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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1권(16화)
part 4. 살아남은 대가(2)


누군가를 향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자가 누가 있을까. 충동적이게나마 누군가가 ‘죽어 버렸으면’, 혹은 ‘죽여 버렸으면’ 한 적이 누가 없을까.
신문에 실리는 파렴치한 범죄자나 동급생을 폭행하는 학생들, 금품을 노려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금품을 갈취하는 불량배들.
그들을 향해 단 한 번이라도 사라져야 마땅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들로 인해 만들어진 피해자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인간은 감정적이다.
한순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살의를 불태우면서도, 분노, 증오, 슬픔으로 인한 충동이고 가라앉으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이 웃고 자신이 했던 생각들을 잊어버리고 만다.
만약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면 범죄자, 살인자가 되는 거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비록 분노에 휩쓸린 충동적인 마음이라고 해도, 그때 그 순간만큼은 분명 그들을 향해 공포심과 동시에 경멸감을 가졌다.
시율은 그들을 죽어 마땅한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당에 다인의 말을 지적하는 것은 이기적인 거다. 그야말로 ‘착한 척’을 하기 위해 하는 말, 마음에도 없으면서도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가식적인 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세상에서 그럴 이유도 없었다.
결국 그들을 외면한 그는 숲 속으로 향하는 다인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숲마저도 안개에 휩싸여 있어 아침임에도 불과하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다. 가뜩이나 무성한 숲이라 시야가 제한되어 있는데 안개까지 겹치니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정상적으로 좋아진 시야도 장애물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전혀 모르는 낯선 숲 속에 떨어진 아이가 된 기분으로 시율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강과는 달리 긴장감을 주는 숲이었다.
5분 정도 가자 다인은 걸음을 멈추고 나물이나 과일을 찾기 시작했다. 시율도 그녀를 따라 먹을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몇 십 분 정도 흐르자 다인과 그는 과일 나무는 찾을 수 없었지만 대신 나물들은 몇 개 찾을 수 있었다. 다인이도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자주 봐 왔던 것을 찾는 것은 가능했다.
여태까지 이런 생활을 해서 그런지 익숙하게 보였다.
그에 반해 시율은 특성이 뚜렷한 나물 몇 개를 제외하고는 찾지 못했다. 상점에서 손질되어 가지런히 모아진 채 이름표가 붙인 나물들을 주로 보아 왔던 그이기에 야생에서는 잘 찾지 못하는 것이다.
어렴풋이 비슷한 모양의 독 나물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에 조심성이 높아져 더 잘 고르지 못한 탓도 있었다.
수는 적은 편이어도 그는 스스로가 구한 나물에 대해 만족했다. 고사리, 둥굴레와 달래. 전부 전국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나물로 구하기도 쉽고 쓸모도 많았다.
고사리는 확실히 독성이 없는 것으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 비록 너무 많이 먹으면 해가 되지만 어차피 그럴 양도 되지 않았다.
삶아서 말리면 오래 보관이 가능하니 만약을 대비한 비상식으로도 좋았다. 생으로 먹어도 떫은 맛은 느껴지겠지만 해는 없었다.
둥굴레는 어린 싹, 꽃, 뿌리가 전부 유용했다.
어린 싹과 꽃은 먹을 수 있고, 뿌리는 생으로 갈아다 타박상에다 붙이면 효과가 있었다. 의약품이 없는 지금 이것이라도 있으면 훨씬 나았다.
마지막으로 달래는 마늘과 비슷하게 생긴 야초로 파와 흡사한데, 뿌리와 줄기가 식용이었다. 달래 무침을 엄마가 좋아했기에 자주 한 경험이 있는 만큼 그는 달래를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도구랑 조미료만 있다면 좋을 텐데…….”
이 상황에서 그런 생각은 사치겠지. 그는 아쉽게 나물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먹을 것을 구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인은 그가 중얼거린 말에 그를 잠깐 보더니 항상 가지고 다니는 책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미료라면 있어. 도망칠 때 부피가 작은 것들을 챙기다 보니 같이 챙겨졌거든. 도구라고는 냄비밖에 없고, 그 냄비도 저들만 사용하지 우리에게 빌려 주진 않을 거야.”
“그럼 이것들 생으로 먹어야 하는 거야?”
“아니, 그래도 나물을 좀 준다면 잠깐 쓰게는 해 주겠지. 보아하니 그 생선들한테 질려 가는 것 같으니까.”
“저 생선들 정체가 뭔데? 그들이 이상할 정도로 태평한 거랑 관계가 있는 거야?”
다인이 품에 안은 나물들을 옮겨 다시 밖으로 향했다.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그가 묻자, 그녀는 앞을 향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시율아. 강 ‘속’에서, 그 송사리들 말고 살아 있는 것을 본 적 있니?”
