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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행 1권(24화)
第九章 출관(出關)(3)


어제의 폭우가 거짓말 같았다.
중천 위로 떠오른 태양은 흰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 열기를 더하니, 그 뜨거운 태양빛 아래 마주 선 두 사내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백우와 서무영.
붉은 무복을 걸친 백우의 손에는 여전히 핏빛 도신을 드러낸 혈귀가 들려 눈앞의 사내를 향해 싸늘한 도기를 전했으나, 정작 그 도신을 마주한 채 선 사내의 눈은 그저 나른하기만 했다.
“싸울 생각이군.”
“…….”
졸린 듯 반쯤 감긴 눈으로 백우를 바라보며 서 있던 서무영의 말이었다. 그 말에 백우는 도신을 쥔 손 안 가득 힘을 주며 스윽 한 발 앞으로 내디뎌 보였다.
무언의 답.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준 그의 답에 서무영의 내려져 있던 두 손 사이론 기음이 일기 시작했다.
파지직.
가볍게 움직이는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전류(電流)가 그가 가진 힘을 보여 주니, 뇌전마공(雷電魔功)을 운용하기 시작한 서무영에 맞춰 백우 역시 혈류심공(血流心功)의 내기를 도신 위로 끌어올려 보였다.
파앗!
하늘을 향해 사선을 그리며 솟아오른 백우의 도신에선 한 줄기 바람이 이니, 도신을 벗어난 날카로운 바람은 곧장 거리를 둔 채 떨어져 있던 서무영을 향해 덮쳐들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에 서무영의 입가론 한 줄기 조소가 걸렸다.
도풍(刀風).
백우가 펼친 혈비도사(血飛刀死)의 도풍을 한눈에 꿰뚫어 본 서무영은 입가의 조소와 더불어 가볍게 손을 휘저어 보였다.
“겨우 이 정도였던가?”
귀찮은 듯 나른한 말과 함께 소매를 휘젓는 사내의 움직임에 한 줄기 폭음이 터져 나왔다.
쾅!
도풍 대 암력(暗力).
보이지 않는 두 기운의 충돌이 폭음을 불러일으키고, 그 소리와 더불어 충격의 여파가 전해지자 서무영의 신형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가볍게 어깨가 흔들린 서무영은 생각보다 강한 충격에 살짝 눈살을 찌푸린 채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
없다.
눈앞에 있어야 할 백우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 텅 빈 공간만이 자리해 사내 서무영의 눈 속에 비쳐 드니, 자연스레 그의 고개는 하늘로 향했다.
“……!”
은은한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어느새 눈앞으로 덮쳐든 사내.
도풍을 내쏟음과 동시에 혈영비를 펼친 백우의 신형은 앞이 아닌 위에서부터 사내 서무영을 향해 덮쳐들며 히죽 미소 지어 보인 것이다.
“미안하군, 겨우 이 정도라서!”
파바밧!
웃으며 던진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붉은 도강을 드리운 도신이 어지러이 흔들리며 서무영의 육신을 베어 오기 시작했다. 그 섬뜩한 광경에 서무영의 입가로 그려져 있던 조소는 사라지고, 대신 딱딱하게 굳은 눈빛만이 자리해 도와 함께 덮쳐드는 사내 백우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그 말과 함께 서무영의 전신에선 푸른 뇌전이 일기 시작했다. 몸 전체에서 일기 시작한 뇌전은 곧 그의 육신을 완전히 뒤덮은 채, 백우가 그려 낸 도광과 격돌했다.
콰과광!
“크윽?!”
연속된 세 번의 격돌음이 터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서무영의 머리와 양어깨를 위에서 베어 들어가던 백우는 그의 육신에서 일기 시작한 호신강기에 공격이 모두 막히고 만 것이다. 또한 그 세 번의 충돌은 백우가 전혀 상상치 못한 충격을 내부로 전달하며, 그의 입에서 절로 신음성을 토하게 만들었다.
뇌전(雷電).
