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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행 1권(4화)
第一章 과거(過去)(4)
여인이 죽었다.
동굴 안에서 사내의 품에 안겨 대화를 나눈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는 예정된 죽음을 맞았고, 그런 여인의 시신을 부여안은 채 사내는 오열했다.
지금껏 살아오며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던 사내다.
그런 사내가 부인의 시신을 안은 채 소리 죽여 오열하고 있었다. 슬픔을 이기기 위해 질끈 아랫입술을 깨물었으나 육신의 고통보다 큰 마음의 고통이 그로 하여금 결국 울게 만든 것이다.
그런 아비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기는 엄마의 젖을 찾아 잠자듯 누운 여인의 육신을 더듬는다. 그러나 죽은 여인은 자식의 부름에 답이 없고, 그 침묵에서 무언가를 느낀 듯 아기가 울음을 터뜨린다.
사내 이학과 마찬가지로 슬픔에 찬 울음을…….
여인 자소청이 죽은 지 한 시진.
사내 이학은 그 짧은 시간 자신의 마음을 추슬러야만 했다.
시간이 없기에.
아이를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더 이상 부인의 시신에 매달려 울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학은 죽은 자소청의 시신을 안은 채 빙벽(氷壁)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강(|)의 기운이 물든 자신의 검으로 빙벽의 한 곳을 잘라 내 그 속에 여인 자소청의 시신을 눕혔다. 죽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편안한 미소를 그린 자소청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이학은 이내 잘라 낸 얼음 조각으로 다시 그녀가 누운 빙벽의 빈 곳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를 혼자 두지 않겠소. 이곳을 빠져나간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그대를 데려갈 것이오. 그러니 부디 조금만 더 이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시오.”
답이 있을 리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사내는 쓸쓸한 미소를 그린 채 다시 동굴로 걸음을 옮겼다. 동굴 안에는 수혈이 짚여 잠이 든 아기가 있었으며, 이내 낡은 상의를 찢어 아기를 등에 질끈 묶은 이학은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 함께했던 검이다.
그 검을 바라보는 이학의 눈으로 처음 무공을 익힐 당시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감상은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 이학은 결정을 내린 듯 검신을 엄지와 중지를 이용해 조각내기 시작했다.
쩡!
맑은 소리와 더불어 힘없이 잘려 나간 검신이 총 여섯 등분으로 나눠지자, 이학은 그것을 손에 쥔 채 절벽으로 향했다. 자신이 처음 떨어졌던 절벽 앞에 선 이학은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먼저 긴 심호흡을 해 보았다.
기회는 단 한 번.
이곳에서 그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친다면 아마 자신과 아이는 죽고 말 것이다.
‘도박이다.’
말 그대로 지금의 선택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생명을 담보로 한 그 도박을 이학은 자소청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실천에 옮겼다.
파앗!
한순간 두 발에 내력을 가득 모아 폭발하듯 솟아오른 이학의 신형이 까마득한 허공 위로 솟구쳤다. 절정에 이르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알려진 천행비공(天行飛功)상의 비상천(飛上天)을 시전하자 이학의 몸은 절벽을 마주 본 채 일직선으로 솟아올랐으며, 그 위력이 다할 즈음 이학은 미리 준비한 검신 한 조각을 내력을 담아 눈앞에 자리한 절벽 틈 사이로 박아 넣었다.
정확한 힘 조절로 조각난 검신의 반만을 절벽에 박아 넣은 이학은 이내 그 지점을 스쳐 올라가다 떨어지는 자신의 신형을 미리 박아 놓은 검신 위로 올렸다.
팡!
짧은 소음과 더불어 이학의 몸이 다시 한 번 허공 위로 힘차게 솟구친다. 검신을 이용해 재차 비상천을 펼쳐 보인 이학의 신형은 마치 하늘을 날아오르는 매와 같았으며, 그는 비상천의 힘이 떨어질 시에는 또다시 검신의 조각을 이용해 재차 허공 위로 솟아올랐다.
“……?!”
그렇게 총 여섯 개의 검날을 모두 쓴 후 이학의 눈에 언뜻 희망의 빛이 어렸다. 얼마만큼의 높이를 올라왔는지 알 수는 없으나 저 멀리 절벽의 끝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거리는 생각보다 멀어 이학은 희망과 동시에 걱정을 머금어야만 했다.
