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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1권(6화)
part 1. 변종(3)


‘뿔에 찔리면 그대로 끝장이야!’
그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정말 이대로 잡아먹혀 죽어야 하나? 뿔에 처참하게 찔러 죽어야 하는 거야? 그는 문을 뚫고 나온 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뿔은 곧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쾅 소리가 울리면서 다른 곳에도 뿔로 구멍이 뚫렸다.
문의 경첩은 이제 삐걱거리고 있었다. 아마 다음 한 번이라면 문은 완전히 부서지리라.
그는 바들거리는 팔로 애써 목검을 잡아 쥐었다.
목검으로 저 괴물을 죽일 수 있을까. 절대 무리다. 싸움은 사람하고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 괴물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반항도 하지 않고 죽을 수는 없었다.
뿔이 세 번째로 문을 들이받았을 때, 문은 결국 그의 예상대로 완전히 부서졌다.
괴물은 약간 흥분된 듯 기이한 소리를 울면서 그 앞을 가로막은 물건들을 사이로 그를 보았다. 괴물의 노랗게 빛나는 눈과 정면으로 마주치자 그는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멀리서 보았던 괴물의 모습은 달랐다.
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위압감이 생생히 전해졌다. 아마 의지가 약한 인간이라면 그대로 머릿속이 텅 빈 채 주저앉거나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포기하는 대신 다리에 힘을 주며 반대로 사납게 괴물을 노려보았다.
‘웃기지 마.’
괴물에게 잡아먹히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괴물 밥이 될 수는 없었다.
‘이대로 그냥은 절대 안 죽어!’
괴물이 문 앞의 물건들을 헤치고 들어왔다 괴물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괴물로서는 눈앞의 사냥감은 날카로운 이빨도, 힘찬 뒷다리도, 꿰뚫는 뿔도 없는 연약한 생물체에 불과했다.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괴물은 어슬렁거리며 그의 앞에서 천천히 걸어 다녔다. 사냥감을 탐색하는 눈이었다. 이번 사냥감은 여태까지의 것들과는 달리 반항을 할 모양이었기에 혹시나 모를 위험을 찾아보았다.
얼마 전까지 간간이 보이던 사냥감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무리로 흩어지고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덕분에 항상 배부르게 먹었던 괴물은 최근에는 약간 허기진 상태였다.
괴물은 더 이상 상대를 탐색하는 것을 관두고 이빨을 드러냈다. 어차피 약하디 약한 사냥감이었다. 더 이상 탐색할 필요는 없다.
뒷다리에 힘을 주며 뿔이 있는 머리를 낮추었다. 한 번에 꿰뚫어 죽일 생각이었다.
그는 괴물이 몸을 낮추는 것을 보고 공격할 거라는 것을 짐작했다. 저 잔혹한 뿔로 자신을 꿰뚫으려고 하겠지. 그는 두려움으로 감기려는 눈을 애써 똑바로 뜨면서 괴물을 바라보았다.
‘보지 못하면 공격도 못해. 눈은 감으면 안 돼.’
두려워서 눈을 감는 순간 끝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깨달았다.
문을 막으려고 움직이고 있을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지만, 괴물과 아무런 장애물 없이 마주 선 순간부터 점점 그의 머릿속에는 강한 생존 욕구로 꽉 채워지고 있었다.
‘죽기 싫어, 죽기 싫어!’
바로 그때, 그가 문 앞에 쌓아 두었던 물건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듯 괴물이 뒷다리로 바닥을 박찼다.
총알처럼 덮쳐 오는 괴물을 피해 그는 본능적으로 온 힘을 다해서 옆으로 움직였다. 괴물의 뿔은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나 괴물은 네발짐승 특유의 재빠름으로 바닥을 다시 한 번 박차고 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2초도 채 흐르지 않았을 빠른 움직임이었고,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었다. 그래야 정상이었다.
한데 그는 놀랍게도 엄청난 행운인지 아니면 특유의 쓸 만한 직감 때문인지 뒤에서 무언가를 박차는 소리를 듣는 순간 바로 몸을 젖히고 있었다. 그 덕분에 두 번째 공격 또한 피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물어뜯으려는 괴물의 벌린 주둥이 옆에서, 들고 있는 목검으로 있는 힘껏 목을 내려쳤다.
카릉!
괴물이 고통 어린 울음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나며 분노의 빛을 보였다. 으르렁거리는 주둥이가 침을 뚝 떨어뜨렸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는 이미 공포를 느끼지 못했다. 이미 그저 죽기 싫다는 생각, 그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괴물이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싸울 마음은 들었으나 어떻게 싸울지 감도 잡히지 않은 그는 일단 이번에도 피하려고 했지만 아까와 반대로 이번에는 운이 나빴다.
