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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1권(22화)
part 4. 살아남은 대가(8)
“그들은 끔찍한 소식을 알려 줬지.”
그들의 도시에서도 괴물이 나타났다고 했다. 게다가 지진까지 일어나고 비교해 보니 그녀가 있던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괴물이 나타나 살아남은 사람은 매우 극소수라고 전했다.
사람들은 기겁하며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도망쳐 온 자들을 닦달했지만 충격과 공포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다.
일단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안전한 곳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굶주림과 공포에 질린 그들은 순순히 그들을 따라갔다.
그 도중에 기어코 그들 중 한 명이 발작하며 들고 있던 칼을 다른 사람들에게 휘두르더니 스스로 배를 찔렀다.
사람들이 놀라 다가갔으나 이미 늦었다. 그자는 부들부들 떨며 결국 전부 죽게 될 거라고, 종말이 오고야 말았다는 말을 남기고 죽어 버렸다.
“그 죽음이 문제였어.”
그 남자의 처절한 죽음과 말로 인해 ‘불안’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구조대도 보지 못한 사람들, 부상이 심해져 죽어가는 사람들, 더욱더 열악한 타도시의 사정, 떨어져 가는 식량, 더욱 부족한 물,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풀릴 생각은 하지 않고 점점 추워지는 날씨, 도시로 들어오지는 않지만 노리듯 도시 변두리에서 어슬렁거리는 괴물들…….
살아남은 인간들의 정신은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한계에 다다른 사람들은 미친 짓을 벌이기 시작했어. 폭력, 폭동, 강도, 강간, 강탈, 살인, 방화. 온갖 범죄란 범죄들은 다 일어났지. 그리고 그런 범죄를 일으킨 자들은 깨달아 버렸어. 자신들이 그 어떤 짓을 벌이든 제재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경찰이 없다. 언론도 없다. 군대도 없다. 정부도 없다.
무엇이 그들을 가로막을 텐가.
“그리고 그런 폭력 행위 속에서 자신의 육체에 대한 변화를 알았지.”
다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변화라면 육체가 강화된 것 말이야?”
“그래. 지치지 않는 체력, 겉모습의 변화도 없는데 수십 배는 강화된 힘과 뛰어난 시력, 청각과 후각. 사람들에 따라서 무엇이 더 뛰어나거나, 나처럼 청각은 뛰어난데 힘은 상대적으로 적게 강화되거나 한 경우부터 다양하더라. 덕분에 빌어먹게도 내 몸이 마찬가지로 강화됐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지만.”
그녀가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기며 시리게 웃었다.
“시율아, 법도 질서도 없는 세상 속에, 힘이 누구보다도 강한 미친놈이 하나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같은 무리 속에서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자가 나타난다면? 그리고 그 힘을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그 어떤 피해도 없다면? 게다가 그 강한 힘을 가진 자가 미친놈이라면 벌어지는 일은 뻔하다.
시율은 신음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지배…….”
“맞아. 강화된 녀석들끼리 모이더니 마치 스스로들이 폭군이 되고 다른 사람들은 노예가 된 듯 지배하기 시작했지. 말을 듣지 않으면 간단해. 때려죽이면 되는 거니까. 그것도 아니면 추방하거나. 추방되는 경우는 거의 확실히 괴물에게 죽어 버리지. 높은 건물에 올라가 그것을 강제로 지켜보게 하면서 자신들에게 반항하지 말라고 협박했어.”
안타깝게도 그자들은 힘이 강한 녀석들이니 만큼 괴물들에게 제대로 대항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맞아죽거나, 쫓겨나서 괴물들에게 잡혀 먹거나 둘 중 하나니까. 결국 그들은 살기 위해 반은 자의로 반은 타의로 노예화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도망쳐 봤자 괴물에게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의사인 다인의 어머니를 감시하며 특히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비록 노예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해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의사의 딸인 만큼 그들도 다인을 건들 수 없었다.
다인을 건들려고 하자 의사인 어머니가 혀를 깨물어 죽겠다고 날뛰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의사는 그녀를 포함하여 극소수였고, 그들도 머리가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 의사는 매우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건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안을 수 있는 여자들 혹은 남자들은 다인이 아니더라도 많았기 때문에 별 다른 미련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자 의사의 가치는 낮아졌다. 제대로 된 의료 시설이나 약도 없는 상황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결국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도 그자들에게 강제로 끔찍한 일을 당해야 했다. 꼭 그자들에게 범해진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다른 남자들에게도 여자들은 괴로운 일을 당해야 했다. 그렇게 여자들은 살아남아 버린 대가를 뼈저리게 치러야 했다.
“정말 악몽이었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정도였어.”