비상천 자체가 내력의 소모를 많이 하는 데다, 이미 연속해 일곱 번이나 펼쳤기에 육신이 지쳐 있었던 것이다. 하나 이대로 떨어질 수도 없는 일이기에 이학은 공중에서 자신의 발등을 다른 쪽 발로 찍어 비상천보다 내력 소모가 적은 탄룡비(彈龍飛)를 펼쳐 보였다.
파앗!
순간, 다시 한 번 힘을 얻은 이학의 육신이 빠른 속도로 쏘아져 올라가며 절벽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길고 길던 절벽을 넘어섰다 싶은 순간, 이학은 몸을 풍차처럼 돌려 안전지대인 절벽 위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이내 긴 안도의 숨을 토하며 정면을 바라보던 이학의 눈으로 이채가 떠올랐다.
지독한 마기(魔氣).
일 년 전, 자소청과 대결을 펼쳤던 절벽 위에선 뜻밖에도 지독한 마기를 흘리는 백팔 명의 마인이 갑작스레 자신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학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일 년 전의 깔끔하던 모습과는 달리 남루해진 의복과 오래도록 깎지 않은 수염을 기른 채 아이를 등에 업은 이학의 모습을 백팔 명의 마인들은 기이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이학의 얼굴이 자연스레 굳어 들며 그 눈빛에선 차가운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자소청에게만 보여 주던 자상함은 사라진 채 오직 서늘한 기운만이 감돌기 시작한 눈빛과 어우러져 그의 전신에서 만인을 압도하는 기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니, 그 강인한 기도에 제압당하기라도 한 듯 백팔 명의 마인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무릎 꿇으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신 백팔마귀(百八魔鬼)의 후손들이 천마의 존체를 뵈옵니다!”
‘놀랍군. 기껏 저들을 이 먼 신강까지 유인해 왔건만, 스스로의 힘으로 절곡을 벗어날 줄이야.’
이학이 서 있는 절벽과 마주 보고 자리한 숲의 어둠 속에서 한 사내는 쓴 미소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일 년간, 그가 길림성까지 가 사내 이학의 식솔들을 이곳으로 유인한 일이 허사가 된 것이다.
‘뭐, 상관은 없겠지. 마제란 껍질을 벗고 새로이 천마란 이름을 물려받은 저자의 힘이 그만큼 강하다는 증거일 테니, 후훗.’
어둠 속에서 소리 죽여 웃었다.
이학의 힘이 자신의 예상을 빗나갈 정도로 강해 보였으나 그것이 오히려 어둠 속에 숨은 사내에게 기쁨을 안겨 준 것이다.
상대가 강하다는 것, 그것은 무인으로서 강한 자와 싸울 수 있다는 순수한 기쁨이었기에.
第二章 천마신공(天魔神功)(1)
차갑다.
동굴 안이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벽마저 얼어붙게 만들 만큼 차가운 기온이 유지되는 동굴 안에는 한기(寒氣)의 정체인 콩알만 한 빙정(氷晶)을 입에 문 채 투명한 얼음 속에 갇힌 여인이 존재해 한 사내를 마주했다.
자소청.
이미 육신은 죽었으나 빙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에 의해 썩지 않고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여인을 사내 이학은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부인, 이제 그 아이도 다섯 살이 되었소. 본궁의 율법에 따라 그 아이에게 무공을 가르칠 때가 된 것이오. 그대에게 약조한 대로 그 아이를 강하게 키울 것이오.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미소 짓는 사내의 말에 여인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이미 여인의 답을 전해 들은 사내는 가볍게 몸을 돌려 야광주(夜光珠)가 박힌 동굴 안을 빠져나갔다. 천천히, 여인과의 이별이 아쉬운 듯 걸음을 놀리며…….
***
푸른 하늘이 제법 싱그럽게 미소 지었다.