‘아?’
그는 몸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짧은 순간, 그의 눈이 바닥으로 향했다. 아까 문 앞에 쌓아 두었다가 부서졌던 잔해를 중 하나가 그의 한쪽 발밑에 깔려 있었다. 이번엔 시선이 다시 앞으로 향했다. 보이는 것은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
‘안 돼, 피해야……!’
허공을 반쯤 떠 있는 왼쪽 발과 흐트러진 균형. 그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시선에 비친 괴물의 입이 움직였다.
‘못 피해!’
“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왼쪽 어깨에 날카로운 이빨이 파고들며 뜨끈한 피가 튀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짐과 함께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큭, 헉, 아흑…….”
바닥에 처박히는 추락에 괴물의 이빨이 더욱 깊게 박혔다. 처음 물렸을 때보다 점점 심해지는 고통에 비명을 제대로 지르지도 못했다. 괴물은 잡아 뜯듯이 입을 열지 않은 채로 고개를 쳐들었다.
촤악, 찌익 소리가 들리며 붉은 피와 두터운 재킷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악!”
그는 반사적으로 고통에 오른쪽에 쥐고 있던 목검을 위에 올라탄 괴물을 향해 휘둘렀다. 괴물은 아까 목을 맞았던 기억 때문인지 흠칫거리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상처를 입고 이기기보다는 안전하게 이기기를 바라는 모양인지 아까보다 신중한 움직임이었다.
괴물이 몸 위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안 그는 고통에 신음을 내면서도 일어났다.
아프다고 바닥에 뻗어 있다가는 죽는다. 이대로 있다간, 죽는다! 그는 그 생각에 몸을 움직였다. 몸을 관통하는 아픔에 더욱 발버둥 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행운은 그의 재킷이 두꺼웠고, 어깨에 쇠장식과 괴물의 이빨과 부딪혀 위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깨의 상처는 깊었다.
개과 괴물의 힘은 나무 정도는 입으로 간단히 부술 만큼 강했으니까. 그런 괴물에게 제대로 물리지는 않고 겉만 살짝 물렸기에 이 정도인 것이다.
제대로 물렸다면 즉사였으리라.
그러나 겉만 물렸다고 해서 웃어넘길 상처는 결코 아니었고, 어른스럽다지만 그래 봤자 고등학생이 견딜 고통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파, 아파!’
피가 그의 왼쪽 팔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강해진 피 냄새에 거리를 재 두고 빈틈을 노리려는 괴물의 눈에 점차 흥분감이 번져 갔다. 고통에 반쯤 마비된 머리지만 그는 괴물의 움직임에 몸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또 공격할 거야!’
이렇게 다친 상태에서 피할 수 있을까? 아프다. 어깨가 너무 아파. 또 공격하면 죽을 거야. 저 뿔에 찔리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아아, 생각하기도 싫어. 무서워. 아파.
여러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의 눈이 흐릿하게 변했다. 고통과 출혈, 정신적인 압박감에 이성을 완전히 잃어 버렸다.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적을 마주했을 때 인간이 하는 행동은 대부분 두 가지다. 하나는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것과 적에게 무턱대고 돌진하여 무기를 휘두르는 것.
그는 후자에 속했다.
“싫어… 죽기 싫단 말이야!”
그는 소리치며 목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나 검도를 겨우 5개월밖에 안 배우고, 그나마도 관둔 지 1년 가까이 지난 베기는 너무나 어설펐다. 무엇보다 왼쪽 어깨도 심하게 다친 상태로 날카로운 공격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괴물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가볍게 피하고 그를 그대로 덮쳤다. 그때 그가 반사적으로 목검을 잡아 막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짙은 고동색 목검 하나가 간신히 괴물의 주둥이를 위태롭게 가로막고 있었다.
캬르르르!
괴물의 뜨거운 입김과 침이 바로 눈앞에서 보였다. 다른 것보다 두드러진 누런 송곳니와 육식동물의 이빨.
“아악!”
주둥이는 막았지만 괴물의 발톱이 오른쪽 어깨를 스쳤다. 왼쪽 어깨는 물리고 오른쪽 어깨는 할퀴어졌다. 추가된 고통에 눈물이 흐르면서도 손에서 그는 힘을 빼지 못했다. 힘을 빼는 순간 죽을 테니까.
하나 부상을 입은 양 어깨의 상태 때문에 힘은 자꾸 빠져 갔다.
