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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7화)
第四章 입만 배렸나?(3)


누가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고 했을까?
소무린은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인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의 다섯 사부들 사이에는 위계가 있었기에 그들의 싸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열다섯 살까지 자신의 사부들과 비무를 가졌지만 그것은 사부들의 일방적인 구타였을 뿐 결코 싸움이라느니 전투라느니 하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대하는 오 인의 목숨을 건 사투, 하지만 그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싸움 구경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오 인의 대결은 한 시진을 넘기고 있었다.
고수들의 싸움이라면 또 모를까?
자신보다 하수들의 싸움은 금세 지루하게 느껴지고 있었고, 제발 이제는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자신이 나서서 끝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주인공은 좀 더 극적인 순간에 등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루함을 참으면서 그 극적인 순간을 기다리던 소무린의 인내심은 점차 그 한계로 치닫고 있었다.
‘빌어먹을, 빨리 끝낼 수 있으면서.’
소무린은 흑백쌍마를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때가 되면 지금 자신을 기다리게 만든 복수를 호되게 하고 말 것이라고 내심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었다.
순간 흑마의 눈빛이 번뜩였다.
살기,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보였던 살기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한 시진여를 유소혜의 절기, 아니 검각의 절기를 감상하던 그 역시도 누군가처럼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점창의 절기를 감상하는 백마의 모습이 더욱더 흥겨워 보였기에 이쯤에서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흑마의 눈빛이 변함과 동시에 흑마의 검이 가일층 빨라지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운 표정과 함께 유소혜는 비로소 지금까지 흑마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흑마의 일수 일수에 유소혜는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늦어도 십여 수면 둘 사이의 승부가 갈릴 듯했다.
이런 두 사람의 대결은 다시 점창삼웅과 백마의 대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동요하지 않고 있던 팽보청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두 사형들을 향해 말했다.
“우선은 사형들이 유 소저를 도와주십시오.”
말과 동시에 그의 검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에 진승지가 놀란 표정으로 팽보청을 바라보았다.
“설마, 사일검법.”
사일검법(射日劍法)은 점창파의 비전 검법으로 점창파 최고의 검학이라고까지 평가되는 무공, 하지만 이미 사라진 검법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를 확인한 진승지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사일검법이라면.”
어째서 사부가 그토록 팽보청을 높이 평가했는지 이제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점창파 내에서 그토록 복원하려 노력했던 최고의 검학을 완성시킬 만큼,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까지 감추고 있을 만큼, 재능과 인격 모두에 있어서 팽보청이 자신을 능가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팽보청이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질투심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저 대견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백마 역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듯 검을 고쳐 쥐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재빨리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삼백 년 전 마교와 무림맹 간의 최후의 일전, 사람들이 흔히들 제삼차마교대전이라고 칭하는 그 최후의 대전에서 점창파 장문인 고영의 사일검법에 죽은 마교 고수들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고영의 분전으로 사람들은 점창의 이름을 소림과 무당의 이름 옆에 나란히 두기 시작했을 정도로 그의 사일검법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삼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사일검법은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백마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백마와 팽보청의 일전, 하지만 진승지와 장돈복은 그런 두 사람의 일전을 제대로 감상할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다.
삼백 년 전 고영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점창의 비기, 이렇게 삼백 년 만에 재현된 사일검법을 점창의 제자라면 누가 지켜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이를 확인하기에는 유소혜가 너무 곤란한 지경에 봉착해 있었다.
‘사일검법이라면.’
이런 생각으로 일단 팽보청과 백마의 대결에 어느 정도 안심한 두 사람은 곧장 위기에 처한 유소혜를 돕기 위해 흑마의 배후를 공격해 들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아쉽게도 팽보청의 사일검법은 아직 미완성의 검법이었다. 사일검법이 완성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아마도 소무린이 등장할 여지는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순간 흑마의 몸 주변으로 검은 안개가 어리기 시작했다.
흑운기(黑雲氣), 그것은 흑마의 내공심법이자 일종의 호신강기였다.
검은 안개는 흑마가 이 흑운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릴 때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백마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운기(白雲氣), 백마 역시 극성의 공력을 끌어올린 듯 희뿌연 안개가 그의 몸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제 때는 이르렀는가?’
이로써 멋진 주인공의 등장 시기가 임박했음을 소무린은 확신하고 있었다.
등 뒤로 달려드는 진승지와 장돈복의 공격, 하지만 흑마는 굳이 이를 피하지 않고 곧장 유소혜를 향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비천봉황우(飛天鳳凰羽), 하늘로 비상하는 봉황의 깃털처럼 검각이 자랑하는 봉황검결의 최후 초식이 어지럽게 허공을 수놓았다.