마치 번개라도 맞은 듯 찌릿한 충격과 더불어 도를 손에서 놓칠 뻔한 백우는 인상을 찡그린 채 뒤로 몸을 날려 푸른 뇌전의 기운을 휘감은 서무영으로부터 멀어져야만 했다. 한편 서무영은 강과 강의 충격에서 오는 여파를 타고 뒤로 날아 떨어지는 백우를 바라보며 천천히 양손을 가슴 위로 끌어올렸다.
우르르릉.
“확실히 널 잘못 평가했다는 건 인정하지. 허나 이번 승부에서 결코 이변이란 없다.”
나직한 사내의 말과 함께 천둥음이 장내를 울렸다.
서무영의 몸 주위를 맴돌던 뇌전의 기운이 기이하게도 천둥소리를 내며 그의 양손으로 집중된 것이다. 각각 절반씩 나뉘어 사내의 손바닥 위로 모인 뇌전은 그 손 안에서 수십 줄기의 푸른 번개로 변해 한순간 하늘로 향했다.
뇌벽장(雷霹掌).
단순한 장력이 아니었다.
뇌전마공의 절기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 뇌전의 기운은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대지를 향해 내리꽂히는 것이다. 뇌벽장의 특징을 백우 역시 알기에 그는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려 혈귀에 주입하며 맑은 하늘을 향해 미친 듯 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과광!
장관이리라.
수십 줄기의 벼락이 비무대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분명 장관이었다. 그 놀라운 광경을 비무대 아래에 모인 모두가 감탄 어린 눈으로 바라봤으나 초유랑과 함께 선 자인영은 굳은 눈이 되어 두 주먹을 꽉 움켜쥐어야만 했다.
“믿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화답하듯 비무대가 파괴됨과 동시에 그 아래의 흙먼지가 일며 뿌연 안개 속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백우.
군데군데 타들어 간 넝마나 다름없는 의복이 결코 그가 뇌벽장을 전부 막지 못했음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상처 입은 육신 위로 드러난 두 눈빛은 살아 서무영을 향하니, 그 강한 시선에 움찔한 듯 서무영이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서며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어 보였다.
“어떻게?”
믿을 수 없었다.
눈앞의 사내가 자신의 예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뇌벽장을 쓴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사내는 자신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장공(掌功) 중 하나인 뇌벽장을 맞고도 태연히 웃으며 서 있었다. 그 여유로운 웃음 자체가 이해되지 않은 서무영이 물으니, 백우는 여전히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답했다.
“질 수 없거든. 앞으로 누가 되었든 난 질 수 없거든. 단 한 명만 빼고 말이지. 게다가…….”
문득 백우의 시선이 서무영이 아닌 그 뒤에 자리한 여인에게 향했다.
자인영.
맞은편 비무대 아래로 자리한 자인영을 바라본 백우의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그 짙어지는 미소와 더불어 도병을 쥔 손 안으론 꾸욱 힘이 들어가니, 강한 힘이 손을 지나 도신 위로 모이는 것을 느끼며 백우는 굳어 든 서무영을 향해 소리쳤다.
“날 믿어 주는 사람이 보고 있는 이 시합만큼은 더욱더 질 수 없단 말이다아!”
“……?!”
파앗!
서무영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과 이런 자신을 믿음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여인 자인영을 향한 말이었다. 그 말과 함께 백우의 신형이 비무대 바닥을 박차니, 그의 몸은 지면과 수평이 될 정도로 낮은 자세를 취하며 비쾌한 속도로 서무영을 향해 날아들었다.
“믿을 수 없다.”
빠르게 쏘아져 오는 사내.
그 사내를 보며 불신에 찬 말을 내뱉은 서무영의 자세가 처음으로 무너졌다. 지금껏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비무대 위로 당당히 서 있던 사내 서무영이 허리를 숙임과 동시에 우수를 비무대 바닥에 갖다 댄 것이다.
콰과과과과!
마치 땅이 파헤쳐지듯 서무영이 손바닥을 갖다 댄 비무대 바닥이 일직선을 그리며 파괴된다. 다가오는 백우를 향해 빠른 속도로 비무대를 파괴하며 쏘아져 나간 폭렬장(爆裂掌)의 기운은 이내 서무영의 의도대로 백우의 발아래로 전달돼 그의 육신을 밑에서부터 갈가리 찢어 놓으려 했다.
