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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행 1권(22화)
第八章 삼 년(三年)(4)
금방이라도 자신의 육신을 집어삼킬 듯했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파도는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해,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초유랑은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질끈 베어 물어야만 했다.
각오.
하나의 각오를 다진 사내의 검에선 일순 푸르스름한 기운이 일었고, 그 기운과 더불어 초유랑은 오히려 눈앞에 펼쳐진 붉은 파도를 향해 자신의 몸을 들이밀었다.
파바밧!
순간, 짤막한 소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며 몸과 함께 일직선을 그린 초유랑의 검이 똑같은 검로를 유지한 채 연속해 세 번 찔러 들어갔다.
월광섬(月光閃).
첫 번째 검선은 붉은 도광을 거두고, 두 번째 검선은 도광 뒤로 드러난 붉은 도신을 쳐 내니, 세 번째 검선은 튕겨 나간 도를 대신해 드러난 사내의 빈 가슴을 노렸다.
파앗!
짧은 소음과 더불어 세 번의 반복된 검로를 펼친 초유랑의 검이 백우의 가슴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으려 했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어느새 반신을 뒤로 젖힌 백우에 의해 초유랑의 검은 빈 허공만을 찔러 들어가니, 백우는 자신의 가슴 위로 검과 함께 얼굴을 드러낸 초유랑을 바라보며 히죽 웃어 보였다.
“어이, 어이, 설마 너, 이 형님을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글쎄요.”
애매모호한 답이었다.
그 답과 함께 웃고 있는 사내가 얄미우면서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조금 전 그의 검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검형(劍形).
이 년 전, 자신이 들었던 경지였다.
그 경지를 초유랑이 펼쳤다는 사실에 놀람보다는 만족감을 안은 채 백우가 소리쳤다.
“대단해! 하지만 그 정도론 날 이길 수 없다!”
“……?!”
파바밧!
뜻 모를 말과 더불어 백우의 몸이 뒤로 젖혀진 상태 그대로 뱅그르르 회전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비무대 바닥을 우족으로 차올리며 그 탄력을 이용해 누운 자세 그대로 풍차처럼 회전하기 시작한 백우의 모습에 초유랑은 급히 허공 위로 신형을 뽑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도기(刀氣).
백우의 몸과 함께 돌아가는 도에서 발산된 싸늘한 도기를 느낀 것이다. 그 섬뜩한 기운을 피해 허공 높이 날아오른 초유랑은 이내 자신과는 달리 비무대 위로 신형을 바로잡는 백우를 볼 수 있었다.
‘결판을 내려 하고 있다.’
굳어 든 사내의 얼굴이 그것을 증명했다.
신중한 얼굴이 되어 자신을 올려다보며 도를 끌어올리는 백우의 모습에 초유랑 역시 결의에 찬 눈빛과 함께 허공 위에서 신형을 뒤집어 보였다.
아래를 향해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초유랑의 검에선 다시 한 번 푸른 기운이 일었다. 그 기운과 더불어 초유랑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초식을 백우를 향해 펼쳐 보였다.
월하환마검(月下幻魔劍).
월영검법의 정수를 보여 주는 월하환마검이 펼쳐지자, 일순 장내론 푸른빛의 검광이 터져 나와 백우의 시야를 가렸다.
“…….”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초유랑의 검세를 바라보던 백우의 도가 기음을 토하니 그 기음과 더불어 붉은 도신 위론 핏빛 아지랑이가 일고, 꿈틀대던 기운은 이내 하나로 합쳐지며 완연한 형태의 붉은 도강(刀|)을 도신 위로 드러냈다.
“설사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거짓이라 해도 그 거짓마저 혈천의 기운은 모두 덮어 버릴 것이다!”
동시에 초유랑의 검세를 꿰뚫어 본 사내의 입에선 확신에 찬 말이 터져 나왔고, 그 말과 더불어 백우의 손에 들려 있던 도가 하늘로 향했다.
혈천마세(血天魔世).
혈천도법 중 가장 파괴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혈천마세의 도기가 하늘로 향하니, 그 도기는 이내 초유랑이 펼친 환검을 걷어 내며 그 환검 속에 숨겨진 진검과 격돌했다.
쾅!
“큭?!”