흑마가 잠시 이를 감상하듯 몸을 멈춰 세웠다.
감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비천봉황우의 약점을 간파하기 위해 잠시 움직임을 멈춘 것이었다.
그런 흑마의 뒤를 진승지와 장돈복이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을 무시하는 듯 흑마는 유소혜의 움직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두 사람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껏 웅크리며 흑운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린 흑마는 두 사람이 공격이 자신의 등을 강타하는 바로 그 순간 마음껏 흑운기를 외부로 발산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공격과 흑운기의 충돌을 이용한 반탄력을 더해 전면으로 흑운기를 발출함으로써 좀 더 강한 힘을 싣고자 했던 것이다.
진승지와 장돈복은 이런 흑운기와의 충돌의 여파조차 이기지 못하고 뒤로 튕겨져 나갔고, 바닥을 뒹굴면서 한 움큼씩의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동시에 흑마의 검이 흩날리는 봉황의 깃털 사이를 헤집고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쳐 하늘을 날고 있는 한 마리 봉황의 본신을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런 흑마의 공격을 채 막지 못한 봉황은 날갯짓을 멈추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유소혜, 득의의 웃음을 짓는 흑마, 등장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알고 몸을 움직이는 소무린, 미완성의 사일검법으로 패색이 짙어진 팽보청, 역시 득의하는 백마, 하지만 소무린은 무대가 준비되었음에도 그곳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빠르게 접근하는 강렬한 기운,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음을 느낀 소무린은 일단 다시 사태를 관망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홀연히 등장한 인물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면서 흑백쌍마를 향해 검기를 뿌렸다.
흑백쌍마는 대경하며 검기를 피해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의 눈빛을 교차하면서 검을 마주했다.
흑운과 백운이 교차하고 이내 두 사람의 기운이 하나로 뭉쳐 갔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 더 이상의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홀연히 등장해 검기를 뿌리는 인물, 그의 기운이 너무나 강맹하여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대의 존재를 확인이라도 시켜 주려는 듯 유소혜가 활짝 웃으면서 반갑게 소리쳤다.
“사형.”
하지만 그 역시도 대답할 여유는 없었다.
흑백쌍마의 몸 주변으로 아른거리는 흑백운기의 결합, 그 기운이 실로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시 삼 인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런 와중에 소무린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 한 곳이 쓰리도록 아파 오는 이유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등장한 사형이라는 인물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유소혜의 눈빛이 왠지 자꾸만 그의 가슴 한곳을 쓰리도록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서른은 훌쩍 넘은 중년인, 그런 중년인을 향한 유소혜의 눈빛은 단순히 사문의 사형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은 없었지만 소무린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승부는 이미 난 것이나 진배없었다.
얼핏 보아도 유소혜의 사형은 흑백쌍마가 쉽게 제압하지 못할 정도의 고수였다.
그렇다고 삼 인의 승부가 어느 한쪽으로 쉽게 기울지는 않겠지만 지금 다시 공력을 운기하며 내상을 치료하고 대결을 준비하는 유소혜와 팽보청이 합류한다면 흑백쌍마에게 승산은 없어 보였다.
결국 이 자리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악당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악당 노릇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의 불리함을 느낀 흑백쌍마가 천천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검각의 승룡검결은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달아나면서도 상대방의 칭찬을 아끼지 않는 흑백쌍마, 그런 흑백쌍마의 모습에 소무린이 입을 실룩였다.
‘꼭, 모자라는 것들이 자기 탓은 안 하고 남을 칭찬한다니까?’
이런 생각으로 유소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유소혜는 그야말로 마음을 가득 담은 그윽한 시선으로 그녀의 사형이라는 인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젠장, 입만 배렸나?’
소무린은 그야말로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입술에 손을 가져갔다. 첫 입맞춤의 짜릿함이 아직도 그의 입술에 남아 있는 듯했다.
“제길.”
무심코 이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유소혜의 사형이라는 놈이 소무린이 있는 방향으로 재빨리 검기를 뿌렸다.
하지만 이미 소무린은 그 자리에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잘못 들었는가?”
유소혜의 사형이라는 인물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늘 이어지는 상호간의 인사와 칭찬의 시간이 한동안 그곳에서 계속되었지만 그것이 소무린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그는 입술을 어루만지면서 그 자리를 많이 벗어난 상황이었다.
훗날 대륙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사 인의 고수와 두 명의 떨거지들의 운명적인 첫 번째 만남이 이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