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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1권(17화)
part 4. 살아남은 대가(3)
“똑바로 봐.”
싸늘하게 말한 다인은 그것을 있는 힘껏 괴물을 본체를 향해 던졌다. 얇은 다인의 팔 힘으로 던져진 돌덩이는 놀랍게도 강하게 날아가 괴물의 본체를 정확히 맞췄다.
그것도 퇴화된 눈으로 보이는 흰 부분을.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괴물로부터 비명 같은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괴물은 여태까지 잠잠히 있던 것이 환상인양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촉수의 속도도 휘감는 힘도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다.
우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가 첨벙이는 물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촉수 하나로 후려쳐진 중년인의 목이 그대로 뒤로 비틀리며 축 늘어지며 난 소리였다. 목뼈가 부러져 즉사한 것이다. 그것을 보며 바로 옆에 있던 소년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소년의 팔 하나를 휘감은 촉수가 자비 없이 그를 괴물의 주둥이로 끌고 왔다.
까득, 우득.
좋아진 귀가 이때만큼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다.
소년의 머리가 잘게 씹히는 소리가 생생히 전해졌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내뻗었던 손이 핏물에 휩싸여 몸과 분리되어 강 속에 툭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았던 청년은 그 둘의 모습에 경악하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발악했다. 다가오는 촉수를 후려치고 어떻게든 물속에서 몸을 날려 피했지만, 다섯 개나 되는 촉수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청년은 다리부터 천천히 괴물에게 먹힘으로서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아… 아…….”
순식간에 너무도 허무하게 사라진 세 명의 생명에 시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저 괴물은 약한 척한 거야. 먹잇감에 다른 무리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동족을 구하러 나서게 만들도록. 네 생각처럼 촉수만 베면 구할 수 있다는 어설픈 생각으로 나서게.”
시율은 흔들리는 시선으로 강을 보았다. 강제로 찢겨져 나간 세 명의 육체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마지막 흔적을 남기듯 강을 붉게 물들였다.
투명한 물에 붉은 잉크가 빠진 것처럼 넓게 퍼져 나갔다.
은빛이 도는 송사리들이 기쁜 듯 수면을 튕기며 헤엄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름 끼칠 붉은 피는 물로 인해 옅어져 꽃물이 든 것같이 고운 빛을 띠었다.
“괴물은 영악하지.”
서글프고 잔혹한 고운 물빛을 보며 다인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마치… 인간처럼.”
그 말을 끝으로 침묵이 찾아왔다.
괴물은 물속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지 촉수로 화풀이를 하듯 이쪽을 향해 몇 번 내려치고는 곧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괴물이 사라지자 아직까지 남아 있는 붉은 빛만 아니라면 세 생명이 무참히 사라진 곳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은 다시 평온해졌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본 다인은 평소와 같이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이대로 계속 수도로 갈 거니?”
“…….”
“안 믿어도 상관없지만,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바로는 강 주변에는 반드시 큰 괴물이 있거나 무리지어 있는 놈들이 있지. 계속 수도로 갈 거라면 차라리 숲 쪽으로 가는 것이 좋아.”
그녀의 목소리에 시율은 비틀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억지로 괴로움을 참는 것처럼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눈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용케 흘러내리지 않고 걸려 있었다.
“수도로… 갈 거야. 너는?”
떨리는 목소리에 다인은 웃었다.
“네가 간다면, 나도.”
시율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눈물로 일그러진 시야로 그녀의 연녹색 눈동자가 보였다. 다인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동요도 없이 평온했다.
무슨 이유에서든 며칠간 함께했던 일행을 눈앞에서 괴물에게 잃은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저 일상을 지켜본 것 같은 담담함.
그게 무슨 의미인지 시율은 깨달았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그가 몰랐던 새로운 것들로 채워진 그녀의 눈을 이제야 알았다.
“그래.”
그와 같이 가겠다는 다인의 말에 그는 허락했다.
“같이 가자.”
그의 눈동자에 맺힌 눈물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율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뒤에서 다인이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자박거리는 가벼운 걸음걸이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녀를 허락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만약에 그가 싫다고 대답 하더라도 그녀가 무시하고 그냥 따라온다고 해도 그로서는 제지할 수 없었으니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다인은 시율보다 식용 식물을 더 잘 찾을 수 있었고, 괴물에 대해서도 잘 알았으며 그가 알지 못하는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 아쉽게도 제대로 알려 주지는 않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그녀는 도움이 되면 됐지 짐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전부 제쳐 두고서라도 가장 큰 이유는 변했다 하더라도 다인은 여전히 시율의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동자는 전과 슬프도록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녀가 변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렇게 잔혹한 세상에서도 여전히 가족 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존재란 것도 사실이다.