보는 이의 마음마저 맑게 해 주는 하늘을 창문틀에 손을 올려놓은 아이가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멍하니, 이지가 없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공허한 시선에 하늘이 부끄러운 듯 살짝 뭉게구름을 피워 올렸다. 그 광경이 신기했는지 아이가 작은 팔을 들어 푸른 하늘 위로 떠오른 뭉게구름을 손에 쥐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의 착각일 뿐, 구름은 여전히 아이의 손을 벗어난 채 자유로이 하늘을 유람한다. 금방이라도 잡힐 듯 보이던 구름이 유유히 자신의 손을 벗어나자, 아이는 뻗었던 팔을 내리며 다시 공허한 시선으로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있기를 얼마.
“무엇을 하는 게냐?!”
“…….”
문득 아이의 뒤에서 사나운 여인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매섭기 짝이 없는 여인의 질문에 아이는 천천히 몸을 돌려, 자기 방에 들어온 이십 대 후반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사내아이를 품에 안고 선 여인.
화려한 의복을 걸친 여인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은 공허했다.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은 공허한 시선으로 여인을 보던 아이는 무의식중에 한마디를 흘려보냈다.
“어머니.”
“……!”
순간, 무심코 아이가 던진 한마디에 여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음속 가득 차오른 살기를 그대로 얼굴에 드러낸 여인은 성큼성큼 아이에게 다가가 있는 힘껏 뺨을 올려붙였다.
짝!
“닥쳐라! 누가 네 어미란 말이냐?! 다시는 날 어미라 부르지 말라 그토록 일러두었건만, 아직도 날 어미라 부른단 말이냐!”
“…….”
돌아간 뺨 위로 붉은 손도장이 찍혀 아이에게 고통을 안겨 줬다. 그러나 그 고통을 아이는 느끼지 못한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대모(大母)님.”
“흥, 울지도 않다니 과연 죽어도 죽지 않은 그 계집의 피를 이은 놈답게 독하기 짝이 없구나.”
“…….”
“네 아비가 널 부르니 더 이상 네놈을 혼내진 않겠다. 하지만 다음에 또 날 어미라 부른다면, 네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
차가운 여인의 말에 아이는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자신의 방을 빠져나갔다.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재수 없다는 듯 노려보며 여인은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베어 물어야만 했다.
“죽은 년이 그분의 마음을 빼앗더니, 이제 그 자식 놈마저 내게서 그분을 빼앗으려 하는구나. 절대 뺏기지 않겠다, 절대!”
“엄마, 랑이가 아빠를 뺏어?”
문득 여인의 중얼거림을 전해 들은 품속의 아이가 입을 열어 물었다. 염원화란 이름을 가진 여인은 친자인 이청(李淸)의 물음에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해 주었다.
“그래, 너의 이복형인 이랑 저놈이 우리에게서 네 아비를 빼앗으려 하는구나.”
“안 돼! 아빠는 엄마와 내 거인 걸! 절대 뺏기지 않을 거야! 만약 아빠를 뺏으려 한다면, 내가 랑이를 혼내 줄 거야!”
독점욕이 강한 여인을 닮은 탓일까?
이청은 아이답지 않은 강한 집념이 담긴 눈길로 여인 염원화의 품에서 소리쳤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대견한 듯 염원화는 활짝 웃으며 이청을 꼭 안아 주었다.
“그래그래, 절대로 뺏겨서는 안 된다. 또다시 그분의 마음을 다른 자에게 뺏겨서는 안 돼! 그러려면 청이가 랑이보다 강해져야 한단다. 강해져서, 단지 일 년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후계자가 된 랑이를 꺾고, 네가 천마란 이름을 이어야 한단다. 내 말 알아듣겠느냐?”
“응. 걱정 마, 엄마. 내가 천마가 될 테니까!”
이청은 천마란 이름이 가진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물려받아야만 자신의 아비인 이학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어미의 말에 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힘 있게 답했다.
***
긴 통로다.
붉은 유등이 걸려 어둠을 밝히는 긴 통로를 지나 지하 연공실로 들어선 이랑은 한 사내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방이 꽉 막힌 연공실 위로 우뚝 선 사내 이학은 뒤에서 멈춘 아이의 발걸음 소리에 몸을 돌려세웠다. 그런 그의 눈에 제일 먼저 아이의 뺨 위로 선명하게 찍힌 붉은 손도장이 비쳐 들었다.
