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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전설 1권(15화)
제5장 화씨의 무공(2)


새벽부터 아침까지 천무심결을 수련한 후, 정오까지의 오전 시간도 수련에 변화가 생겼다. 내공심법과 더불어 무공을 펼치는 데 가장 필수적인 것, 바로 신법을 익히게 된 것이다.
신법은 그 특성상 모옥 앞의 넓은 공터에서 수련했는데, 무명 스승은 수련에 앞서 둘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설명했다.
“화씨 가문이 자랑하는 신법의 특징은 보법과 경공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보법은 좁은 공간에서 무공을 펼칠 때 쓰이는 움직임이요, 경공은 높이 솟구치거나 먼 거리를 달릴 때 쓰이는 것이다. 그러나 화씨 가문은 이러한 보법과 경공을 하나로 묶어, 두 개의 신법을 창안했다.”
“잔영신법과 무영신법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화무휘가 중간에 끼어들어 묻자, 무명 스승은 가볍게 녀석을 흘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세상의 신법들은 다시 크게 두 개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상대를 혼란시키기 위한 변화, 그리고 바람처럼 상대를 제압하는 속도,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신법들은 이러한 변화와 속도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성질을 적절히 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휘아가 말한 화씨 가문의 신법, 잔영신법과 무영신법은 그 성격이 이러한 다른 일반적인 신법과는 조금 다르다.”
무명 스승은 잠시 두 제자들을 둘러보며 숨을 골랐다. 새로운 무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두 제자들은 자신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었다.
“사실 화씨 가문이 자랑하는 신법도 이러한 속도와 변화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던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그 선택에 있어 무림의 다른 이들과 차이가 있었을 뿐. 화씨 가문의 사람들은 변화와 속도를 적당한 선에서 조율한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만 극단적으로 선택하여 강화한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한 무명 스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시범을 보여 줬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시범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무명 스승의 움직임은 마치 귀신을 보는 것 같았다.
“첫째는 무영신법! 그 이름처럼 변화는 배제하고 철저하게 속도에만 초점을 맞춘, 신속 그 자체의 신법이다!”
그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가운데, 그의 신형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넓은 마당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찌나 움직임이 빠른지 마치 공간을 뛰어넘어 순간이동을 하는 듯했고, 당연히 두 제자의 안력으로는 그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아!”
절로 두 소년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렇게 예닐곱 차례 움직인 뒤 무명 스승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둘째는 잔영신법! 이는 반대로 속도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변화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다시 그의 외침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그의 신형은 갑자기 수십, 수백 개로 불어났다.
비록 그 속도는 이전의 무영신법과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하지만 수백 명의 그림자가 넓은 모옥을 가득 메우는 광경은 이전과는 또 다른 놀라움이었다.
특히 가장 놀란 것은 화무휘였다.
‘잔영신법과 무영신법이 저 정도였나? 사범들이 펼치는 것은 가끔 구경했지만, 이건 완전히 차원이 다르구나!’
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실 그는 무명 스승의 실력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품고 있었다. 휘영은 무명 스승을 벌써부터 믿는 눈치였지만, 이미 기초가 완벽하다고 자부하는 자신에게 새삼 기초만 가르쳐 준 스승은 믿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 잠깐 펼친 신법을 본 후, 이러한 의심은 대번 눈 녹듯 사라졌고 오히려 존경심마저 들었다.
스승의 시범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불과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 지난 후, 스승은 처음처럼 마당 한가운데에 뒷짐을 진 채로 우뚝 섰다.
물론 두 제자는 이번에도 역시나 스승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들이 본 것은 수백 개에 이르는 스승의 그림자 뿐,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그림자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스승은 본래의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스승은 처음부터 움직이지도 않았던 것처럼.
이윽고 스승이 특유의 담담한 쇳소리로 말했다.
“겉으로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신법의 원리는 동일하다. 천무심결을 운용하여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듯 내공을 운용하는 것이 바로 핵심이다.”
그러자 휘영이 말허리를 자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두 신법은 다른 문파의 신법에 비해 내력의 소모가 크겠군요?”
무명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두 신법은 내력과 체력의 소모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아주 찰나의 순간이긴 하지만, 신법을 펼치기 전에 약간의 지체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이 지체는 너무도 짧은 순간이기 때문에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며, 당연히 신법에 대한 조예가 깊어질수록 그 시간이 짧아진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초일류 고수는 이 순간적인 약점을 파악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신법은 너무 남발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만 사용해야 한다.”
그 말을 듣자, 이번에는 휘영이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찰나적으로 움직임이 멈추는 약점이 있다면, 그 신법은 좋지 않은 것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내력과 체력의 소모가 크다면 몇 번 펼치고 곧 지칠 텐데 말입니다. 혹시 다른 신법은 없습니까?”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후, 둘은 강호에서 솜씨를 겨룰 때 이 약간의 지체 현상으로 인해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명 스승은 당황하지 않고 담담히 대답했다.