괴물에게 잡아먹혀 버릴 것을 왜 살아남아 버렸나 한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영악하게도 그런 여자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들은 여자들을 한곳에 모아 두고 감시하게 시켰다. 살아남은 수 중 애초에 여자의 비율이 무척 낮기에 한곳에 모아 감시하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시율은 다인의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돼.”
“……아냐, 괜찮아.”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떨림을 진정시켰다.
다인의 위태로운 모습에 시율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아 줬다. 손이 잡히자 무엇을 떠올렸는지 크게 흠칫거렸다. 그녀는 불안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시율을 보았다.
다인은 슬픔이 담겨 있는 그의 눈빛을 보고 안심했다. 그는 자신을 더럽게 보지 않는다. 추잡한 욕망의 대상으로도 보지 않는다. 그저 순수하게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꽉 쥐며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절망적인 나날이 흘러가며 다시 한 달이 흘렀을 때 분위기는 또 변했다.
식량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식수는 문제없었어. 도시에 워낙 많은 시체들이 있고 다 수습하기 힘들어서 도시를 벗어나 근처에 샘이 흐르는 작은 마을로 이동했거든. 마을이라고 해 봤자 이미 괴물에게 습격당해 폐허나 마찬가지였지만.”
확실히 얕지만 샘이 흐르니 식수 문제는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괴물들도 그자들이 해치울 정도의 괴물이 등장했다. 물론 괴물로 인해 죽은 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전체 이백 명 정도의 이동 인구 중에서 십여 명이 잡아먹혀 죽어 버렸다.
괴물들은 그 후 몇 번 나타나더니 그곳을 인간, 정확히는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생명체의 영역으로 인식했는지 그 후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식량.
일부러 그자들이 철저하게 지배하기 쉽도록 도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 극히 일부인 이백 명 정도의 사람들만 반강제로 모아 데려왔음에도 불과하고 식량은 빠르게 떨어졌다.
백화점을 비롯한 다른 식품 매장에서 가져온 식량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정착한 작은 마을은 말 그대로 작았고 마찬가지로 폭동이 일어났던 듯 그곳에서도 식량은 거의 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급자족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어떻게 이백 명 정도의 사람이 갑자기 자급자족을 할 수 있겠는가.
사냥과 채집에는 한계가 있었다.
함부로 산에 들어가 사냥도 채집도 괴물 때문에 힘든 만큼 한둘이라면 모를까 그 많은 인원수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옳았다.
그렇기에 그자들은 결정을 내렸다.
필요 없는 인간들은 죽이자고.
그들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큰 반발 없이’, ‘이익이 되게’ 죽일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효과를 알 수 없는 변종 식물이 눈에 띄었다.
“네가 모르는 변종 식물들을 알아 버리게 된 것이 바로 그때지.”
그들은 변종 식물들을 먼저 부상자들에게 먹임으로서 하나하나 ‘실험’해 봤다.
대다수의 식물이 독초였고 식용은 드물었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죽어 버렸다. 부상자 다음에는 무리 중에서도 극소수인 노인이었다.
그들은 노인들에게 쓸모 있는 나물들을 알아낸 뒤 강제로 변종 식물을 먹였다. 체력이 약한 그들은 작은 독성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이백은 되었던 인원수는 백오십 정도로 줄었다.
인원도 줄고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은 많이 알아냈으나 여전히 식량은 부족했다. 그들은 다음 대상으로 보호 대상만 될 뿐 시끄럽기 만한 어린아이들을 선택했다.
아이들은 독으로 인해 온몸이 붉게 변하거나 붓거나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그런… 그런 짓을!”
시율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부상자, 노인, 아이에게 독초일지도 모르는 식물을 먹여 식용인지 아닌지 실험해 보다니. 분노와 경멸감에 치를 떠는 시율을 보며 그녀가 낮게 웃었다.
“끔찍하지?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그렇게 변종 식물들 중 독초와 식용 식물을 알게 됨으로서 내가, 그 무리들이 살 수 있었다는 거지. 강제로 먹인 것은 그자들이지만 결국 나나 다른 사람들은 말리지 못하고 바라만 봤어. 말렸다고 해도 맞아 죽기밖에 못하겠지만… 무슨 변명을 하든지 공범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은 변함없지.”
자조적인 다인의 말에 시율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시율의 모습에 그녀는 조금 힘없이 웃었다.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녀가 공범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시율다웠다. 비록 반대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고 해도 그녀는 독초일지도 모르는 식물을 강제로 먹이는 것과 부상자를 나무에 묶어 괴물의 미끼로 쓰는 것을 방관했다.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았기에 죄가 없다고 누군가가 어설프게 위로한다면 그녀는 비웃을 것이다.
범죄를 방관한다는 것 자체가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노인과 아이 다음은… 우리 엄마, 그러니까 여자 차례였어.”
