐세. 나도 모르게 그만 긴장해서 기세를 내뿜었네. 사과하지. 자네가 귀족파에 힘을 실어 주지 않는다면야 무리해서 왕족파로 넣을 생각은 없네.”
“그럼 다행이군요. 또 후작 각하와 말싸움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허허허, 역시 자네는 너무 안타까운 인재야. 입에 넣자니 너무나 크고 그렇다고 뱉자니 그 달콤한 향기에 이끌리니.”
“저를 너무 좋게만 봐주시는군요.”
“그만한 나이에 자네만 한 배포와 강단을 지닌 친구를 찾는 건 힘든 일이지. 내가 소드 마스터가 된 이후로 3명의 인물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네. 첫 번째로는 아르곤의 성기사 쥬 드 헬릭스(Jeu De Helix)경이라네. 그는 정말로 검술의 천재이지. 이미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나의 경지를 밟았으니 지금은 가히 그의 실력을 측정하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이라네. 두 번째로 감탄한 인물은 강철의 왕국의 국왕이신 델린 폰 카이젠(Delrin Pon Kaizen)님이시네. 그분의 괴력은 정말로 오우거에 비견될 정도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탄한 게 자네라네.”
후작의 과한 칭찬에 머릿속에 경각이 울리며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후작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짓더니 품에서 작은 반지 하나를 꺼내며 나에게 말하였다.
“자네에게 내가 선물을 하나 하지.”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냥 4서클의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 (Artifact)라네.”
후작은 그냥 별 볼일 없는 반지 하나를 던져 준다는 말투로 가볍게 말했지만, 그 물건의 가치는 보통 것이 아니었다. 4서클의 아티팩트가 담긴 물건은 일단 시중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물건이며 마탑에서도 그 수량이 정해져 있어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였다.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어떤 마법이 담겨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저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군요.”
“허허허, 부담 갖지는 말게나. 자네에게 내가 주는 선물이자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뜻이라네. 그 안에는 4서클 이하의 마법을 담을 수 있는 메모라이즈 마법이 담겨 있다네. 자네 정도의 마법사라면 2~3개의 마법은 동시에 쓸 수 있을 걸세.”
“…….”
“허허허, 그것은 오래전에 얻은 보물 중 하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기사인 내가 그것을 쓸 수도 없으며 다른 마법사에게 주자니 마땅히 줄 만한 걸출한 인물이 없더군.”
“휴! 제가 졌습니다.”
“허허허, 자네라면 그 가치를 충분히 알아봐 줄지 알았네.”
“500개의 포션을 더 납품해서 총 1,500개의 포션을 납품하겠습니다.”
후작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나 역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후의에 감사를 표했다.
11. 격변하는 정세(1)
삼 개월 전. 서쪽으로 저 멀리 모든 문명이 최고조로 꽃을 피우는 그곳. 문명들의 중심지인 밸트류의 거대한 왕궁에서 수많은 마법사들이 모여 한창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신기술입니다.”
“흥, 그까짓 왕국에서 만드는 포션이 뭐에 대단하다고?”
“아니, 그까짓이라니? 이 포션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녔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했던가? 끌끌끌, 그러니 아직도 5서클에 벽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야!”
“조용! 모두 조용! 사일런스(Silence)!”
노년의 검은 법관을 착용한 위원장이라 불리는 사내가 탁자를 내려치며 모두에게 마법을 걸었다. 장내가 고요해지자 위원장은 엄한 표정으로 마법을 풀며 말하였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포션의 비법을 훔쳐 오기라도 하자는 말이오? 아니면 그들에게 거액의 금액을 주고 매수해서 비법을 빼 오자는 말이오? 거기 회탑주 말해 보시오.”
“위원장님. 발언권 감사드립니다. 이미 저희 마탑에서 알아본 결과 검의 왕국에서도 포션의 제조법을 노리고 결국에 일을 벌여 그 비법을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
“흠, 그렇다면? 검의 왕국에서 포션을 제조한단 말이오?”