단 삼 일뿐이었지만 위험한 상황에서 혼자만 있을 때의 고독, 불안감과 공포를 이미 한 번 느꼈던 상태에서 그런 그녀와 헤어지는 것은 시율에게 있어서 불가능했다.
시율과 다인은 강가에 일단 문지나와 청년이 버리고 간 식칼과 중간 크기의 냄비는 챙겼다.
그 이상 쓸 만한 물품은 없었다.
이미 죽은 그들도 짐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죽는 사람들의 물건을 쓴다는 생각에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이 들었지만 시율은 애써 억눌렀다.
앞으로 죽는 사람은 수 없이 만날 거다. 괴롭지만 그들의 물건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면 써야 했다. 그때마다 일일이 죄책감을 느낀다면 끝도 없으리라.
‘냉정해져야 해.’
다인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어리석게 괴물을 만만하게 보고 그들을 구하러 갔다가 죽었겠지. 지금 세상에서는 살아남고 싶다면 괴물에 누군가가 공격당하든 말든 외면하고 도망치는 길이 살 길이었다.
어중간한 도덕심과 정의감에 나섰다가는 허무하게 죽을 뿐이다.
그는 이번 일로 그것을 배웠다.
‘냉정해 져야 해. 난 살고 싶어. 살아서 가족을 만나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시율은 결심했다.
안전하게 구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신할 수 없다면 구하지 말자. 어설프게 나서 봤자 자신도 죽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덧없는 죽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위험하다면 모를까 그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타인을 지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위험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부상자를 버리거나 하고 싶지는 않아. 최소한의 도움은 주겠지만, 그것은 내 안전이 보장된, 언제든지 위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뿐이야.’
그는 스스로의 이기심을 인정했다. 부끄러움은 없었다.
남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이 어디 쉬울까.
그것도 소중한 사람도 아닌 얼굴도 몇 번 마주치지 않은 타인을 위해서. 구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없어서 하지 못하는 거다.
시율은 자신의 능력 밖에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의 탓으로 느끼며 괴로워 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지도 않았다.
주변에 안타까운 일이 모두 자신 때문인 것마냥 생각하며 ‘오만’을 가질 생각도 없었고, 스스로 성인(聖人)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냄비와 식칼을 챙긴 뒤, 아까 각자가 채집한 나물들을 냄비 안에 넣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숲으로 들어가 수도로 향하지 않고 다인과 시율은 강과 약간 거리를 두고 길을 되돌아갔다.
그가 나무 위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시율은 되돌아가는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지만 다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따라왔다.
시율은 그가 표시한 곳을 찾자 그 나무로 어렵지 않게 올라갔다. 그가 나무에 올라가 가방을 가지고 내려오자 시율의 복잡한 마음을 배려한 모양인지 입을 열지 않고 있던 다인이 물었다.
“짐이 있었네. 식량은 어느 정도 있어?”
“통조림 열두 개, 생 라면 4개, 과자 두 봉지, 박하사탕 한 봉지. 그리고 물통 두 개. 많이는 없어.”
“그래도 그 정도라면 최대 두 달은 버텨. 물이 좀 적긴 하지만 비닐 봉투만 있다면 최소한으로 필요한 양 만큼은 해결할 수 있으니까.”
시율은 다인의 말에 의문을 느꼈다.
물의 부족이야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고 해도 일단 근처에 식수로 쓸 수 있는 강이 있고, 그녀의 말을 들어보아 그녀 나름대로도 물을 구할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둘이서 먹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아? 괴물을 언제 만나서 도망쳐야 될지 모르니 체력 유지를 위해 하루에 한 개만 먹고, 가면서 나물들도 뜯는다고 해도 길어야 한 달밖에 못 갈 것 같은데.”
“둘이서? 아아, 둘이서 먹기는 부족하지.”
다인은 시율의 말에 쓰게 웃었다.
여태까지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식량은 남들과 나누지 않았다. 빼앗겨 어쩔 수 없다면 모를까. 그래서 시율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너는 믿어도 될까. 지금은 변하지 않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다인은 곧 그 생각을 고개를 흔들어 털어 냈다.
지금 고민해 봤자 소용없다. 시율도 이렇게 계속 살아남게 된다면 어떻게든 변하기는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그 변화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라면 좋겠으나 아니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는 자신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겠지.
시율이 식량 문제에 고민하는 것을 보며 다인도 생각을 마저 정리하고 같이 의논했다.
“숲은 나물들이 많은 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럼 다행이인데… 근데 식량은 그렇다 쳐도 물은 어떻게 하지? 물은 꼭 필요한데.”
“아까 내가 비닐 봉투 있냐고 물었지, 있어?”
