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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9화)
第五章 뭐 공짜니까?(2)
“외부의 순찰조는 모두 돌아왔는가?”
검마 이진중이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이진중의 목소리에는 다소 불만이 섞여 있었다.
천도무문을 발견했다는 단순한 보고만으로 이렇게 위지겸이 직접 움직인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네와 나를 제외한 모든 수하들을 장원의 외부로 돌리게. 또한 이곳에 들어오는 누구도 막지 말고 들여보낼 것이며, 그가 누구든 예를 다하라 전하게. 나는 이곳에서 무문의 주인을 기다릴 것인즉.”
이진중이 흠칫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하오나 군사.”
게슴츠레한 위지겸의 눈이 더더욱 얇아졌다.
이진중은 이것이 위지겸이 분노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네가 언제부터 내 말에 토를 달았던가?”
이진중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재빨리 허리를 꺾었다. 그런 이진중을 향해 위지겸이 다시 한 번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아직도 내가 두 번 말하기를 기다릴 생각인가?”
위지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진중은 이미 사당 밖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수하들 역시 황급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위지겸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다시 한 번 차분히 사당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직접 와 보기를 정말 잘한 것 같군.”
다른 사람은 느낄 수 없었지만 위지겸에게는 사당을 정리한 인물의 예기가 느껴졌다. 사람마다 그들이 내뿜는 독특한 기운이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 기운들은 어디건 그 사람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흔히들 손때라고 하던가?
물건에 남겨진 그 손때를 통해서 위지겸은 그 사람의 능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물론 말 그대로 어느 정도였다.
때문에 위지겸은 직접 눈으로 그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 후 수하들의 배치를 끝마친 이진중이 사당으로 돌아와 위지겸의 뒤를 호위하듯 가만히 서 있었다.
감히 위지겸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런 위지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심하다고 해야 할까?
처음 천도무문의 정문에 도착한 위지겸은 큰 소리로 주인을 청했다.
그러기를 무려 한 시진, 그래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비로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공손히 허공에 예를 갖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불어 먼지 하나도 훼손하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이곳의 정찰이 시작되었다.
수하들이 이곳을 살피는 동안 위지겸은 발견된 사당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수하들을 물린 지금도 너무나 경건한 자세로 좌정한 채 어떤 인물인지도 모를 이곳의 주인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이곳이 바로 그 전설의 천도무문이라고 하지만 이미 망해 버린 것이 확실해 보이는 이곳에서 너무 과한 행동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천도무문의 주변을 둘러보던 흑영이 다소 불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로군.”
이렇게 중얼거리는 흑영은 물론 조금 전 풍운각을 출발한 소무린이었다.
조금 전 천도무문에 도착한 소무린은 무문을 철통같이 에워싼 마교도들을 감상이라도 하듯이 무문의 외곽을 빙 둘러보고 있었다.
“역시 사람이 있으니 제법 그럴듯한 문파처럼 보이는군.”
소무린은 피식 미소를 지으면서 마치 적진에 잠입하듯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찰나의 순간 무언가를 느꼈던 것일까?
주변을 경계하던 마교도가 힐끔 그가 지나간 자리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법이군.’
소무린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면서 곧장 사당으로 향했다.
자신이 게으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솔직히 지금 천도무문에 제대로 정돈된 곳은 사당밖에 없었고, 또한 지켜야 할 것도 사당밖에는 없었다.
오래도록 해 왔던 숨바꼭질 놀이에 재미라도 붙인 것일까?
소무린은 짙어지는 어둠 속에 신형을 감추고 문이 열린 사당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좀 놀려 줄까?’
이런 생각으로 소무린은 다소 짓궂은 표정으로 기척을 숨기고 호위하듯 위지겸의 뒤에 선 이진중을 향해 접근했다.
눈뜬장님이라고 해야 할까?
이진중은 소무린이 지척에 이르렀음에도 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 천천히 자신의 검으로 손을 옮기고 있었다.
“오셨소이까?”
이렇게 말하면서 좌정해 있던 위지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이진중이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일까?
이진중의 바로 삼 장 앞에 한 청년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런 들켜 버렸네.”
장난기 어린 청년의 모습에 이진중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이진중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느낌은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적어도 위지겸이 말하기 전까지 이진중은 청년의 도착조차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작해야 삼 장, 무인들 사이에서는 코앞이라고 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거리였다.
만약 상대가 자신을 노리는 적이었다면 어쩌면 자신은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 무문의 외부는 마교의 고수들이 잔뜩 에워싼 상황, 만약 누군가가 접근했다면 곧장 보고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눈앞의 청년은 엄중한 수하들의 감시망을 뚫고 아무도 모르게 이곳까지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한마디면 이곳을 포위한 마교도들에게 포위당할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 하지만 청년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여유로운 미소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인가?”
이진중의 중얼거림에 위지겸이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만 비켜서게.”
이진중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비켜서래도.”
위지겸의 호통에 비로소 이진중이 천천히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위지겸이 정중한 표정으로 소무린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마교의 위지겸이 천도무문의 문주를 뵙습니다.”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던 소무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쳇, 역시 마교였나? 그나저나 이 정도의 환대라니, 그래도 마교만은 그동안 우리 천도무문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뜻인가? 왠지 위로가 되는걸.”
