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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6화)
第四章 입만 배렸나?(2)


장소팔은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과 손에 든 금자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웬 횡재. 별 미친놈들 다 보겠군.”
그리고 소무린을 떠올리며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는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고 했던가? 아무튼 녀석과 관련이 있는 돈이니 이 돈으로 같이 기루에나 한번 가 볼까?”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금자 한 냥의 용도를 생각하면서 집에 도착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위협하듯 식칼을 든 아버지 장봉상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냐?”
서슬 퍼런 아버지의 식칼 앞에 장소팔은 지금까지의 일들을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물론 금자 한 냥만 빼고서.
실제로 천도무문에 가면 장소팔이 늦는 일은 다반사였다.
한 달 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회포를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늘은 뜻밖의 일들 때문에 오히려 일찍 돌아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장봉상 역시도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말로는 늦었냐고 묻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밖의 나들이를 준비하는 소무린, 아무리 한 달 만에 만나는 친구라고 하지만 이런 친구의 나들이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장소팔은 이렇게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평소보다 빠른 귀가. 하지만 어찌 되었건 늦은 것은 늦은 것, 언제나 한 달에 한 번 오늘은 아버지의 정해진 설교를 듣는 날이었기에 장소팔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봉상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터져 나왔다.
“그래, 오늘에서야 드디어 무문의 봉문이 풀렸단 말이지. 그럼 이제 장사 좀 되겠는걸.”
장소팔은 이런 아버지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도무문이 봉문을 푼 것과 객점의 영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이런 터무니없는 희망을 뒤로한 채 장소팔은 품 안의 금자를 살짝 움켜쥐었다. 동시에 얼마 전 기루에서 보았던 아리따운 기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얼마 후 장봉상의 예상처럼 풍운각은 삼백 년 만에 최고의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얼마 후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바로 그 당일의 일이었다.
그 시각 소무린은 장소팔의 예상처럼 나들이를 나서고 있었다.
물론 방향은 유소혜 등이 향한 북쪽이었다.
딱히 그녀를 다시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저 괜히 북쪽의 경관을 한번 살펴보고 싶은 욕망이 들었을 뿐이었다.
굳이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라면 언젠가 장소팔에게 북쪽에 동정호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그 호수의 풍경을 한번 보고 싶을 뿐이다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동정호가 어디로 달아나는 것도 아닐 텐데 소무린은 매우 빠르게 북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북상하는 와중에 어제 천도무문에서 보았던 흑백쌍마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들 역시 동정호를 구경하러 가는 듯 빠르게 북상하고 있었다.
소무린은 은밀하게 그들의 뒤를 따르면서 단지 저들이 동정호로 향하는 듯해서 그들을 길잡이로 생각하고 그들의 뒤를 따를 뿐이라고 또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정호에 도착하기도 전에 흑백쌍마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리고 그 앞에는 진승지 일행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흑백쌍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동정호로 가는 길이었지만 정말 우연한 기회에 이렇듯 아는 사람들과 다시 만났으니 잠시 그들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소무린이었다.

“흐흐흐, 고작 여기까지 도망쳐 온 것인가?”
예상했던 대사와 함께 은은한 살기마저 밖으로 표출하면서, 그리고 얼굴에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면서, 흑백쌍마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고양이 앞의 쥐라고 해야 할까?
이내 진승지와 장돈복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또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연방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사방이 탁 트인 공간, 하지만 모두가 달아난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듯했다.
이렇듯 달아날 생각부터 먼저 하는 두 사람과는 달리 유소혜의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숨어서 이를 지켜보던 소무린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 유소혜의 모습은 강한 적을 상대로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추스르는 바로 그것이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
“이놈,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무공의 강약 여부를 떠나서 가장 크게 승부를 좌우하는 것이라고 내 그토록 누누이 일렀거늘.”
소무린이 열 살 때부터 비무를 시작한 이래로 그의 삼사부가 자신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몇 번이고 강조하던 그 말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여자 제법인걸.’
이런 생각으로 소무린은 유소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왜 이런 것일까?
괜히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자연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그토록 삼사부가 강조하던 평정심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사이 진승지 역시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듯 검을 뽑아 들면서 아직도 얼굴이 핼쑥한 장돈복을 향해 말했다.
“못난 놈, 막내의 모습을 보고도 부끄럽지 않으냐?”
이렇듯 진승지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지금 그의 말처럼 유소혜의 옆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검을 뽑아 들고 서 있는 막내 사제의 평온한 모습 때문이었다.
‘과연, 사부님의 말에 한 치의 틀림이 없구나.’
언젠가 자신의 사부인 왕인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보청이야말로 향후 점창을 이끌어 나갈 최고의 기재라고 했던가?’
솔직히 지금까지도 진승지는 그런 왕인감의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진승지가 서른을 넘길 당시 왕인감은 더 이상은 제자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었다. 팽보청은 그런 왕인감이 자신의 말을 번복하면서까지 받아들인 막내 사제였다.
당시 팽보청의 나이 열 살, 진승지가 보기에는 그다지 특출할 것도 없어 보이는 그저 평범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사부의 총애를 받는 팽보청에게 괜한 질투심마저 일어났지만 굳이 이를 내색치 않았다.
나이 차이도 나이 차이려니와 팽보청이 워낙 붙임성이 있는 아이인지라 그런 마음은 금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귀여운 막내 사제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부가 처음 그를 받아들일 당시의 일들마저 어느새 잊고 말았다.
그런데 위기에 처한 지금 더없이 차분한 팽보청의 모습이 당시 왕인감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둘째 사제 장돈복의 모습이 더욱더 그런 팽보청의 모습을 빛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막내 사제만이라도 꼭 살리고 싶구나.’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소혜 낭자, 여기는 저희에게 맡기고 몸을 피하시지요.”