“있어. 봉투들은 쓸모가 있을지 몰라서 꽤 챙겨 뒀어.”
“잘됐네. 그걸로 충분해. 물은 내가 해결해 줄게.”
겨우 비닐 봉투로 어떻게 식수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인의 자신 있는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도 그들은 몇 분 동안 식량과 식수를 구할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겨우 고등학생이었던 그들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둘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동하면서 식량을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은 채집을 제외하고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앞으로 채집 때의 효율을 위해서 다인이 가지고 있는 공책 두 권을 골라 한 권씩 가진 후 각자가 알고 있는 식용 식물이나 약초에 대해서 최대한 그 특징과 효능을 적기로 결정했다.
각자 알고 있는 대로 다 썼으면 그 공책을 바꿔서 다시 적는 것으로 지식을 교환했다.
이렇게 하면 서로 떨어져서 찾을 때 일일이 물어 볼 일도 없고, 식물을 찾으며 자연스럽게 외울 수도 있으니 효과적이었다.
시율은 최대한 그가 기억하고 있는 나물들에 대해서 썼다.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독초까지 써서 열심히 썼는데, 놀랍게도 다인은 식용 식물만 썼음에도 불과하고 시율이 적은 식물의 두 배가 넘는 많은 분량을 써서 시율에게 주었다.
그녀가 적은 식용 식물들 중에는 시율이 처음 보는 식물들도 꽤 많이 있었다.
“굉장히 많이 알고 있네.”
그는 공책을 펼쳐 보면서 감탄했다.
그림에도 약간 조예가 있던 그녀였던 터라 그림까지 조금씩 그려 넣은 것이 대단했다.
그가 알고 있는 식물, 그녀가 알고 있는 식용 식물은 모두 합하니 무려 60여 가지나 되었다. 그중 20가지 정도를 시율이, 나머지 40가지를 다인이 썼다.
서로 겹치는 것을 제외해도 저 정도니 앞으로 식용 식물을 찾는 것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시율의 감탄에 그녀는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알기 싫어도 알게 된 것들이 꽤나 많거든…….”
흐릿한 그녀의 말에 시율의 눈이 조금 흔들렸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인의 저런 어투와 미소를 지을 때에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럼 늦었지만 아침을 먹고 숲으로 들어가자.”
그의 말에 다인의 동의하며 식사를 할 준비를 시작했다.
통조림이나 라면 같은 것은 비상식으로 아껴야 하니 아까 캐온 나물들을 간단히 데쳐서 먹기로 했다.
마침 냄비도 있고, 강으로부터 약 이십 미터 정도만 떨어져 있기에 끓일 수 있는 물도 충분했다.
라이터가 있었기에 불을 붙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마른 나뭇가지나 잎은 없지만 공책도 있었고. 문제는 그 불을 계속 유지하는 건데 그것은 그나마 바삭한 나뭇가지를 여러 겹 겹쳐서 쌓아 올리는 것으로 해결됐다.
혹시나 불이 번질까 싶어 모닥불 주변의 풀들을 다 제거해서 맨 흙 위에서 불을 피웠다.
혹여 그 강의 괴물이 옅은 강가라도 촉수로 공격할 수도 있었기에 강에서 물을 떠오는 것은 시율이 맡았다. 다행히 괴물은 나타나지 않아 물을 안전히 떠올 수 있었다.
끓어 가는 물에서 가볍게 데친 나물은 무척 썼다. 씹을수록 쓴맛이 더해지는 나물을 억지로 씹어 먹어 배를 채웠다.
냄비는 가볍게 강물로 행구고 다인의 가방에 넣었다. 손잡이 때문에 잘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넣으니 그럭저럭 가방은 잠겼다.
식칼은 괴물이 공격하는 것에 바로 반응해서 조금이나마 공격할 수 있도록 들고 있기로 했다.
다인도 적당한 나뭇가지를 부러뜨려서 손에 들었다.
숲으로 들어갈 준비를 모두 끝냈을 때는 벌써 태양이 높이 떠올라 있었다.
“숲에는 작고 빠른 괴물들이 있어. 산이라 그런지, 도시에서 나타나는 괴물들과는 달리 초식으로 보이는 괴물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먼저 공격하지만 않으면 대체로 가만히 있는 편이야.”
“여기까지 오면서 특별히 위험한 괴물은 없었어?”
시율의 물음에 다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몇 마리 있었지만 이 숲에 들어와서부터는 아주 위험하다 싶을 괴물은 못 봤어. 무엇보다 이 숲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강을 발견해서 그 줄기를 타고 간 거라서 이 숲은 잘 몰라.”
다인의 말에 시율은 긴장된 시선으로 숲을 보았다.
‘어떤 괴물이 있을지도 몰라. 조심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