한 줄기 폭음과 더불어 초유랑의 몸이 다시 한 번 허공 위로 솟구쳤다. 답답한 신음을 내뱉으며 허공에서 줄 끊어진 연과 같이 팽글팽글 돌아가던 초유랑의 몸은 이내 백우와 일정한 간격을 둔 채 비무대 위로 떨어져 내렸다.
탁.
“…….”
짤막한 소음과 함께 비무대 위로 선 사내.
사내 초유랑의 두 눈이 백우가 아닌 자신의 검으로 향했다. 한 사내의 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이기지 못한 채 반 토막이 난 초유랑의 검은 곧 그의 패배를 나타내니, 결국 초유랑은 쓴 미소와 더불어 눈앞에 선 사내 백우를 바라보았다.
“오 년 전까지는 내가 이겼는데…….”
“오 년 전까지는 말이지.”
얄밉게도 웃으며 받아쳤다.
그 말이 한편으론 가슴을 쓰리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왠지 싫지만은 않았던 초유랑이었다. 결국 쓰린 마음을 긴 한숨으로 떨쳐 낸 초유랑이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린 채 백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오 년이네요. 형과 대결을 펼치지 않은 게.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라고요. 다음에는 지지 않겠어요.”
“…….”
눈앞으로 내밀어진 사내의 흰 손을 잠시 바라봤다.
마치 그 뜻을 파악하듯 바라보던 백우의 귀론 초유랑의 다짐 어린 말이 흘러드니, 백우는 이내 그의 손이 아닌 목을 휘어감은 채 한바탕 대소를 터뜨려 보였다.
“푸하하하! 다음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다음이냐?! 원래 동생은 형을 이길 수 없는 법이라고! 그런 간단한 이치도 모르는 것으로 보아 네놈이 확실히 건방져지긴 했구나!”
싸움이 끝난 지금.
두 사내는 서로 엉켜 웃으며 말을 주고받았다.
그 광경을 비무대 아래에서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입을 다문 채 두 사내의 어린아이 같은 장난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방금 전 펼쳐졌던 격렬한 대결과는 사뭇 다른 그들의 장난에 의아함만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오직 한 여인 자인영만은 서로 웃고 떠드는 그들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싸움이 끝난 지금 완전히 옛날의 관계로 돌아온 그들을 웃음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치, 나만 빼고 재밌게들 노네. 하긴 조금 있음 내 차례지만……. 하지만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난 결코 일자무식 네놈에게만은 질 생각이 없으니까.”
혼잣말이었다.
아직도 비무대 위에서 장난치는 두 사내를 결국 노백과 초현이 직접 끼어들어 잡아끌어 내리는 장면을 웃으며 바라보던 자인영의 혼잣말이었다. 그런 그녀의 혼잣말을 문득 한 사내가 뒤에서 받아쳤다.
“저자가 결승전까지 올라왔을 때의 이야기겠지.”
“……?!”
갑작스레 흘러든 사내의 말.
그 말에 자인영이 굳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백의 장포를 걸친 한 사내가 서서 그녀를 마주했다.
모든 것을 순백으로 물들인 사내.
검게 자란 머리칼과 졸린 듯 풀린 눈동자만을 빼고는 신발부터 입고 있는 의복까지 백색으로 물들인 사내의 모습에 자인영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 어린 말을 흘려 내야만 했다.
“뇌룡…….”
뇌룡(雷龍) 서무영.
백팔 가문 중 유독 강한 열두 가문이 있었으니,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힘을 자랑하는 뇌전마황(雷電魔皇)의 후손이었다. 그 힘의 증거로 오직 이 인자만이 오를 수 있다는 천마대의 대주가 바로 뇌룡 서무영의 아비인 뇌왕(雷王) 서곽이었다.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지?”
“…….”
이기는 것이 당연시되는 존재.
이번 대회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이며, 백우와는 다르게 오히려 이기는 것이 당연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서무영이다. 그런 그의 말뜻을 알고자 자인영이 다시 질문을 던졌으나 서무영은 여전히 나른한 눈빛으로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놈의 눈이?’
서늘했다.
졸린 듯 반개한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져 자인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서무영은 그녀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잠시 닫혀 있던 입을 열어 눈빛만큼이나 나른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별로, 뜻은 없다. 단지…… 저자와는 너보다 먼저 만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
“…….”
느슨한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자인영의 답은 필요치 않다는 듯 몸을 돌린 서무영은 걸음을 떼려다 무언가가 생각난 듯 다시금 입을 열어 보였다.