그러나…….
“차핫!”
외마디 기합성이 허공 위로 퍼져 나갔다.
그 기합성과 더불어 어느새 도병을 거꾸로 쥔 사내의 모든 힘이 도신 위로 집중되니, 이내 한 줄기 기음을 발한 도신은 더욱더 뚜렷한 붉은빛을 드리운 채 힘껏 비무대 바닥을 향해 내리꽂혔다.
쾅!
장내를 떨쳐 울리는 폭음.
그 폭음과 더불어 강한 충격이 도신을 넘어 육신 전체로 전달됐다. 일순 내부를 뒤흔든 충격에 기혈이 역류했으나 오히려 백우는 내기를 안정시키지 않고 끌어올릴 수 있는 모든 기운을 도신에 쏟아 부은 채 그대로 놀란 눈을 한 서무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우아아아!”
“말도 안 되는!”
붉은 도신을 파괴된 비무대 바닥에 꽂은 채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사내의 모습이 마치 악귀(惡鬼)와 같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예상을 벗어난 그의 이해 못할 행동에 서무영은 당황하며 어느새 지척에 이른 백우를 향해 장력을 흩뿌렸다.
콰과광!
또다시 폭음이 터져 나오며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는 두 사내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서서 마주했으며, 두 사내 중 백의 장포를 걸친 서무영은 불신에 찬 눈빛만을 발하며 가슴 앞에 멈춰 선 한 자루 도를 바라보았다.
혈귀도(血鬼刀).
백우의 도이다.
또한 그 도가 가진 이름 그대로 서무영에게는 자신의 눈앞에 만신창이가 된 몸을 우뚝 세운 사내가 마치 귀신같이 느껴졌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를 통해 장력이 그의 내부로 전해졌음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눈앞의 사내는 마치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다는 듯 그대로 도를 내뻗어 가슴 앞에서 멈춰 세운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 흐르는 피가 결코 그의 내상이 가볍지 않음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다가온 사내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된 서무영은 무거운 눈이 되어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지?”
“…….”
눈앞의 현실이 믿을 수 없다는 사내의 질문에 백우는 잠시 뜸을 들였다. 여전히 도를 서무영의 가슴에 댄 채 나머지 한 손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은 백우는 이내 자신의 머리를 톡톡 쳐 보이며 사내가 원하던 답을 전했다.
“남자의 승부란 건 말이지, 이치를 따져서는 안 된다고. 머리가 아닌.”
머리가 아니다.
어느새 아래로 내려온 손이 가슴을 툭툭 쳐 보인다.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서무영이 말없이 바라보자, 백우는 곧 히죽 웃으며 자신의 말을 끝맺었다.
“남자는 기백(氣魄)이다.”
“……!”
쿵 소리가 머리에서 울리는 듯했다.
어이없는 백우의 답에 충격을 받은 듯 잠시 굳어 있던 서무영이 이내 미친 듯 하늘을 바라보며 웃어 젖히기 시작했다.
“크크, 크하하하! 기백, 기백이라?! 후하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막으려 해도 스스로 주체치 못할 웃음이 가슴속에서부터 쳐 올라와 시원스레 하늘 위로 흘러 퍼졌다.
‘언제였던가, 이렇게 웃어 본 적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 누구와 비무를 하든 이기는 것이 당연시되어 왔던 자신이다. 그렇기에 아주 오래전 무공을 배우며 가졌던 즐거움을, 그 자신이 노력한 힘으로 남과 대결하며 가졌던 즐거움을 잊고 지냈다.
즐거움이 없기에 웃을 수 없었다.
그저 따분하고 지루한 나날 속에 항상 이기는 승부만을 펼쳤을 뿐이었다.
그런 자신이 졌다.
이기는 것이 당연시되던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가진 사내에게 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것이 분하다 생각되진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막혀 있던 가슴이 뚫린 것만 같아 이리도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즐거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즐거움을 백우란 이름을 가진 사내와 싸우던 중 자신도 모르게 찾았으며, 그 승부가 끝난 지금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자신이 즐거워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것.
눈앞의 사내가 아닌 자인영과의 시합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즐거움을 되찾은 서무영이 웃음을 그치며 백우를 바라봤다.