없다. 물방개도, 다른 모습의 물고기들도 본 적 없다.
새들도 날아다니고 벌레 소리도 들리는 곳이라 위화감이 느껴지는 곳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기본적으로 생명이 살고 있는 곳이니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눈으로 보이는 지상 위에서는.
그는 무너진 다리로 뛰어들기 전 상류에서 보였던 강 속의 거대한 그림자를 기억해 냈다. 촉수를 뻗어 수면 위에서 낮게 나는 새를 낚아채는 것도.
“괴물이 그곳에 있나? 아니면 그 송사리들이 괴물?”
“아마도.”
하지만 이상하다.
시율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강에 떠밀려 이곳까지 흘러들어 왔다. 강 속에 괴물이 있다면, 그 송사리들이 괴물이라면 자신이 무사했을 리가 없었다.
그가 물속에서 사는 괴물을 멀리서나마 봤음에도 불과하고 강을 경계하지 않았던 것은 그 탓이었다.
그렇다고 다인에게 그 사실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왜 강에 빠져서 흘러들어 왔냐고 하면 그가 말했던 ‘다른 일행들이 있었다.’라는 것은 거짓말이 되니까.
이미 그녀는 그가 깊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 언제 깨어났는지는 몰랐다. 그러니 그가 다른 일행이 있었다는 말은 반신반의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목적을 모르는 만큼 스스로에 대한 정보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았다.
애초에 숲에 깊이 들어가지 않은 만큼 금방 되돌아온 시율과 다인은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새하얀 모래밭에는 문지나와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던 청년 한 명만이 있고 나머지는 없었다.
강가에서 작은 송사리들을 잡고 있던 그들 중 일부가 강가에 들어가서 냄비를 물 위에 띄어 둔 채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야호! 진작 들어올 걸. 팔뚝만 하잖아?”
“그쪽으로 더 가 봐, 그쪽에 몰려들잖아.”
맑지만 속이 보이지 않는 강으로 점점 더 깊숙하게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에 당황한 시율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섰다. 죽어도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잔혹하게 미끼로 버리고 오는 미친놈들이라고.
그러나 그렇다고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서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눈앞에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있는데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있겠는가.
그들이 비록 다인의 말대로 가치 없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그는.
시율이 경고를 해 주기 위해 앞으로 나서자, 그를 보는 다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 채 시율이 소리쳤다.
“이봐요! 그곳에서 나오세요!”
“뭐, 무슨 소리야?”
시율의 외침에도 위기감이 없는지 그들은 멀뚱히 물속에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답답한 모습에 시율이 재차 소리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촤아악!
깊은 강 속에서 유혹된 먹이를 기다리고 있던 괴물이 깨어났다.
‘그것’은 길고 두꺼운 촉수를 가지고 있었다.
물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그것, 그 괴물의 모습의 크기는 자동차 두 대를 길게 이어 놓은 것 같은 길이와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
물고기와 물뱀을 섞어 놓은 것 같은 그 괴물은 얼핏 봐도 다섯 개 이상 되어 보이는 그 촉수를 가지고 있었다. 촉수들은 마치 물고기의 아가미가 길게 늘어난 것 같은 기묘한 모습이었다.
괴물의 주둥이에는 아주 작은 날카로운 이빨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그건 그 괴물이 육식이란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줬다.
특이한 점은 눈이 없다는 것이다.
눈이 있을 자리로 보이는 것에는 하얀 껍질이 있었을 뿐이다. 비록 눈이 없더라도 먹잇감을 알 수 있게 다른 예민한 감각이 있는지 두꺼운 촉수는 흔들리지 않고 정확히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미, 미친! 저게 뭐야!”
“꺼져! 꺼지라고! 악!”
강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은 급히 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촉수에 비해 턱 없이 늦었다.
물에서 튀어나온 괴물은 그들이 밖으로 도망치려는 것을 눈치채고 촉수 몇 개를 쭉 뻗어 그들을 강 안쪽으로 후려치거나 휘감아 끌어당겼다.
다행히 촉수에는 별 다른 가시나 위협적인 것이 없어 후려쳐지거나 휘감겨진 것으로 죽지는 않았다. 문제는 당장 그들이 죽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점점 향해지고 있는 것이 날카로운 입안이라는 것이다.
“사, 살려 줘!”
절박한 목소리가 뿌연 안개를 뚫고 퍼졌다. 살고 싶다는 열망이 담긴 그 목소리에 시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하지?’
그가 물속에 뛰어들어 가 봤자 똑같이 먹이만 될 뿐이다.
시율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졌다고 해도 저 괴물보다 뛰어날 리는 없다. 지금은 기껏해야 인간 사이에서 뛰어난 축에 들 뿐.