“사실 그 누가 대주가 되든 상관은 없다. 하지만…… 나보다 약한 자가 대주가 되는 건 원치 않는다. 그래, 너라면 괜찮을지도.”
미묘한 말이었다.
그 말 속에 담긴 뜻을 자인영은 충분히 읽어 냈다. 한 번도 대결을 펼친 적 없던 자신과 서무영이건만, 그는 마지막 말로써 자신의 힘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한 자의 인정.
그것은 분명 기쁨이건만, 자인영의 마음속엔 기쁨보단 불길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 불길함을 간직한 채, 그녀는 천천히 사람들 틈새로 사라지는 서무영을 굳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위험해, 저자는…….’
第九章 출관(出關)(1)
검(劍).
한 자루 검이 딱딱한 돌바닥 위에 꽂혀 있었다.
그 검과 떨어진 바위 위엔 한 사내가 정좌한 채 답답한 동굴 안 중앙에 꽂힌 검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사내.
사내 이랑은 제멋대로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고요히 잠겨 든 눈빛을 발하며 오직 자신의 검인 빙혼만을 응시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음인가?
문득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빙혼의 검신에서 기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안개가 퍼져 나가듯 서서히 검은빛의 기운이 일기 시작한 검에서 검은 기운이 뭉클뭉클 흘러 동굴 안으로 퍼진 것이다. 그 기현상을 마주한 이랑은 여전히 침묵을 지킨 채 단지 빙혼만을 바라보았다.
육 일 전.
검을 쥔 채 손을 통해 기운을 내뻗었던 때와는 달랐다.
천마강림을 펼치기 위해 허공 위로 뜬 검 속에 손을 이용해 진기를 전달하던 때와도 다르다.
의지(意志).
지금 이랑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무형의 기운을 검에 주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랑의 의지인 무형의 기운이 검 속에서 다시 유형의 기운으로 바뀌어 나타나니, 이는 오직 하나만을 의미했다.
환경, 육신과 마음이 기와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는 경지.
이랑은 천마심공에서 논하는 마지막 경지인 환경에 오르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야월의 도움을 통해 이미 오래전 그 육신만은 환경에 들어 변했다 하나 정작 중요한 깨달음은 얻지 못했던 이랑이다. 그것은 곧 반쪽짜리 경지를 의미하며, 부족했던 나머지 반을 이랑은 지난 삼 년간 보냈던 이곳 천마비동에서 지금 얻으려 하고 있었다.
이윽고.
스스스스…….
검을 통해 퍼져 나가던 기운이 다시 검신 위로 모여들었다.
마치 방금 전 펼쳐졌던 기현상이 거꾸로 흐르듯 모여든 기운은 이내 뚜렷한 강의 형태를 드러냈다.
우우웅, 파앗!
순간, 낮게 울부짖은 검이 기음과 더불어 마치 승천하는 용처럼 동굴 천장을 향해 솟아올랐다. 빠른 속도로 솟아오른 검은 금방이라도 동굴 천장을 뚫고 구름 너머로 사라질 듯했으나 그 강맹한 기운이 담긴 빙혼의 육신을 어느새 바위를 박차 떠오른 이랑이 가볍게 낚아챘다.
“…….”
착 달라붙는 손의 감촉이 익숙했다.
검신 위론 태양의 열기처럼 흑빛 기운이 일렁이고, 그 기운을 간직한 검을 너무도 익숙하게 손에 쥔 사내의 눈에선 한 줄기 신광(神光)이 뿜어져 나왔다.
파바밧!
검을 쥔 사내의 몸이 회전했다.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리며 회전하는 사내의 손엔 검이 들려 일정한 검로를 그려 내니, 순간적으로 열 개의 검영이 검신을 떠나 자유로이 허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암영천사(暗影千死).
천마검식의 후반 일식인 암영천사가 펼쳐진 것이다.
전반 구식인 천마강림과는 그 운용 면에서 큰 차이를 두며, 또한 내기의 소모 역시 천마강림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내력을 소모한다. 검을 통해 함께할 검영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한다는 것은 곧 그 검영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기를 주입해야만 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나 천마심공 뒤로 두 가지 경지를 더 나열하니, 열한 번째 단계인 천마신공(天魔神功)상의 극경에 든다면, 내기의 양에 구애받지 않고 일천 개의 검영까지 만들 수 있다고 전해지는 절대검식이 바로 암영천사였다. 그러나 극경에 든 이는 오직 초대 천마 이원영뿐이었기에 그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으며, 이랑은 지금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한계인 열 개의 검영을 떨어지는 육신과는 반대로 허공 위로 피워 올려 스스로 환경에 들었음을 증명했다.
