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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무문 1권(10화)
第五章 뭐 공짜니까?(3)


금강석(金剛石)을 깎아 만든 영패, 그만한 크기의 금강석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봉마(奉魔)라는 두 글자가 정교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름 하여 봉마패(奉魔牌), 마교에서 이 봉마패의 존재 자체를 아는 인물은 기껏해야 상위 백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을 본 것은 마교 서열 십칠위의 이진중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상의 권위, 그야말로 교주와 동등한 지위를 상징하는, 그야말로 마교와 대등한 동맹 관계를 증명하는 영패였기에 마교에서 제작은 되었으나 실제로 그것이 외부로 흘러간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군사, 어찌 독단으로 그것을…….”
이진중이 위지겸을 제지하듯 말했다.
봉마패, 그것이 지금 위지겸의 수중에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거니와, 이렇게 위지겸이 마음대로 타인에게 전하는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위지겸이 이진중을 향해 다시 한 번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이진중의 반응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진중도 양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위지겸을 바라보았다.
“물러가 있으라.”
위지겸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진중은 검을 움켜쥐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위지겸이 그런 이진중을 향해 봉마패를 들어 올렸다.
“검마 이진중은 봉마패의 권위를 인정하는가?”
이진중이 재빨리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자세를 취했다.
그야말로 취할 수 있는 극존(極尊)의 자세, 그런 이진중을 향해 위지겸이 나직이 말했다.
“교주께서 내게 친히 이 패를 전한 것은 내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네놈 따위가 감히 이에 불복할 생각이더냐? 아니라면 그만 물러가도록.”
이진중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뒷걸음질로 사당을 벗어났다. 위지겸이 공손히 무릎을 꿇으면서 소무린을 향해 봉마패를 내밀었다.
“이 패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본교는 결코 천도무문을 적대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진중과 마찬가지로 위지겸 역시 뒷걸음질로 사당을 벗어나고 있었다.
봉마패를 받아 든 소무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물러가자 품 안에 봉마패를 갈무리하고 이진중이 가져온 궤짝을 확인하듯 열어 보았다.
“이 정도면 외상값은 되려나? 아무튼 뭐 공짜니까?”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히죽 미소를 머금었다.


第六章 근묵자흑(近墨者黑)(1)