“그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제조법을 직접 눈앞에서 보여 줬지만, 그것을 따라 만들어 낼 수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검의 왕국의 마법사라면 4, 5서클 정도가 아니오? 그 정도라면 마법 실력이 부족해서 따라 하지 못한 것은 아니요?”
“그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 포션을 개발한 마법사의 실력은 고작 3서클의 익스퍼트 정도라고 합니다. 근래에 깨달음을 얻어 4서클에 들었지만, 아직 왕궁 수석 마법사를 따르기에는 부족함이 엿보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고작 3, 4서클로 그런 포션을 만든 것이지요?”
“저희가 알아본 결과 포션의 제조법이 워낙 난해하며 여러 가지 조합이나 배율 등 매우 높은 고등의 연금법을 요구하는 것으로 봐서는 마법적인 이해보다는 연금술 쪽에 이해도가 상당히 필요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럼 황탑 쪽에서 일을 맡으면 수월하겠군요.”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지금 당장 황탑의 손에 제조법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저희 제국의 근간이 흔들릴지도 모르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그 포션의 전략성은 정말로 무궁무진합니다. 일단은 일반 포션보다 효과가 좋으며 부여되는 능력도 세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지금 포션의 제조량은 일주일에 오천 개라고 알려졌지만 저희가 파악한 숫자는 적어도 7천 개 이상이 제조되며 그 대부분이 이종족의 제국인 리프에게로 흘러들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니, 리프라고요? 하필, 왜 그들에게?”
“검의 왕국의 국왕은 머리가 둔하고 성미가 급하여 포션의 제작과 판매를 도맡는 상단주와 몇 차례의 마찰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그 제작을 하는 마법사나 상단을 우리 쪽으로 영입하는 방법은?”
“그것은 힘들 것입니다. 마법사가 어려운 실정에 놓여 있을 당시 포션의 제작을 도와준 은혜나 친분을 따지고 든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옵니다.”
“아니, 그동안 우리 마탑에서는 왜 그런 뛰어난 마법사의 존재를 몰랐던게요?”
“그게, 송구스럽게도 각 마탑에서 욕심을 부려 포션을 날로 빼앗을 생각을 하다가 그만…….”
쾅!
위원장은 진심을 담아 테이블을 내려치며 강력한 역장을 내뿜었고 강력한 마나의 파동이 마법사들을 짓눌렀다.
“이런 중요한 일에 욕심이라니! 이 죄는 추후 엄중히 물을 것이오! 그나저나 큰일이군. 안 그래도 제국 리프에서 최근 들어 신형 마장기를 개발한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새로운 포션까지 그들이 손에 넣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그래, 해결 방법으로 모색된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지요?”
“최선의 방법은 역시…….”
해질 녘 마법의 제국이라 불리는 밸트류의 왕궁의 모처에서는 거대한 음모가 싹을 트고 있었다.
* * *
백색의 궁에서 새하얀 가운을 입은 교황은 근심에 잠긴 표정으로 성기사들에게 물었다.
“이단자 라빈단과 검은 악마(Black Devil) 에녹(Aenoc)에 행방은 어떻게 되었나?”
“이미 일급 수배령을 내린 상태이며 아반크로스 인근에서 그들의 행방이 발견되었습니다.”
“찾아라. 어떻게든 그들을 찾아 없애야 한다.”
* * *
뜨거운 열기가 이글거리며 황량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열사의 사막. 척박한 대지의 저주를 이겨 낸 사막인들이 사는 그곳을 우리는 죽음에 대한 경의와 존경을 담아 데스타드(Death―Tard)라 부른다.
“어찌, 대지의 토듐(Todyum)께서는 그런 멍청한 왕에게 과한 복을 내려 주셨단 말인가?”
“폐하, 신이 듣기로는 그들은 얼음으로 만든 과일도 먹는다고 하옵니다.”
“얼음으로 만든 과일?”
“그렇사옵니다. 아이스크림이라 불리는 그 음식을 맛본 이곳 상인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병에 걸릴 지경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