괴물의 영역인 물속에 들어간 상태에서 이길 가능성은 전무했다.
게다가 만난 지 겨우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 그 사이에 무슨 정이 솟구쳐 저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나. 저들이 한 짓까지 알고 있다. 문지나를 제외하면 서로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완벽한 타인, 아니, 오히려 타인보다 못한 관계.
저들이 어찌 되는 신경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도망쳐야 했다. 저 괴물이 지금은 물속에만 있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저 세 명에게 관심이 쏠려 있다지만 혹시라도 물가에 있는 그와 다인에게도 눈을 돌릴지도 모른다.
벌써 강에 들어가지 않았던 문지나와 청년은 괴물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강가에서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들처럼 행동해야 했다.
그는 무력했고, 저들을 경멸했으며, 저들을 구해야 하는 그 어떤 의무도 없었다.
‘그래. 이런 생각할 시간 없어. 이곳을,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그런데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다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촉수를 감는 힘은 예상 외로 약했는지 그들은 아직까지 잡아먹히지 않고 어떻게든 발악해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촉수의 힘이 약하다고 해도 그들은 물속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움직임이 힘들었다. 그 와중에 촉수로 뒤에서 끌어당기고 있으니 밖에 나올 수도 없었다.
그저 물속에서 힘이 빠지거나 누군가가 구해 줄 때까지 발버둥 칠 수밖에.
누가 그들을 구해 줄 것인가. 도움을 청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일행이었던 두 남녀는 숲으로 도망치고 남은 것은 바로 어제 합류한 시율과 연약해 보이는 다인뿐이었다.
시야로 절망에 일그러진 얼굴이 담겼다.
그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같은 학교에 다녔던 듯 같은 교복까지 입고 있는 소년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뛰어나진 시야는 보고 싶지 않는 것도 보여 줬다. 소년과 마주친 눈 속에 담겨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흐윽! 사, 살려 줘! 죽기 싫어!”
필사적으로 내뻗은 손은 어떻게든 살려 달라 애원하고 있었다.
“젠장!”
결국 시율은 욕을 내뱉으며 빠르게 강가를 흩었다.
급하게 숲속으로 도망친 문지나와 청년은 급한 마음에 자기 짐만 챙겼기에 물고기를 손질하기 위한 꺼낸 식칼이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식칼 하나로 될까?’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괴물을 저들을 대책 없이 방심시켰다. 그 결과 그들은 강 속으로 들어갔고. 그것은 먹이를 ‘유혹’했다는 뜻.
그가 아는 상식 내에서 유혹하는 동물들의 사냥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촉수로 후려쳐지거나 이리저리 휘감겨지기만 할 뿐이었다.
얻어맞고 휘청거리는 모양새가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 헛것은 아니라는 듯 그들은 나름대로 촉수들을 피하며 살아남고 있었다.
특히 청년은 촉수로 휘감아도 힘으로 풀어내는 모양새가 상당히 힘이 강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촉수 두 개가 한꺼번에 청년에게 달려들었고 풀어내 봤자 자꾸 되감겨 버렸기에 제대로 된 도망은 힘들어 보였다.
‘촉수만 베면 돼. 저 괴물 본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움직이지 않으니까. 저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촉수만 베고 바로 빠져나오면 돼!’
시율은 식칼을 꽉 쥐고 물가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할 때 다인이 그 앞을 막아섰다.
“다인아, 비켜! 빨리 저 사람들을 구해야…….”
“왜 구해?”
“뭐?”
시율은 고개를 들어 다인을 바라보았다.
다인의 눈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그녀의 생기 없던 인형과 같은 표정과는 다른 의미로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모습이었다.
“왜 저 쓰레기들을 위해 네가 위험에 빠져야 해? 넌 ‘달라’. 나와도, 저 쓰레기들과도 다르지. 저 쓰레기들과 다르게 가치가 있어. 그런 네가 저들을 구하기 위해 죽으려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죽으려 가는 것이 아냐! 그냥 촉수만 베고 나오려는 거야! 그러니까 비켜, 저 사람들이 죽기 전에!”
“저 괴물이 하나일 거라고 장담해?”
“……!”
순간 말이 턱 막혔다.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같은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 저 괴물이 하나 더 있다면 그는,
‘죽는다.’
죽어? 구하러 가면 죽게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다리가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 정도의 위험은 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감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확실한 죽음의 위험 앞에서는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굳은 시율을 보며 다인은 옆에 있는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사람 머리 하나 정도의 크기는 돌멩이보다는 돌덩이란 말이 더 잘 어울렸다.
가느다란 다인의 팔은 전혀 무게감을 못 느끼는 듯 그 돌덩이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