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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5화)
第三章 숨바꼭질(3)
“점창파의 진승지라고 합니다.”
진승지가 장소팔에게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장소팔이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장소팔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진승지가 장소팔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귀하가 이곳의 주인 되십니까?”
장소팔이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유소혜를 힐끔 쳐다보았다.
“저 사실은 주인과 절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지요.”
진승지가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진승지가 보기에 이곳은 전형적인 무가(武家)의 장원이었다.
그리고 한눈에 보아도 장소팔은 무공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때문에 그가 이곳의 주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승지가 힐끔 유소혜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소혜는 굳이 이런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하긴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인가?’
장소팔이 이곳의 주인이든 아니든 확실한 것은 그의 말처럼 친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의 주인과 필시 관련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듯했다.
“그렇군요. 허면 이곳의 주인은 어디에 계십니까?”
장소팔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살며시 허공을 둘러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요. 아무튼 시장하신 듯하니 일단 식사들 하시지요.”
진승지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신세를 지겠습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진승지가 장소팔에게 자리를 권했다.
“함께하시지요.”
장소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시장하실 테니 앉아서 먼저 식사들 하시지요.”
진승지가 다시 한 번 공손히 고개를 숙이면서 자리에 앉았다.
장돈복 등도 장소팔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자리에 앉았다.
지난 사흘을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사 인은 헐레벌떡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장소팔은 유소혜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헐레벌떡 음식을 먹던 장돈복은 일단의 허기를 채우자 조금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비로소 유소혜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장소팔을 확인했다.
이내 장돈복의 입가에 살짝 비웃음이 흘렀다.
“귀하는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신지요.”
장소팔이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자신의 객점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 옆에서 가친과 함께 객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돈복이 다시 한 번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왠지 음식 솜씨가 좋더라니.”
장돈복의 행동에 진승지가 그를 책망하듯 노려보면서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장소팔에게 포권을 취했다.
“사제의 무례를 제가 대신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장소팔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그런 장소팔을 향해 장돈복이 다시 한 번 비웃음을 흘렸다.
유소혜가 그런 장돈복을 향해 살짝 인상을 찌푸렸고, 어제 상처를 치료했던 청년 역시도 꺼림칙한 표정으로 사형 장돈복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식사는 비교적 빨리 끝났다.
그들이 굶주린 까닭도 있었지만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 했기에 가능한 빨리 식사를 끝내야 했다.
식사를 끝내기가 무섭게 진승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장소팔을 향해 말했다.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서둘러 떠나야겠습니다. 이곳의 주인께도 감사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음식 너무나 맛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고 귀하가 운영하는 객점에 반드시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진승지가 포권을 취하자 다른 삼 인 역시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장소팔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망설임 없이 짐을 챙기기 위해 본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와중에도 장소팔은 시종일관 유소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야, 나도 무림인이나 될까?”
어느새 그의 옆에 나타난 소무린이 남은 음식을 주섬주섬 먹으면서 말했다.
“네 꿈은 대명 최고의 요리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장소팔이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웬 무림인 타령이냐?”
장소팔이 몽롱한 시선으로 대답했다.
“그 여자 예쁘잖아.”
소무린이 뜻밖이라는 듯 장소팔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예쁜 거냐?”
장소팔이 다시 한 번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실성한 사람처럼 히죽 헤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지금이라도 가능할까?”
소무린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서라, 그 여자 내가 벌써 침 발라 놨다.”
장소팔이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소무린을 바라보았다.
“무슨?”
순간 소무린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장소팔을 향해 말했다.
“나야 좋지. 네가 무림인이 되면. 물론 가능하기도 하고. 헌데 네가 사람이나 죽이는 인간백정 노릇을 할 수나 있겠냐?”
장소팔이 힐끔 소무린을 쳐다보았다.
“그럼 너는?”
소무린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뭐, 나야 숨바꼭질이나 좋아하는 사이비(似而非) 무림인 아니냐.”
장소팔이 이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데 아까 그 여자 다시 볼 수는 있을까?”
소무린이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第四章 입만 배렸나?(1)
폐장원을 벗어난 진승지 등은 즉시 무당을 향해 북상을 시작했다.
폐장원을 떠날 때부터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장돈복이 결국 얼마 후 진승지를 향해 불만을 터트렸다.
“대사형, 차라리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놈을 제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진승지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장돈복을 바라보았다.
“놈이라니?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
진승지의 떨떠름한 표정과 반응에도 장돈복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했다.
“뻔하지 않습니까? 아까 객점을 운영한다던 그 젊은 놈 말입니다.”
장돈복의 말에 진승지가 더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놈이라니 말을 삼가라. 그리고 지금 내게 은혜를 원수로 갚자고 말하는 것이냐?”
진승지의 냉담한 반응에 장돈복이 비로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언제나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 아닙니까? 자칫 놈, 아니 그로 인해 우리의 행적이 마교도들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으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돌아가…….”
장돈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승지가 발걸음을 멈췄다.
순간 장돈복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오른쪽 뺨의 얼얼한 통증이었다.
장돈복의 뺨을 후려친 진승지가 노한 표정으로 호통을 내질렀다.
