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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1권(21화)
part 4. 살아남은 대가(7)
“좀 아프지만 괜찮아. 너야말로 나보다 더 세게 맞은 것 같은데.”
“나도 괜찮아. 피멍이 시커멓게 들어 있긴 한데 뼈에도 별 이상 없는 것 같아. 그랬다면 못 뛰었을 테니까.”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 그 공격에 뼈가 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에 시율도 솔직히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뼈도 더 단단해진 건가.
시율의 대답에 다인이 중얼거렸다.
“하긴… 우리들은 이제 쉽게 안 죽으니까. 물론 괴물들에게 걸리는 경우는 예외지만.”
“우리처럼 변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
혼자만 몸이 이상하게 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했다. 이 변화가 변종 동물이나 식물처럼 ‘변종 인간’이라면 괴물이나 다름없지 않나 싶기 때문이었다.
그런 시율의 불안을 알았는지 그녀가 걱정 말라는 듯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의 미소와 같은 미소였다.
“꽤 있어. 어느 정도 변했는지는 제각기 다른 모양이고. 전보다 조금 건강해진 수준으로 변한 사람도 있는 반면에 아주 특별할 정도로 강하게 변한 사람들도 있거든.”
그는 그 ‘특별하게 강하게 변한 사람들’이 다인이 항상 말하던 ‘그자들’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시율아, 궁금한 거 아주 많지? 다 물어봐도 괜찮아. 대답해 줄게. 어차피 한동안 여기 있어야 하고 시간도 많으니.”
시율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검푸른 눈동자와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는 입술을 달싹거리면서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조금 고민하는 듯 보인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내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은 어떻게 알았어?”
다인은 시율의 질문에 잠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웃겨라. 그게 가장 궁금했었어? 첫 번째로 물어볼 만큼?”
“나는 중요해. 일어나 보니 방문은 못질되어 있지, 텅 빈 도시에서 혼자 깨어났지…….”
그의 말에 그녀는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눈빛으로 변해 바라보았다.
“혼자였어? 방에 못질도 그대로 있었고?”
“혼자였는데? 그런데 방에 못질이 그대로 있었냐니, 넌 내 방에 그런 못질이 되어 있는 줄 알았어?”
“네 동생, 아라가 말해 줬거든. 처음에는 오빠가 잠에서 안 깨어난다고 울더니, 얼마 후에 어떻게 지내냐니까 못질을 했대. 내가 놀라서 물어보니 오빠를 지켜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는 정말로 지금까지 보질 못했어.”
날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는 알 수 없는 의문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만약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무슨 병에 걸린 줄 알고 병원에 옮겨야 정상이다. 그런데 못질을 하다니…….
게다가 아직 다인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세상에 이미 못질로 방문을 막고 안에 식수와 음식을 넣었다고? 처음에는 괴물이나 범죄자들로 지키기 위한 건 줄 알았었는데.
이렇게 되면 시간대가 어긋난다.
‘고민해 봤자 알 수 없나.’
“그래… 그럼, 오랫동안은?”
“그건 알기 쉬웠어. 신발이 너무 깨끗하잖아. 분명히 최근까지 자다가 나온 거라고 생각했지. 신발은 이제 귀하거든. 그런 신발이 새 거라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신발장에서 새 운동화를 꺼내 신었고, 그녀와 만날 당시 신발을 신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했었다.
시선을 내려 신발을 살피니 아직까지도 그의 신발은 먼지만 조금 닦아 내면 새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맞아, 그 정도로는 추측밖에 안 돼. 사실은 무엇보다 네가 변하지 않아서 알았어. 세상이 미친 후 여태까지 날 보는 남자들은 내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전부 같은 눈빛으로 봤거든. 지금까지 너랑 아빠만 빼고.”
그는 그녀의 말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 ‘같은 눈빛’이라는 것이 뭔지는 뻔했다. 단순히 눈빛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 또한.
화가 난 것 같으면서도 슬퍼하는 시율의 모습에 다인이 조금 웃었다. 자신을 위해서 화를 내주고, 눈물을 흘려 주고, 안타까워해 주는 사람은 이미 죽어 버린 부모님을 제외하고 그가 처음이었다.
‘기쁘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서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시 그 끔찍하고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은 괴로움이 생각나니까.