위지겸이 소무린을 지그시 응시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본교가 천도무문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말과 동시에 게슴츠레하던 위지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와 동시에 위지겸의 안광이 어둠을 가르며 번뜩였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진중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삼안신마 위지겸, 그에게 있어서 삼안은 심안(心眼)이었고 또한 혜안(慧眼)이었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던가?
삼안이 발휘될 때야 비로소 위지겸의 진정한 본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고 또한 상대를 정확하게 가늠하는 순간이었다.
이진중이 위지겸의 삼안을 대하는 것은 이번이 정확히 세 번째였다.
과거 마교 교주를 상대로, 그리고 마교의 부교주를 상대로만 위지겸의 삼안이 모습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더더욱 놀라운 것은 눈앞의 청년이었다.
당시 교주의 호위로서 이진중은 교주의 뒤에서 위지겸의 삼안을 접한 적이 있었다.
교주의 뒤에서 삼안을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진중은 위지겸의 삼안을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마치 자신의 심연을 후벼 파는 것 같은 그의 안광에 압도되어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위지겸의 안광을 고작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애송이가 그저 담담히 직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일체의 미동조차 없이, 그리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재미없군. 눈싸움은 이제 그만하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여전히 마교는 천하 위에 군림하려 하는가?”
어느새 위지겸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돌아왔다.
“뭐, 일단은 그렇습니다.”
소무린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허면 오늘은 나를 잡으러 오셨는가?”
위지겸이 재빨리 이를 부인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리가요. 어찌 감히.”
소무린이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위지겸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본교와의 약속을 이렇듯 철석같이 지켜 주신 천도무문의 신의에 감사를 드릴 겸, 또한 삼백 년의 봉문이 풀린 것을 축하도 드릴 겸 해서 이렇게 무문을 찾았을 따름입니다.”
그러고는 위지겸이 힐끔 이진중을 바라보았다.
이진중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소무린의 옆을 스쳐 밖으로 향했다.
소무린의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이진중은 소무린을 다시 한 번 힐끔 쳐다보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물론 숫자로 인간을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나이는 그런 숫자에 불과했다.
연장자에 대한 예우는 그들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이나 지혜에 대한 예우일 뿐 단순히 그들의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소무린은 너무 어려 보였다.
‘화근의 싹은 더 자라나기 전에 잘라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진중은 지그시 이를 악물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시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렇게 이진중이 사라지자 소무린이 불현듯 무언가가 떠오른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이내 위지겸을 향해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이런, 마교를 대표해서 오신 분께 인사가 늦었습니다. 천도무문의 제십삼대 문주 소무린이라고 합니다.”
사뭇 정중한 소무린의 태도에 위지겸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면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소무린은 천천히 위지겸의 옆을 지나쳐 사당의 위폐를 등에 지고 진중한 표정으로 위지겸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이제 천도무문의 문주로서 귀하에게 묻도록 하지요. 오늘 귀하께서 본문을 방문하신 것은 축하의 뜻과 함께 선전포고를 하기 위함입니까?”
위폐를 등에 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것이 소무린의 진정한 모습일까?
소무린의 모습에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위압감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위지겸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제가 먼저 한 말씀 여쭈지요. 문주께서는 본교의 행보를 막으실 생각이십니까?”
소무린이 담담하게 말했다.
“때에 따라서는.”
미적지근한 소무린의 대답에 위지겸이 조심스레 말했다.
“본교와 함께 천하 위에 군림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때마침 사당으로 들어서던 이진중이 위지겸의 말을 듣고 흠칫 놀라면서 들고 있던 궤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쫘르륵.
궤짝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품고 있던 금자와 보석이 바닥에서 번쩍번쩍 빛을 뿌렸다.
“군림이라?”
소무린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위지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은 본교와 대등한 입장입니다.”
위지겸의 말에 이진중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미친…….”
순간 위지겸이 이진중을 죽일 듯 노려보았고 이진중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라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많이 봐 줘도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애송이, 무공의 고하를 떠나서 그런 인물에게 마교 전체와 동등한 입장에서 동맹을 체결하자고 제안하는 위지겸이 제정신이라고 생각할 인물은 아마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직접 목도한 이진중으로서는 진정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이런 제안을 거절하겠는가?
소무린에게는 하등 손해 될 것이 없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뒤이은 소무린의 대답은 더더욱 이진중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내 소무린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꺼림칙한 표정으로 위지겸을 바라보았다.
“글쎄요, 그런 경우는 좀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위지겸이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진중을 바라보았다.
“뭐 하는 겐가? 어서 주워 담지 않고.”
이진중이 고개를 숙이고는 계속해서 멍청한 표정으로 금자와 보석들을 궤짝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위지겸은 다시 소무린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약소하지만 무문의 봉문이 풀린 것을 축하드리는 뜻에서 본교가 준비한 자그마한 선물입니다. 부디 이것만은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또한 천도무문이 향후 본교를 적대시하지 않는다면 이곳 호남성을 귀문에 양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무린이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보?”
위지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향후 본교는 어떠한 경우에도 천도무문의 허락 없이는 호남 땅을 밟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또한 추후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든지 제게 통보해 주십시오. 저는 마교 서열 십위 삼안신마 위지겸입니다.”
위지겸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강조하듯 말했다. 그리고 가만히 자신의 품에서 하나의 영패를 꺼내 들었다.
영패를 확인하는 순간 이진중이 놀란 표정으로 위지겸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