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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8화)
第五章 뭐 공짜니까?(1)
“야, 대충 먹을 것하고 술 좀 갖다 주라.”
소무린의 말에 장소팔이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손님, 선불입니다.”
소무린이 다소 허탈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지금 장난할 기분이 아니거든. 일단 술부터 좀 가져와라.”
심상치 않은 소무린의 분위기에 괜히 장난을 친 것이 미안한 듯 장소팔이 머쓱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흑돼지 통찜 특별히 맛있는 부위로 부탁드려요.”
장소팔의 말에 장봉상이 흠칫 놀라면서 주방에서 힐끔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보통 장소팔이 웬만해선 맛있는 부위로 부탁한다는 말 따위는 사용하지 않았다.
있다면 절세미인이라도 풍운각을 찾았을 때 정도일까?
때문에 어디 절세미인이라도 찾아왔는가 싶어서 이렇게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할까?
하지만 절세미인은커녕 솜털도 벗겨지지 않은 젊은 놈 하나만이 덩그러니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더구나 그 젊은 놈이 백 년 동안 줄곧 외상으로 일관한 손님이고 보면 그다지 반가울 까닭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소무린의 탁자 위에 술 한 병을 슬그머니 내려놓으면서 장소팔은 힐끔 아버지 장봉상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장봉상의 표정은 장소팔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다시 주방으로 모습을 감춘 장봉상은 밖에 들릴 정도로 흥겨운 콧노래마저 부르면서 흑돼지 통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통찜이라는 것이 돼지를 통째로 찌는 것이었고, 그런 와중에 갖은 재료와 양념들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때문에 소량은 만들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칫 괜히 통째로 쪘다가 못 팔고 남는 것은 버려야 했다.
물론 하루쯤 그냥 내버려 두고 내일 팔아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오랜 풍운각의 역사에 그런 경우는 단 차례도 없었다.
하루가 지난 음식은 팔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일종의 전통이었고, 그 전통 덕분에 그나마 풍운각이 나쁜 지리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남는 음식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웠기 때문에 팔다 남으면 주로 고아들이나 거지들에게 나눠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경우도 일인지라 웬만하면 두 부자가 먹어 치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두 부자에게는 흑돼지라면 질릴 정도였고, 때문에 이렇게 늦은 시각에 혼자 풍운각을 찾아오는 손님이 결코 반가울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늘은 미리 요리해 둔 흑돼지 통찜이 통째로 남아 있었는지라 아들이 원하는 좋은 부위를 고를 수 있었다.
설사 장봉상은 미리 해 둔 통찜이 없어서 돼지를 새로 한 마리 잡는 한이 있더라도 소무린에게 맛있는 부위를 내놓고 싶은 것이 본심이었다.
장소팔이 보기에 지금 아버지의 이런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다른 때 같으면 주방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장봉상이 모처럼 푸짐한 음식이 담긴 접시를 직접 들고 주방에서 나와 소무린의 탁자 위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묵묵히 술잔을 비우던 소무린이 장봉상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아저씨.”
장봉상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소무린의 인사에 화답했다.
“그렇군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장봉상의 공손한, 그리고 친절한 모습에 장소팔이 적응하기 힘든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무린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저씨, 왜 이러십니까? 말씀 낮추세요.”
그러자 장봉상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무슨 말씀을, 일단은 저희 객점의 손님이 아니십니까? 더구나 일문의 수장이신 분께 어찌 제가 쉽게 하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소무린은 단순히 장봉상의 이런 행동을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일문의 수장은 무슨, 아저씨, 장난은 그만두세요.”
그러나 장봉상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장난이라니요, 당치않습니다. 참, 그건 그렇고 이제 봉문이 풀렸으니 개파대전을 여시랴 제자도 받으시랴 앞으로 무척 바빠지시겠습니다.”
소무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봉상을 바라보았다.
“예? 개파대전? 제자를 받아들이다니요?”
장봉상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보통은 다들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물론 거기에 필요한 음식은 걱정일랑 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그랬듯이 저희가 외상으로라도 계속해서 무문에 공급해 드리도록 하지요.”
이런 장봉상의 말에 소무린이 다소 멍청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소무린의 표정에 아랑곳없이 장봉상은 정중하게 소무린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태연히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런 장봉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소무린이 장소팔을 향해 중얼거렸다.
“네 아버지 왜 저러시냐? 혹시…….”
장소팔 역시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방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글쎄.”
지금까지 천도무문에 외상을 준 것만으로도 실로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마음껏 외상으로 가져가라는 장봉상, 그런 그의 모습이 결코 제정신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장봉상은 그 시각에 주방에서 부지런히 주판을 튕기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외상값과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에 대해서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대붕의 생각을 두 마리 참새들이 알 수나 있겠는가?