하지만 시율의 그녀를 위한 분노하는 모습에 아주 약간이지만 따뜻하고 새하얀 이불에 감싸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는 더럽지 않다고, 피해자일 뿐이라고… 괜찮다고 등을 토닥거려 주는 듯한 느낌.
다인은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댔다.
시율에게만은 다 말해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말하며 위로받고 싶었다. 그곳에 대해 말하며 자신을 위해 분노해 주고 안타까워해 주는 이가 보고 싶었다.
다인이 시율을 빤히 보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내가 지옥이라고 부르는 곳 알지? 그곳에 대해 말해 줄게.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괴물의 포효가 아득히 들리는 어두운 지하실 속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네가 모습을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은 두 개의 달이 떴던 때였지? 아, 굳이 왜 그날 잠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말 안 해 줘도 괜찮아. 어차피 너도 모르잖아. 아무튼 그때부터 이야기해 줄게.”
3월 15일 밤하늘에 두 개의 달이 떴다.
처음 두 개의 달이 하늘을 차지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보고 놀랐지만 그뿐이었다. 천문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 아닌 이상 일반인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현상은 놀람과 감탄, 호기심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위험과 공포를 느낄만한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했다.
두 개의 달은 3월 15일 밤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 이후로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자 언론도 시들해졌는지 그에 대해 떠들지 않았다. 그렇게 두 개의 달은 사람들 사이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런데 삼 일이 흐르자 괴물을 봤다는 둥, 갑자기 무언가가 튀어나와 공격했다는 등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생물을 봤다는 제보도 속출했다.
이상하게 생긴 식물이 갑자기 자라나 건물 전체를 휘감거나 텅 빈 공터에서 처음 보는 나무가 빠른 속도로 자라나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그저 ‘이상한 일’일 뿐이었지. 이상한 생물은 그저 변종 동물과 변종 식물로 생태계 이상으로 보도됐어. 그때는 ‘괴물’이라 불릴 만한 것들은 나타나지 않았거든.”
일주일이 지난 후에 각국에 동시에 이상이 생기면서 이야기는 점차 묘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사막에 눈이 내리고 겨울이었던 날씨가 갑자기 푹푹 찌는 여름으로 바뀌었다. 수도는 아니지만 각 국의 중요 도시 몇 곳에서 동시에 지진이 일어났다. 해일이 일어난 역사가 없었던 바다 도시에 갑자기 해일이 발생해 도시가 물에 잠겼다.
두 개의 달이 뜬 후 삼 일이 지나자 변종 동물과 변종 식물이 나타났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자 각 국에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이 모든 일이 우연일까.
인간들의 관심은 다시 두 개의 달에게 쏠렸다.
모든 일은 두 개의 달이 떴던 이후부터 일어났다. 의심이 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언론에서도 의아함에 각 학계의 학자를 만나고 기사들을 보도하는 등 두 개의 달에 대하여 조사하기 위해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딱 한 가지 한 것이 있다면.
“철저히 부정했지.”
정부는 두 개의 달과 각종 자연재해, 변종 식물과 동물에 대핸 연관성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녀가 속한 나라의 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가 부정했다.
정부는 그저 우연일 뿐이라 일축했고, 연광성이 있다는 학자들의 말에 두 개의 달은 그저 착시일 뿐이고 그 후 나타난 적이 없다며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일단 자연재해를 비롯한 ‘생태계 이상’에 대핸 해결책을 내겠다고 발표했다.
“그때는 세상이 흉흉하니 쓸데없는 소문을 막으려는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부에서는 무언가 알고 ‘진실’을 막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지.”
다인이 피식 웃었다.
“정말 진실을 알고 있었다면… 차라리 진실을 알리고 계엄령을 내렸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야. 이미 괴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더라면, 그때 그런 혼란은…….”
“그때라니?”
시율의 물음에 그녀가 쓰게 웃었다.
“날짜가… 아마 3월 28일이었나. 처음으로 ‘괴물’이라 불릴 정도의 존재가 모습을 나타냈지. 최악의 방법으로.”
3월 28일이라면 그가 편의점에서 확인했던 날짜였다.
마지막까지 신문이 제대로 배달된 날짜. 시율은 그녀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그저 변종 동물이라 불릴 것이 아니라 ‘괴물’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생명체가 나타났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는 듯이 생방송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허공에서… 그야말로 환상처럼 나타나 보도하고 있던 기자를 잡아 먹었지.”
