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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1권(5화)
part 1. 변종(2)


‘차라리 수도가 있는 서쪽으로 가자. 좀 오래 걸어야 되겠지만, 일단 수도로 가면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야.’
수도만큼 사람들이 많은 곳도 없다. 게다가 무슨 위험한 상황이 국가에 닥치면 제일 먼저 수도를 보호할 것이다. 사람들이 많으니 정보도 더 얻고, 운이 좋으면 그곳에 있을 대피소 같은 곳에서 가족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방향 또한 그냥 해가 지는 방향으로 가면 되니 어렵지 않을 거다. 가는 도중에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는 아까보다 더 높이 떠올라 있었다.
‘아까 해가 저기에 있었으니까, 서쪽은 저쪽.’
그는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길할 정도로 정적에 휩싸인 도시는 오직 그가 걷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들이닥치고, 백골까지 봤던 터라 신경이 예민해진 그는 침묵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그는 건물들 중 특이한 몇 개를 볼 수 있었다. 불이 났던 흔적이 선명한 검게 그을린 건물 앞을 지나가면서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화재도 일어났었나. 경찰이 없다면 소방관도 없을 텐데 옆으로 번지거나 하진 않았군.’
처음 그런 건물을 봤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며 넘어갔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탄 건물들이 보이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불이 번지지도 않았는데 여러 곳에서 화재가 일어날 수 있나.
‘설마 방화?’
일부러 불을 냈던 걸까.
그야 그의 집안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혼란 속이었을 테니 방화를 하는 미친놈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 수가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방화를 하게 주변에서 순순히 놔두지는 않았을 텐데. 자칫하면 타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내버려 뒀다.
왜? 날이 추워서? 3월 달이라면 그 정도로 춥지는 않을 텐데. 게다가 설령 추워서 그랬다고 해도 건물 하나를 태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모르겠어.’
가면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 뿐이었다. 불에 탔던 건물들은 그가 걸음을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많아졌다가 어느 순간부터 적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집 주변에 있던 기묘한 식물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을 때와 비슷했다.
대신 그 기묘한 덩굴 식물들 대신 마찬가지로 보지 못했던 여러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식물들은 건물을 뒤덮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가 평소에 간간이 보았던 잡초들과 섞여 자라고 있었다. 그래선지 그의 집 근처 같이 오래된 유적 같은 분위기보다는 관리가 오랫동안 안 된 폐허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는 주변을 살피며 걷다가 문득 귓가에 울리는 소리를 듣고 놀란 표정을 들었다. 희미하긴 하지만 분명 이 소리는…….
‘새소리.’
생물이 살고 있다. 전이라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갔을 사소한 소리. 깨어나서 듣는 최초의 생물의 소리다 보니 무척 반가웠다. 마냥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그를 씁쓸하게 했지만.
‘지금부터는 다른 생물이 있다는 거야. 사람일 수도, 들개 같은 야생 동물들도 있겠지.’
새가 있다는 것은 벌레가 있다는 소리. 벌레가 있다면 벌레를 먹는 다른 작은 동물들도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작은 동물을 먹는 큰 동물들도.
사람이 있다면 작은 동물이라고 해 봤자 쥐, 고양이나 개 정도고 큰 동물은 없겠으나 이곳은 사람이 상당히 오랫동안 살지 않은 곳이다. 운 나쁘면 여우 같은 육식동물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 그런 그가 알고 있는 동물들보다도 신문에 쓰였던 ‘변종 동물’이 있을 수도 있었다.
‘변종 동물이란 거, 느낌이 안 좋아.’
그는 평소 때도 상당히 감이 뛰어난 편이었다.
가위바위보 같은 게임을 했을 때도 승률이 높았고 시험 때 객관식 문제를 찍을 때도 대부분 정답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래서 그를 부러워하며 우스갯소리로 공부는 때려치우고 다 찍는 것이 어떠냐며 낄낄거리곤 했었다.
소소한 부분에서 꽤 잘 맞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본인의 느낌을 더 믿는 편이었다.
그런 그의 감은, 변종 식물은 그렇다 쳐도 변종 동물이 있다는 것에 무척 불길한 느낌을 줬다. 변종 동물이라니. 보통 이상이 있는 동물이라면 돌연변이라고 하지 않나.
신문을 읽었을 당시는 그가 살고 있는 도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규모로 그런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에 놀라 잘 신경 쓰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런 막연한 것보다는 ‘갑자기 나타났다’는 변종 동물이 신경 쓰였다.