탁.
“…….”
짤막한 소음과 더불어 대지 위로 선 사내.
사내 이랑의 두 눈이 허공으로 향하니, 이내 허공 위론 자유로운 새처럼 쉼 없이 움직이던 열 개의 검영이 존재해 그의 시선에 화답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펼칠 수 없었던 검식이다.
지난 삼 년.
그 삼 년의 시간 중 일 년을 백팔마동에서 보냈다. 그 속에 기록된 백팔마급을 단지 베껴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랑은 자신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몇몇 무공을 익힌 것이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후, 천마동에 든 이랑은 그곳에 기록된 천마검식의 후반식을 보고는 곧 깨달아야만 했다.
이론적으론 알고 있어도 환경에 들지 못하는 한 펼칠 수 없는 검식.
그것이 바로 천마검식의 후반식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곧 마제란 이름으로 천마도행을 시작한 이랑의 선조들 역시 환경에 들어 도행을 시작했음을 뜻했다. 그러나 그 시간적인 면에선 이랑과 많은 차이를 두었다.
십오 년.
결코 짧은 세월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긴 세월이라 표할 수 있으나 이학을 비롯한 그의 선조들은 더욱 긴 세월이 걸려 비로소 도행을 시작했다. 짧게는 이십 년에서 길게는 삼십 년을 넘어서야 환경에 들어 도행을 시작한 그들에 비한다면, 이랑이 무공을 익힌 십오 년의 세월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빠름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끝났다.”
문득 굳게 닫혀 있던 말문을 열어 보였다.
감정의 기복이 없는 무심한 말과 함께 몸을 돌린 사내 이랑은 밖이 아닌 천마동을 향해 걸음을 떼어 보였다.
그 자신이 아직 얻지 못한 한 가지.
극경으로 통하는 길을 초대 천마 이원영은 천마동에 적어 놓은 것이다. 그것은 오직 단 한마디 말이었으며, 그 속에서 무엇을 찾을 지는 이랑 역시 알지 못했다.
아마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
그러나 얻지 못해도 좋다.
앞으로 사 일.
사 일이란 시간이 남은 이랑은 그 시간 동안 그저 이원영의 말을 가슴속에 새기기 위해 천마동으로 향했다.
***
어둠 속.
비구름이 뭉쳐 든 방 안의 어둠 속에서 두 사내가 마주하고 있었다. 모두가 준준결승이 펼쳐지는 비무 대회를 보기 위해 마을 광장으로 모인 지금. 두 사내는 비밀스런 만남을 가졌으며, 그 둘 중 염관이 먼저 말문을 열어 보였다.
“준비는?”
“미끼는 던져 놓았다. 삼 년 전에 이미…….”
일부러 꾸민 듯 아무런 특색도 없는 음이었다.
그 자신과는 다르게 완연한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춘 사내의 무미건조한 음성을 흘려들으며 염관은 다시금 말문을 열어 보였다.
“지금쯤이면 완성이 되었겠지?”
“글쎄……. 그가 미끼를 물었다면 완성이 되었겠지.”
“훗, 그자라면 물고도 남지.”
잠시 대화가 끊겼다.
대화가 끊긴 어둠 속으론 미묘한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또다시 특색 없는 사내의 음이 염관의 귀로 흘러들었다.
“그는?”
짤막한 질문에 염관은 이청을 떠올렸다.
사내가 묻고 있는 인물이 자신의 외손인 이청임을 쉽게 알아채며, 염관은 음침한 미소를 입가에 띠어 보였다.
“걱정할 필요 없네. 삼 년 전 폐관에 들어 지금 진경에 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아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걸세.”
“그가 진경에 들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이 계획은 실패한 것이다.”
“크크, 너무 걱정 말게나. 그 아이라면 제 형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불철주야 무공에 전념할 테니.”
“그 말, 믿도록 하지.”
한마디 말과 더불어 모습을 감췄다.
더 이상의 대화가 필요 없기에 사라진 사내를 염관 역시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창밖으로 조금씩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을 향해 그 시선을 돌려세울 뿐이었다.
입가론 여전히 희미한 미소를 그린 채…….
‘이제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