새파란 노란 눈동자에 잿빛 털, 세 개의 꼬리를 가진 마치 호랑이를 몇 배나 확대한 것처럼 거대한 괴물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기자를 으적거리며 씹어 먹었다.
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는지 거대한 앞발로는 또 다른 인간의 두 다리를 내리눌러 도망치지도 못하게 했다. 고통과 공포에 비명을 지르는 그 또 다른 인간은 괴물이 기자를 다 먹은 후 머리를 뜯으면서 끝났다.
그 와중에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며 그 모든 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모두가 믿을 수 없어 멍하니 입을 벌리며 굳어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비명을 시발점으로 대혼란이 닥쳤다.
정부가 수습할 겨를도 없었다. 괴물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호랑이 괴물이 모습을 나타낸 직후 본격적으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나타나는 괴물에 대비할 방법은 없었다.
번화가의 한가운데, 대통령의 저택, 군부의 본부, 평범한 주택의 주방, 목욕탕의 탕 속, 건물의 옥상 위, 학교의 체육관… 괴물들은 나타나는 곳을 가리지 않았다.
방송을 보고 경악하던 사람들은 바로 눈앞에서 보이는 괴물들의 모습에 엄청난 공포감을 느꼈다.
처절한 비명 소리와 바닥을 새빨갛게 물드는 인간의 피. 살점이 떨어지는 날카로운 이빨. 그 모든 것을 목격한 후에 자신을 그렇게 만들지도 모르는 괴물이 등장했으니 그 두려움이야 오죽하랴.
공포에 질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든 괴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으나 소용없었다.
괴물은 크기가 고양이만 한 괴물부터 자동차만 한 괴물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괴물의 공통점은 인간들보다 뛰어난 육체와 뛰어난 살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그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크기가 크고 힘이 강한 괴물들은 건물을 부수고 나와 득실거리는 인간을 잡아먹었다. 크기가 작은 괴물들은 근처 인간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어 뜯어 먹었다.
다인의 아버지가 죽었던 때도 그때였다.
다인과 그녀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을 막다가 죽어 버렸다. 뒤에서 아버지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달렸다.
달리는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후 어떻게 도망쳤는지는 기억 안 나. 제정신이 아닌 채로 무조건 뛰고 봤으니까.”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옆의 사람이 괴물에게 뜯겨 먹던 다리가 부러지거나 팔이 잘려 제발 살려달라는 부상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도망쳤다. 괴물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계속.
그녀와 함께 살아남은 이들은 마침내 백화점의 지하실에 몸을 숨기고 두려움과 죄책감, 슬픔, 공포에 떨었다.
“그래도 인간은 나름대로 강한 생물인지, 정신을 차리고 부상자들을 챙기고 정부의 군대가 구조하러 올 때까지 버티기로 했어. 다같이 구조될 때까지 힘내서 살아남자고… 그렇게 결심했지.”
가족, 친구, 친척… 그밖의 무수한 사람들을 잃었지만 그들은 견뎌냈다.
다행히 그녀의 도시에 나타났던 괴물들은 한 차례 도시를 휘젓고 나서는 갑자기 몸을 떨며 주춤거리더니 도시 밖으로 벗어났다.
인간이라는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있는 그 도시에서 왜 머무르지 않고 벗어났는지는 지금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들에게는 무척 다행이었다.
괴물들이 도시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체들을 수습했다. 그냥 놔뒀다가는 시체가 썩으며 병이 돌지도 모르니 위험 때문에라도 그냥 놔둘 수 없었다.
그나마도 괴물들이 먹어 치워서일까, 시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시체를 수습한 뒤 식량들을 모았다. 식량은 나름대로 합의점을 찾아내 공통으로 분배하기로 결정하고 부상자들은 살아남은 사람 중 의사, 약사, 간호사 등을 모아 치료하기로 했다.
환상처럼 나타났던 괴물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두려웠지만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괴물도 없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괴물은 도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만 가끔 보일 뿐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저들끼리 싸우는 모습도 보이는 것이 뭐가 어찌 되었든 당장 인간을 노릴 것 같지는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시의 일정 지역에 모여 서로를 도우며 희망을 가졌다.
기다리면 정부나 군대의 구조가, 다른 나라의 원조가, 다른 도시의 구호 물품이 올 것이다.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타도시의 사람들이 그들의 도시로 도망쳐 오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