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천도무문 1권(12화)
第六章 근묵자흑(近墨者黑)(3)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 동안 주방의 칼질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반주로 나온 소홍주를 한잔 마시면서 소무린이 조금 껄끄러운 표정으로 장소팔을 빤히 쳐다봤다.
“아버님은 식사 안 하시냐?”
장소팔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아버지는 벌써 잡수셨지.”
소무린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장소팔을 쳐다봤다.
“야야, 그럼 너라도 빨리 먹고 가서 도와야 되는 것 아니냐?”
장소팔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야야,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여태까지 정말 뼈 빠지게 일하다가 그나마 식사 시간이 되서야 겨우 쉬는 거다. 나를 설마 아버지나 부려 먹는 파렴치한으로 보는 거냐?”
장소팔이 자신을 노려보자 소무린이 다소 머쓱한 표정으로 화답했다.
“그러냐? 아무튼 빨리 먹는 게 좋겠다.”
장소팔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심스런 표정으로 소무린을 살폈다.
“야, 그런데 솔직히 그 많은 돈이 다 어디서 난 거냐?”
소무린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주섬주섬 음식을 먹으면서 말했다.
“어젯밤에 웬 미친놈이 한번 쓱 째려보더니 그냥 주던데.”
장소팔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참, 고놈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일세. 근데 그 미친놈은 뭐 하는 놈이라냐? 나한테도 그놈 좀 소개시켜 주라. 이왕이면 나도 한 밑천 잡게.”
소무린이 입가에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 그렇게 알고 싶냐?”
장소팔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소무린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너 혹시 마교라고 들어 봤냐?”
순간 두 사람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부엌에서 들려오던 칼질 소리가 멈췄다.
장소팔이 알고 있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소팔은 어제 객점에 머물렀던 손님들이 마교도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아는 마교는 그저 사람들의 입에 가끔씩 오르내리는 안줏거리 정도로 전설 속의 마물과 같은 존재였다.
“설마, 그 저주받은 악마 같다는 놈들을 말하는 거냐?”
소무린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악마는 무슨, 그저 칼질 좀 하는 놈들이 모여서 단체 하나 만든 것뿐인데.”
장소팔이 궁금증 어린 표정으로 소무린을 향해 물었다.
“설마, 네가 말하는 그 미친놈이 그 마교의 사람이냐?”
소무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기 입으로 그렇다고 하더군.”
장소팔이 못 믿겠다는 듯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야야, 마교가 미치지 않고서야 네가 볼 게 뭐 있다고 너한테 그 많은 돈을 준단 말이냐. 당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소무린이 계속해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하긴, 미쳐도 제대로 미쳤지. 무슨 장난감처럼 호남성도 나한테 준다던데.”
이런 두 사람의 대화 도중 갑자기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라고 해 봐야 주방에서 칼질하던 장봉상이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장봉상은 식칼을 높이 들고 소무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허락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손님.”
갑작스런 장봉상의 등장에 장소팔이 화들짝 놀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깜짝이야. 아버지, 제발 인기척 좀 하고 다니세요, 예.”
하지만 소무린은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장봉상을 한번 힐끔 쳐다보았을 뿐 계속해서 주섬주섬 음식을 집어 먹고 있었다.
“손님, 진정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소무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냥 주겠다는데 받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장봉상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물론 있지. 잊었느냐, 그들이 바로 천도무문이 오늘날까지 봉문을 하도록 만든 원흉이라는 것을. 그런 그들과의 동맹이라니, 자네는 지금 그것을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소무린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저씨, 동맹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저는 그저 주는 것을 받았을 뿐입니다. 헌데 그건 그렇고 무림인도 아닌 아저씨께서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네요.”
장봉상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식칼을 내리면서 소무린을 바라보았다.
“그렇네. 자네의 말처럼 물론 나는 무림인이 아닐세. 허나 오랫동안 무문의 사람들과 교분을 맺어 온 장씨 가문의 사람으로서, 그리고 연장자 된 입장에서 노파심으로 하는 말이니 오해하지 말고 귀담아들어 주게. 자네는 혹시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가?”
소무린이 알고 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봉상이 기다렸다는 듯 계속해서 말했다.
“자네의 사부님들은 생전에 자네가 천도무문을 자랑스러운 문파로 재건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셨네. 자네는 그것이 곧 자네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야. 나는 그런 자네가 마교의 사람들을 가까이해, 자칫 그들과 동화될까 두려울 따름일세.”
소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장봉상을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어르신의 말씀 삼가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장봉상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장소팔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근묵자흑이라. 음, 우리 아버지도 제법 유식하시네.”
기다렸다는 듯 장봉상의 주먹이 장소팔의 머리를 휘갈겼다.
“헛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마저 처먹어라. 그러고 보니 자네가 진짜 가까이해서는 안 될 족속이 여기에 있구먼.”
장봉상의 말에 소무린이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장소팔이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빌어먹을, 왜 만날 나만 갖고 그래요.”
투덜거리던 장소팔은 장봉상이 다시 주방으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음흉한 표정으로 소무린에게 한쪽 눈을 깜박이면서 말했다.
“거사는 오는 보름에 치르도록 하자.”
이번에는 소무린도 조심스레 주방을 살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第七章 가자, 기루로!(1)
십팔 년 장소팔의 인생에 열흘이라는 시간이 이토록 길게 느껴진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길고 지루한 기다림,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고, 어김없이 세상과는 전혀 상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만의 거사 당일이 밝아 왔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은 그 열흘의 시간보다 길게만 느껴지는 평범한 하루 일과였다.
마침내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장소팔은 일찌감치 조용히 뒷정리를 시작했다.
풍운각은 도시의 외곽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보통 일단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그렇다고 장소팔이 평소에도 이렇게 일찍 뒷정리를 했느냐?
그런 경우는 지금까지 단연코 없었다.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으레 표시가 나는 법, 장봉상이 그야말로 의아한 표정으로 장소팔을 지켜보고 있었다.
“야야,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청결이야말로 요식업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손님이 없을 때 식당을 청소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이것이 장소팔의 평소 모습이었다면, 아니 일 년에 한 두 번이라도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칭찬을 했을지언정 장봉상이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나중에 치우면 될 것을, 굳이 서두를 필요가 뭐 있어요.”
장봉상이 청소를 시키면 언제나 입버릇처럼 장소팔이 하던 말이었다.
그런 아들이었기에 어찌 보면 장봉상의 이런 반응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장봉상의 반응에 장소팔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 이상하네. 벌써 저녁때가 지났는데도 무린이가 오지를 않네요. 아무래도 제가 무슨 일이 있는지 한번 찾아가 봐야 할 것 같네요. 매일 오는 단골인데 이 정도의 배려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얼마 전에 외상값도 다 갚았는데.”
외상값이라는 말에도 장봉상은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장소팔을 바라보았다. 장소팔이 그런 아버지에게 좀처럼 보이지 않는 간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았다. 그럼 가는 길에 먹을 것이나 좀 챙겨 가거라.”
장소팔이 기다렸다는 듯 짧게, 그리고 힘차게 대답했다.
“넵.”
황급히 주방으로 달려 들어간 장소팔은 주섬주섬 음식을 챙기고, 창고로 달려가더니 술도 서너 병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
모든 준비를 끝낸 장소팔은 행여나 소무린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를 걱정하는 사람처럼 심각한 표정으로 풍운각을 출발했다.
그러나 풍운각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장소팔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이런 장소팔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장봉상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녀석, 그럼 이쯤에서 나도 문을 닫고 시내로 들어가 보실까?”
장소팔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렇게 즉시 객점 문을 닫는 장봉상이었다.