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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1권(8화)
part 1. 변종(5)
캬아아! 니야아아아!
정적 속에서 쫓아오던 것이 언제였다는 듯 고개를 돌린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날카로운 소리로 울어댔다. 요란하면서도 앵앵거리는 소리에 귀가 아파 왔다.
귀를 틀어막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거리는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따돌려야 해. 절대 다 못 죽여.’
어떻게? 그는 자신이 수도로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수도로 향하는 길은 차로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강 위에 다리를 세워 시간을 단축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도와 가깝다는 이점 덕분에 그가 살았던 도시가 급속도로 발전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알 수 없는 식물들과 난리의 후유증으로 폐허가 됐지만.
‘맞아, 강!’
수도와 그의 도시 사이에 있는 강. 다리를 놓았더라도 여전히 밑에 흐르는 강물은 맑았다. 자갈과 모래도 깨끗하고 고았으며 가장 자리의 유속은 거의 없어서 여름철에 사람들이 그곳으로 피서도 갈 정도였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해.’
강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당장 고양이 떼를 따돌릴 방법은 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는 거지 수영을 못하는 것이 아니지만, 물속에서 고양이의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니까.
걸리는 것은 물속에 사는 괴물이 있다거나 강 주변에 있을 경우.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스스로의 운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보이는 거라고는 잡풀로 무성한 차도와 그 주변에 우거진 나무들밖에 보이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추측하자면 차도 전용도로가 시작된 지는 꽤 오래 되었으니 곧 강이 보일 거라는 것 정도.
그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그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회의적인 생각을 했다. 몇 분 동안 뛰었지? 이렇게까지 최고 속도로 오랫동안 달려 본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다. 운동은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필사적으로 하지는 않았으니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숨이 차올랐다. 금방에라도 다리에 경련이 일면서 쓰러질 것 같았다. 다행히 따라잡히지는 않았지만, 역시 예상했던 대로 따돌리지도 못했다.
‘강까지… 어떻게 해서든 강까지 가야 하는데……!’
“큭!”
부담감 때문이지 바닥의 돌부리를 미처 보지 못하고 걸려서 휘청거렸다. 짧은 신음과 함께 간신히 균형을 잡아 넘어지지는 않았으나 그 잠깐의 틈이 문제가 되었다.
캬아아앙!
무리 중에서 유난히 빨랐는지 다른 녀석들과 약간의 차이로 선두에 섰던 고양이 한 마리가 겨우 균형을 잡은 그에게 달려들었다. 여태껏 외면의 귀여움에 몰랐던 고양이의,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였다.
도망치는 사냥감은 다리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지 하필이면 물어뜯으려는 곳은 다리. 그것도 발목 부근이었다.
‘손에 든 각목을… 아냐, 느려. 차라리……!’
찰나의 순간 수십 가지의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그는 그중 가장 최선이라 생각되는 방법을 택했다.
놀랍게도 그는 물어뜯기기 직전에 놓인 다리를 애써 피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반대로 몸을 살짝 비틀어 달려드는 고양이를 향해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있는 힘껏 차 버렸다.
냐아아아앗!
아무리 이빨이 날카롭고 몸놀림이 잽싸다지만 서로의 체격이 너무 달랐다. 얼핏 재도 열 배에 가까운 차이. 몸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고양이 한 마리라면 잡거나 이기는 것은 무리여도 반항은 충분히 가능했다.
고양이는 그의 공격을 예상치 못했는지 제대로 맞아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공중을 날았다.
‘점심시간 때마다 축구한 것이 이럴 때 도움되는군.’
축구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년간 대부분 점심시간 때마다 축구를 했던 그다. 그 발차기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발차기에 맞았던 고양이가 착지도 못하고 땅에 떨어져 꿈틀거리는 것을 보며 그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골랐다.
“하아… 후우, 제길!”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야로 보이기 시작하는 고양이 떼를 보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다시 뒤돌아 달릴 수밖에 없었다. 무리 중 하나가 당한 것을 보아서 그런지 더욱 날카로운 소리가 뒤에서 울리고 있었다.
다시 뛰기 시작한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리에 점점 힘이 빠지고 있어…….’
좋지 않다. 속도가 아주 조금씩이지만 느려지고 있었다. 강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고민하긴 했다. 강이나 그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괴물과 스스로의 체력.
생명이 달려 있었기에 그도 필사적이었다. 덕분에 그가 평소 짐작하고 있던 스스로의 체력보다는 훨씬 잘해 줬지만 이제 한계였다.
