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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전설 1권(11화)
제4장 무명(無名)(1)


1.

북망산(北邙山).
사람들은 흔히 죽음에 이르게 되면 북망산에 간다는 표현을 한다.
그런데 이 북망산은 단지 허구의 지명, 혹은 죽음을 뜻하는 상징적인 지명이 아니었다.
낙양의 북쪽 외곽에 실재하고 있는 작은 산이었다.
낙양은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왕성을 쌓은 이래, 후한(後漢)을 비롯한 서진(西晉), 북위(北魏), 후당(後唐) 등 여러 나라의 도읍지로서 역사적으로 번창하였던 곳이다.
그만큼 많은 귀인·명사들이 살았으며, 이들이 죽은 뒤 대개 북망산에 묻혔다. 이 때문에 언제부턴가 ‘북망산’이라고 하면 무덤이 많은 곳, 또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된 것이다.
어느덧 초봄의 따사로운 기운이 찾아오는 삼월의 첫째 날.
휘영과 화무휘는 화진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북망산에 올랐다.
다른 수행원은 없었다.
화진이 몸소 두 꼬마를 이끌었고, 더군다나 당사자인 두 꼬마에게조차 북망산에 오르는 이유나 목적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집을 떠날 테니 짐을 단단히 꾸리라고 화진이 말한 것으로 보아, 북망산에서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얼핏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화진과 함께 북망산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두 꼬마는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북망산에 머물게 될 것인지를. 북망산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또 이것이 앞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

북망산의 북쪽 기슭.
그곳은 조금 이상한 곳이었다.
일단 때를 불문하고 언제나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었다.
절로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묘한 기운도 흐르는 것 같았고, 심지어 때론 노루 등의 산짐승마저도 근처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 자주 목격되었다.
게다가 이곳 북망산은 거의 산 전체가 무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그래서 북망산 인근의 나무꾼이나 약초꾼은 그 북쪽 기슭을 가리켜 ‘귀곡(鬼谷)’. 즉, 귀신이 사는 골짜기라고 부르며 아예 접근을 하지 않았다.
낙양 토박이인 휘영이나 화무휘도 당연히 이 귀곡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때문에 북망산의 귀곡 입구에 접어들었을 때, 두 꼬마는 각각 화진의 손을 잡고 그의 곁에 바싹 붙어서 걸었다. 목을 움츠리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버지! 왜 귀곡에는 오신 거예요? 여긴 대낮에도 머리 없는 귀신이 돌아다닌다던데…….”
화진을 중심으로 좌측에서 따라가는 꼬마, 화무휘가 재차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겁에 질린 어투로 물었다.
그의 말대로 주위는 당장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소문처럼 짙은 안개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고, 숲은 어찌나 울창한지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산짐승이나 작은 벌레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대신 그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락, 하고 풀을 밟는 소리만이 들려 더욱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러나 화진은 전혀 주저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두 꼬마를 더욱 바싹 곁으로 당긴 뒤, 능숙한 솜씨로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얼마나 오래 올랐을까. 여전히 두 꼬마가 겁먹은 기색을 보이자, 문득 화진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휘아야! 너도 귀신이 무섭느냐?”
“당연히 무섭죠. 아버님은 귀신이 무섭지 않으세요?”
화무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문했다.
그러자 화진은 갑자기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조금은 무거운 어투로 대답했다.
“물론 나도 귀신이 무섭단다. 그러나 세상에서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사람이란다.”
“사람이요? 어째서요? 귀신이랑 사람이랑 싸우면 사람이 이겨서 그런가요?”
“귀신과 사람 중에서 누가 더 강한가, 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다.”
“그러면요?”
화무휘는 여전히 부친을 따라 산을 오르면서도, 눈을 크게 뜨고 더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휘영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며 두 부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화진은 재차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잠시 후, 더욱 무거운 어투로 대답했다.
“귀신은 자신과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만 해코지를 한단다. 하지만 사람은 원한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나쁜 짓을 하게 되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마 지금 당장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너도 앞으로 나이를 먹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사람이 어째서 귀신보다 무섭다는 것인지, 지금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게다.”
그러면서 그는 가볍게 화무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화무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잠자코 듣고 있던 휘영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믿을 수 없고 이기적인 것이 바로 사람이다. 언제나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가까운 친구라도 배신할 수 있는 게 바로 사람이다. 아마 대가주님이 말한 사람이 귀신보다 무섭다는 뜻도 바로 사람의 이러한 성향을 뜻하는 것이겠지?’
어쩌면 나이에 비해 세상을 너무 비뚤어지게 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휘영이 너무도 불행하고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휘영은 태어나자마자 뒷골목에서 세상의 어두운 면을 접했던 터!
따라서 그가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단, 휘영은 이런 생각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화제를 바꿔 화진을 향해 공손히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대가주님께서 이곳에 온 것은 누군가를 만나기 때문이십니까? 사연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그는 사람이 무서워 이곳에서 차라리 귀신과 함께 사는 것이겠지요?”
그 말을 듣자, 화진은 갑자기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휘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새삼 그의 영리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잘 맞추었다. 사실 이 귀곡에는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단다. 다만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어, 귀신처럼 숨어 살고 있을 뿐이지.”
그러자 이번에는 화무휘가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런 곳에서 혼자 살면 심심하지 않을까요? 대체 그 사연이란 뭔데요?”
휘영과는 달리 아직은 인간사(人間事)의 복잡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말투. 사실 휘영과 정반대로 세상의 밝음 속에서만 태어나서 자란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역시 이 두 아이는 정반대구나. 한 녀석은 세상의 어두운 면만 보아 너무 비관적이고, 다른 한 녀석은 반대로 세상의 밝은 면만 보아 너무 낙관적이다.’
화진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꼬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물론 화무휘는 상관운의 죽음 이후 예전보다는 조금 위축되고 장난도 덜해졌다.
예전보다 생각도 조금 깊어졌고, 때론 그때의 일로 자다가 가위에 눌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타고난 천성은 휘영에 비하면 여전히 밝고 명랑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