그는 목검을 오른손에 잘 고쳐 잡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계속 차도로 다닐까 싶다가 아무래도 훤히 보이는 차도보다는 부서진 자동차나 우체통같이 조금이라도 몸을 숨길 수 있는 물건이 있는 인도로 걷기로 했다. 인도는 차도와 마찬가지로 잡초들이 자라 있었다. 처음 보는 식물도 드문드문 보였는데 걷음을 옮기는 것에 방해되지는 않았다.
몇 시간을 걸었을까.
다행스럽게도 별 다른 생물을 만나지도 않고 그토록 오랜 시간 걸었음에도 불과하고 별로 지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체력이 이렇게 좋았었는지 조금 의아했다. 체력장을 할 때도 항상 상위 안에 들었던 체력인데다 한창 때이긴 해도 하루 종일 걸었는데 지치지 않다니.
어쩌면 정신적으로 긴장되어서 몸의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힐끗 자신의 몸을 살피며 생각했다.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다.
아직 노을이 되지는 않았지만 점점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변하는 것을 보아 얼마 있지 않으면 곧 밤이 될 것 같았다.
‘슬슬 잘 곳을 찾아봐야 되겠어.’
주변에 건물은 많으니 잠을 청할 곳은 많았다. 그는 잠을 자고 식사를 준비할 수 있을 건물을 찾기 위해 시선을 두리번거렸다. 이 상황에서 침대, 수도나 가스를 쓸 수 있을 정도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되도록이면 편하고 안전한 장소면 충분했다.
이윽고 그는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평범한 건물의 2층. 계단에 먼지가 쌓여 있고 별다른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야생 동물도 없을 거다. 사람도 없고. 유리창도 멀쩡한 것을 보니 저곳에서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시체도 없겠지.
그는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은 다행히 반쯤 열린 채로 끼익거리고 있었다. 잠겨 있었으면 곤란했을 텐데 다행이었다.
들어가 보니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기만 했을 뿐 식물들의 흔적도 없었고 접대용으로 보이는 편안해 보이는 소파도 보였다. 그는 소파에서 자기로 결정한 후 대충 그 근처의 먼지를 털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챙긴 식량 중 조리된 닭고기 요리가 들어 있는 통조림을 열었다. 통조림을 까는 법은 조금 난감했지만 혹 무기로도 가능할까 싶어 챙겨 둔 드라이버와 망치로 이용해서 힘겹게 열 수 있었다. 그럭저럭 먹을 만한 통조림을 다 먹은 후 그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문을 잠그고 자야지. 혹시 사람이나 야생 동물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조명도 하나도 없으니 밤에는 달빛이랑 별빛만 있겠군.’
그는 삐걱거리는 문을 닫고 잠갔다. 그리고 옷은 벗지 않고 그냥 소파에 털썩 눕고는 미리 꺼내 두었던 담요를 덮었다. 소파치고는 푹신하고 편했지만 잠은 쉽사리 들지 않았다. 그는 멍한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 아라… 다들 무사해야 할 텐데.’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걱정되었다. 반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들어가서부터 친하게 지낸 나인과 나힌 형제도, 특히 사귀는 사이라고 소문이 났었을 정도로 친한 다인이 걱정됐다.
다인과 그는 먼 친척 관계였었기에 부모님끼리 서로 친한 사이여서 성별이 다름에도 별 부담 없이 친해졌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 고등학교까지 대부분 같은 반이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다인은 몸이 건강한 편이지만 운동은 영 하질 못했고 본인 스스로 취미도 없었다. 그야말로 평범한, 아니, 운동 부족으로 오히려 더 연약한 편에 속하는 다인이 이 사태에 무사할 수 있을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자자.’
그는 억지로 불길한 생각들을 억누르고 담요를 뒤집어썼다. 그런데 그때,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르르르.
놀란 그는 순간 벌떡 일어나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창밖의 희미한 달빛에 사무실의 모습이 보였다. 숨을 멈추고 귀를 예민하게 세웠다.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잘못 들은 걸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랬나 보네. 그는 간단하게 결론짓고 다시 긴장을 풀고 자리에 누우려 했다.
아르르르…….
‘잘못 들은 것이 아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파 바로 옆에 세워 뒀던 목검을 재빨리 잡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어디서 나는 거지? 개 울음소리? 아니야, 이런 소리는 처음 듣는데.’
그는 긴장된 눈빛으로 문 쪽을 쳐다보았다. 문은 멀쩡했다. 그렇다면 밖에서 나는 소리라는 건가. 그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움직이면서 창가로 다가갔다.
