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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1권(9화)
part 1. 변종(6)
그렇다면 수도는 무사하다는 뜻일까? 그는 기대감을 가지고 생각했다.
다리까지 무너진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진이나 자연재해로도 다리는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그것을 수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래서 이 나라 상황이 그가 짐작하는 것보다 더 절망적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수도의 마루탑이 저렇게 무사하다면 수도는 예상외로 멀쩡할지도 몰랐다.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가족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생각에 밝은 표정으로 강 건너편 나무들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마루탑을 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그럴 거야. 그러면 빨리 가야……!’
흥분된 마음에 갑자기 몸을 일으켜서일까. 충동적으로 급히 수도를 향해 움직이려던 그는 순간적으로 불을 지진 듯이 화끈거리는 어깨의 고통에 도로 주저앉았다.
“윽!”
낮게 신음하며 그는 오른쪽 손으로 왼쪽 어깨를 잡았다. 어깨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왼쪽 어깨 상처를 잊고 있었어. 물에 뛰어들기 직전에도 꽤나 아팠었는데. 물에 닿기까지 해서 상처가 더 심해진 건가? 그런데 왜 피가 검은 색이지?’
분명히 처음 상처가 나서 피가 나왔을 때는 선명한 붉은 색이었다. 설마 무언가 문제라도 생긴 걸까. 그 괴물이 병원균이나 위험한 독이 있어서 이상이 생긴 걸까?
그는 긴장된 얼굴로 어깨의 상처를 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상의를 풀었다.
상체를 풀고 드러난 왼쪽 어깨에서 어설프게 감은 붕대 대신의 옷가지까지 모두 풀어 버린 그는 물끄러미 상처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멀쩡한데.’
상처는 송곳니 부분이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깊이 다친 곳만 제외하면 아물어 가고 있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보기 징그러웠을 정도로 잔혹한 상처였지만 지금은 멀쩡한 편이었다. 이상하게 검은 피가 새어나오고 있지만 그것도 양이 서서히 주는 것이 곧 멈출 모양이었다.
정말 지나치게 멀쩡했다.
모르는 누군가가 본다면 어디에 심하게 긁혀진 상처로 볼 정도로.
‘원래 짐승들에게 물린 상처가 이렇게 빨리 낫던가? 아니면 애초에 그렇게 심하게 물린 게 아니었나?’
아니다. 의학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그지만, 그가 물렸던 상처는 만약 병원에 간다면 몇 십 바늘은 꿰매야 하는 상처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상처 부근을 바라보았다.
‘이상해. 이건 그냥 회복력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수준을 넘잖아. 그러고 보니 고양이한테 쫓길 때도 내 예상보다 훨씬 오래, 더 빨리 뛰었어. 그때는 제대로 생각할 정신이 없었지만, 솔직히 몇 십 분 동안 고양이 떼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는 것은…….’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하자 알 수 없는 한기가 몸을 스쳐 지나갔다. 몸이 젖어 있더라도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는데 온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그는 양팔을 들어 몸을 감싸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 몸… 뭔가 이상해.’
강한 바람이 불었다. 쏴아아, 나뭇잎들이 부딪혀서 바다에서 물이 빠지는 소리를 냈다. 거리를 지나갈 때 가끔 들었던 익숙한 새소리가 일제히 울린다. 찰랑찰랑 동심원을 그리며 바람으로 인해 퍼져 나가는 잔잔한 강의 물결과 벌레의 울음소리.
‘귀가 너무 예민해.’
그는 이 모든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귀가 민감하지 않았다. 평범한 수준이었다. 아무리 조용한 곳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잘’ 들릴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아까 마루탑을 봤다.
‘내가, 내가 어떻게 마루탑이란 것을 알아볼 수 있었지?’
아무리 가리는 장애물만 없고 시야만 좋다면 어느 정도 거리 안에서는 확인할 수 있는 높은 탑이라지만 한계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수도 쪽으로 휘어진 강에 떠밀려 왔다곤 해도 이 거리에서 식별이 가능하다고? 꼭대기의 조각까지 희미하게라도 보일 정도로?
‘이런 신체 능력이라니, 이건 마치 괴물 같…….’
괴물.
그 한마디를 인식하자마자 그는 크게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웁, 우윽!”
심한 헛구역질이 나왔다. 눈물이 나올 정도의 헛구역질에 숨마저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떨어진 눈물이 헛구역질을 하며 본능적으로 숙여진 머리로 인해 수면 위로 떨어졌다. 그는 눈물로 일그러진 시야로 수면을 보았다.
약간 푸른빛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그곳에 있었다. 더 없이 괴로운 얼굴을 한 채로.
괴물. 괴물. 괴물. 괴물. ……내가 괴물이야?