천도무문을 빠져나온 위지겸은 수하들을 거느리고 풍운각으로 향했다.
그런 와중에 이진중의 얼굴은 자못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봉마패, 그것은 그야말로 마교의 절대 신물이었다.
교주에 버금가는 절대의 권위를 상징하는 봉마패를 서슴없이 타인에게 건네는 위지겸의 모습이 좀처럼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과연 위지겸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가?’
그렇게 위지겸의 자격까지도 의심하고 있는 지경이었다.
위지겸이 보기에 이런 이진중의 모습은 자신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진중과 그 휘하의 마교도들은 교주가 위지겸을 위해 직접 고르고 고른 마교의 정예들이었다. 이들이야말로 유사시에 위지겸을 위해 스스로의 목숨마저 내던져야 할 수하들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바로 검마 이진중이 있었다.
때문에 이런 이진중의 동요는 위지겸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위지겸으로서는 이런 이진중의 동요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위지겸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손을 들어 뒤따르는 수하들을 멈춰 세웠다.
자연스레 이진중과 위지겸만이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진중은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흥분한 상태였다.
어느 정도 수하들과의 거리가 벌어지자 위지겸이 발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이진중을 쳐다보았다.
위지겸이 그렇게 발걸음을 멈추자 비로소 이진중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이곳에 그들 두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위지겸을 바라보았다.
“내가 부교주였다고 하더라도 자네가 과연 지금과 같은 태도를 취했을까?”
이진중이 잠시 갈등하는 표정으로 위지겸을 바라보았다.
‘부교주였다면.’
냉철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위지겸에게 이진중은 감히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부교주가 조금 전 천도무문의 문주에게 봉마패를 건넸다면 아마도 이진중은 감히 이렇게 쉽게 불만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망설이는 이진중의 모습에 위지겸이 답답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교 서열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 이것이 결국 나에게 당면한 최대의 과제인가?’
위지겸은 이미 이진중의 이런 태도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 마교 서열 십위에 불과하다는 것이 지금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절대강자인 교주를 중심으로 마교의 서열은 오로지 무공의 고하에 따라서 결정되어 왔다.
언제나 그러하듯 마교는 과거의 실패를 힘의 부족에서 찾았다.
음지로 내몰린 마교인들에게 이 서열화가 상당한 자극이 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실력만 갖추면 누구나 최고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기에 이를 계기로 상당한 무공의 진보와 함께 제법 많은 절대고수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부작용도 결코 적지 않았다.
이제 마교는 음지에서 양지로 다시 무림에 출사표를 내던진 상황이었다.
이전 세 차례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모두가 힘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렇게 자부할 만큼 현재의 전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대했다.
출전을 앞두고 마교의 수뇌부들은 다시 한 번 확인하듯 의문을 던졌다.
“앞으로의 모든 일들이 단순히 힘으로만 해결 가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오래도록 고심한 마교 수뇌부들의 결론이었다.
이 점을 모두가 인정했기에 모든 수뇌부들의 동의하에 교주가 마교 서열 십위에 불과한 위지겸에게 군사의 자리와 함께 이인자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것은 마교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서열 파괴이자 일종의 변화였다.
그러나 정작 머리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교주가 직접 그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군사의 명은 부교주의 명보다 우선한다고 천명했음에도 지금 이진중은 그것에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어디 비단 이진중뿐이겠는가?
앞으로는 대부분의 명령은 모든 계획을 수립하는 위지겸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오늘 봉마패에 버금가는 중요한 일들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작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봉착하자 마교 서열 십칠위에 불과한 이진중이 위지겸의 결정에 반박하고 있는 것이 또한 작금의 현실이었다.
이진중도 이러할진대 그렇다면 이진중보다 상위에 있는, 그리고 과거 자신보다도 상위에 있었던 한 자리 숫자의 사람들이 과연 자신의 명령을 제대로 따를지는 그야말로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사안이 중대하면 할수록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교주가 위지겸에게 봉마패를 내린 것도 이와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치 이런 사실을 위지겸에게 확인이라도 시켜 주려는 듯 이진중이 결연한 표정으로 위지겸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저는 군사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이해 그러셨습니까?”
위지겸의 표정은 더욱 차갑게 가라앉고 있었다.
실처럼 가늘어진 그의 눈이 지금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위지겸은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한 가지만 약속해 주겠는가?”
이진중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위지겸을 바라보았다.
위지겸은 이참에 마치 다짐을 받아 두려는 듯 이진중을 응시하며 힘주어 말했다.
“오늘 자네의 무례한 행동이 본교에 대한 충정임을 알기에 더 이상은 오늘의 일로 자네를 책하지 않겠네. 허나 오늘의 일에 대해서 내가 자네를 납득시킨다면 자네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두 번 다시 내게 오늘과 같은 무례를 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겠는가?”
이진중이 결연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위지겸이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다는 듯 ‘후’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군사라는 사람이 일일이 모든 일을 이렇게 수하들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과연 앞으로의 일이 제대로 진행이나 될 수 있을지, 그야말로 정말 난감하군.”
위지겸의 넋두리에 이진중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지금 위지겸의 말에 한 치의 틀림도 없기 때문이었다.
위지겸이 그야말로 착잡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내가 그에게 봉마패를 준 것은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마교의 비극을 미리 예방하기 위함일세.”
이진중이 믿기 힘들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위지겸을 바라보았다.
위지겸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믿기 힘든가? 하긴 믿기 힘들 만도 하겠지, 나 역시도 고작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애송이 따위와 교주를 비교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으니 자네야 오죽하겠는가?”
순간 이진중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진중이 아는 한 교주는 그야말로 절대자였다.
“어찌 그런 일이.”
위지겸이 그런 이진중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내 어찌 자네의 심중을 짐작하지 못하겠는가? 아마도 자네는 그가 더 자라기 전에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아니 그런가?”
위지겸이 자신의 내심을 꿰뚫어 보자 이진중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결코 자네를 책하자는 것이 아닐세. 솔직히 나 역시도 심안이 없었다면 필시 자네와 마찬가지로 그런 선택을 했겠지.”
위지겸이 심안을 언급하자 이진중은 조금 전 위지겸이 심안을 열던 당시를 떠올렸다. 위지겸이 진중한 표정으로 그런 이진중을 향해 말했다.
“내 단언하건대 그는 결코 단순한 스무 살의 설익은 애송이가 아니라네, 그는 삼백 년 천도무문의 무게를 모두 어깨에 짊어진 절대고수였네.”
이진중은 자신도 모르게 위지겸의 말을 되씹었다.
“삼백 년 천도무문의 무게를 모두 어깨에 짊어진 절대고수?”
위지겸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교주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나의 심안을 피할 수 없었네. 그것은 부교주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네. 허나 놀랍게도 오늘 천도무문의 문주, 이제 스무 살도 되지 못한 애송이를 나의 심안으로도 가늠할 수 없었네. 이것마저도 자네가 믿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설명은 불가능하겠군.”
이진중은 이런 위지겸의 말을 믿을 수밖에는 없었다.
고작해야 스무 살 남짓의 애송이를 심안을 열고서도 가늠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은 위지겸에게 있어서도 그야말로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위지겸은 그런 치욕을 감내하면서 자신에게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마교 절대고수들의 능력마저 단번에 가늠할 수 있는 위지겸의 심안을 이제 스무 살 남짓의 애송이가 피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