“어찌 된 게냐?”
“…….”
차갑다.
다정한 모습 따윈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차가운 눈과 말로 뺨에 난 상처에 대해 물어 왔다. 그 물음에 아이는 여전히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자신의 아비를 보며 답했다.
“하늘을 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대모님이 절 불렀어요. 대모님의 부름에 저도 모르게 어머니라 불렀다 맞았어요.”
“…….”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묻지 않았다면 말하지 않았을 이랑이나 물어 왔기에 그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이학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이학은 어찌 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염원화란 이름을 가진 여인.
그녀는 세상과 단절된 이곳 천마궁(天魔宮)을 관리하는 십이원로(十二元老) 중 하나인 마령대주(魔靈隊主) 염관의 친딸이다. 또한 그녀는 이학이 천마란 이름을 잇기 전부터 선대에서 정해 놓은 이학의 약혼녀였다.
애정이 없는, 단지 필요에 의해 정해진 약혼녀와의 혼례가 있기 전 이학은 자소청을 사랑하게 됐으며, 그녀의 죽은 육신과 아이를 데리고 이곳 천마궁으로 돌아왔다. 그런 이학의 행동에서 염원화는 죽은 자소청을 증오하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랑해 왔던 이학의 마음속에 자소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또한 그 증오심은 죽은 어미를 대신해 산 이랑에게 향했으며, 그것은 예정된 이학과의 혼례를 올리고 그의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녀의 증오심을 진작부터 알고 있던 이학이었으나 이랑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염원화에게 비록 애정은 없으나 미안함은 있었으며, 또한 그녀가 이랑에게 주는 시련이 그가 강해지기 위해선 필요하다 여긴 것이다.
자신이 본마음을 숨기고 이렇게 차갑게 대하는 것처럼.
“너의 나이 다섯. 오늘부터 관례에 따라 넌 내게서 본궁의 무공을 배우게 될 것이다.”
“…….”
더 이상 상처에 대한 말은 없었다.
단지 한 번 물어봤을 뿐.
그걸로 족하다 여긴 이학이었으며, 그의 말을 이랑은 그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 이랑을 이학은 기묘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상한 아이.’
분명 이상했다.
이랑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존재하건만 존재하지 않는 자처럼 이랑에게선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이 이성이 완성되지 않은 백지 상태에서 설혼심결의 기운을 받아들인 영향 탓임을 이학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공허함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차차 두고 보면 알 터.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 한 가지만은 필요했다.
그 필요한 한 가지를 아이에게 심어 주기 위해 이학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째서 무공을 배워야 한다 생각하느냐?”
“…….”
“그것은 강해지기 위해서다.”
힘이 깃든 아비의 말을 아이가 그대로 받으며 되물었다.
“강해지기 위해서?”
“그렇다. 강해지기 위해서! 그럼 어째서 강함이 필요하다 생각하느냐?”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이는 여전히 답이 없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이학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건 바로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
“또한 그것은 죽은 네 어미가 원하는 것이며, 네가 이곳 천마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강함이 없는 자, 천마의 이름을 이을 수 없을지니, 넌 강해져야만 한다.”
처음으로 공허하던 아이의 눈 속으로 한 줄기 빛이 떠올랐다. 다른 그 어떤 말도 아닌 죽은 어미가 원했다는 말에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이랑은 아비 이학의 도움으로 빙정의 한기를 누르고 자신의 친어미를 만났다. 죽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생생한 모습을 한 채 얼음 속에 갇힌 여인.
그 여인이 바로 자신의 친어미임을 이랑은 이학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으며, 이랑은 그런 여인의 앞에서 하루가 다 갈 때까지 시간을 보냈었다. 그녀의 눈을, 그녀의 입술을, 그녀의 생김생김 하나하나를 가슴속에 새기겠다는 듯.
그리고 지금 이학의 말을 전해 들은 이랑의 뇌리론 가슴속에 새겨 두었던 어미의 모습이 떠올랐다. 투명한 얼음 속에서 미소를 그린 채 자신을 반겨 주던 어미의 모습이…….
“아버지를 위해서, 어머니를 위해서, 그리고…… 제 자신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강해지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