그의 입술이 파랗게 떨렸다.
“아니야!”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그는 얼굴을 그대로 물에 처박았다.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튀겼다. 부글거리는 공기 거품이 일어나고 주변에 먹이를 준 것처럼 모여들었던 송사리들이 놀라 흩어졌다.
서늘한 물이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 덕분인지 머릿속에 울리던 괴물이란 단어와 그 단어가 불러왔던 불안감도 차갑게 변해 사라졌다.
‘진정하자! 진정하자! 진정해!’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말하며 그는 물속에 잠긴 머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그렇게 더 이상 숨을 참기 어려울 때까지 된 후에야 그는 고개를 들었다.
“푸하!”
홱 머리를 들은 그는 크게 숨을 뱉어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가볍게 뺨을 찰싹 때렸다.
얼얼한 느낌과 함께 정신이 확 깼다.
‘동요하지 말자. 몸이 이상할 정도로 좋아지면 뭐 어때. 괜찮아. 괴물 같이 변한 것도 아니잖아. 정신도 미치광이처럼 변한 것도 아냐. 멀쩡해.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좋은 쪽. 그래. 괴물이 아니라, 세상이 갑자기 이렇게 변했으니까 초능력자? 그, 그런 류가 된 것일지도 몰라. 외향 변화도 하나도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좋은 면만 본 것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쁜 쪽으로 생각하면 우울해질 뿐이니까.
‘그래, 어차피 원상태로 변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자. 신체 능력이 올라갔다면 앞으로 싸울지도 모를 괴물들에게 더 살아남을 확률이 올라간 거잖아. 다른 사람이나 가족을 지킬 힘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후우.”
그는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젖히며 스스로의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을 느끼며 안도했다. 처음 떠오른 ‘괴물’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앙금처럼 남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괜찮다.
“하아…….”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물가에서 걸어 나갔다.
이대로 하반신만이긴 하지만 물 안에 계속 있다가는 감기에 걸릴지도 몰랐다. 괴물이 사방에 있을 이 상황에서 병이 나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위험했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변한 몸이 물에 좀 있었다고 약해질 것 같지는 않지만.’
쓴웃음을 지은 그는 모래가 있는 지대에서 벗어나 적당한 풀밭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방수 가방이기에 내용물을 걱정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더 망설임 없이 물에 뛰어든 것이기도 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겠는데.’
그는 젖은 옷을 벗어 몇 차례 짠 후 근처 적당한 나뭇가지 위에 걸어 두었다. 가져갈 사람조차 없는 곳이니 마음 놓고 걸어놓았다. 옷을 전부 벗은 그는 가방에서 긴 팔 난방과 청바지를 꺼내 갈아입고 나무에 등을 기대앉았다.
‘오늘은 아무래도 안전해 보이는 이곳에서 자고 가야 되겠어. 함부로 이동하다가 괴물을 만나면 위험하니까. 이곳도 아주 안전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정신을 들 때까지 별일 없었으니 다른 곳보다는 낫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이동하기에도 날이 늦어서 무리였다.
달빛이 환하다고 해도 밤에 숲을 헤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보통 숲도 아닌 괴물도 살고 있을 것이 틀림없는 숲은 더더욱.
그는 이러지리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추위가 사라져 가기 시작해서인지 벌레들이 있었다.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가 약간 쌀쌀하다 싶은 밤을 울렸다.
‘초여름… 여름이라서 다행이야. 좀 춥긴 해도 불을 피워야 될 정도는 아니니까. 벌레가 많아져서 싫기도 하지만. 아, 괴물이나 이상하게 변한 고양이까지 있을 정도니까 위험한 벌레도 있으려나?’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자신이 입고 있는 긴팔 셔츠의 단추를 다 잠갔다. 그리고 가방에서 담요 하나를 꺼내서 몸에 둘렀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그를 감쌌다.
‘어차피 작은 벌레라면 막기 힘드니까 이 정도만 해 놓자.’
그 후 저녁을 먹을까 싶었지만 아까 헛구역질을 심하게 해서 그런지 입맛도 없고 딱히 배고프지도 않았다. 그는 뒤로 팔짱을 껴서 머리를 받친 후 나무에 기대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해는 서서히 져 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투명한 강은 거울처럼 그 하늘을 비춰서 마치 강과 하늘이 이어진 것같이 보였다. 푸르른 나무의 잎사귀들도 노을빛과 섞여져 따스한 적갈색 빛을 띠고 있었다.
“예쁘네…….”
이런 상황에서 자연 풍경 감상이라니. 그는 자신이 중얼거린 말에 피식 웃었다.
벌레나 새소리, 바람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한 장소라서 그럴까. 아니면 물속에서 떠밀려져 온 것도 생각보다 몸을 지치게 해서 그런 걸까. 그는 점점 감겨드는 눈꺼풀 속에서 생각했다.