진승지의 전음에 유소혜가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진승지를 바라보면서 거부의 의사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승지의 생각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장돈복의 말처럼 마교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 자신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진승지는 이곳에서 그녀의 무공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고, 달아난다면 그녀가 달아나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유소혜는 동료를 버리고 갈 만큼 모진 인물이 못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 유소혜는 흑백쌍마를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호승심(好勝心), 진승지의 말만 들었을 뿐 흑백쌍마의 무공을 직접 보지 못했기에 절대지경이라는 그들의 무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천천히 검을 뽑아 들면서 각오를 다지는 그녀의 모습에서 진승지는 이런 그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결정에는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강제로 그녀를 떠나보낼 수도 없는 상황, 진승지의 얼굴에 그야말로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돈복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 역시 앞으로 벌어질 일전이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내 창백했던 그의 안색도 결심을 굳혔는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거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진승지의 말처럼 막내 사제인 팽보청의 모습 때문은 아니었다.
때때로 남자들은 아리따운 여인의 앞에서 만용을 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돈복의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라고 할까?
그렇게 무대가 갖춰지기까지 흑백쌍마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야 결정이 끝났는가?”
흑마의 말에 유소혜가 먼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검각의 제자 유소혜가 정식으로 귀하에게 도전하는 바입니다. 설마 연약한 여인을 상대로 두 분께서 합공이라도 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유소혜의 말에 흑마가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어린 나이에 제법이구나. 격장지계(激奬之計)라. 하지만 좋다. 기꺼이 너의 뜻을 따라 주마. 그러나 곧 후회하게 될 것이야.”
유소혜의 의도는 너무나 뻔했다.
흑백쌍마는 늘 함께 움직였다.
그것이 단순히 두 사람의 친분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의 진정한 무공은 합격술, 두 사람의 합공이 바로 하나의 무공, 마교가 자랑하는 최강의 무공 중의 하나인 이인합벽의 흑백쌍검술이었다.
이것이 이들 두 사람의 최고 절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각각의 무공수위는 그들의 서열이 말하듯 마교에서 삼백위권, 하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 마교 서열 백위권의 인물이라도 능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유소혜는 한눈에 이런 이들의 관계를 파악했고 이들 두 사람을 따로 분리시켜 상대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유소혜의 의도를 어찌 흑마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들을 상대로 굳이 이인합벽까지는 필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유소혜의 도발에 넘어가 주는 것이었다.
실제로 애초부터 이들을 상대로 모든 실력을 발휘할 생각조차 없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유소혜였다.
검각 내에서도 여인들만이 익힌다는 봉황검결이 유소혜의 손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흑마 역시 방심하지 않고 자신만의 성명절기인 흑마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서로의 무공을 살피려는 듯 조심스런 대결을 벌이기 시작한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백마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녀석, 소문으로만 듣던 검각의 무공을 견식할 기회를 가로채다니.”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남아 있는 세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서 조금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어디 연약하다는 여인보다도 연약한 이 떨거지들을 한번 처리해 볼까?”
백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승지를 포함한 삼 인이 눈빛을 교환하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상대는 혼자였다.
혼자인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삼 인은 흔히 사용하는 삼재진(三才陣)을 펼쳤다.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삼 인은 삼재진을 펼치면서 공히 점창이 자랑하는 회풍무류사십팔검(回風無流四十八劍)을 차례로 펼치기 시작했다.
진승지와 실력이 비슷한 형산파의 장문인 평보청이 흑마를 상대로 삼 초를 버티지 못했기에 이들 삼 인 중 진승지의 무공이 가장 고강하다면 이들 삼 인의 합공이 제대로 펼쳐진다고 할지라도 아마도 백 초 이상은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형산파의 장문인인 평보청을 상대할 당시 과연 흑마가 본연의 실력을 모두 발휘했던 것일까?
진승지는 이 점을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당시 흑마가 본연의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리고 지금 눈앞의 백마가 흑마의 실력에 못지않다면 승부는 더 빨리 귀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진승지는 얼굴에 초조함을 좀처럼 감출 수 없었다.
‘가능한 유 소저가 빨리 흑마를 제압해 주는 수밖에는 없는가?’
하지만 두 사람의 대결을 보아하니 쉽게 승부가 나지는 않을 듯했다.
딱히 위기의 해법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 하지만 진승지의 이런 우려는 다행스럽게도 우려에서 끝나고 있었다.
철없고 덤벙거리기만 하던 막내 사제 팽보청, 그가 어느새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중심인 천의 위치를 자연스레 점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게 천의 자리를 양보한 진승지는 언뜻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마교의 잡졸들에게조차 심각한 검상을 입었던 팽보청이 아니었는가?
하지만 실제로 팽보청이 상대한 마교의 잡졸들은 그 잡졸들 내에서도 단연 발군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인물임을 진승지와 장돈복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만큼 팽보청의 실력은 이미 두 사람을 훌쩍 능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를 먼저 눈치챈 것은 언제나 팽보청과 함께 생활했던 이들 두 사람이 아니라 바로 얼마 전 합류한 유소혜였다.
어쩌면 자신과 비교될 만한 실력을 소유했을지도 모를 팽보청이 있었기에 이렇듯 유소혜가 과감한 승부수를 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흑백쌍마의 실력은 유소혜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점창삼웅(點蒼三雄)의 합공에도 불구하고 쉽게 백마를 제압할 수 없었고, 그녀 역시도 흑마에게 조금씩 밀리는 형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