밖은 이미 밤이었지만, 달빛이 워낙 밝아서 밖을 보는데 별문제는 없었다. 그는 머리만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사방을 살폈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눈동자가 소리의 근원지를 찾다가 마침내 한 곳에 고정됐다.
‘아…….’
그는 볼 수 있었다.
야행성인 듯 밤 속에서 그 생명체의 눈동자는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고양이와 비슷하지만 훨씬 위협적인 눈빛이었다. 덩치 또한 커다란 개와 비슷했다. 누르스름한 양 송곳니가 길게 튀어나와 인상을 더 무섭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털은 유난히 길고 거칠어 보였다. 텔레비전의 동물 관련 방송에서나 볼 수 있었던 늑대와 흡사하게 생긴 생물이었다.
하지만 그 생명체는 절대 늑대가 아니었다.
생김새는 비슷했지만 단 하나가 너무나 달랐다. 바로 이마에 있는 30센티는 될 법한 도드라진 뿔. 환상 속에서 나오는 유니콘 같은 동물의 뿔과도 달랐다.
톱날처럼 뾰족한 돌기 같은 것이 나 있는 그것은 뿔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무기에 가까웠다.
‘맙소사.’
다른 것은 그렇다 쳐도 저런 뿔이라니.
‘저건, 변종 동물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괴물이잖아…….’
누가 봐도 저건 게임이나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괴물이었다. 괴물은 어슬렁거리면서 길을 걷고 있다가 돌연 킁킁거리면서 바닥에 주둥이를 가까이 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저곳은 아직 어둡지 않았을 때 그가 서 있었던 곳이었다.
저 괴물은 자신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 이유는 싫을 정도로 너무나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사냥하기 위해서.’
말도 안 돼. 저런 것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총이라면 모를까,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목검에 불과했다. 도망도 불가능했다. 그는 2층에 있는데다 두 발로 뛴다. 결코 네발 동물을 달리기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
괴물은 한참을 냄새를 맡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어슬렁거리며 점점 그가 있는 건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무실뿐인 이곳에서 비상 탈출구 같은 것은 없었다.
피할 곳은 없다. 도망 칠 수도 없다.
‘겨우 여기까지 오고 끝인가? 다른 사람도, 가족도 만나 보지도 못하고? 저 괴물한테 먹혀서?’
그럴 수는 없다. 이대로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며 재빨리 괴물의 위치를 살폈다. 생각보다 그렇게 후각이 좋은 놈은 아닌 듯 그가 있는 건물과 다른 옆의 건물 사이를 왔다갔다거리고 있었다.
‘일단 문을 막아서 시간을 벌자. 잘하면 그냥 갈 수도 있어.’
그는 일단 소파를 문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가능한 조용히 그는 책상이나 가구들을 옮기며 문을 막기 시작했다.
아르르릉.
기이한 괴물의 소리가 아까보다도 더 가깝게 들리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으로 자꾸 힘이 풀리는 손을 억지로 놀리며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사람은 죽을 위기 앞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난다던가. 그래서 그런지 책상 같은 것도 별 어렵지 않게 옮길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무게가 나갈 만한 것들 중 절반 정도를 문 앞에 옮겼을 때, 그는 문이 쿵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쿵! 쿵, 쿵!
아우르르!
괴물이 왔다.
괴물이 문을 부수려 하는 건지, 잠긴 문과 문 앞에 쌓여진 물건들이 들썩거렸다.
‘젠장, 제발 버텨라!’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그는 들썩거리는 물건을 밀며 물건들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노력했다. 덩치가 큰 개 정도이기만 해서 그런지 예상보다는 강한 힘이 아니었다. 사무실 문이 나무가 아닌 다른 재질로 만들어진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한참을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을까.
잠시 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는 혹시 돌아갔나 싶어 조금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그때, 쾅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나며 문이 부서졌다.
충격으로 문을 막고 있는 다른 물건들도 흩어지고 그도 뒤로 넘어졌다. 뒤로 넘어지고 물건들의 파편이 부딪히면서 여기저기 상처가 나긴 했지만 그는 그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문은 부수고 나타난 것은 날카로운 뿔이었다.
‘뿌, 뿔로 뚫었어…….’
게다가 뚫린 흔적도 심상치 않았다. 어쩐지 뿔에 마치 톱날처럼 날카로운 돌기가 나 있다 싶었더니 상대의 목숨을 확실하게 끓으려는 의도인가 보다.
뿔로 난 구멍 주위는 형편없이 너덜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