‘강까지는 앞으로 최소 10분은 더 남았을 텐데.’
차로는 금방이었기에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체력이 남아 있을 때 고양이 떼와 싸울 걸 그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왼쪽 어깨의 상태 가지고는 싸우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이 순간 뛰는 것에도 왼쪽 팔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고통을 주고 있었다. 어깨가 붉게 물들고 있는 것을 보니 상처도 더 벌어진 모양이었다.
처음이야 괜찮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거칠게 뛰니 상태가 악화된 것이다.
“하아, 하아…….”
눈앞이 흐려질 정도로 숨이 막혔다. 쉬고 싶었다.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였다. 조금도 쉬지 못하고 다시 뛴 것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눈앞에는 여태까지 없었던 오르막길이 모습을 보였다. 지친 상태에서 오르막길이란 끔찍하게 느껴졌겠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희망이 생겼다.
‘오르막길이야! 기억나! 이 길만 지나가면 강이다!’
조금만 더 가면 살 수 있다. 고양이 떼를 따돌릴 수 있어!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달렸다.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점점 느려지는 속도는 어떻게 할 수 없는지 뒤의 고양이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다. 그래도 괜찮다.
‘강에만, 강에만 도착하면……!’
오르막길에 오른 그는 표정을 밝게 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강 바로 위에 세운 다리니 만큼 처음 아래는 그다지 높지 않다. 옆에 강 주변에서 피서 가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따로 빼 두긴 했지만 그렇게 돌아갈 힘이 없었다. 그러니 그곳에서 뛰어내리면 된다. 그러면 저 고양이 떼를 따돌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뛰어내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대신 그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그대로 다리를 멈췄다.
‘강에만 도착하면…….’
털썩.
그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는 완벽하게 무너져 있었다. 수많은 다리의 잔해와 녹이 슨 자동차와 버스들. 그리고 살고 싶어서 마지막까지 기어 나온 흔적이 있는, 떠올라 있는 고철들 위에서 바짝 마른 시체들. 사람들에게 유용함을 줬던 자동차에 깔려 하반신은 보이지 않은 채 상반신만 보이는 시체. 마치 마른 수풀처럼 하늘을 향해 얽혀 있는 구부러진 철근들.
거리가 멀어서 다행이었다.
썩어 가는 시체를 바로 코앞에서 보고도 멀쩡할 정도로 강해지지도 익숙해지지도 못했으니까.
그는 쫓기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멍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온갖 것들이 쌓여 있는 강은 전처럼 맑고 투명한 색이 아닌 녹슨 고철에 섞인 어두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햇빛에 곱게 반짝였을 흰 모래밭에는 피가 말라붙은 것 같은 검붉은 자국들과 앙상한 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바보… 같아. 다리가 무너져 있을지도 모를 생각은 왜 하지 않은 거지.’
강은 시체와 다리의 잔해, 이제는 고철이 되어 버린 교통수단으로 만들어진 댐에 완벽히 끊어져 버렸다.
그 슬픈 댐이 막고 있는 그 너머에는 기이한 괴물들이 생긴 모양이었다. 수면 근처에서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물고기 그림자, 근처의 새를 낚아채 버리는 검은 촉수들. 흐린 물 표면이 흔들거리며 괴물들의 꿈틀거림을 보여 줬다.
“푸, 후후… 아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고양이 떼에 물어 뜯겨 죽나, 아니면 강에서 사는 미지의 괴물에게 죽나 이제 둘 중 하나의 선택만 남은 건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려고 했는데. 죽고 싶지 않은데. 결국 여기까지?
그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계속 공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곧 웃음을 멈추고 일어서지 않은 채 몸만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고양이 떼는 이제 몇 초만 있으면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어느 쪽이 덜 고통스럽고, 덜 무서울까.’
스스로 생각해도 비참한 생각에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몸이 덜덜 떨려왔지만 머리 한 구석은 어쩐지 차분했다. 현실감이 없다는 쪽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공포심이 나오는 구멍을 뭔가가 틀어막은 것처럼 스스로가 믿기지 않을 만큼 가라앉았다.
‘그래, 순순히 죽지는 않아.’
자신은 저 고양이 떼보다 강한 괴물을 이겼었다. 무섭고, 아프고, 괴로웠지만 끝까지 살기 위해서 발버둥 쳐서 이겼다. 살아남은 것이다.