“천하에 완벽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듯이, 천하에 단점이 없는 무공이란 있을 수 없다. 또한 찰나의 지체 현상도 무영과 잔영을 누가 펼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지금 너희가 무영과 잔영을 펼치면 그 지체가 아주 길겠지만, 나나 화진 님이 펼친다면 그 지체는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찰나이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무명 스승의 말은 계속되었다.
“내력과 체력의 소모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내공의 수준이 겨우 십인 자가 삼을 소모하는 것과 내공의 수준이 백인 자가 삼을 소모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내력과 체력의 소모 문제는 무공의 수준이 올라간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겠군요?”
그제야 화무휘는 의심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무영과 잔영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신법에 대한 휘영과 화무휘의 선택은 조금 달랐다. 물론 무명 스승의 말대로 두 개의 신법은 비슷한 성격을 지녔지만,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다른 것처럼 둘은 각자 장기로 내세우는 신법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우선 화무휘는 무영신법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변화를 제압하는 것은 속도! 역시 신법은 빛살처럼 빠르고, 바람처럼 가벼운 것이 제일이다!”
그는 한정된 연습 시간에서도 무영신법에 조금 더 시간을 할애했다. 비무 등에서 사용할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라면 무영신법을 우선시했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무영신법의 성취가 다른 것보다 조금 더 빨랐다.
반면 휘영은 잔영신법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분명 잔영신법은 무영신법에 비해 느립니다. 그러나 정중동의 원리에 입각하여 중심을 단단히 하고 상대를 현혹시킨다면, 제아무리 빠른 신법이라도 결국 수많은 그림자에 갇혀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휘영은 화무휘와 반대로 잔영신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결국 잔영신법의 성취가 무영신법보다 빨랐다.
섬광의 무영신법을 선택한 화무휘.
그림자의 잔영신법을 선택한 휘영.
빛과 그림자를 연상시키듯 둘은 서로 조금씩 다른 무도(武道)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두 소년이 귀곡에 들어온 지 약 이 년이 지났을 무렵.
어느 날 무명 스승은 두 제자들을 불러 모옥 앞마당에 세워 놓고 물었다.
“오늘날 화씨 가문의 명성을 만들어 준 것이 무엇이더냐?”
사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게다가 이제 와서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길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화무휘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천무심결, 무영신법, 잔영신법, 천무장법……. 많은 무공들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제일은 역시 검법입니다. 가문이 괜히 검중 제일가라고 칭하는 것은 그만큼 검법이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스승은 뒷짐을 지고 선 채로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사실 천무장법을 비롯한 여타의 무공들은 엄밀히 말해 검법을 다른 형태로 변형시킨 것! 사람들이 화씨 가문 제일 먼저 검법을 떠올리듯, 화씨 가문의 으뜸은 역시 검법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무로 만든 두 개의 장검을 등 뒤에서 꺼내 제자들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두 제자들은 목검으로 기초적인 검술 수련을 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준 것은 아이들을 위한 작은 목검이 아닌, 성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길이와 무게의 목검이었다.
“드디어 가문의 검법을 배우는 것입니까?”
화무휘는 두 손으로 공손히 목검을 받아들며 흥분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검중 제일가, 화씨 가문! 드디어 그들의 검법을 접하는 건가?’
평소 침착하고 냉정하던 휘영도 이번만큼은 두 손으로 공손히 목검을 받아들며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두 소년의 흥분과 달리, 무명 스승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작에 앞서 다시 하나 묻겠다. 그동안 천하제일검파를 자처했던 무당파의 검법은 모두 몇 종류가 있느냐?”
무명 스승이 두 제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두 꼬마들은 서로의 눈치만 볼 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화씨 가문의 검법을 언급하다가, 뜬금없이 무당파의 검법에 대해 물은 의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휘영이 조심스럽게 무명 스승의 눈치를 살피며 공손히 대답했다.
“현재까지 외부에 알려진 바로는…… 우선 가장 유명한 태극혜검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태청검법, 구궁연환검법, 태극검법 등 모두 열다섯 종류의 검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화씨 가문의 검법은 모두 몇 종류가 있느냐?”
다시 무명 스승이 물었고, 그러자 이번에는 화무휘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화씨 가문의 검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천류검과 현천검이 있지만 그것은 정식의 검법이 아닌, 천무십이검을 익히기 위한 일종의 수련검법입니다. 또한 일반 제자들이 익히는 상심검이 있습니다만, 그것 또한 따지고 보면 천무십이검을 배우기 쉽게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화씨 가문의 검법은 오직 하나, 천무십이검뿐입니다.”
두 제자들은 더욱 스승이 질문하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왜 뜬금없이 갑자기 검법의 수를 물으시는 걸까? 천무십이검과 무당파의 열다섯 검법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비록 잠자코 스승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두 제자들은 내심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