‘아무려면 뭐 어때.’
그는 담요를 목까지 올리며 눈을 완전히 감았다.
‘친구들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리움으로 인한 탓일까, 잠들기 직전 익숙하고도 아련한 피리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추억 어린 꿈을 꿨다. 언젠가 그의 사촌이자 친한 친구인 다인이 학교 음악 시간에 앞으로 나와 연주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직접 작곡한 곡을. 반 친구들과 선생님, 그 또한 모두가 그녀의 연주에 감탄하며 박수를 쳤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이제 다시는 이루어지지 않을 장면이었다.
part 2. 만남(1)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이 태양은 변함없이 떴다. 저런 무심한 태양이 얄밉기도 했지만 안심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늘의 태양마저 변해 버렸다면 정말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그는 하늘을 보며 통조림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오늘의 아침 겸 점심이었다. 피로가 많이 쌓여서 태양이 오후에 다다라서야 일어났기에 아침을 먹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통조림 양을 조절해야 하니 하루 두 끼나 한 끼만 먹을 생각이었지만.’
통조림은 이제 열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통조림 외에 생 라면 4개와 과자 두 봉지, 박하사탕 한 봉지가 있긴 하지만 얼마나 더 헤매야 할지 모르니 아껴야 했다.
다행히 가장 중요한 식수는 옆에 강도 있고 하니 걱정 없을 것 같았다.
전에는 그저 막연히 식량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수도로 가는 다리도 끊기고 사람들의 시체도 멀리서나마 무더기로 본데다 괴물들도 목격하니 더 위기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 먹을 만한 것은 그야말로 싹 털려 있었지. 그렇다면 살아남은 사람들도 식량이 부족하다는 소리일 거야. 나도 아껴야 해.’
식량이 전체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면 범죄자든 구조대든 일반 시민이든 사람들을 만났을 때 먹을 것을 얻기는 힘들다고 봐야 했다. 오히려 지금 있는 것들도 뺏긴다면 모를까. 전에 생각한 것처럼 범죄자들이 더 많다면 확실히 뺏기겠지.
‘맞아, 집에서 살해당한 모습이 있던 해골! 분명히 주방에서 죽었지. 그렇다면 먹을 것을 찾으러 왔던 걸까? 그러다가 쟁탈전이 벌어져서 죽고…….’
그는 다 먹은 통조림의 통을 들고 강가로 걸어갔다.
‘정말 그렇다면 식량이 다 부족할 거야.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올 정도겠지. 쟁탈전이 살인까지 이어질 정도라면. 게다가 단순한 살인도 아니고 괴롭히다가 죽인 거야. 도덕심이 사라졌어. 그래, 도덕심 운운 할 때가 아니라 그냥 범죄자들이 들끓는다고 봐야 해. 하긴, 그 다리에서 봤던 시체들이 그곳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있다면… 나야 멀리서 봐서 다행이지만 확실히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거야. 난 자세히 사정을 모른다고 쳐도 다른 사람들은 세상이 이렇게까지 변해 가는 과정을 일일이 다 겪었을 테니까.’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먼저 접근하지 말고 멀리서 어떤 사람인지 봐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보통 이상의 신체 능력이 생겼으니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그래 봤자 아직 싸우는 법도 잘 모르고 수가 많을 경우는 확실히 불리하니까.
무엇보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당연히 거부감이 있었다. 피도 무서웠다. 스스로에게서 흘러나온 피도 무서운데 남에게, 그것도 자신이 상처 입혀서 나온 피는 얼마나 두려운가. 누군가가 그에게 무르다고 말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상대방이 자신을 해치려는 목적을 가진다고 해도 애당초 그는 지극히 평화롭게 지냈던 고등학생이었으니까.
‘일단 사람을 봐도 접근은 보류. 멀리서 지켜보자. 만약 그쪽에서 먼저 달려든다면 도망치고. 고양이랑 달리기 시합해도 이겼는데 사람은 따돌리기 쉽겠지.’
물론 도망만 치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세상에 범죄자들이 만연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인 이상, 언젠가는 사람과 싸워야 하고, 어쩌면…….
‘……죽여야 하는 일이 있을지도 몰라.’
그것이 정당방위든 뭐든 그렇게까지 상황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그가 사람을 다치고 싶게 하지 않다고 해도, 상대방도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경찰도 없다. 구조대도 없다. 전기도 끊겼다. 물도 강으로나 와야 얻을 수 있다. 식량도 부족하다. 게다가 듣도 보도 못한 괴물과 식물들. 법, 규칙, 도덕심, 이성이 전부 무너져 내리기 딱 좋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