대붕은 연방 즐거운 듯 부지런히 주판을 튕기며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주방을 바라보던 소무린이 다시 텅 빈 식당을 둘러보면서 장소팔을 향해 말했다.
“손님이 한 명도 없네. 매일 이 지경이냐?”
손님이 없어서 장봉상이 저 지경이냐는 질문이었다.
장소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반대로 오늘은 정말 손님이 많았다. 덕분에 네가 여기 도착하기 전까지 바빠 죽는 줄 알았다니까.”
소무린이 믿기 힘들다는 듯 장소팔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도 마라. 오늘 단체 손님을 백 명이나 받았고, 이층에 방도 모두 예약이 꽉 찬 상태야. 그래서 미리 흑돼지도 열 마리나 잡았는걸. 아니면 이 시간에 너한테 이런 좋은 부위를 내줄 까닭이 있겠냐?”
장소팔의 가게를 처음으로 찾아온 소무린으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방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오늘 아저씨가 무척 힘드셨겠구나. 그래서 그런가?”
소무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술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야야, 천천히 마셔. 몸 상한다. 안주도 좀 먹어 가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무린의 술 마시는 속도가 평소보다 무척 빨랐다. 때문에 장소팔이 다소 걱정스런 표정으로 소무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소무린이 장소팔을 향해 잔을 내밀었다.
“쳐다만 보지 말고 너도 한잔 해라. 혼자 마시려니 좀 그러네.”
장소팔은 본능적으로 힐끔 주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면서 얼굴을 붉혔다.
언제 등장한 것일까?
그의 아버지 장봉상이 어느새 주방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괜찮다, 영업장에서 술은 무슨 술.”
이렇게 술을 사양하면서 다시 주방을 향해 힐끔 시선을 돌렸다. 순간 장소팔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 장봉상이 마셔도 괜찮다는 듯 술 마시는 시늉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장소팔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봉상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장봉상은 그가 술 마시는 것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아직 영업시간, 그것도 영업장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아버지가 허락하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하기 힘든 일이었다.
“알 게 뭐야?”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일단 허락이 떨어지자 눈앞의 술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장소팔과 소무린이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술병이 비었고, 장소팔이 다른 술병을 찾아가려던 찰나에 어느새 그의 아버지 장봉상이 술병을 들고 그들의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장소팔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졌다.
지금 장봉상이 들고 있는 술병은 평소에 가게에서는 팔지도 않는 꽤 오래전에 담가 둔 소홍주(紹興酒)였던 것이다.
장봉상이 아까워서 스스로도 가끔씩, 그야말로 가끔씩 꺼내 마시는 소홍주를 지금 병째로 꺼내 놓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미쳐도 제대로 미쳤구나.’
장소팔은 해맑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왠지 이렇게 꺼림칙하게 생각되고 있었다.
소홍주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는 장봉상, 순간 소무린이 그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기다렸다는 듯 장봉상이 소무린의 옆으로 다가왔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소무린이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까 말씀하신 개파대전이랑 제자를 받는 거요, 그거 꼭 해야 하는 건가요?”
기다렸던 질문이기 때문일까?
장봉상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제 천도무문이 다시 세상에 나왔으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돌아가신 다섯 노사부님들께서도 천도무문의 재건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소무린이 다소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거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제가 아직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지라.”
장봉상이 기다렸다는 듯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 그렇군요. 제가 미처 그 점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허면 제가 어떻게 하는지를 자세히 알아보고 추후에 문주님께 알려 드리도록 하지요. 허니 문주님께서는 그리 괘념치 마십시오.”
소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소홍주의 뚜껑을 따려던 찰나였다.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장봉상이 돌연 고개를 돌려 소무린을 바라보았다.
“아참, 내 정신 좀 보게. 오늘 이곳에 온 손님들 대부분이 천도무문을 방문하신다고들 하던데 혹시 만나셨습니까?”
소무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장봉상이 웃으며 말했다.
“자세한 사정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하지만 백여 명의 사람들이 천도무문으로 가는 것을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장소팔이 흠칫 놀라면서 장봉상을 바라보았다.
장봉상이 말하는 그 백여 명의 사람들, 오늘 풍운각을 예약한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검을 찬 무인들,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
장소팔이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장봉상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손님이라.”
소무린이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도무문을 찾아올 만한 손님, 그것도 백여 명이나 된다는 것은 소무린으로서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떠오르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마교, 바로 삼백 년 만에 부활한 마교였다.
이내 소무린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자 장소팔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먼저 가 볼게.”
소무린은 장소팔에게 인사말을 건네고 다시 장봉상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소무린의 모습을 확인한 장봉상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금 전 탁자 위에 올렸던 소홍주를 살짝 집어 들었다.
“뭐 하냐? 소팔아. 손님 가셨으니 탁자를 정리해야지.”
장봉상은 이렇게 말하면서 소홍주를 소중히 가슴에 품고 주방으로 향했다.
