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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전설 1권(16화)
제5장 화씨의 무공(3)


그러나 두 제자들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약간의 뜸을 들인 뒤, 다시 무명 스승이 나직하게 말을 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질과 능력이 똑같은 두 명의 천재가 있다고 예를 들겠다. 둘 중 한 명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박학다식했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우직하게 오직 하나에만 몰두했다. 그러면 나중에 둘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
“…….”
“아마 처음엔 다방면에 능숙하여 박학다식한 자가 각광을 받을 것이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막힘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그를 천재라 칭송하겠지. 그러나 우직하게 한 분야에만 몰두한 사람은 조금 다르다. 아마 사람들은 너무 우직하게 하나만 몰두한다고 그를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는 적어도 그 하나에 있어서만은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제야 두 제자들은 스승이 질문한 의도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화씨 가문의 검법은 바로 그런 것이다. 검의 본가라는 무당에는 수많은 검법들이 있고, 그들은 이것을 다양하게 발전시켰다. 하지만 화씨 가문의 사람들은 오직 하나, 천무십이검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솜씨 좋은 장인이 예술작품을 완성하는 것처럼…… 누대에 걸쳐 천무십이검만 익히고, 전승하고, 발전시켰다.”
잠시 마른침을 삼키고 숨을 돌린 뒤, 무명 스승의 말은 계속되었다.
“더 쉽게 예를 들자면, 무당파의 검법은 아홉의 위력을 지닌 열다섯 개의 검법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화씨 가문의 검법은 열의 위력을 지닌 단 하나의 검법뿐이다. 물론 아홉의 위력을 지닌 무공은 상대적으로 익히기가 쉽고, 그 종류가 많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자체가 갖는 태생적인 위력의 한계로 인해, 무당파의 검법들은 절대 열의 위력을 지닌 화씨 가문의 검법을 누를 수 없다. 즉, 절세의 검법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완벽히 통달한다면 천하제일의 검법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천무십이검이다!”
선택과 집중!
다시 말해 화씨 가문의 무공들은 모두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될 수 있었고, 이것이 바로 화씨의 검법이 무서운 이유였던 것이다.
“사실 화씨 가문이 처음부터 명문가였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가문들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처음엔 낙양 변두리의 작은 무가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다른 가문들이 더욱 대단한 무공을 개발하고 익히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그들은 조용히 하나의 무공을 전승하고 발전시켰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스승의 말은 계속되었다.
“당연히 처음엔 외부에서 좀 더 고강한 무공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사람들은 화씨 가문의 사람들을 곰처럼 어리석다 비웃었고, 심지어는 그들을 가긍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거듭된 노력으로 태산마저 옮긴다는 고사는 과연 틀린 게 아니었다. 그 집요한 끈기 덕분에 화씨의 검법은 누대에 걸쳐 조금씩 진화를 거듭했고, 그 거듭된 진화가 쌓인 당금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천하제일의 검법이 되었다.”
“아!”
두 제자는 다시 탄성을 내뱉었다. 오랜 세월에 걸친 화씨 가문의 끈기와 집념, 그리고 확고한 믿음이 눈앞에 펼쳐지듯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천무십이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렸을까? 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묵묵히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까?’
휘영은 감탄을 넘어서서 문득 감동마저 들었다.
무명 스승의 설명은 여기까지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그동안 너희의 선조들이 어떻게 천무십이검을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천무십이검이 어째서 천하제일의 검법이라 불리는지…… 내가 직접 보여 주겠다.”
무명 스승은 두 제자들을 데리고 세심정 밖, 모옥의 넓은 앞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곤 휘영에게서 목검을 받아든 뒤, 오른손의 검을 아래로 늘어뜨린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두 다리도 어깨 넓이로 자연스럽게 벌렸으며, 눈빛은 아예 무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 저게 바로 고수들이 사용한다는 자연체라는 건가?’
두 제자들은 멀찌감치 마당의 곁에 서서,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스승의 다음 행동을 주목했다.
본격적인 시범에 앞서, 스승이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무십이검의 수법 중 맹호비약(猛虎飛躍)이라는 초식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위를 공격하는 일정한 수법이 아닌, 나보다 위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모든 검로(劍路)들의 총체이다. 따라서 하나의 수법이라도 그 사용이나 응용이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며, 이 때문에 천무십이검은 그 하나의 수법을 익히는데, 몇 달씩이나 긴 시간이 소요된다.”

―천무십이검 제칠식! 맹호비약!