그를 극심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투둑. 미세한 소리가 공기 중에 퍼졌다. 목검에서 난 소리였다. 목검은 툭, 툭 소리를 내며 망가지고 있었다. 그가 힘이 빠지는 것보다는 목검이 부서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운 좋게 이빨에 걸리지 않고 입가에 걸려서 부서지지 않았지만 육식동물이란 것들은 턱 힘이 굉장히 좋았다. 어깨를 물렸을 때 옷 따위는 간단히 찢어진 것을 보기만 해도 알았다.
목검은 얼마 가지 않아 부서질 것이 분명했다.
‘죽을 거야… 이대로 가면 죽을 거야……. 무슨, 무슨 방법이!’
그는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았다. 강한 힘으로 덮쳐진 상태에서 무언가 상황을 타개할 것을. 생명을 구할 수단을 찾아 절박하게 눈을 굴렸다.
그리고 그는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드라이버를 볼 수 있었다.
아까 통조림을 따는 도구가 없어서 급한 대로 드라이버로 꾹꾹 눌러서 강제로 열었고 그것을 그냥 그대로 탁자 위에 두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쓸 예정으로. 하지만 그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괴물이 날뛰는 도중에 탁자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다.
‘기회는 한 번. 실패하면 죽어!’
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었다.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어차피 이 방법밖에 없어!’
할 수밖에 없는 최후이자 최선의 방법이라면.
그의 눈에 망설임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상처로 인한 아픔도 그 순간은 잊었다. 남은 것은 오로지 죽이고 살아남겠다는 생존 의지.
그는 온 힘을 다해 괴물의 복부를 무릎으로 찍었다.
순간적으로 내려 덮치는 힘이 약해졌을 때, 그는 목검을 잡고 있는 팔 하나를 뻗어 드라이버를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찔러 넣었다.
“죽어어어어!”
캬아아아아아아!
살고 싶어 발버둥 치는 인간 목소리와 괴물의 비명이 얽혔다.
드라이버는 괴물의 눈에 정확하게 꽂혔다. 가까운 거리이기에 빗나가지 않고 드라이버의 손잡이만 남을 만큼 깊숙이, 정확히 꽂힐 수 있었다. 괴물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날뛰기 시작했다.
그 덕에 괴물의 아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괴물이 날뛰면서 할퀴어진 상처가 곳곳에 남았다.
그 정도도 그가 괴물이 날뛰는 모습에 몸을 날리다시피 옆으로 피한 덕분이었다. 그냥 괴물에게 치명상을 입혔다고 멍하니 있었다면 괴물의 발톱에 짓눌려 죽었으리라.
캬아아! 캬악!
괴물은 지독한 고통 때문인지 그가 부들거리며 구석으로 도망친 것에는 신경 쓰지 못했다. 괴물은 사무실의 책상, 벽에 부딪히며 절규했다. 쾅쾅, 거친 소음과 괴물의 울음이 피투성이의 사무실을 울렸다.
그러다 방향을 창문 쪽으로 잡더니 있는 힘껏 그곳으로 달려들었다.
쨍그랑! 창! ……쿵!
유리창이 요란하게 깨지는 소리와 밑에 묵중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걸로 괴물의 비명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괴물이 죽었다.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갑자기 곳곳에 입은 상처가 쓰라렸다. 특히 왼쪽 어깨는 죽을 정도로 아팠다. 그런데 생전 처음 느끼는 고통들이지만 어쩐지 아까처럼 아프지는 않았다.
아니, 아픈 것은 분명했다.
단지 왠지 스스로의 상처가 아니게 느껴졌다. 현실감이 없었다. 그는 시선을 내려 몸을 살폈다.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운 검은 재킷과 회색 셔츠는 곳곳이 찢어진 것은 둘째 치고 너무나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의 피라기에는 지나치게 많았다.
괴물의 피였다. 괴물의 눈을 찔렀을 때 튀었던 피들.
물컹하게 파고들어 갔던 감촉이 기억났다. 그는 멍한 눈빛으로 붉게 물든 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살았어.’
저 괴물과의 승산 없는 싸움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살아 있다. 기뻐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하염없이 눈물이 나올 만큼 괴로웠다.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깨어난 후에는 그럴 일투성이다.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움직이려고 하자 상처의 고통이 강렬해지면서 도저히 설 수가 없었기에 그는 포기하며 도로 주저앉았다. 방금 전까지 어딘지 흐릿하게 느껴졌던 고통이 점점 강해졌다. 동시에 머리도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아파…….”
그는 구석에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한계였다.
“엄마, 아빠… 아파……. 너무 아파…….”
그들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살아 있는지 조차 모르는 가족을 부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절하듯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