“너, 재밌는 놈이로구나.”
“엥?”
갑작스레 대소를 멈춘 서무영의 말이었다.
그 말에 백우는 웬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사내의 표정과는 상관없이 서무영은 지금 자신의 마음이 느끼는 바를 그대로 말로써 표현했다.
“왠지 너와는 좋은 친구가 될 것 같군.”
“쯧쯧, 아니지. 그게 아니지.”
미소 그린 사내의 말을 백우가 부정했다.
이미 그가 싸울 의사가 없음을 안 백우는 도를 도집에 집어넣는 대신 나머지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흔들며 짓궂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왜냐하면 넌 이제부터 내 수하가 될 테니까. 친구가 아닌 좋은 부하라 해야지.”
“……?!”
수하란다.
친구가 아닌 좋은 수하라 말하고 있었다.
지금의 말이 그의 진심인지 농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어찌 됐든 승부에서 패한 자신이 결승전에 오른 백우의 부하가 되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점을 인식한 서무영이었으나 그는 오히려 웃으며 몸을 돌렸다.
“후훗, 후하하하하!”
“…….”
재미있다는 듯.
그저 웃으며 몸을 돌린 사내가 비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백우 역시 그저 말없이 미소 그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귀로는 자신의 승리를 알리는 심판관의 외침과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흘러들었다.

척.
멈춰 선 걸음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방금 전의 대결이 거짓이라는 듯, 여전히 깨끗한 백의 장포를 걸친 채 차분한 모습으로 비무대 아래로 내려선 서무영은 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좋은 친구를 두었더군.”
“재미도 있고 말이지.”
“후훗, 확실히.”
친숙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같이 너무도 친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두 남녀의 모습에 초유랑은 의아한 눈빛만을 발해야 했다. 그런 초유랑의 의문과는 상관없이 잠시 대화를 나누던 두 남녀 중 사내 서무영이 먼저 발걸음을 뗐다. 자연스레 여인의 곁을 떠나 그녀 뒤에서 자신을 경계하던 초유랑을 스쳐 지나가던 서무영은 무언가 생각난 듯 걸음을 멈추고 자인영을 돌아봤다.
“참, 그렇지. 미리 축하를 해 줘야겠군.”
“무슨 말이야, 축하라니?”
사내의 알 수 없는 말에 자인영이 물으니, 서무영은 굳어 든 얼굴로 답을 전했다.
“아마도 네 친구인 그 백우란 자는 내일 시합에 나오지 못할 거다. 그의 내상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일 테니. 설사 나온다 해도 몸이 완벽히 치유가 되진 못했을 터. 그런 몸으론 내일 결승전에 올라갈 네 상대는 되지 못하겠지. 그러니 대주는 그가 아닌 네가 될 것이다.”
“…….”
사내의 말에 여인의 얼굴이 굳어 들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옆에 서 있던 초유랑의 얼굴 역시 굳어 들었으나 서무영은 단지 자신의 말만을 전하곤 다시금 앞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처음부터 자인영의 답은 기다리지 않았다는 듯.
“누나.”
“…….”
서무영과 자인영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백우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초유랑의 부름에 자인영은 무언가 생각하듯 답이 없었다.
‘내가 대주?’
원하던 자리다.
그러나 백우만큼은 아니었다.
그가 얼마나 대주 자리를 원하며, 또한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인영이었기에 서무영의 말은 그녀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실력이 아닌 어쩔 수 없이 제대로 된 승부조차 하지 못한 채 그는 자신에게 대주 자리를 내어 줘야만 하는 것이다.
“누나!”
고민에 빠진 여인.
말없이 침묵만을 지키던 여인은 또다시 들려온 초유랑의 외침에 문득 정신이 난 듯 그를 바라보며 닫혀 있던 말문을 열어 보였다.
“난 시합을 해야 하니 네가 내 대신 우한테 가 줘. 그리고 그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봐. 나도 시합이 끝난 후에 갈 테니까.”
“응, 알았어.”
답을 전하며 사라지는 초유랑의 모습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던 자인영은 이내 자신을 부르는 심판관의 목소리에 굳어 든 얼굴로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