장소팔이 보기에는 아마도 소홍주를 내오는 순간부터 지금 소홍주를 챙겨 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이 장봉상의 의도된 행동처럼 보였다.
‘빌어먹을.’
오랜만에 소홍주를 마실 기회라고 생각했던 장소팔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소무린의 심상치 않은 표정과 예약 손님 백여 명을 떠올리며 조금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괜찮을까?’
소무린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받은 예약 손님들도 걱정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이렇게 중얼거리는 장소팔의 등 뒤에서 장봉상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빨리 탁자나 정리하라니까?”
장소팔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면서 탁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순간 장소팔은 무엇이 그리도 흥겨운지 주방을 정리하면서 연방 코를 흥얼거리는 장봉상의 콧노래를 또다시 들을 수 있었다.
낡은 흑의에 반쯤 게슴츠레 감겨진 눈, 어찌 보면 다소 멍청해 보일 것도 같은 중년인의 모습에는 그 멍청함을 일축시키는 알 수 없는 음산함이 느껴졌다.
“신마(神魔)님, 다시 한 번 자세하게 이곳을 수색했지만 현재 이곳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신마라 불린 중년인이 수하의 보고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없다라.’
신마는 천천히 사당에 세워진 위패들을 감상하듯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천도무문의 모든 곳이 먼지로 자욱했다.
하지만 오직 사당만은 비교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것은 필시 누군가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를 호위하듯 둘러선 수하들 중 일인이 무심코 위패로 손을 움직였다.
“무례하지 마라.”
신마의 호통에 위패로 손을 옮기던 수하가 움찔 움직임을 멈췄다.
신마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근엄하게 말했다.
“이 위패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무림사에 있어서 누가 이토록 철저하게 봉문의 약속을 지킨 적이 있었는가? 이렇듯 자파가 멸문의 위기로 치닫는 와중에도 외부로 일체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문파가 일찍이 있었는가? 그것도 전 무림인들에게 쫓겨 음지로 사라진 우리 마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신마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감격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이 경멸하는 어둠의 세력인 마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삼백 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들. 천도무문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인정하는 마교의 사람으로서 그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도 과연 자신이라면 이 좁은 장원에서 일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엇이 이들에게 이 모진 고통을 감내하도록 만들었을까?
신마는 그것의 정체로 ‘의(義)’라는 한 글자밖에는 떠올릴 수 없었다.
“역시 당시의 상황이 비단 우연만은 아니었는가?”
마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의 고수로까지 평가되는 절대천마 척계광, 그가 천도무문주 추문소와 동귀어진을 한 것은 결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백 년의 세월 동안 봉문의 약속을 철석같이 지켜온 이들의 고집이 바로 천도무문의 저력을 보여 주는 듯했다.
“하늘의 도를 무로써 깨닫는다고 했던가?”
과거 절대천마 척계광의 비웃음과는 달리 신마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존경과 경의를 담아 공손히 위패를 향해 예를 갖추고 있었다.
당금 무림에 누가 있어 신마에게 과연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신마의 수하들은 지금껏 신마의 이런 경건한 모습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단순한 말 한마디보다 이런 신마의 경건한 행동은 주변 수하들의 분위기마저 사뭇 경건하게 만들고 있었다.
삼안신마(三眼神魔) 위지겸, 마교 서열 십위에 위치한 인물이었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으로 인간을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교에서의 숫자는 분명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암흑 속에서의 삼백 년 세월, 비단 그들 개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그들 선조의 노력까지 합쳐져서 그들 각각이 이런 숫자로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숫자는 그들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보이는 천도무문의 위패들처럼 삼백 년간 그들의 선조가 흘렸던 피와 땀방울이 이뤄 낸 결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마 위지겸은 단순히 마교 서열 십위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마교의 호남 공략의 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전 마교의 모든 전략을 책임지는 군사(軍師)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무공만으로는 마교 서열 십위, 하지만 그 두뇌는 마교 내에서 최고라 평가되는, 말 그대로 문과 무를 겸비한 마교 최고의 남자가 바로 신마 위지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마교 내에서 혹자는 신마 위지겸이야말로 오랜 마교의 역사 속에 가장 뛰어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평가를 내놓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 그를 호위하는 수하들 역시도 결코 범상치 않았다.
마교 서열 십칠위의 검마 이진중을 비롯해 마교 서열 백위권 내의 다수의 인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들 중 얼마 전 유소혜를 쫓았던 흑백쌍마의 하위에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오로지 교주와 위지겸의 명만을 따를 뿐이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바로 마교에서의 위지겸의 위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 신마 위지겸이 단지 천도무문이라는 이름만으로 직접 이곳 폐장원을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직속 휘하 백 인 모두를 대동한 채. 그만큼 천도무문의 의미는 마교에게 그야말로 각별하다는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