맥없이 포기하며 주저앉지는 않을 거다.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을 거야!’
격렬한 운동 후의 허탈감으로 인해 힘이 풀린 다리를 각목으로 지탱하며 일어섰다. 고양이는 이제 코 앞.
각목을 휘두를 힘도 없다. 도망칠 힘도 없다.
비틀거리는 불안한 걸음으로 그는 무너진 다리로 인해 끊긴 도로 가장자리로 향했다. 가장자리에 도착한 가방이 단단히 메여져 있나 확인 한 후 각목을 가방 한쪽에 고정시켰다.
도박이다.
다리가 부서져 막힌 위쪽으로는 괴물의 모습이 보여도 아래쪽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 깊숙이 모습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지.
그러나 이 외에 방법이 없었다.
앵앵거리는 고양이 소리가 등을 때렸다. 어서 먹이가 되라는 듯 무너진 다리 위쪽의 수면에 일제히 촉수들이 올라와 환영하듯 흔들거렸다.
‘웃기지 마.’
그의 눈이 빛났다. 누가 괴물 따위에게 죽는다고? 절대로 순순히 죽어 주진 않을 거다.
‘살아남을 거야!’
그는 망설임 없이 강으로 뛰어들었다.
***
뺨에 닿는 촉감이 껄끄러웠다. 무거운 이불을 덮고 있는 것처럼 몸이 어딘지 눌린 느낌이 들었다. 몸과 주변 상황은 별개로 그의 기분은 어쩐지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일하다가 모처럼 푹 잠을 잔 듯 나른하고 만족스러웠다.
그는 저도 모르게 희미하게 웃으며 좀 더 이 느낌을 즐기기 위해 좀 더 편안한 자세를 취하려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몸을 뒤척이면서 들린 ‘철퍽’소리에 몸을 멈칫 굳힐 수밖에 없었다.
‘철퍽? 왜 내 방에서 그런 소리가?’
뺨에 닿는 꺼끌꺼끌한 모래의 느낌과 젖은 머리카락을 흔드는 바람. 게다가 허리 아래부터 느껴지는 서늘하면서 기분 좋게 찰랑거리는 ‘물’.
‘잠깐, ‘내 방’? 아냐, 여기는……!’
그는 얼음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아까부터 뺨에서 느껴졌던 거친 느낌의 모래와 모래가 있는 곳에서 조금 멀리 부터 있는 무성한 나무들. 드문드문 자란 들풀 사이에서 찌르르 울리는 벌레 소리.
어쩐지 평화로운 장소라는 생각을 주는 곳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워 앉으며 좀 더 상황을 살폈다. 그가 쓰러져 있던 곳은 다름 아닌 물가였다. 아까부터 허리 아래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것을 느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는 조금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깨끗해. 게다가 그냥 물고기까지 살고 있어.’
물가에서는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그의 몸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작은 송사리들이 있었다.
그는 언뜻 강으로 뛰어들기 전 다리 잔해로 막힌 위쪽 부근에서 보았던, 아마도 수중 괴물일 거라고 생각하는 촉수나 검은 그림자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다리로 막힌 위쪽만 괴물이 살고 있었던 건가?’
그렇지 않다면 그 괴물들 입장에서 먹음직스러운 고기가 떨어졌는데 이렇게 무사할 리가 없었다.
그는 안도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몸을 확인했다.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였다. 괴물은 둘째 치더라도 용케 익사하지 않고 무사히 물가까지 떠내려 왔다.
‘저번에 뿔 달린 괴물과 싸웠을 때도 그렇고, 나 생각보다 운이 좋은 편이었나.’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들었다. 몸에 이상이 없는 것 같으니 주변을 더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푸른 숲 속에서 이질적은 검은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나무들과 생김새가 달랐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보이는 검은 것.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곧 무엇인지 깨달았다.
‘저건 마루탑?’
뾰족한 첨탑의 꼭대기에 마루탑의 상징인 원 두 개가 겹쳐진 기묘한 조각이 보였다.
그가 기억하기로 정확히 30년 전에 만든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탑이었다. 가장 높기에 장비가 있고 시야에 장애물이 없다면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수도의 명물로도 정도로 유명하기에 중학교 수학여행의 행선지 중 하나도 저 마루탑이었다. 그 외에 한두 번이지만 가족끼리 가 본 적도 있었다.
‘마루탑… 무사했구나. 다리처럼 무너지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