모든 것에 체념하거나 충격으로 반백치가 되거나 혹은 그자들의 눈에 잘 보여 어떻게든 살려고 바동거리거나. 여자들은 대부분 이 셋 중 하나였고, 다인은 모든 것에 체념한 쪽에 속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자들을 비난하는, 유일하게 혼자 대항하는 쪽에 속했다.
다인이 예쁘장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어머니도 미인이었다. 그래선지 그자들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은 그때까지는 살려 놨었다. 유일하게 끝까지 반발하는 그녀가 재미있던 모양이었다.
하나 싫증이 났는지, 그자들은 변종 식물을 먹여 그녀의 어머니를 죽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손끝부터 보랏빛으로 변해 가며, 고통으로 인해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몸부림치다가 죽고 말았다. 다인의 눈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결심했다.
어차피 사는 것에도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그나마 어머니와 서로 지친 몸으로 꼭 끌어안는 것이 삶을 이어 가는 빛이 되어 줬는데 이제는 그것조차도 없다.
그렇다면 복수만은 하고 죽고 말리라.
그자들을 전부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가능한 복수를 꿈꾸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가능한 쪽으로 향하는 것이 나았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직접 강제로 독초를 먹인 남자만큼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결심과는 상관없이 그들은 여전히 질린 여자들을 골라내며 강제로 먹여 갔다. 다인 또한 예외가 아니었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를 죽게 했던 독을 먹어도 살아남고 다른 독들을 먹여도 이를 악물고 살아남았다. 고통에 손톱으로 땅을 긁어도 버텨냈다.
오로지 그 남자를 죽일 기회를 얻기 위하여.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남자는 문지나를 포함한 몇몇 이들과 함께 마을을 벗어나려고 했고 그녀는 몰래 훔친 마비 가루와 간단한 짐을 챙기고 그들을 따라갔다.
따라오는 그녀의 모습에 그들은 경계했지만 곧 그녀를 받아들였다.
남자와 남자의 친구는 강화된 육체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에게 있어 다인이는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그녀의 존재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존재일 뿐이었고, 언제든지 죽일 자신이 있기에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따라왔다는 것은 아무 관심도 없었다.
“아깝게도 그 남자는 그 이상한 물고기를 먹기 전까지는 괴물들을 대비해 둘이 번갈아 가며 경계했기 때문에 죽일 기회가 없었지. 그래서 기회를 기다리는 도중에 괴물에게 습격당해 몇이 죽고 강에 도착해 그 이상한 물고기를 먹고… 그 이후부터는 너도 알 거야. 별것 없지? 나도 세상이 미치고 나서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해서 잘 몰라.”
다인이 싱긋 웃었다.
“아아, 다 털어 놓고 나니까 그나마 마음이 좀 편하네. 다들 같은 처지라서, 어디에 한탄하고 싶어도 못했…….”
시율은 웃으며 말하는 다인을 살짝 끌어 당겨 안았다.
순간 다인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그를 거칠게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보다 시율의 손이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는 것이 빨랐다.
“울어도 괜찮아.”
그의 말에 그녀의 손이 멈췄다.
“웃지 않아도 돼. 울어도 괜찮아. ……울고 싶잖아.”
눈물은 너무 흘려서 말라 버렸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가 죽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물 흘린 적이 없었다.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체력과 수분을 앗아갈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에 어느 순간부터 눈물은 흐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율의 말에 마법이라도 걸린 듯 다인의 초록색 눈동자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방울로 시작된 눈물은 그 다음부터는 후두둑 떨어지며 시율의 옷을 적셨다. 젖어가는 시율의 옷에 그녀는 멍하니 생각했다.
‘울면 안 돼. 울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위로해 줄 사람도, 달래 줄 사람도 아무도…….’
“괜찮아, 다인아. 이제 괜찮아…….”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물이 아롱지며 그녀의 흰 뺨에 매달렸다.
차분하면서 조용한 시율의 목소리가 지하실에서 그녀를 위해 울려 퍼졌다.
‘아무도, 없었는데…….’
“우… 흑… 으흑…….”
따스한 인간의 체온. 다정한 목소리. 안타까움을 담아 토닥이는 손길과 그녀의 등에 떨어지는 그녀를 위해 흘리는 시율의 눈물.
다인은 울었다.
사실 수백 번 수천 번 울고 싶었다.
세상을 원망하고 왜 엄마 아빠랑 죽였냐며 고래고래 소리치며 울고 싶었다.
학교 갔다 오면 항상 꼭 안아 주던 엄마, 항상 외동딸은 자기가 지킬 거라며 호탕하게 웃던 아빠…왜 죽어 버렸나. 그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왜 죽어야 하나.
왜 이 모든 것이 악몽이 아니라 현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