그 말과 함께 마침내 스승의 신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잔영신법을 극성으로 펼치자 무명의 그림자가 수백 개로 불어났다. 그리고 이어서 신영들이 일제히 가볍게 빙글 회전하더니, 주위에 검막(劍膜)을 형성하고 천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 마치 지상의 성난 호랑이가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뛰어오르는 듯이.
분명 하늘로 솟구치는 것은 느리게 움직이는 게 불가능하다. 그런데 무명 스승은 이런 자연의 이치를 비웃듯 매우 천천히 승천했다.
게다가 목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가 일종의 막을 형성하여 무명의 주위를 감싼 탓에, 멀리서 언뜻 보기엔 스승이 마치 거대한 검으로 변한 느낌도 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느리게 하늘로 올라갈 수 있지? 저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은 곧 언제든지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다는 뜻! 역시 스승님은 보통 분이 아니시구나!’
화무휘와 휘영은 너무 놀란 탓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공으로 둥실 떠올라 정지한 가운데, 무명 스승의 말은 메아리처럼 계속되었다.
“천무십이검의 또 다른 수법 중 검기충천(劍氣衝天)이 있다. 이는 현천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검을 이용하여 체내의 내공을 일종의 강기처럼 외부로 발출시키는 무공이다.”

―천무십이검 제삼식! 검기충천!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스승의 그림자에서 잠시 푸른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이어, 스승의 검끝에서 섬광이 하나의 직선처럼 곧게 쏟아졌다.
그 빛은 인간의 안력으로 정확히 보기엔 너무도 짧았다. 정확한 형체는 당연히 볼 수 없었고, 그저 푸른빛이 잠시 번쩍이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 빛을 감지한 순간, 십여 장 밖에 떨어진 커다란 바위가 돌연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콰콰쾅!
바위가 산산조각 부서지는 광경이 두 제자의 시선에 환영처럼 아로새겨졌다.
‘체내의 내공을 검에 주입하고, 다시 이것을 형체화하여 외부로 발출한다? 그건 단순히 검기를 검 밖으로 형체화하는…… 검경(劍勁)의 경지를 뛰어넘은 것이 아닌가?’
이번에도 두 제자의 입은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무명 스승의 시범은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허공에 떠올라 정지한 채, 다시 그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러나 천무십이검의 진짜 무서운 점은 이러한 수법 하나, 하나에 있지 않다! 천무십이검이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서로 다른 수법 간에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인 바. 이것이 바로 역대 화씨 가문의 사람들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이기도 하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수법을 조합한다? 수법들을 하나로 합친단 말인가? 그게 뭐지?’
‘무공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초식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무공은 외형의 초식과 내면의 내공이 함께해야만 진정한 무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개의 수법을 하나로 합치겠다고? 겉으로 드러난 초식은 그렇다고 해도, 그 내면의 내공 운용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합친단 말인가?’
제자들은 순간적으로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심은 잠시, 이내 의심은 더욱 대단한 탄성으로 바뀌었다.
무명 스승의 신영이 지금까지와 달리 돌연 빠르게 회전했다. 그리곤 허공에 뜬 상태에서 계단을 밟고 오르듯 다시 더욱 위로 솟구쳤다.
‘허공답보? 그것도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상태에서 허공답보를 한다고? 저런 게 정말 사람의 몸으로 가능한 건가?’
두 어린 제자들은 기가 막혔지만, 무명 스승의 신위는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천무십이검 제칠식 맹호비약! 제삼식 검기충천!

맹호비약의 수법으로 인해 무명 스승의 주위는 흰색의 검막으로 휩싸였다. 그리고 이어서 푸른빛이 번쩍였다고 느낀 순간, 이번에는 갑자기 검기충천의 수법으로 보이는 푸른 섬광이 빠르게 쏘아졌다.
그것도 단순히 하나의 섬광이 아닌, 수백 개로 불어난 스승의 잔영들에 호응하듯 수백 개의 섬광들이 빗줄기처럼 사방으로 쏘아졌다.
원래대로라면 무명 스승의 검기는 주위의 다른 목표와 충돌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곳은 장소가 제한이 돼 있었기 때문에, 무명 스승은 수백 개의 그림자들로 일제히 검기를 만들어 자신의 검기와 검기끼리 충돌을 시켰다.
콰콰콰콰쾅!
검기와 검기가 충돌하는 바람에 폭죽이 터지듯 사방에서 요란한 폭발이 일었다. 폭발의 여파로 인한 돌풍은 눈조차 뜰 수 없게 만들었고, 하늘은 뿌연 흙먼지로 인해 누렇게 빛이 바랬다.
“우욱!”
두 제자들은 급히 소매로 얼굴을 가린 뒤,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연신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섰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혼돈의 틈새에서 무명 스승의 말이 다시 메아리처럼 들렸다.
“지금 이것이 바로 맹호비약과 검기충천을 하나로 조합한 것이다. 이제 알겠느냐? 수법간의 자유로운 결합을 통해 천무십이검은 단 열두 개의 수법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궁무진하게 진화하는 것이다!”
‘아아!’
그제야 두 제자들은 지금부터 자신들이 배워야 하는 무공의 의미를 깨달았다.

수법간의 조합을 통해 자유롭게 변화하는 검법!
스스로 끊임없는 진화를 거듭하여 유형의 한계를 구분 짓는 게 무의미한 검법!

일반인들의 상식을 비웃는 이 황당한 검법이 바로 현재 천하제일검법을 다툰다는 천무십이검의 요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