“이놈, 네놈은 지금 그것을 말이라고 하느냐? 대체 네놈이 말하는 대는 무엇이며, 소는 무엇이라는 말이냐? 설마 네놈의 그 잘난 목숨과 우리의 목숨이 대요, 그가 일개 객점을 운영하는 사람이기에 그의 목숨이 소라는 뜻이냐? 그러고도 네놈이 과연 명문 점창의 제자라고 말할 참이더냐? 네놈은 대체 지금까지 점창에서 무엇을 배운 것이더냐?”
장돈복을 바라보는 진승지의 표정은 분노를 넘어 혐오로 바뀌고 있었다.
동시에 두 사람의 옆에 멈춰 선 유소혜와 막내 사제 역시도 일련의 사태에 적지 않게 놀란 듯 장돈복을 진승지와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장돈복은 두 사형제들의 시선보다도 유소혜의 안색을 먼저 살폈다.
그리고 진승지를 향해 강하게 반박하며 말했다.
“사형,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소제는 목숨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세상에 마교의 등장을 알리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진승지가 더더욱 한심하다는 듯 차가운 시선으로 장돈복을 바라보았다.
“닥쳐라,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대체 우리가 저 마교나 사도의 무리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느냐? 한 번만 더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내 사부님을 대신해 네놈의 그 귀하디귀한 목을 벨 터.”
“하오나 사형.”
“아니, 그래도 이놈이.”
진승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검으로 손을 옮겼다. 순간 유소혜가 그를 제지하며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진 대협,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유소혜의 말에 진승지가 분노를 삭이면서 말했다.
“유 소저의 앞에서 사문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장돈복을 향해 말했다.
“내 오늘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터, 추후에 내 오늘 네놈의 일을 다시 추궁할 것이니 더 이상은 그 천박한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거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승지가 지체 없이 몸을 움직였다. 유소혜 역시 재빨리 그런 진승지의 뒤를 따랐다.
앞서 나가는 두 사람의 뒤를 따르면서 특히 유소혜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장돈복은 뿌드득 이를 갈았다.
얼마 전 유소혜의 뒷모습을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장소팔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그 천한 놈 때문에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다니.’
그 시각 그 천한 놈은 실제로 장돈복의 우려처럼 마교도들을 만나고 있었다.
하지만 장돈복의 예상과는 달리 마교도가 장소팔에게 물은 것은 그들에 관련된 사실이 아니었다.
“이보게 젊은이, 저 폐장원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다짜고짜 길을 막고 질문하는 흑의인을 향해 장소팔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폐장원? 아, 천도무문을 말씀하시는 것이로군요. 그곳에는 한 명밖에 살지 않습니다.”
흑의인의 옆에 선 백의인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오전에 운반하던 그 엄청난 양의 식재료들은?”
장소팔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어제 소무린에 의해서 쫓겨났던, 진승지 등이 마교의 절대고수라고 칭하는 흑백쌍마였다. 이렇게 진승지 등이 마교의 절대고수로 생각하는 이 두 사람이 장소팔의 눈에는 그야말로 하릴없는 한심한 사람처럼 보였다.
‘참 할 일도 없는 놈들이로세.’
장소팔은 이런 생각으로 두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삼십 대 초반의 흑의와 백의를 걸친 두 사람, 일단 생긴 것은 번듯해 보였다. 그리고 한가락 하는 듯 나름 번듯한 기도까지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대단한 인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 그들의 말로 미루어 보자면 아마도 그들은 자신이 처음 식자재를 운반해 천도무문에 들어갈 때부터 이곳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고, 자신이 나오는 지금까지 줄곳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천도무문과 마교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장소팔에게 두 사람의 이런 행동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더구나 이들이 자신의 친구인 소무린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은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사는 사람이라고는 소무린뿐인 다 쓰러져 가는 폐장원, 그곳에 이렇듯 관심을 가지는 것도 우습지만 뭐하면 그냥 들어가서 물어보면 될 일을 지금까지 여기에 숨어서 자신을 기다렸다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긴 그놈이 숨바꼭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지. 혹시 들어갔다 놈을 못 찾았나?’
이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면서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야 한 달 치 식량이니까요.”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물론 혼자 먹기엔 좀 많은 양이지만 놈이 워낙 대식가라.”
장소팔의 대답에 흑마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비록 고수라고는 하지만 고작 한 명뿐이란 말인가? 결국 최초의 예상처럼 천도무문이 고작 삼백 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는 뜻인가?”
흑마의 중얼거림에 백마는 좀처럼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장소팔을 바라보았다.
이 두 사람의 이상한 행동에 장소팔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저,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빨리 가 봐야 되거든요.”
백마가 흠칫 놀라면서 장소팔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소형제, 바쁜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네. 이것은 내 조그만 성의일세.”
백마는 길을 비키면서 장소팔에게 금자 한 냥을 내밀었다.
금자 한 냥은 웬만한 가정의 한 달 치 생활비,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때문에 장소팔이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백마와 금자를 번갈아 바라보자 백마는 그의 손에 금자 한 냥을 쥐어 주는 친절함까지 잊지 않았다.
그리고 흑백쌍마는 바람처럼 그곳을 벗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